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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ㅣ 생각하는 숲 8
사노 요코 글 그림, 이선아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6
하늘이 내린 선물
―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
사노 요코 글·그림,이선아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2004.9.20./6500원
아이를 안고 밤에 잠들었는데, 새벽에 문득 깹니다. 어라 조금 쌀쌀하네 싶더니, 내 오른팔을 베개 삼아 잠든 작은아이가 어느새 이불을 걷어찼군요. 얘야, 너 내 왼팔을 베개 삼아 잤잖아. 언제 오른팔로 기어들어서 이렇게 이불 걷어찼느냐?
자면서 아마 열 차례나 스무 차례쯤 이불을 새로 여미는데, 지난밤에는 이불 여미고 여미다가 깜빡 지나치고 곯아떨어진 듯합니다. 그래, 이불 새로 여미면서 덮고 아이들 가슴 토닥이다가, 요 녀석, 자면서 왜 자꾸 이불 걷어차니, 너 혼자 자지 않고 네 아버지랑 누나하고 함께 덮는 이불인데 네가 사이에서 걷어차면 모두 이불 없이 자는 꼴 되잖아, 하고 종알거립니다.
큰아이가 올해에 여섯 살이니, 나는 아직 여섯 해 아이하고 지내는 셈입니다만, 여섯 해를 하루같이 돌아보노라면, 어느 날이고 아이들이 사랑스럽지 않던 날 없습니다. 어느 날이든 아이들이 귀여우며 예쁩니다. 참으로, 아이란, 하늘이 나를 어버이로 삼으며 빛내도록 내려준 선물이구나 싶어요. 곧, 나 또한 내 어버이한테 하늘이 내린 선물로 찾아왔겠지요. 누구나 하늘이 내린 선물로 이녁 어버이한테 찾아가고, 누구나 하늘이 내린 선물을 받는 삶 누릴 수 있어요.
.. 아저씨는 나무 아래서 차 마시기를 좋아했습니다. 차를 마시는데, 찻잔에 뭔가가 떨어졌습니다. 새똥이었습니다. 아저씨는 나무를 걷어차면서 말했습니다. “어디 두고 보자.” .. (6쪽)
다만, 스스로 ‘하늘이 내린 선물’인 줄 못 느끼는 사람 많습니다. 나도 내 어버이도 모두 ‘하늘이 내린 선물’이에요. 내 어버이는 내 할매 할배한테 ‘하늘이 내린 선물’이요, 내 할매와 할배 또한 당신 어버이한테 ‘하늘이 내린 선물’입니다. 먼먼 옛날 옛적부터 모두들 ‘하늘이 내린 선물’로서 이 땅에 태어나 어린 나날 누리면서 무럭무럭 자랐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사랑을 물려주면서 하루하루 기쁨 가득한 웃음꽃 피웠지요.
나와 옆지기가 우리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보낼 수 없는 까닭은 오직 하나입니다. 이 아이들하고 누리는 하루하루 즐거움이자 기쁨인데, 이 즐거움과 기쁨을 왜 남한테 맡기겠어요. 즐겁게 밥을 차리고 기쁘게 빨래를 합니다. 즐겁게 그림놀이 하고 기쁘게 글놀이 합니다. 즐겁게 자전거마실 다니고 기쁘게 들놀이 누립니다.
노래는 어버이가 먼저 스스로 익혀 아이들한테 들려주면 됩니다. 노래 부르다 목이 아프면 평상에 드러누워 쉬지요. 그러면, 들새와 멧새가 마당 둘레로 찾아와서 찌찌빼빼 온갖 노래 들려줍니다. 가만히 누워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새소리에 벌레소리에 바람소리에 풀소리에 물소리에, 아름다운 노랫소리 한가득 듣습니다. 나도 듣고 아이들도 들어요.
아이들 모두 신나게 뛰어노니까 밥 잘 먹지요. 밥그릇 싹싹 비웁니다. 밥알 한 톨 남기지 않아요. 개구지게 뛰어놀며 기운을 듬뿍 쏟는 만큼, 이 아이들이 밥알 흘릴 턱 없습니다. 밥알 흘리면 곧바로 주워서 먹지요.
봄을 한껏 누리는 요즈음, 아버지는 어디에서나 풀을 뜯어 냠냠 맛을 봅니다. 이름을 알건 모르건 아랑곳할 까닭 없습니다. 입에 넣어 씹으면 됩니다. 먹을 만하면 삼키고 너무 쓰면 뱉지요. 그러나, 봄에는 쓴 풀 하나 없어요. 어느 풀이건 다 먹을 만하며, 푸른 내음 가득하고, 배가 차르르 부릅니다. 곁에서 여섯 살 큰아이가 아버지 바라보다가 “먹는 풀이야?” 하고 물어요. “너도 줄까?” “응. 난 꽃 달린 걸로 줘.” “이것도 먹고 꽃 달린 풀도 먹으면 되지.” 어제 낮에는 대문 앞 좀꽃마리 한 줄기 꺾어서 먹자니, 곁에서 “나도 뜯어야지.” 하더니 조그마한 꽃송이 예쁘게 핀 좀꽃마리 수북하던 꽃밭을 거의 다 큰아이가 뜯어서 먹습니다.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내도록 뜯어서 먹어요.
.. 아저씨는 봄이 온 줄 몰랐습니다. 커다란 나무가 꽃을 피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저씨는 “쯧.” 하고 혀를 차고는 조그만 민들레를 바라보았습니다 .. (22쪽)
풀을 먹는 아이는 풀내음 가득한 웃음을 짓습니다. 꽃을 먹는 아이는 꽃빛 싱그러운 웃음을 베풉니다. 풀을 먹는 어버이는 풀빛으로 아이를 껴안습니다. 꽃을 먹는 어버이는 꽃내음 그윽한 이야기잔치 아이한테 물려줍니다.
아름다운 그림책 읽어 주어도 아름답고, 스스로 이야기 지어 아이하고 나누어도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숲 깃든 시골마을에서 아름다운 하루 누리면 그림책 백 권이나 천 권 읽는 셈입니다.
처마 밑 제비집 바라보다가 어미 제비 날아들어 새끼 제비한테 먹이 물리는 모습 맞닥뜨립니다. 아, 좋아라, 예뻐라. 어버이도 아이도 제비짓 바라봅니다. 제비짓이란 얼마나 사랑스러운 다큐멘터리 영화인지. 제비들 날갯짓 바라보노라면, 영화 백 편 천 편 보는 셈이로구나 싶어요. 우리 집 처마 밑에 제비집 둘 있어 얼마나 반가우며 고마운지 모릅니다. 날마다 펄떡펄떡 생생한 영화를 보여주거든요.
.. 아저씨는 새벽같이 일어나 새싹 옆으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새싹에 물을 주고, 꼼꼼히 살펴보고는 나무 둘레를 빙글빙글 돌았습니다 .. (44쪽)
사노 요코 님 그림책 《두고 보자! 커다란 나무》(시공주니어,2004)는 바보스러운 아저씨가 커다란 나무를 그만 싹뚝 베고 나서 눈물짓는 이야기를 잔잔히 보여줍니다. 그림책 아저씨는 늘 나무 앞에서 투덜거렸지만 늘 나무하고 함께 살았어요. 나무가 있기에 즐거운 나날이었고, 나무가 있어서 이야기 샘솟는 나날이었어요. 그러다가 바보스레 나무를 베고 나니, 이때부터 삶에서 즐거움 싹 사라지고 이야기 몽땅 없어집니다. 나무를 벤 이듬날부터 아주 또렷하게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림책 아저씨는 바보스럽게, 참말 바보스럽게, 베어서 뭉텅이 사라진 나무 그루터기에 엎드려 엉엉 웁니다. 그리고, 엉엉 울었기에 이 울음을 거름 삼아 그루터기 한켠에서 새 가지 하나 삐죽 솟아요.
나무는 다시 자랍니다. 풀도 다시 자랍니다. 풀을 뜯어서 먹고 또 먹어도, 봄부터 가을까지 씩씩하게 자라요. 나무도 그렇지요. 가지를 치고 또 잘라도, 나무는 꿋꿋하게 새 가지를 냅니다. 아름답지요. 사랑스럽지요. 고맙지요. 좋지요.
아이들은 모두 나무와 같습니다. 곧, 아이에서 어른이 된 우리들 모두 나무와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나무와 같아요. 웃음을 늘 길어올립니다. 이야기를 언제나 퍼올립니다. 사랑을 노상 새로 빚습니다. 아름다운 삶입니다. 4346.4.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