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량한 말 바로잡기
(1267) 자세 1 : 자세히 보면
나뭇가지가 벌거벗었다고? 자세히 보면, 가지마다 작은 겨울눈이 촘촘해
《이와타 켄자부로/이언숙 옮김-백 가지 친구 이야기》(호미,2002) 28쪽
잘 모르는 일이 있을 때나, 두루뭉술하게 말하고 넘어가려고 하는 때에, 사람들은 으레 “자세히 얘기해 주셔요.” 하고 말합니다. 곰곰이 되짚어 봅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이 말 ‘자세’를 듣고 썼어요. 앉거나 설 때에도 “자세를 똑바로 해!”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국어사전을 뒤적입니다. 모두 세 가지 ‘자세’가 나옵니다. 첫째, ‘자세(仔細/子細)’로 “(1) 사소한 부분까지 아주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2) 성질 따위가 꼼꼼하고 찬찬하다”를 뜻한다 합니다. 보기글로는 “설명이 자세하다”와 “자세하게 약도를 그리다”가 있습니다. 둘째, ‘자세(姿勢)’로 “(1) 몸을 움직이거나 가누는 모양 (2) 사물을 대할 때 가지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뜻한다 하는군요. 보기글로는 “자세를 가다듬다”와 “자세를 고쳐 앉다”와 “정신 자세”와 “학자로서의 자세”가 있어요. 셋째, ‘자세(藉勢)’로 “어떤 권력이나 세력 또는 특수한 조건을 믿고 세도를 부림”을 뜻한다 하네요. “그게 다 자기처럼 복 있는 아내를 얻은 덕이라고 그 자세가 대단했다” 같은 보기글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실린 한자말 ‘자세’ 가운데 셋째 것은 쓸 일이 없으니 덜어내야 알맞습니다. 쓸 일이 없기도 하지만 써서 알맞지 않은 이러한 한자말을 자꾸 국어사전에 싣는다면 한국말은 뒷걸음을 치거나 주눅이 들어요.
자세히 보면
→ 가만히 보면
→ 찬찬히 보면
→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
그러면 두 가지 ‘자세(仔細/子細,姿勢)’는 얼마나 쓸 만할까요. ‘꼼꼼히’나 ‘찬찬히’라 이야기할 자리에서 자꾸 ‘자세히’를 이야기하면서 한국말 쓰임새가 차츰 줄어들지 않을까요. ‘매무새’나 ‘몸가짐’이나 ‘마음가짐’ 같은 한국말을 잃거나 잊으면서, 쉽고 알맞으며 바르게 가다듬을 말넋 또한 잃거나 잊지 않을까요.
설명이 자세하다
→ 설명이 꼼꼼하다 / 얘기가 꼼꼼하다
자세하게 약도를 그리다
→ 꼼꼼하게 약도를 그리다 / 꼼꼼하게 그림을 그리다
어느 자리에서는 “빈틈없이 얘기하다”라 말할 때에 어울립니다. 어느 곳에서는 “낱낱이 얘기하다”라 말할 때에 알맞습니다. 어느 때에는 “조곤조곤 얘기하다”라 말할 때에 잘 들어맞겠지요.
그러니까, “자세를 가다듬다” 아닌 “매무새를 가다듬다”나 “몸가짐을 가다듬다”입니다. “자세를 고쳐 앉다” 아닌 “앉음새를 고치다”입니다. “정신 자세” 아닌 “마음가짐”이나 “마음결”이고, “학자로서의 자세” 아닌 “학자다운 마음가짐”이나 “학자다운 몸가짐”이며, “학생 본연의 자세” 아닌 “학생다운 몸가짐”이에요.
우리한테는 ‘매무새’와 ‘몸가짐’과 ‘마음가짐’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앉은 자세라면 ‘앉음새’입니다. 선 자세를 가리킬 ‘섬새’라는 말은 없지만, 이런 말도 새로 빚어내어 쓸 수 있을 테지요. ‘섬새’라는 낱말이 국어사전에 없다면, ‘매무새’와 ‘몸가짐’으로도 넉넉하기 때문에 굳이 이런 말을 안 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세를 고쳐 앉다” 같은 말은 “똑바로 앉다”나 “바로 앉다”로 다듬을 수 있어요.
스스로 즐겁게 쓸 말을 생각합니다. 곧, 즐겁고 아름다운 ‘말매무새’를 헤아리고, ‘말가짐’을 헤아립니다. 몸가짐과 마음가짐처럼 ‘말가짐’ 또는 ‘생각가짐’이나 ‘사랑가짐’을 헤아릴 만해요. ‘말매무새’라는 새말 빚을 수 있듯, ‘노래매무새’와 ‘춤매무새’ 같은 새말 빚을 수 있고, ‘이야기매무새’라든지 ‘육아매무새’나 ‘일매무새’ 같은 낱말 빚어도 돼요.
서로 기쁘게 주고받을 말을 짚어 봅니다. 차근차근 짚으며 차근차근 말빛을 밝힙니다. 찬찬히 되새기며 하나둘 말살림 북돋웁니다. 꼼꼼히 살피면 슬기롭게 주고받을 말밭 일굴 수 있어요. 낱낱이 들여다보면 곱게 영글 말나무 한 그루 보살필 수 있습니다. 4340.4.25.물./4346.3.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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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가 벌거벗었다고? 가만히 보면, 가지마다 작은 겨울눈이 촘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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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말 바로잡기
(1576) 자세 2 : 자세히 보니
자세히 보니, 조그만 꽃봉오리가 막 벌어지던 참이었다
구도 나오코/고향옥 옮김, 《친구는 초록 냄새》(청어람미디어,2008) 95쪽
꽃봉오리를 들여다보는 눈길은 여러 가지입니다. 살짝 들여다볼 수 있고, 스치듯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얼추 들여다보거나 얼핏 들여다볼 수 있어요. 가만가만 들여다본다든지, 물끄러미 들여다볼 수 있지요. 오래도록 들여다보거나 한참 들여다볼 수 있어요.
자세히 보니
→ 가만히 보니
→ 곰곰이 보니
→ 살며시 보니
→ 물끄러미 보니
→ 빙그레 보니
…
보기글에서는 “문득 보니”나 “빙그레 보니”처럼 적어도 어울립니다. 그동안 들여다보았을 때에는 꽃봉오리가 벌어지려는지 말려는지 모르다가, 어느 한때 문득 알아챘다 할 만하거든요. 또는, 꽃봉오리 막 벌어지려는 모습이란, 조용히 웃음 피어나도록 이끈다 할 만하기에, ‘빙그레’나 ‘방그레’ 같은 낱말을 넣어도 돼요. 때에 따라서는 “오늘 보니”라든지 “이제 보니”를 넣을 수 있어요. 낱말마다 다 다르게 나타내는 느낌이 있고, 낱말마다 말빛과 말결이 새롭습니다. 4346.3.16.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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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시 보니, 조그만 꽃봉오리가 막 벌어지던 참이었다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