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와 책쓰기

 


  곰곰이 따지면, 책읽기란 ‘남이 차려 놓은 이야기 읽기’입니다. 스스로 찾아서 챙겨 살피는 이야기 아닌, ‘남이 힘껏 찾아서 챙겨 살핀 이야기를 읽는’ 일이 책읽기입니다.


  예부터 고이 이어온 말을 돌아봅니다. 무엇이든 배우려면 스스로 배우지, 남한테서 배울 수 없다 했습니다. 스승이 있대서 배우지 않습니다. 책이 있대서 배우지 않아요. 언제나 내 맨주먹과 맨몸으로 부대끼면서 배워요. 모든 삶은 스스로 부딪히면서 깨닫고 배우지, 누가 일깨우거나 가르치지 못해요. 곧, 누가 일깨우거나 가르친다 하더라도, 나 스스로 알아차리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때에는 하나도 못 배워요.


  책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권수로 치면 많이 읽지’만, 마음가짐이 넓거나 트이거나 열리지 않으면, 아무런 줄거리나 고갱이를 못 받아들여요. 다시 말하자면, 마음가짐이 넓거나 트이거나 열린 채로 있다면, 책 한 권을 읽더라도 책 백만 권 읽는 사람보다 깊고 넓으며 환하게 깨우칩니다. 스스로 마음가짐을 넓히거나 트거나 열면, 종이책 한 권조차 안 읽더라도 삶을 깨닫고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책읽기를 하자면 책쓰기를 함께 할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남이 차린 밥상을 받아서 먹듯, 나도 밥상을 차려 남한테 베풀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책쓰기를 하다 보면, 남이 차린 밥상이 얼마나 고마운가를 느낄 뿐 아니라, 밥상을 차려서 베풀기까지 어떤 삶을 치르거나 겪거나 복닥였는가를 살갗으로 헤아릴 수 있어요. 이러는 동안, 서로서로 이야기꽃 피울 수 있지요. 나는 내가 겪은 삶을 이웃한테 들려주고, 이웃은 이웃이 겪은 삶을 나한테 들려줍니다.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됩니다. 함께 나누는 삶이 됩니다.


  책은 누구나 씁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이녁 깜냥껏 삶을 누리거나 즐기거나 빚기 때문입니다. 책은 누구나 읽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이녁 슬기를 빛내어 하루하루 누리고 즐기며 빚으니까요. 삶을 다루는 책인 만큼, 내 삶을 들여 읽고 내 삶을 바쳐 씁니다. 4346.2.17.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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