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박원순 님
부산 보수동에서 헌책방 책살림 일구는 〈우리글방〉 사장님이 순천과 인천을 거쳐 서울에 있는 헌책방을 다녀 보려고 하신다고 하기에, 인천과 서울에 있는 헌책방으로 모시고 다닌다. 이러는 동안 나도 책방마실 새롭게 하면서, 한결 즐겁게 헌책방 사진을 찍는다. 서울 독립문 영천시장 한켠에 자리한 〈골목책방〉에 들렀을 때에, 큰길에 있는 조그마한 나무간판을 새삼스레 바라보다가 〈골목책방〉 아주머니한테 여쭌다. “박원순 님이 서울시장 되신 뒤에도 오셨나요?” “음, 한 번 오셨지. 독립문에서 삼일절 행사 할 때에는 못 오시고, 그 뒤에 언젠가 한 번 오셨지. 수행원 오륙십 명 이끌고 오셔서 ‘여전하시네요.’ 하고 말씀하시더라고.” “그 뒤로도 오셨나요?” “아니. 그때 한 번 오시고, 안 오셨어.”
집으로 돌아와서 문득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살펴본다.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 님이 독립문 헌책방 〈골목책방〉 나들이를 깜짝스레 한 일이 몇몇 블로그에 나오고 신문글 하나 나온다. 몇 월 몇 일인지 또렷하게는 모르겠으나 신문글은 2011년 11월 3일에 나왔으니, 아마 2011년 11월 2일에 〈골목책방〉 나들이를 수행원한테 말을 않고 갑작스레 했으리라 본다. 그런데, 수행원 수십 사람에다가, 박원순 님 보려고 몰려든 숱한 사람물결을 헤치면서 책을 구경하지는 못했으리라. 그저 헌책방 일꾼들한테 안부인사 한 마디 여쭙고 겨우 지나갔으리라. 서울시장 되기 앞서까지는, 또 참여연대나 아름다운재단 일을 하기 앞서까지는, 여느 변호사로서 일하는 삶을 꾸릴 적에는, 이녁은 〈골목책방〉을 비롯해 여러 헌책방에 단골로 드나들었겠지. 그러나, 여러 가지 바쁜 일을 하고 이런저런 모임을 꾸리다가 정치와 행정을 맡는 자리에 들어선 만큼, 한 해에 한 차례 또는 한 달에 한 차례 한 시간이나마 짬을 내어 헌책방마실을 즐기기란 몹시 어려운 나날이 되었으리라 느낀다. 관직에서 물러나 조용히 삶을 되새기면서 글을 쓰려 하지 않고서야 ‘헌책방 단골’로 돌아가기는 힘들겠다고 느낀다.
나한테는 아무런 직책도 지위도 계급도 신분도 없다. 나는 어느 모임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어느 집단에도 깃들지 않는다. 다만, 시골마을에서 옆지기하고 두 아이하고 살아간다. 아직 퍽 어린 아이들 돌보느라 바깥마실 나오기 빠듯하지만, 틈틈이 바깥마실 다닐 수 있고, 내 곁에는 나를 지킬(?) 수행원이나 경호원 하나 없으니 아주 홀가분하면서 조용히 헌책방마실을 즐기고, 헌책방 일꾼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주고받다가는, 헌책방 아름다운 책시렁을 기쁘게 사진 몇 장으로 아로새긴다.
서울시장 되어 서울시를 아름답게 돌보는 일도 무척 뜻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일에 보람을 느끼며 힘차게 한길 걸으면 멋스럽고 훌륭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누가 나한테 서울시장이건 고흥군수이건, 또 무슨무슨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나 어느 모임 대표 같은 자리를 맡기려 한다면, 나는 두말 않고 손사래치거나 몰래 내빼리라 본다. 어쩌면 나는 서울시장이 된다 해도 서울시 예쁜 헌책방 찾아다니며 책을 즐길는지 모르는데, 그만큼 내 하루를 내가 바라지 않는 정치나 행정에 빼앗겨야 한다. 모임 대표가 되는 일도 이와 같다. 아무리 자그마한 모임이라 하더라도 그저 즐겁게 함께하면 기쁠 뿐, 더도 덜도 바랄 것 없다.
하루에 책 한 권 읽을 겨를이 없다면, 하루에 몇 시간 아이들과 복닥이며 노래하고 조잘조잘 떠들거나 그림놀이를 할 틈이 없다면, 하루에 여러 시간 하늘바라기·꽃바라기·나무바라기·풀바라기 할 말미 내지 못한다면, 나로서는 이러한 삶은 내 삶 같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 헌책방 나들이 즐기는 웃음꽃을 그 어느 것에 내주랴. 누군가 돈 억수로 갖다 안긴들 무슨 감투를 선물한다 한들, 나는 골골샅샅 살가운 헌책방들 마실 다니는 재미를 아무한테도 내주고 싶지 않다. 4346.3.31.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