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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함께 걷는 존 뮤어 - 요세미티에서 생긴 일
에밀리 아놀드 맥컬리 지음, 장미란 옮김 / 가문비(어린이가문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52
‘제비잔치’를 꿈꾼다
― 다람쥐 소녀와 뮤어 아저씨
(자연과 함께 걷는 존 뮤어)
에밀리 아놀드 맥컬리 글·그림,장미란 옮김
가문비 펴냄,2005.7.21./9500원
3월 8일 깊은 저녁, 개구리 울음소리를 처음 듣습니다. 그래, 고흥은 날이 참으로 포근하고 바람이 적게 부니까, 이맘때에 개구리가 깨어나서 울 만하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퍽 이르구나 싶습니다. 지난해에는 개구리 울음소리를 언제 처음 들었나 하고 헤아려 봅니다. 일기장 찬찬히 뒤적이니 3월 28일 언저리에 처음 개구리 울음소리 들었다고 적었네요. 그러니까, 지난해하고 견주면 자그마치 스무 날이나 일찍 개구리 울음소리 들은 셈입니다.
포근하디포근한 햇살과 바람을 느껴 멧개구리 기운차게 깨었겠지요. 겨울잠을 깬 개구리는 저희들 고운 짝을 찾으려 할 테고, 저마다 고운 짝 찾아 짝짓기를 하면, 무논이나 둠벙에 알을 낳고 새 숨결 태어나기를 빌겠지요. 드문드문 깨어난 멧개구리 한두 마리로는 아직 노래물결을 이루지 못합니다. 올해에 새로 태어나는 어린 개구리들이 백 마리 천 마리 만 마리 모일 때에 비로소 어마어마한 노래물결 이루면서 낮과 밤과 아침과 저녁을 곱게 밝히리라 생각합니다.
.. 플로이는 요세미티 골짜기에서 처음으로 태어난 백인 아기였어요. 플로이는 다람쥐처럼 날쌔게 쏘다녔기 때문에 ‘다람쥐’라고 불렀죠. 플로이네 아빠는 요세미티 골짜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했어요. 플로이는 한 번도 이 골짜기를 떠난 적이 없었어요 .. (6쪽)
포근한 볕살은 온누리를 골고루 안아 줍니다. 볕살은 들판에도 내려앉고, 숲에도 내려앉습니다. 볕살은 고속도로와 발전소와 공장과 골프장과 아파트에도 내려앉습니다. 볕살은 청와대라든지 국회의사당에도 내려앉고, 휴전선과 군인들 총구멍에도 내려앉아요. 볕살은 할아버지 지팡이에도 내려앉고, 새까맣고 커다란 자가용 지붕에도 내려앉습니다.
따사로운 볕살을 느끼며 ‘좋네’ 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따사로운 볕살을 못 느끼며 지나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울이나 큰도시에서는 지하철이나 시내버스에서 볕살을 느낄까요. 시골이라 하더라도 군청이나 면사무소에서는 볕살을 얼마나 느낄까요. 서울이나 큰도시에서도 골목동네 할매와 할배는 볕바라기 누리면서 올해 새봄 새삼스럽구나 하고 느끼겠지요. 시골마을 들판과 마당에서는 어여쁜 볕살 흠뻑 쐬면서 기지개를 켜고 쟁기와 가래를 손질하겠지요.
이제 들새와 멧새는 퍽 일찍 일어납니다. 겨울이 물러나면서 들새와 멧새는 하루를 한결 일찍 엽니다. 겨우내 시골자락 지킨 텃새하고 만날, 따순 봄에 고흥으로 찾아올 제비가 오기까지 꼭 한 달 즈음 남습니다. 올해에 찾아올 제비를 생각하며 벌써 두근두근 설렙니다. 올해에는 제비들이 시골 흙일꾼 농약치레에 덜 몸살을 앓을 수 있을까 궁금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전라도 함평은 처음부터 나비잔치를 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지만, 나비잔치를 합니다. 전라도 순천은 갯벌이 그렇게 넓은 곳이 아니었으나, 갯벌과 얽힌 온갖 잔치를 합니다. 전라도 고흥이라면, 또 장흥이나 해남이나 강진이나 완도쯤 된다면, 아마 신안도 엇비슷할 만하리라 느끼는데, 이러한 시골마을에서는 ‘제비잔치’를 할 만해요. 아직 한국에서 ‘제비잔치’를 하는 곳은 없거든요. 봄맞이 제비를 기리면서, 제비가 가을에 강남으로 돌아가기까지 느긋하고 아름다이 살아갈 시골 터전을 닦을 수 있습니다. 서울사람더러 자가용 말고 대중교통으로 고흥으로 찾아와서는 자전거를 타거나 두 다리로 걸어서 ‘제비집 있는 시골마을’을 한껏 누리도록 꾀할 수 있어요. 이렇게 하다 보면, 시골 할매와 할배도 농약을 함부로 안 쓸 수 있고, 농약 안 쓴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를 서울사람한테 제값 받고 알뜰히 팔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개구리잔치’를 할 수 있어요. 아직 한국에서 ‘개구리잔치’를 한다는 지자체는 없습니다. 유채꽃잔치 하는 데는 참 많지요. 제비를 반기며 제비잔치를 하고, 개구리를 맞이하며 개구리잔치를 하면 얼마아 아름다울까 싶습니다. 아침에는 제비 날갯짓을 바라보고, 낮과 저녁에는 개구리 노랫소리 들으며, 한밤에는 개똥벌레 춤사위를 즐길 수 있어요. 다만, 농약이랑 비료랑 항생제는 내려놓아야지요. 화학농하고 등을 져야지요. 흙을 살리고 땅을 북돋우는 오랜 시골살이로 돌아가야지요.
.. 플로이는 관광객들에게 불쑥 다가가서 말하곤 했어요. “왜 왔어? 뱀 안 무서워? 난 안 무서워. 뱀한테 물리면, 내가 구해 준다. 곰은?” 그러고는 사람들한테 으르렁거렸어요 .. (8쪽)
도랑이나 냇가에 가재가 살아갈 수 없다면, 도랑물도 냇물도 가재한테 안 좋다는 뜻입니다. 가재가 살아가지 못하는 도랑이나 냇가라면, 이 물을 사람이 마실 만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런 도랑이나 냇물 둘레 논밭에서 거두어들일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 또한 사람이 먹을 만하지 못해요.
오늘날 한국 어느 시골을 가더라도, 도랑이나 냇가에 농약 빈병 넘칩니다. 마을 할매와 할배도 도랑이나 냇가에 비닐봉지와 빈병을 쉬 버립니다. 도시에서 나들이를 온 이들도 도랑이나 냇가에 담배꽁초를 비롯해 온갖 쓰레기를 쉬 버립니다.
시골마을 여럿 물에 잠기게 해서 지은 댐부터 물꼭지를 이어 수도물 마셔야 몸을 지킬 수 있지 않아요. 시골자락 물줄기를 몽땅 더럽히고 나서 댐물을 마시는 일이란 아주 어리석어요. 시골마을 어디에서나 흙과 도랑이 정갈해야 합니다. 도시사람한테 내다 파는 곡식 때문이 아니라, 누구보다 시골에서 살아가는 우리들부터 옳은 밥을 먹고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어야지요.
.. “지금 뭐해?” 아저씨가 대답했어요. “강의 바위가 되면 어떤 기분일지 느껴 보고 있어.” 플로이가 말했어요. “바위는 아무것도 못 느껴.” “느낄지도 몰라. 바위한테 물어 보지도 않았잖아.” .. (14∼15쪽)
전남 고흥군에 핵발전소하고 화력발전소를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두 차례 모두 물리치기는 했으나, 핵발전소하고 화력발전소 끌어들이면 수천억 원에 이르는 돈을 받을 수 있다며 가슴 설렌 분이 퍽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발전소이건 천 년 만 년 가는 일 없어요. 어느 발전소이건, 처음 짓고 나서 서른 해쯤 뒤에는 ‘발전소 문을 닫아야’ 해요. 길어도 쉰 해를 가지 못해요. 건물이 낡으니 허물어 새로 짓거나 곁에 다른 발전소를 지어야 해요. 부품이 낡고 건물이 삭겠지요. 그러면, 앞으로 그 낡거나 헌 건물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마어마한 쓰레기덩이는 어찌해야 좋을까요. 땅을 깊이 파서 묻으면 되나요. 방사능덩어리를 땅속 깊이 1킬로미터를 파서 묻는들 우리 몸에 피해가 없을 수 있나요.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터지는 바람에 일본에서 나오는 갯것과 바닷것은 먹어서는 안 된다 하는데, 한국에서 짓는 발전소는 이 언저리에서 나올 갯것과 바닷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전기를 쓰더라도 공해와 매연과 쓰레기가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석유나 석탄을 쓰지 않고 깨끗하게 얻을 전기가 되게끔 할 노릇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전기 없이도 넉넉하고 즐거운 삶을 일구는 길을 사람들마다 사랑스레 찾고 살펴야겠지요.
사람만 살아남는 지구별에서는 사람조차 살아갈 수 없거든요. 나무 없는 지구별에서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풀과 흙이 농약으로 망가진 지구별에서 사람이 먹을거리 얻을 수 있겠습니까. 제비도 개구리도 메뚜기도 몽땅 사라진 지구별에서 사람이 참말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너구리도 살고, 여우도 살고, 족제비도 살고, 토끼도 살고, 범도 살고, 노루도 살고, 저마다 골고루 살아갈 터전일 때라야 사람도 사람답게 즐겁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고 느껴요. 유채꽃과 동백꽃만 있대서 사람이 살아갈 수 없어요. 들꽃과 들나물과 들풀 모두 정갈하게 씨앗을 퍼뜨리며 이 땅에서 함께 지낼 때에, 우리들 모두 아름다운 넋과 얼 되어 살아갈 수 있어요.
.. 발 밑에 푸른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어요. 그곳은 플로이가 알고 있는 세계였어요. 골짜기 안개 너머에 있는 세상은 아저씨가 예전에 살았고, 이제 또다시 돌아갈 세상이었고요. 아저씨가 조용히 말했어요. “이제 넌 여기 오는 길을 알고 있어. 여기서 아주 훌륭한 생각들을 하게 될 거야.” 아저씨와 플로이는 오래도록 말없이 앉아 있었어요 .. (34∼35쪽)
에밀리 아놀드 맥컬리 님이 빚은 그림책 《다람쥐 소녀와 뮤어 아저씨》(가문비,2005)를 읽습니다. 다람쥐마냥 멧골을 오르내리며 놀았다고 하는 ‘플로이’라고 하는 가시내하고, 미국에서 숲을 지키려 힘쓴 ‘존 뮤어’라고 하는 두 사람이 요세미티 골짜기에서 만난 이야기를 새로 꾸며서 선보이는 그림책입니다.
다람쥐 가시내가 있기에 존 뮤어 아저씨가 있습니다. 존 뮤어 아저씨가 있어 다람쥐 가시내가 있습니다. 제비가 있기에 개구리가 있고, 개구리가 있기에 제비가 있습니다. 개똥벌레가 있기에 사람이 있겠지요. 그러면, 사람이 있으면서 개똥벌레 함께 있을 만할까요.
저어새도 크낙새도 참수리도 소쩍새도 꾀꼬리도 매도 딱따구리도 모두 즐겁게 어우러지는 시골숲이 고흥에 곱디곱게 이어갈 수 있기를 빕니다. 온갖 새들 온갖 노랫소리 아리땁게 흐드러질 수 있는 시골숲이 한 군데 두 군데 차츰 늘어날 수 있기를 빕니다. 국립공원 이름 붙은 곳도 아름다울 수 있기를 빌고, 국립공원 이름이 안 붙는다 하더라도 아름다울 수 있기를 빕니다. 4346.3.9.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