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3.2.25.
 : 보름달, 구름, 겨울 끝자락

 


- 큰보름 지나간 이듬날 저녁, 자전거를 타고 살짝 마실을 해 볼까 생각한다. 저녁을 먹고 난 아이들은 끝방과 부엌 사이를 콩콩콩 소리를 내며 달리고 논다. 이제 겨울 끝자락이라 대청마루에서 뛰어놀아도 춥지 않다. 두 아이 모두 맨발로 논다. 양말 신고 놀면 발바닥에 땀이 난다며, 아이들은 스스로 양말을 벗어던진다.

 

- 아이들이 제법 뛰어놀았구나 싶을 무렵, 작은아이 옷을 입힌다. 큰아이는 스스로 옷을 찾아 입는다. 여섯 살 큰아이는 나날이 말이 늘고, 손힘을 기르며, 예쁘게 자란다. 세 살 작은아이도 숟가락질 늘고, 젓가락질 곧 할 테며, 말문을 차츰 조잘조잘 트겠지.

 

-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운다. 큰아이는 곧 외발자전거를 붙여 따로 앉혀야지 싶다. 외발자전거를 붙이면 씩씩하게 잘 달릴 텐데, 이렇게 달리다가도 힘들면 수레에 앉아서 쉬려 하겠지.

 

- 보름달 환한 밤길을 달린다. 수레에 앉은 두 아이가 노래를 한다. 큰아이가 달을 보더니, “구름이 달을 감싸 주네.” 하고 외친다. 그래, 보름달 곁으로 밤구름이 흐르는구나.

 

- 바람이 없다. 자전거 발판을 천천히 구른다. 자전거 구르는 소리와 아이들 조잘거리는 소리 빼고는 아주 고요하다. 보름달이 밝기에 등불은 켜지 않는다. 달빛으로 길을 잘 살필 수 있다. 천천히 달리며 밤구름을 바라본다. 밤별을 바라본다. 구름 사이사이 별 몇 빛난다. 바람이 불지 않으니 자전거를 달리면서 얼굴이 시리지 않는다. 면소재지를 찍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리 힘들지 않다. 바람이 없는 겨울밤 자전거는 이렇게 조용하며 한갓지구나.

 

- 자전거수레가 조용하다. 슬몃슬몃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이 수레 한쪽에 기대 잔다. 큰보름 달빛 쐬고 밤내음 맡으면서 자는구나. 조금 더 천천히 달린다. 겨울 끝자락 자전거를 헤아린다. 삐걱삐걱 자전거 움직이는 소리를 생각한다. 날마다 자라는 아이들 무게를 느낀다. 너희 둘 태우고 자전거 달리자면 힘이 꽤 들기는 하지만, 앞으로 너희 스스로 자전거를 타는 날까지 수레에 앉혀 달릴 수 있는 하루란 참 즐겁단다. 너희도 나중에 너희 아이를 낳아 돌볼 때에는, 너희 자전거에도 이렇게 수레를 달고 너희 아이를 태워 보렴. 혼자 달릴 적하고 너희 아이를 태워 달릴 적은 사뭇 다른 즐거움이 새록새록 피어날 테니까.

 

(최종규 . 2013 - 자전거와 함께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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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2-26 05:38   좋아요 0 | URL
새벽에 눈을 떴는데 유난히 방이 훤한 것 같아서 제가 스탠드를 켜놓고 잤나 살펴보았답니다.
달 때문이었어요.
달밤 마실이라...그림 같네요.

숲노래 2013-02-26 06:44   좋아요 0 | URL
오늘도 훤한 달밤 되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새벽부터 빗방울 듣는군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