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어서 쌓은 책
헌책방 일꾼이 책을 묶어서 쌓는다. 짝을 잃으면 안 되는 책일 때에 으레 묶고, 짝맞추기 할 책은 아니되 한 갈래로 묶을 만한 책을 묶어서 쌓는다. 그냥 쌓으면 책들은 어느새 섞인다. 한 사람이 만지고 두 사람이 만지면서, 그만 헌책방 일꾼으로서는 당신 책이 어디에 있는지 잃고 만다. 도서관 일꾼조차 사람들이 아무 데나 놓는 바람에 책을 한동안 잃어버린다고 하는데, 헌책방 일꾼도 이와 같다. 책손 가운데 이녁이 살펴본 책을 처음 꽂힌 자리에 고스란히 꽂는 얌전한 사람이 매우 드물다. 으레 아무 데나 척척 얹거나 꽂는다.
그런데, 사람들은 새책방에서도 책을 아무 데나 꽂기 일쑤이다. 이 사람이 살피다가 아무렇게나 꽂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와서 책을 살필 때에는 정작 못 찾곤 한다. 새책방 장부나 목록에는 틀림없이 그 책이 있으나, 끝내 못 찾아서 다시 주문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내가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 도서관이나 새책방이나 헌책방에서 책을 어떻게 살펴야 하는가를 가르친 적 없다고 느낀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와 중학교에는 아예 도서관이 없었고, 고등학교에서는 겨우 조그마한 도서관이 하나 생겼지만, 열린 곳이 아니라 닫힌 곳이었다. 우리 스스로 책을 곱게 만져서 곱게 건사하는 길을 가르친 학교가 없었다.
요즈음은 아이들한테 책읽기를 옳게 가르치려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아이들한테 그림책 읽히면서 책을 어떻게 건사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가르치려나. 책장을 넘길 때에는 어떻게 넘기고, 책을 펼쳐 읽을 때에는 어떻게 책을 다루어야 하며, ‘내 책’ 아닌 ‘여럿이 함께 보는 책’은 어떻게 돌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려나. ‘내 책’일 때에도, ‘내 책’을 얼마나 알뜰히 보듬으며 오래도록 즐겨읽도록 북돋울 때에 즐거운가 하는 대목을 가르치려나.
책이 다치지 않게 책장 넘기는 매무새를 가르치는 교사는 몇이나 있을까. 책방마실을 할 적에 몸가짐을 어떻게 하고, 목소리나 손전화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교사는 몇이나 될까.
헌책방 책탑이 어수선하다는 말을 사람들이 참 쉽게 한다. 그런데, 왜 헌책방 책탑이 가지런하지 못하거나 어수선할까. 헌책방 일꾼이 게으른 탓일까. 헌책방 일꾼이 바보스럽기 때문일까. 헌책방 찾아오는 책손은 얼마나 바지런하거나 아름다울까.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거나 책을 사랑한다고 밝히는 사람들은 ‘책 다루는 손길이나 손끝’이 얼마나 정갈하거나 고울까.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