종이접기 책읽기
옆지기하고 함께 살아가기로 한 날이 2007년 6월 4일이다. 이날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내가 국민학생 적부터 종이접기를 하며 유리병에 모은 몇 가지를 방바닥에 죽 늘어놓았다. 두루미랑 옷이랑 여러 가지 접은 종이꾸러미 담은 유리병은 오뚜기 회사에서 만든 마요네즈병이다. 1980년대 첫머리쯤에 나온 유리병을 이때까지 잘 건사했으니 스무 해 남짓 그대로 둔 셈이었겠지. 여기에다가, 국민학생 때 쇠돈 알뜰히 모아 저금통에 모으기도 했기에, 오래된 저금통을 함께 열어 방바닥에 죽 늘어놓아 보았다.
나는 이때 다른 무엇보다 ‘어라, 이제 종이두루미 어떻게 접는 줄 생각 안 나네?’ 하면서 스스로 놀랐다. 게다가 유리병에 담은 종이두루미는 옛날 껌종이로 접었는데, 옛날 껌종이는 바른네모 아닌 긴네모라서 종이 꼬다리가 남는다. 그래서 나는 종이 꼬다리로 더 작은 종이두루미를 접곤 했다. 껌종이로 접는 종이두루미도 작지만, 껌종이를 바른네모로 접으며 남는 조그마한 꼬다리로 접는 종이두루미는 훨씬 작다. 그런데 나는 국민학생 때에 그 쪼꼬마한 꼬다리로도 그야말로 쪼꼬마한 종이두루미를 손가락 놀려 접었다.
허허 웃으며, 다시 종이두루미 접어 볼까 하는데 안 된다. 손가락이 뭉툭해졌기 때문일까. 어릴 적 마음이 안 되기 때문일까. 그러나, 뭉툭해진 손가락이건 어른 마음이건, 스스로 하려 하면 되겠지. 큰아이가 종이접기 하고프다 말하면, 나는 다시 종이접기 익혀서 큰아이한테 물려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내가 어릴 적 접은 몇 가지 보여주면서, 큰아이더러 종이접기책 뒤적이며 스스로 접으라 해서야 되겠는가.
돌이켜보면, 나는 종이두루미 접기를 어머니한테서 배웠다. 어머니는 몇 가지 종이접기를 보여주었는데, 나는 종이비행기나 종이배를 찬찬히 보면서도 따라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종이공 접기도 나는 잘 못했다. 오직 하나, 종이두루미 접을 때에는 잘 되었다. 종이접기에서 어느 접기를 못해서 어느 단계를 못 넘어간 셈이라 할 텐데, 씩씩하게 더 작은 종이에 더 작게 똑같은 것 접기는 곧잘 하면서도 새로운 접기로는 못 넘어가곤 했다. 이런 내 손놀림이나 손짓이라 한다면, 나는 우리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들려주며 무엇을 물려줄 만할까. 우리 아이는 저희 아버지한테서 무얼 보고 무엇을 들으며 무엇을 물려받을 만할까. 4346.4.2.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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