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빚기
― 나 스스로 사진입니다
스스로 삶을 즐길 때에 내 삶이 즐겁습니다. 스스로 삶을 즐기지 못하면, 나한테 돈이 억수로 많더라도 삶이 즐겁지 않습니다. 스스로 삶을 즐긴다면, 내 은행계좌에 돈이 아예 없다 하더라도 삶이 즐겁습니다.
호텔집에 가서 밥을 먹야 밥맛이 돌지 않습니다. 시골집 둘레에서 풀을 뜯어 먹을 때에 밥맛이 없지 않습니다. 손수 텃밭을 일구어 나물밥 먹더라도 이러한 삶을 즐기지 못하면 밥맛이 돌지 못합니다. 호텔집에 가든 뷔페집에 가든 스스로 삶을 즐기면 어디에서 밥을 먹더라도 맛나고 즐겁습니다.
어떤 사진장비를 쓰든 스스로 사진을 즐길 때에 아름답거나 곱거나 반갑거나 기쁜 사진 하나 얻습니다. 스스로 사진을 즐기지 못하면, 어떤 사진장비를 손에 쥔다 하더라도 하나도 안 즐거울 뿐 아니라, 아름답거나 곱거나 반갑거나 기쁜 사진을 조금도 못 얻습니다. 스스로 사진을 즐길 줄 안다면, 값싼 사진장비를 쓰거나 값비싼 사진장비를 쓰거나, 스스로 가장 기쁘며 즐겁게 받아들일 사진을 얻어요. 스스로 사진을 즐기지 못하니까, 자꾸 사진장비에 눈길이 가거나 마음이 기울어져요.
그러나, 아직 적잖은 사람들은 사진장비에 끄달립니다. 어쩔 수 없다 할 텐데, 사진장비와 사진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는가를 제대로 풀어내거나 밝히거나 이야기하는 ‘사진벗’이나 ‘사진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슬기로운 사진벗이나 사진스승을 스스로 사귀지 않았고 만나려 하지 않았으며 마주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일 테지요.
살림돈이 적은 사람은 ‘적은 살림돈에 맞추어’ 사진장비를 갖출 텐데, 살림돈이 조금 넉넉한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값싼 사진장비부터 값진 사진장비’까지 두루 갖출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나는 살림돈이 적었기에 가장 값싼 사진기부터 하나하나 쓰면서 몸으로 익혔는데요, 사진길을 걸어가며 ‘나한테 맞는 사진장비를 잘 모르겠다’ 싶으면, 아니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더 깊이 누리고’ 싶으면, 이렇게 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미놀타, 캐논, 니콘, 펜탁스, 라이카, 이런저런 회사 사진기 가운데 가장 값싸고 널리 쓰이는 장비를 하나씩 갖춰요. 그러고서 일회용 사진기도 갖추고 로모 사진기하고 두어 가지쯤 되는 토이카메라도 갖춰요. 그러고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상을 다 다른 사진기로 몇 장씩 찍어 봐요.
사진기가 다 다르니까 똑같은 결이나 무늬나 빛살이나 빛깔은 나오지 않습니다. 필름사진기라면 다 다른 회사에서 만든 필름을 넣으며 찍어 봐요. 인터넷 사이트에서 떠도는 ‘장비 비교’나 ‘필름 비교’ 영상이나 파일을 들여다보지 말고, 나 스스로 내가 장비와 필름을 갖추어 사진을 찍어 봐요. 디지털사진일 때에는 화이트밸런스하고 색감을 다 다르게 해서 몇 장씩 찍어 봐요.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서 한 가지를 더 살핀다면, 내가 이렇게 찍은 사진들을 ‘어떤 장비 어떤 필름(또는 디지털데이터)으로 찍었는가’를 숨긴 채, 오직 사진 작품으로만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셔요.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이 이처럼 찍은 사진을 ‘그저 사진으로만 들여다보’셔요. 이때에 내 마음에 가장 와닿는 사진이 어느 것인가를 찾아보셔요.
사람마다 삶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이요 생각이며 삶이기에, 저마다 마음이 끌리는 꽃과 풀과 나무가 달라요. 누군가는 벚나무한테 마음이 갈 테고, 누군가는 뽕나무한테 마음이 갈 테며, 누군가는 잣나무한테 마음이 갈 테지요. 누군가는 동백나무한테 마음이 갈 테고, 누군가는 능금나무한테 마음이 갈 테며, 누군가는 오동나무한테 마음이 갈 테지요. 호두나무를 좋아하거나 석류나무를 좋아한대서 ‘남보다 거룩하거나 남보다 못하지’ 않아요. 그저 호두나무를 좋아하거나 석류나무를 좋아할 뿐이에요.
곧, 사진은 내가 가장 즐기고 좋아하는 사진을 즐기면서 좋아하면 됩니다. 나는 내 삶을 빛낼 내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사진잔치를 벌인다고 할 적에도, 남들 앞에서 자랑할 만한 사진을 보여주기보다, 나 스스로 가장 좋아하면서 즐긴 사진을 함께 나눈다고 생각하셔요. 내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어떻게 하는지 돌아보셔요. 내 아이를 이쁘장하게 찍은 사진도 눈길이 갈 테지만, 내가 내 아이를 사진으로 찍을 적에는 ‘내 아이하고 어울리며 보낸 살갑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깃든 사진에 가장 눈길과 마음이 끌리기 마련이에요. 빛이 좀 안 맞거나 살짝 흔들렸다 하더라도, ‘내 아이하고 어울리며 보낸 살갑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깃든 사진처럼 내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해요.
나 스스로 사진입니다. 내 삶이 내 사진이고, 내 사랑이 내 사진입니다. 내 눈길이 내 사진이요, 내 마음이 내 사진입니다. 이런저런 사진틀에 맞추어 내 삶이나 사랑이나 눈길을 바꾸지 마셔요. 내 삶이나 사랑이나 눈길에 맞추어 내 사진틀을 새롭게 빚어요. 내 삶에 따라 내 사진을 즐기고, 내 사랑에 따라 내 사진을 누려요. 내 눈길에 따라 내 사진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면서 내 이야기를 흐드러지게 빚어요. 4346.2.1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사진책 읽는 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