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책시렁

 


  서울 독립문 영천시장 한쪽에 헌책방 〈골목책방〉이 있다. 따로 간판이 없이 헌책을 사고파는 이곳은 1971년부터 2013년 오늘까지 씩씩하게 헌책방 살림을 꾸린다. 책이 잘 팔리건 책이 안 팔리건, 날마다 새로운 헌책을 들인다. 이곳에서 들여놓는 책을 사려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여러 소매 헌책방에서 꾸준하게 찾아온다. 〈골목책방〉은 도매 헌책방이다. 책 좋아하는 어떤 분은 아침과 낮과 저녁 세 차례에 걸쳐 책을 사러 이곳에 들르기도 한다. 그만큼 〈골목책방〉 일꾼은 바지런히 새 헌책을 장만해서 갖다 놓는다.


  요 몇 해 사이, 인터넷책방 〈알라딘〉이 〈알라딘중고샵 오프매장〉을 전국 곳곳에 연다. 헌책방을 다닌 적 없는 사람들이 〈알라딘중고샵 오프매장〉을 다니면서, 마치 ‘헌책방을 다니기’라도 하는 듯 생각하기도 할 텐데, 〈알라딘중고샵 오프매장〉은 이름 그대로 ‘중고샵’이지 ‘헌책방’이 아니다. 인터넷책방 〈알라딘〉 스스로 당신들은 ‘헌책방하고 다르다’ 하고 생각하며 다른 이름을 붙이려 했으리라 느낀다. 그래, 알라딘중고샵은 ‘중고샵’이지 ‘헌책방’이 아니요, 헌책방일 수 없다. 그러나, 퍽 많은 이들은 헌책방 아닌 중고샵을 드나들거나 인터넷을 켜서 이곳에서 책을 사며 ‘헌책방 나들이’라도 한 듯 잘못 생각하곤 한다.


  똑똑히 알아야 하는데, ‘헌책’을 샀대서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헌책’을 샀더라도, 헌책을 샀을 뿐이지, 헌책방 나들이를 하지는 않은 셈이다. 헌책방에 가서 헌책을 사거나 고를 때에, 비로소 헌책방 나들이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너무 마땅한 노릇 아닌가. 집밥하고 식당밥은 다르다. 식당밥을 먹고서는 집밥을 먹었다고 여길 수 있겠는가. 돈을 쏟아부어 시멘트로 때려짓고는 수돗물 흐르게 하는 청계천에서 놀았다 해서 ‘냇가 놀이’라든지 ‘물놀이’를 했다 말할 수 있을까. 가재도 게도 다슬기도 개똥벌레도 개구리도 살 수 없는 청계천을 어떻게 ‘냇물’이나 ‘냇가’라 할 수 있겠는가. ‘공원’이라고는 할 수 있을 테고, 세월이 흘러 ‘시멘트 수돗물 공원’에 흙이 조금씩 쌓여 물고기가 알을 낳는다 하더라도, 수돗물 아닌 냇물이 흐르지 않고서야 냇가도 안 되고 냇물놀이라 할 수도 없다.


  새책을 읽든 헌책을 읽든, 모두 책을 읽는 셈이다. 헌책방 나들이를 해서 책을 만나든, 중고샵을 뒤져 책을 마주하든, 똑같이 책을 살피는 셈이다.


  그래, 어디에서건 책읽기를 한다. 그러니까, 어디에서나 책읽기를 하는 셈이다. 다만, 교보문고 나들이와 동네책방 나들이는 다르다. 서울 명륜동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나들이와 〈알라딘중고샵 오프매장〉 나들이는 다르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 헌책방 나들이 또한 다르다.


  헌책방을 찾아가 보지 않고서 ‘헌책방’을 말하는 목소리는 아슬아슬하다. 헌책방을 차분히 누리거나 즐기지 않고서 ‘헌책’을 말하는 글은 아찔하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든 도서대여점에서 빌리든, 똑같이 ‘책’을 빌려서 ‘책읽기’를 하는 셈이다. 도서관에 간대서 훌륭하지 않고, 도서대여점에 간대서 낮지 않다. 스스로 즐길 수 있으면 모두 아름다운 책삶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스스로 책을 좋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책과 헌책방과 책삶을 슬기롭게 가누어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헌책방 책시렁을 알고 싶으면, 바로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 된다. 헌책방 책시렁을 말하고 싶으면, 스무 해쯤 헌책방 나들이를 즐기면서 천천히 오래도록 헌책방 책시렁을 마음으로 껴안으면 된다. 헌책방 문턱을 밟지 않고, 또 헌책방에 사진기나 촬영기 들고 찾아가서 얼쩡거리고 난 다음, 막상 헌책방 책시렁에 꽂힌 책을 하나하나 만져서 넘기지 않고는, ‘헌책방 책시렁 말하기’를 함부로 하는 일이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으려나.


  헌책방 책시렁은 책손 마음을 두근두근 설레게 한다. 4346.3.27.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헌책방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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