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천장

 


  2011년 3월 31일. 서울 혜화동에 마지막까지 남아 책살림 꾸리던 헌책방 한 곳을 찾아간다. 이곳은 이듬날 4월 1일에 문을 닫기로 했다. 헌책방 사장님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 마지막 모습 사진으로 찍으라 하셨기에, 먼길 마다 않고 부랴부랴 찾아갔다. 시외버스 타고 서울로 찾아가는 동안 곰곰이 생각한다. 혜화동에 있던 마지막 헌책방이 문을 닫으면, 난 앞으로 혜화동 갈 일 없겠네.


  필름 석 통쯤 찍을 무렵이던가, 문득 헌책방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천장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책이 보인다. 오래도록 한 곳을 지킨 만큼, 오랜 나날 먼지 먹은 천장이 아련하다. 헌책방이 나가고 나면 분식집이 들어온다고 했던가. 분식집이 들어오건 다른 가게가 들어서건, 이곳에 헌책방 하나 서른 해 넘게 자리를 지켜 숱한 사람들 책쉼터 구실을 한 줄 떠올릴 수 있을까.


  책손 하나둘 줄고 인터넷으로 책을 사는 사람 늘어나던 어느 때, 혜화동 헌책방 사장님은 바깥 책꽂이에 둔 책들 햇볕에 바랠까 걱정스러워 50만 원 들여 넓게 펴는 해가리개를 달며 웃었다. “책 보러 사람도 안 오는데 이걸 해야 할까 말까 싶었는데, 그래도 책 때문에 ……. 하고 보니 좋네. 책도 안 다치고.”


  이듬날 다른 헌책방 한 곳에 이곳 책을 몽땅 넘기기로 했기에, 나는 이곳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책손이 되기는 했으나, 책을 한 권도 살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이곳 책을 몽땅 넘기기로 했다 하더라도, 꼭 한 권만 장만하고 싶다. 마지막 내 손자국 남길 책 하나 사고 싶다. “그냥 가져가. 통째로 넘기기로 했는데, 한 권 빼도 되지 뭐. 그래도, 통째로 넘기기로 했으니까 한 권이라도 빼면 안 되는데, 그 책은 가져가도 되겠네.”


  하루만 지나면 헌책방 간판까지 떨어지고 말 혜화동 헌책방 좁은 골마루에 서서 필름 여러 통 쓰다가 천장을 찍으려고 돌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내 사진기 렌즈로는 벌렁 드러누워야 비로소 천장이 사진으로 들어온다. 더 나은 사진기와 더 값진 렌즈가 있다면 굳이 벌렁 드러눕지 않고도 헌책방 천장 사진 찍을 수 있겠지. 그러나, 내가 쓰는 사진기로도 고마우며 좋다. 외려 더 즐거우며 반갑기도 하다. 화각이 안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헌책방 돌바닥에 벌렁 드러누울 생각을 할 수도 있잖은가. “사진 찍느라 애쓰는구먼.”


  혜화동 헌책방 사장님 말씀에 조곤조곤 말벗을 하고 싶지만, 어쩐지 말 한 마디 꺼내려 하면 눈물이 흐를 듯해서 조용히 사진만 찍는다. “이제 그만 찍고 가지. 내 밥 한 그릇 살 테니, 밥 먹고 가세.”


  마음속으로는 한 장 더, 두 장 더, 석 장 더, …… 이렇게 소리를 친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듬날 일찍 혜화동을 다시 찾아와서 책 나가고 책꽂이 나가며, 마지막 쓰레기 다 치우는 모습까지 지켜본다. 필름을 얼마나 많이 썼을까. 그런데, 사진을 찍은 내 마음이 하나도 홀가분하거나 즐겁지 못해, 이태 동안 필름을 묵힌다. 이태만에 필름을 스캐너에 앉힌다. 아직 내 마음은 가붓하지 않다. 이태만에 ‘문닫고 사라진 헌책방 모습’을 스캐너로 긁으며 바라보는데, 내 마음속에는 이 헌책방이 아직도 그곳에서 씩씩하게 문을 열어 책손을 맞이한다는 느낌이다. “어, 왔는가?” 하며 인사하는 헌책방 사장님 목소리 들린다. 4346.3.28.나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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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treeje 2013-03-29 10:03   좋아요 0 | URL
혜화동은 제게 여러가지로 의미가 많은 곳이었고, 또 지금도 그런 곳이지요.
그런데 이 글을 읽고나니 앞으론 '혜화동 헌책방'이 또 하나 제 마음에 간직되겠군요..

숲노래 2013-03-29 10:2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혜화동 드나드시던 때에 그 헌책방에도 가 보셨을까 궁금하네요. 아무튼, 이제 혜화동 명륜동 삼선교 길음동 성신여대 둘레까지 헌책방이 모두 사라지고 없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