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9

 


작은 사진에 담는 작은 꿈
―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
 강영희 사진·글
 다인아트 펴냄,2012.12.30./2만 원

 


  전남 고흥 시골마을에서 살아가며 으레 군내버스를 탑니다. 군내버스를 안 탈 적에는 자전거를 탑니다. 자전거를 안 탈 때에는 두 다리로 걷습니다.


  군내버스를 타면 시골 할매 할배 복닥복닥 이야기 나누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전거수레에 두 아이 태우고 마실을 다니면, 수레에 앉은 아이들 조잘조잘 떠드는 노래를 듣습니다. 두 다리고 천천히 이웃마을 거닐며 다니면, 멧새 지저귀고 풀벌레 소근거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반가운 이웃이 때때로 자가용을 몰고 찾아와서는, 고흥 골골샅샅 자가용으로 이끌어 주곤 합니다. 자가용을 타고 우리 동백마을에서 나로섬 끝까지 달리자면 십오 분이면 넉넉합니다. 또는 녹동항 지나 거금도 들어가기까지 이십 분이 채 안 걸려요.


  우리 식구한테는 자가용이 없고, 나한테는 운전면허증조차 없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군내버스나 자전거나 두 다리로 움직입니다. 우리 집부터 나로섬을 가려 하든 녹동항이나 거금도로 가려 하든, 퍽 머나먼 길을 가야 합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가려면, 읍내로 가서 나로섬이나 녹동으로 가는 군내버스로 갈아탑니다. 자전거로 몰자면 한 시간 반 남짓 달려야 합니다. 걸어서 가자면? 글쎄, 하룻밤 꼬박 새울 테지요.

 

 


  가끔 자가용 얻어타고 달리면 제법 멀다 싶은 길을 쉬 갑니다. 자가용은 시골길에서도 육십 킬로미터뿐 아니라 팔십 킬로미터나 백 킬로미터로 달립니다. 자가용은 바람을 일으킵니다. 자가용은 온갖 소리를 냅니다. 자가용은 기름 타는 냄새와 플라스틱 냄새와 고무바퀴 닳는 냄새를 풍깁니다. 그래서, 자가용으로 먼길 달리고 나면 골이 띵해요. 모습과 소리와 냄새와 빛깔 모두 내 마음속으로 아름다이 스며들지 못해요. 창밖으로 ‘이야 참 아름답구나’ 싶은 모습을 본달지라도 휙휙 스치고 지나가요. ‘저 숲 참 푸른 숨결 뿜는구나’ 싶달지라도 자동차 싱싱 달리며 태우는 기름 냄새에 휩쓸립니다. 저 들판에서 먹이 찾는 들새와 멧새를 바라보며 ‘저 새들 어떤 고운 노래 들려줄까’ 싶다가도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에 새들 노랫소리는 잠기고 말아요.


  누군가는 자동차를 달리면서 창밖 모습을 사진으로 찍곤 합니다. 자동차를 달리면서 찍는 사진은 이 나름대로 맛이 있고 멋이 있어요. 왜냐하면, 자동차를 모는 일도 삶 가운데 하나이니까요.


  그런데, 나는 자동차를 달리며 사진을 찍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도시에서 높다란 건물 모습을 사진으로 적바림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전기로 밝힌 등불이 환한 서울 한복판 밤모습을 사진으로 옮기고 싶지 않습니다. 전남 고흥에 소록다리와 거금다리 있는데, 이런 다리에 매단 등불 번쩍거리는 모습 또한 사진으로 담고 싶지 않아요.


  가슴 깊이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모습을 찍고 싶어요. 겨울 막바지부터 피어나는 봄까지꽃 앙증맞고 자그마한 모습을 찍고 싶어요. 그래서 나는 겨울 끝무렵부터 봄철 내내 봄까지꽃을 이리저리 찍습니다. 봄까지꽃 찍는 아버지 곁에서 여섯 살 큰아이는 작은 꽃송이 하나 꺾어 손에 쥐며 놉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너 맛있는 풀 뜯어서 노는구나. 냄새 좋니? 냄새만큼 맛도 좋단다.’ 하고 이야기합니다.

 

 


  마음 깊이 즐겁다고 느끼는 모습을 담고 싶어요. 개구리 노랫소리와 풀벌레 노랫소리를 담고 싶어요. 소리를 어떻게 사진으로 담느냐 궁금해 할 분이 있을 테지만, 참말 소리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개구리 노랫소리 들으며 사르르 녹는 즐거움이 사진 한 장 찍으며 천천히 깃듭니다. 풀벌레 노랫소리 들으며 살살 퍼지는 즐거움이 사진 두 장 찍으며 시나브로 뱁니다.


  꽃과 풀과 나무도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때에 한결 잘 자랍니다.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 또한 사랑스러운 노래를 들으며 더 싱그럽고 푸르게 자랍니다. 사람도 같아요. 고운 소리 듣는 사람은 고운 마음 됩니다. 맑은 노래 듣는 사람은 맑은 사랑 되어요.


  강영희 님이 인천 배다리에서 사진으로 만난 사람들 이야기를 갈무리한 책 《배다리 사진 이야기, 창영동 사는 이야기》(다인아트,2012)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강영희 님은 사진책 끝자락에 “그렇게 이 작은 마을도 수많은 삶과 죽음이, 계절의 변화에 함께하는 생명의 순환이, 허물고 짓고 고치는 과정이 지속되고 있다. 아마 16차선 산업도로가 뚫리고 고층아파트가 지어졌다면 사라졌을 풍경입니다(맺음말).” 하고 말합니다. 사라졌을 법하지만 사라지지 않도록 애쓴 사람들 꿈과 사랑을 당신 사진으로 옮기고 싶었다는 뜻이로구나 싶어요. 그리고, 이 뜻 그대로 작은 마을 작은 사람들 꿈과 사랑을 당신 사진으로 옮겼겠지요.


  “높은 건물이 없으면 낮은 집에도 햇살이 많이 들어온다. 철로변길 마을은 그 햇살로 눈부신 사계절 풍경을 만든다. 우리 사회에서 햇살은 어떤 이름으로 우리에게 들어올 수 있을까(2011.12.3.)?” 하는 말을 가만히 되새깁니다. 참말 그렇지요. 높은 건물 있으면 낮은 집에 햇살이 안 들어요. 기찻길 옆 골목집도 기차가 안 지나가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보금자리가 됩니다. 기차가 숱하게 지나가고 또 지나가면 아주 고단하며 괴로운 보금자리가 돼요. 나는 인천에서 전철길 바로 옆 옥탑집에서 여러 해 산 적 있는데, 새벽 다섯 시 즈음부터 밤 한 시 넘을 때까지 전철 소리 끊이지 않습니다. 한 대만 지나가도 소리가 우렁차지만, 전철이 마주 지나갈 때에는, 또 빠른전철까지 서너 대 겹겹이 지나갈 때에는, 건물이 우릉우릉 울리며 내 몸까지 우릉우릉 떨려요. 아주 마땅히, 이럴 때 내 마음은 어둡고 슬픕니다. 이러다가도 옥탑집에서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기들 기저귀를 빨아 널 적에는, 내 마음도 파랗게 눈부신 빛깔로 젖어들어요.

 


  사진을 찍는 마음이란, 살아가는 마음입니다. 살아가는 마음이 따스할 때에는 사진을 찍는 마음이 따스합니다. 살아가는 마음이 어둡거나 메마를 때에는 사진을 찍는 마음이 어둡거나 메마르기 마련이에요.


  이러하기에, 골목동네로 사진마실 다니는 분들이 찍은 사진을 보며, 이분들이 어떤 마음인가를 읽을 수 있어요. 겉보기로만 이쁘장한 사진을 찍은 분은, 이녁 삶 또한 겉보기로만 이쁘장합니다. 투박하게 찍었으나 속으로 살가운 이야기 담는 분은, 이녁 삶 또한 겉으로는 투박하다 하지만 속으로는 살가운 사랑이 감돌아요.


  강영희 님은 “어느 하루도 같지 않은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햇빛, 기온과 습도, 온갖 꽃과 풀, 나무와 작은 동물들까지. 사진을 찍다 보면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도 이런 자연 앞에 무릎 꿇겠구나 싶을 때가 있다(2008.12.15.).” 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옛날에는 어디에나 있던, 요즘 도시에선 흔하지 않은, 하늘이 더 넓은 작은 마을 풍경입니다(여는말).” 하고 말해요.


  작은 마을 작은 사람들 작은 삶은 날마다 다릅니다. 어느 하루도 똑같지 않습니다. 시골 작은 마을도, 도시 작은 마을도, 봄 여름 가을 겨울 달라요. 시골 작은 사람도, 도시 작은 사람도, 아침 낮 저녁 밤 새벽 달라요.


  철마다 다른 삶이고, 날마다 다른 넋입니다. 때마다 다른 꿈이요, 언제나 다른 사랑입니다. 곁에서 사진기 하나 손에 쥐고 작은 마을 작은 사람을 마주하는 ‘작은 사진쟁이’ 된다면, 아니 ‘작은 마을이웃’ 된다면, 누구라도 작은 이야기 길어올리는 ‘작은 사진’ 하나 빚을 수 있어요.


  작은 사진에 작은 꿈을 담습니다. 큰 사진 있다면 그곳에는 큰 꿈 담을 테지요. 내 작은 사진에는 내 작은 꿈을 담습니다. 내 작은 꿈은, 고즈넉하고 정갈한 숲에 누구나 푸른 숨결 마시면서 푸른 사랑 속삭이는 보금자리를 지구별 사람들 모두 즐거이 누릴 수 있는 일입니다. 나도 옆지기도 아이들도 이웃들도 동무들도 모두, 푸른 숨결 마시는 푸른 사람 되어 푸른 보금자리에서 푸른 숲 아낄 수 있기를 꿈꾸어요.


  인천에서 배다리라는 곳은 어떤 터전일까요. 인천에서 창영동이라는 데는 어떤 마을일까요. 바람이 흐르며 꽃내음 실어 나릅니다. 구름이 흐르며 빗방울 떨굽니다. 햇살이 비추며 따순 손길로 빨래를 보송보송 말립니다. 달이 오르며 집집마다 속닥속닥 이야기별 뜹니다. 4346.3.1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

 

 

 

 

이 사진책은 아무 인터넷책방에도 없습니다.

인천 배다리에 찾아가서 <아벨서점>이나 <나비날다>나 <마을사진관 다행>에 가면

비로소 장만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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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03-12 0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운 모습이네요. 인천이 고향이라서 그런지, 90년대까지의 모습이 온전히 마음속에 남아있어요. 지금은 마구다지로 아파트를 지어서 엉망이지만, 그때만해도 맑은 날이면, 선인중학교가 있던 꼭대기에서 저 멀리 만수동의 효성아파트까지 보였더랬어요. 언제 또 갈지 요원하지만, 아벨서점에 가면 꼭 사와야겠네요.ㅎㅎ

숲노래 2013-03-12 07:04   좋아요 0 | URL
인천이 고향이시로군요!
인천은 아직도 예전 모습이 아주 많이 남았어요.
왜냐하면, 바로 옆에 서울이 있어 신도심 빼고는
예전 삶터가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더군요.

제가 낸 인천골목 사진책도 있어요 ^^;;;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이라는 사진책도 하나 있답니다~~~~~
제 책은 알라딘에서도 살 수 있지요 ^^;

transient-guest 2013-03-12 07:14   좋아요 0 | URL
보관함에 옮겨야겠네요.ㅎ 이곳에서 받아보려면 아무래도 한꺼번에 주문하는 것이 나으니까요.ㅎ

숲노래 2013-03-14 08:29   좋아요 0 | URL
네, 나중에 읽으시는 날, 즐겁게 예쁘게 읽어 주셔요 ^___^
즐거움과 아름다움 두루 누릴 수 있는
사랑스러운 책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