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밭에서 - 가난한 농사꾼의 노래
박형진 지음 / 보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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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골
[시를 말하는 시 16] 박형진, 《콩밭에서》

 


- 책이름 : 콩밭에서, 가난한 농사꾼의 노래
- 글 : 박형진
- 펴낸곳 : 보리 (2011.6.27.)
- 책값 : 8000원

 


  시골마을에 집자리 마련해 살아갑니다. 시골마을에 집자리를 마련해 지내면서 처음으로 한 일은 쓰레기 치우기입니다. 도시에서 집자리 알아볼 때에는 처음부터 쓰레기 치우기를 하지 않습니다. 달삯 내고 지내는 곳이건 해마다 집삯 치르는 곳이건, 도시에서는 집임자가 으레 쓰레기를 치워 줍니다. 이와 달리, 시골에서는 어느 집이나 쓰레기를 울타리 한켠에서 태우거나 땅에 묻습니다. 비닐, 빈병, 깡통, 시멘트조각, 비닐끈, 비닐봉지, 깨진 그릇, 슬레트지붕 모두 땅에 묻어요.


  예전에는 시골 논밭을 깊이 파면 유물이나 유적이 나오곤 했다지요. 요즈음은 시골 논밭을 깊이 파면 온갖 쓰레기가 나와요. 앞으로 백 해 이백 해 뒤 일이 아닌, 요즈음 모습이에요. 지난날 시골에는 쓰레기라 할 만한 무언가 하나도 없었을 테지만, 나날이 도시 문명과 문화가 시골로 스며들면서 나날이 온갖 쓰레기가 생겨요.


  그러면, 도시에서는 왜 살림집 곁에 쓰레기가 없을까요. 도시에서는 그때그때 쓰레기 치우는 일꾼이 돌아다니니까요. 동네마다 청소 일꾼 다니면서 쓰레기를 거두어요. 그리고, 이 쓰레기를 도시 바깥 시골에 파묻거나 높직하게 쌓지요.


.. 우와― / 산에 저 벚꽃 터지는 것 좀 봐 / 가슴이 활랑거려서 / 아무것도 못 허겄네 ..  (화전)


  물건이 새로 나올 때마다 쓰레기가 잔뜩 나옵니다. 공장에서 물건 하나 만들 적마다 쓰레기가 엄청나게 나옵니다. 사람들은 완제품 하나만 바라보지만, 완제품 하나 가게에 놓일 때까지 지구자원을 쓰고 물과 바람을 더럽히며 땅과 숲을 망가뜨려요. 게다가 공장 물건 하나는 한 번 쓰고 버리거나 몇 번 쓰고 버리기 마련이에요. 과자 한 봉지를 먹어도 쓰레기이고, 과자봉지 담은 비닐봉지 또한 쓰레기입니다. 휴지꾸러미도 쓰레기요 휴지도 쓰레기가 됩니다. 손전화 새로 바꾸면 예전 기계도 쓰레기요, 손전화 싸는 상자도 쓰레기예요. 커피 한 잔 가게에서 산 다음 길거리 거닐며 마시면, 커피 담은 그릇도 쓰레기이지요. 빨대도 쓰레기이고요.


  가을에 씨앗을 거두어 봄에 새로 씨앗을 심을 적에는 쓰레기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시들 풀잎이나 풀줄기는 흙으로 돌아가 거름이 됩니다. 씨앗이나 푸성귀나 열매를 먹을 적에도 쓰레기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두 밥이 되고, 밥을 먹으면 똥으로 나옵니다. 똥은 잘 갈무리하고 삭혀 거름으로 쓰는 흐름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날 우리 시골에서는 어디에나 쓰레기란 없었어요. 시골사람 입는 옷도 쓰레기가 아니에요. 풀에서 얻은 실로 짠 옷이기에, 너덜너덜 해지면 걸레로 쓰다가 거름으로 쓸 수 있어요. 또는 둘둘 말아 무언가 달리 쓸 자리가 있어요. 짚신도 다 닳으면 ‘짚’인 만큼, 흙으로 돌아가 흙을 살찌우는 구실을 해요.


.. 콩 한 말이 눈물 한 말이다 / 우리 아버지의 그 아버지 / 또 그 할머니의 할머니까지 / 콩 한 말이 한숨 한 말이다 ..  (함성)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일구는 삶일 때에는 모든 살림살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스스로 짓지 않거나 스스로 일구지 않는 삶일 적에는 이 물건 저 물건 모두 몇 차례 쓰고 나서 쓰레기로 바뀝니다. 사랑스럽지 못해요.


  도시에서는 아이들을 도시사람으로 기릅니다. 시골에서는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어 도시사람 되도록 가르칩니다. 도시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시골사람 되도록 이끄는 일이 없습니다. 시골에서도 어른들이 아이들을 아름다운 시골사람으로 한삶 누리는 길 보여주거나 어깨동무하지 않아요.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누리고 나누고 빛낼 때에 즐거운 하루가 될까요. 시골에서 태어나 도시로 가든 시골에 남든 할 아이들은 무엇을 만나고 사귀고 생각하고 찾고 함께할 때에 기쁜 삶이 될까요.


  문학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즐길 때에 문학일까요. 문학은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빚을 때에 문학일까요. 예술은 누가 즐기는가요. 예술은 누가 빚는가요. 문화는 어떤 모습이나요. 문화는 누가 어디에서 이루나요.


.. 쌀을 팔아다 쌀독에 부어주는 일은 / 뭔가 항상 가슴 벅찬 일이다 ..  (쌀)


  콩을 심어 콩잎 돋고 콩줄기 뻗어 콩꽃 피다가는 콩알 맺힙니다. 팥을 심으면 차츰차츰 자라고 크며 팥이 나와요. 벼 씨앗인 볍씨를 심어 벼를 다시 얻습니다. 열매나무는 튼튼하고 우람하게 자라면서 해마다 새로운 씨앗 품은 열매를 환하게 내놓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봄꽃을 보고 봄내음 맡으며 봄풀을 먹습니다. 해마다 여름이 오면 여름나무를 보고 여름맛을 누리며 여름풀을 먹습니다.


  숲에는 쓰레기가 없습니다. 숲에는 나무와 풀과 꽃이 있습니다. 숲에는 문화나 문명이나 예술이나 진보나 교육이나 아무런 도시 것이 없습니다. 숲에는 벌레와 짐승과 냇물과 골짝과 멧자락이 있습니다. 숲에는 책이 없고 책방이 없습니다. 숲에는 빈터와 풀밭이 있습니다. 숲에는 학교가 없고 공무원이나 대통령이 없습니다. 숲에는 소리가 있고 빛깔이 있으며 냄새가 있어요.


.. 처음부터 / 돈이 되지 않을 것을 몰라서였다기보다 / 사랑의 결과를 믿지 않는 / 내 행동의 천박함을 몰랐다 / 경운기는 거침없이 나아간다 간혹 / 돌에 걸려 비척대는 것이 / 양심의 발길질 같아 괴롭기도 하지만 / 다시 여기에 무얼 심겠다고 이러는지 / 갈아 뒤엎어진 흙덩이 사이로 ..  (보리)


  사람은 사람이 살아갈 만한 데에서 살아야 사람빛이 난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 아름다이 나눌 사랑을 생각해야 사람내음이 난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사람답게 눈망을 밝히면서 어깨동무 즐겁게 할 때에 사람맛 소담스럽고 구수한 꿈이 피어난다고 느낍니다.


  하늘과 같은 숨을 마십니다. 풀과 같은 빛을 뿜습니다. 나무와 같은 다리를 돌보며 씩씩하게 걷습니다. 시냇물과 같은 눈길로 산뜻하고 맑게 웃습니다. 꾀꼬리 제비 개구리 박새 방울벌레 귀뚜라미 소쩍새 같은 목소리로 구슬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구름이 흐르고 해가 뜹니다. 별이 반짝이며 달이 환합니다. 바람은 나뭇잎 간질이며 풀노래 잎노래 들려줍니다. 햇살은 꽃봉오리에 닿아 꽃노래 흐드러집니다. 아이들은 마당을 뒹급니다. 까르르 웃고 떠들며 뛰놉니다. 밥을 짓고 국을 끓입니다. 살아가는 따사로운 내음이 온 집안을 감돕니다.


.. 소나기가 오려면 용이 올랐어 / 칠산 저 먼바다 하늘 맞대인 곳에선 / 검은 구름장 사이로 꼬리만 회오리치듯 ..  (모항 4)


  전라도 시골자락에서 흙을 만지는 박형진 님이 쓴 시집 《콩밭에서》(보리,2011)를 읽습니다. 시골사람 박형진 님이기에 시골살이를 싯노래처럼 엮어 읊습니다. 시골에서 시골일 하면서 아이를 낳아 돌본 삶을 이야기합니다. 시골에서 시골사람 되어 시골살림 꾸린 하루하루를 이야기꽃으로 들려줍니다.


  봄에는 봄노래 부르는 시골살이가 그대로 시로 태어납니다. 여름에 여름밥 먹는 시골살이가 고스란히 시로 거듭납니다. 가을에 가을걷이 바쁜 시골살이가 오롯이 시로 됩니다. 겨울에 겨울나기 누리는 시골살이가 하나둘 시로 영급니다.


.. 쑥이 많아서 우린 그냥 / 쑥구뎅이라 했지 // 사방을 산이 가로 막아서 / 봄이면 햇볕도 애처로운 곳 ..  (모항 8)


  사람들이 저마다 생각을 갈무리해서 시로 쓰기도 합니다. 생각을 쓰거나 나타내는 문학이리라 봅니다. 그리고, 생각이란, 삶에서 비롯합니다. 삶에서 비롯하는 생각이기에, 시에 생각을 그득 담는다 하더라도, 시를 쓴 사람 삶이 낱낱이 드러나요. 삶을 차근차근 풀어서 보여주어도 삶을 느끼고, 생각자락 한껏 드러내어도 삶을 느낍니다.


  전라도 시골살이란 무엇일까요. 아이 여럿 낳아 시골일로 먹여살리고 하루하루 누린 나날이란 무엇일까요. 박형진 님은 어떤 하늘 누리며 지낸 하루였을까요. 박형진 님은 어떤 땅을 어떤 발로 디디고 어떤 손으로 쓰다듬은 삶이었을까요. 개구리 깨어날 철이 다가옵니다. 멧개구리 깨어나 논자락이나 둠벙 물에 알 잔뜩 낳을 철이 가깝습니다. 올해에는 개구리알 얼마나 논에서 새 개구리로 태어날 수 있을까요. 올해에는 새 개구리들 얼마나 자동차나 경운기에 안 밟히고 살아남아 들노래 베풀어 줄까요. 창호종이 바른 나무문 사이로 하얗게 아침햇살 드리웁니다. 이장님 마을방송 흐르고, 오늘도 새롭게 하루 엽니다. 4346.3.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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