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는 여러 가지 볼거리와 놀거리가 많다고 합니다. 높다란 아파트가 바닷가에 서기도 하고, 바다를 가로지르는 긴 다리가 있기도 합니다. 부산 야구장에는 사람들이 꽉 차고, 술집과 찻집과 고기집과 옷집 있는 거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부산 이름을 앞세운 국제영화잔치가 벌어지며, 영화잔치 곁에는 자갈치시장 있어, 바닷내음 물씬 풍깁니다. 한편, 부산에는 산복도로가 있고, 달동네가 있습니다. 멧꼭대기까지 자그마한 집이 알뜰살뜰 어깨를 맞대어 조그마한 골목으로 이어집니다. 집안 아닌 집밖에 뒷간이 있는 보수아파트가 있고, 이 둘레에 보수동 헌책방골목이 있습니다. 헌책방골목에는 크고작은 헌책방이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합니다. 한국전쟁 무렵부터 자리를 잡은 헌책방이라는데, 예순 해를 지나고 일흔 해가 되도록 책 하나에 깃든 사랑으로 새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책은 묵되 이야기는 새롭습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부산근현대사박물관 곁을 지나고 용두산공원 옆을 스쳐 걸어가면 책쉼터(북카페) ‘백년어서원’이 있습니다. 책이 있고, 차 한 잔이 있으며, 책걸상이 있습니다. 여러 인문학 모임이 이어지고, 시를 나누는 조촐한 자리가 생깁니다. 책쉼터 앞은 찻길이기에 자동차물결 소리로 귀가 아프지만, ‘백년어서원’을 일군 분이 시와 사진으로 아름다운 꿈 한 자락 길어올리는 삶을 걸어왔기 때문인지, 계단 한 칸 두 칸 밟고 책쉼터로 들어서면 어느새 자동차물결은 내 머릿속에서 잊히면서, 책내음과 이야깃소리가 가슴속으로 스며듭니다. 부산사람은 야구 보는 재미로 살아간다고도 하는데, 삶을 밝히는 책빛으로 헌책방골목이 고운 등불 구실을 하고, 삶을 빛내는 책쉼터가 따사로운 횃불 구실을 하는구나 싶습니다.
숲사람 이야기 5 - 이야기 꽃피우는 작은 터
― 도서관은 하루아침에 서지 않는다
도서관과 책
도서관에는 책이 있습니다. 도서관에서는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어도 책을 빌려 읽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허름한 옷차림이라 하더라도, 또 고무신이나 짚신차림이더라도, 아니 맨발이라 하더라도, 도서관에서 책 한 권 빌려 읽을 수 있습니다.
기초수급생활자이건 차상위계층이건, 또는 장애인이건 어린이이건 할아버지이건, 도서관은 아무도 물리치지 않습니다. 손을 뻗어 책을 쥘 수 있으면, 손에 쥔 책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읽을 수 있으면, 누구라도 도서관을 드나들 수 있습니다. 다만, 주말 아닌 여느 날에 도서관 나들이를 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좀 적다 할는지 모릅니다. 여느 날 여느 때에는 일터에 매여 옴쭉달싹 못할 테니까요.
도서관 건물이 아무리 으리으리한들, 꾀죄죄한 옷차림으로도 씩씩하게 드나듭니다. 도서관 건물이 높고 크다 하니까, 까만 자가용을 타고 찾아가야 하지 않습니다. 책은 알맹이를 읽어 책이지, 겉껍데기를 번드레레하게 꾸민대서 책이 아닙니다. 책읽기란 책에 서린 삶을 읽는 즐거움이지, 책읽기를 해서 지식자랑이나 정보뽐내기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직 이 나라 도서관은 건물만 너무 큽니다. 도서관은 책을 알뜰히 건사하고 다루면서 사람들이 책하고 살가이 사귀도록 돕는 쉼터 구실을 해야 할 텐데, 아직 이 나라 도서관은 입시공부나 시험공부 하는 ‘칸막이 공부방’ 구실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도서관이 ‘공짜 책 실컷 보는 데’는 아닙니다. 도서관이 갖추는 책은 모두 내가 낸 돈(세금)으로 장만합니다. 곧, 내 돈으로 장만하는 책이니, 더더욱 아끼고 보살필 책이요, 나뿐 아니라 내 뒷사람도 즐겁게 만나 기쁘게 읽을 만한 책을 갖추도록 이끌어야 아름답습니다.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면서 책을 지키는 곳입니다. 도서관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밝고 푸르며 싱그러운 햇살과 바람을 누릴 만한 데에 지어야 합니다. 아마, 오늘날 도시에서 이런 자리는 도시 변두리쯤 될 텐데, 도서관은 변두리 아닌 한복판에 지어야 하고, 도시 한복판에는 먼저 숲(공원)이 있어야 해요. 숲 곁에 도서관이 있어야 올발라요. 그러니까, 도시 한복판이란 숲과 도서관이어야 올바르다는 소리입니다. 다음으로, 도서관이 책을 지키자면 건물만 커서는 안 돼요. 바람과 볕이 알맞게 드나들도록 짜고, 책꽂이를 좋은 나무로 엮으며, 책손 누구나 책을 고운 손길로 찬찬히 만져야 합니다. ‘대출실적 0’이라 해서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됩니다. 아직 사람들이 안 빌리는 책이 있다면, 도서관지기가 이런 책들을 잘 살피고 값을 헤아려 사람들한테 알려주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즐거이 읽으며 마음을 빛낼 책인데 못 알아보니까, 이런 책을 알리라는 뜻에서 도서관지기(사서)를 두지요.
그렇지만, 우리 모습을 돌아보면, 도서관은 책을 지키는 데라기보다 책을 버리는 데입니다. 도서관에서 버린 책은 종이쓰레기 모이는 데로 가고, 헌책방 일꾼이 이곳에서 ‘버려진 책’을 캐내어 찬찬히 손질합니다. 비록 도서관에서는 책손을 만나지 못했지만, 이 ‘버려진 책’을 찾아 애타는 눈길로 아름다운 넋을 일구고 싶은 사람들이 있거든요.
숲과 나무와 종이
숲이 있어 나무를 얻습니다. 나무를 얻어 집을 짓습니다. 사람들은 나무로 집을 지은 다음, 나무로 연장을 만듭니다. 나무를 깎아 연필을 만들고, 나무를 잘라 종이를 빚습니다. 나무한테서 얻은 종이를 묶으면 책이 됩니다. 하나하나 따지면, 글을 쓰는 사람은 연필과 종이와 책 모두 나무한테서 얻은 숨결로 글쓰기를 하는 셈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숲에서 푸른 숨결 얻어 글쓰기를 하는 삶입니다.
시를 쓰든 철학을 파헤치든 소설을 쓰든 문화인류학을 살피든,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이들은 ‘나무를 만지면서 읽는’ 셈입니다. 글쓰기란 삶을 쓰기에 삶쓰기라 할 수 있는데, 어느 모로 보면 나무쓰기가 됩니다. 책읽기 또는 글읽기란 책이나 글을 쓴 사람 삶을 읽는 일이기에 삶읽기라 할 수 있는데, 어느 모로 보면 나무읽기가 되곤 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다룬 글이든 숲에서 비롯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실은 책이든 숲에서 태어납니다. 대입시험을 다루는 문제집이나 참고서도 숲에서 비롯합니다. 토익이나 토플을 치르려고 들여다보는 영어교재도 숲에서 태어납니다. 우리들은 숲에서 집을 얻고 밥을 얻으며 옷을 입습니다. 여기에, 종이와 책과 연필을 숲에서 얻습니다. 온통 숲내음이고 숲바람이며 숲햇살입니다. 숲삶입니다.
숲을 생각하지 못하면, 이야기가 슬기롭게 나오지 않습니다. 숲을 사랑하지 않으면, 글 한 줄에 아무 이야기가 안 담깁니다. 숲을 생각하기에, 이야기가 술술 흘러나와 아이들한테 찬찬히 물려줍니다. 숲을 사랑하기에, 글꽃이 피어나고 말꽃이 자라나며 온누리에 사랑씨앗이 퍼집니다.
지식을 쌓도록 돕는 책이 아닙니다. 책을 읽으면 머리가 좋아지지 않습니다. 내 이웃과 동무 삶을 마주하면서 아름다운 꿈을 키우는 길잡이 구실을 하는 책입니다. 내 하루를 기쁘게 맞이하는 어여쁜 웃음꽃 피어나도록 이끄는 책입니다.
먼먼 옛날 사람들한테는 종이책이 따로 없었습니다. 임금님이나 권력자나 지식인 사이에는 종이책이 얼마쯤 있었지만, 흙을 일구며 숲에 깃들어 살던 사람들한테는 종이책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글 또한 따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흙을 일구며 숲에 깃들어 살던 사람들은 종이책 없이도 하늘을 읽고 날씨를 읽으며 구름을 읽고 바다를 읽어요. 글 한 줄 모르지만, 물길과 바닷길을 알고, 풀과 새와 벌레를 알아요. 흙을 일구는 흙사람은 흙에 얽힌 모든 이름을 짓습니다. 숲에 깃들어 사는 숲사람은 숲에서 비롯하는 모든 이름을 짓습니다. 땅이름과 마을이름뿐 아니라, 풀이름과 꽃이름과 벌레이름과 나무이름 모두 흙사람과 숲사람이 지었어요. 바람과 비와 눈을 나타내는 이름도 흙사람과 숲사람이 지었어요. 사람 몸 곳곳 가리키는 이름이나 사람 마음과 생각이 어떠한가를 나타내는 낱말도 흙사람과 숲사람이 지었어요. 흙사람과 숲사람은 나무를 잘라 연필이나 종이나 책을 만들지 않았지만, 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삶을 지으면서 ‘삶책’이라고 하는 ‘닳지 않고 낡지 않으며 바래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책’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어요.
책으로 쉬는 터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 일꾼들은 작은 손길 그러모아 책잔치를 일굽니다. 2013년에는 어느덧 열 번째 책잔치를 합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 한 자리를 지키는 〈우리글방〉은 ‘책방’으로만 책지기 구실을 하다가, 시나브로 마음을 기울이면서 ‘책쉼터’, 곧 ‘북카페’를 책방 한쪽에 마련합니다.
헌책방 책살림을 꾸리면서 책쉼터를 마련하는 일이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흔히들, 책 한 권이라도 더 꽂아 책 한 권이라도 더 팔아야 한다고 여기지만, 〈우리글방 북카페〉는 조금 다른 생각을 책손한테 들려줍니다. 사람들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이보다는 사람들이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아름답게 읽으면서 스스로 삶을 곱게 빛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책을 한 해에 백 권 읽거나 이백 권 읽기에 더 훌륭하지 않습니다. 책을 한 해에 열 권 읽거나 스무 권 읽기에 덜 훌륭하지 않습니다. 책을 한 해에 한 권조차 못 읽는대서 못나거나 바보스럽지 않습니다. 먼먼 옛날 흙사람과 숲사람처럼 ‘삶책’을 읽을 줄 알면 됩니다. 삶책을 읽는 사람은 날마다 새롭게 사랑을 길어올립니다. 삶책을 읽는 사람은 언제나 싱그러운 꿈을 나눕니다.
보수동에 있는 〈우리글방 북카페〉는 사람들이 책과 어깨동무하도록 이끄는 헌책방골목을 조그맣게 밝히는 등불이라 할 만합니다. 이를테면 ‘꼭 이런 베스트셀러 저런 스테디셀러를 찾아서 읽으려고 하지 마셔요’ 하고 속삭이는 등불입니다. ‘내 마음에 와닿아 내 생각을 따사롭게 보듬는 책을 읽어요’ 하고 속삭이는 등불입니다.
부산 동광동에 자리한 인문학 책쉼터 〈백년어서원〉은 산복도로나 달동네 언저리에서 작은 사람들 작은 집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알뜰히 사랑하는 넋을 살포시 들려주는 만남터입니다. 책으로 쉬고, 이야기로 사귀며, 배움과 만남이 어우러지는 이음고리입니다.
둘레를 살피면, 도시에는 찻집과 밥집과 술집이 많습니다. 시골에는 면소재지쯤 되더라도 찻집이 거의 없습니다. 시골에서는 찻집이 따로 없어도 논둑과 밭둑이 이야기마당입니다. 시골에서는 밥집이 따로 없어도 여느 살림집에서 밥을 지어다가 들밥을 먹습니다. 시골에서는 막걸리 한 사발 떠서 나누면 들판이나 숲 어디에서나 술잔치가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차나 밥이나 술을 즐기는 곳은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 자리가 되나요. 도시에서는 어디에서 다리쉼을 하거나 동무를 만나 마음을 느긋하게 열어 이야기꽃 피울 만한가요.
도시에서는 돈이 있어야 다리쉼을 할 수 있는 얼거리입니다. 도시에서는 돈이 있어야 물을 마시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얼거리입니다. 도시에서는 풀 뜯어먹을 빈땅 찾기 어렵습니다. 문명과 물질은 있어도 사랑과 꿈은 뿌리내리기 힘듭니다.
이야기 꽃피우는 마음
인문학 책쉼터 〈백년어서원〉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아이들과 다리를 쉬다 보면, 마음도 함께 쉬는구나 싶습니다. 어째서 이곳에서는 몸과 마음을 느긋하게 쉴 수 있을까요. 〈백년어서원〉에서 2012년 12월에 내놓은 《百年魚》 13호 맺음말을 읽습니다. “백년어는 다시 처음을 향하여 흘러갑니다. 물고기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삽니다. 진정한 생명이 무엇인지 다시 공부할 참입니다.”
물고기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산다면, 풀이 사는 곳에 사람이 살겠지요. 나무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살고, 구름과 무지개가 사는 곳에 사람이 산다 할 테고요. 달과 별이 사는 곳에 사람이 삽니다. 해와 바람이 사는 곳에 사람이 살아요. 그러나, 오늘날 부산이나 서울이나 크고작은 도시는 물고기나 풀이나 나무나 구름이나 무지개가 살기 어렵습니다. 달과 별과 해와 바람이 살 만한 도시는 없습니다. 조그마한 도시뿐 아니라 시골조차 공장과 골프장을 끌어들이려 합니다.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를 받아들여 보상금 몇 천억 원 받는 꿈을 꾸는 지자체가 많습니다.
이야기 스스로 자라날 만한 도시가 없습니다. 이야기 푸르게 숨쉴 만한 도시가 없습니다. 문화예술재단이 있되, 전시와 성과에 얽매이지, 작은 사람들 작은 삶을 작게 사랑할 만한 이야기를 보살피는 길하고는 아직 멉니다.
도서관은 하루아침에 지을 수 없습니다. 도서관에 건사할 책은 수십 수백 해에 걸쳐 나오는 책입니다. 커다란 새책방에 있는 책을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주문해서 갖춘들 도서관이라 할 수 없어요. 차근차근 책을 갖추어 서른 해나 쉰 해나 백 해쯤 흘러야 비로소 도서관 꼴을 갖추어요.
보수동 헌책방골목 〈우리글방 북카페〉는 기나긴 나날 책을 만지고 살리던 사랑으로 ‘책쉼터’를 일굽니다. 동광동 인문책 쉼터 〈백년어서원〉은 시인 김수우 님이 기나긴 나날 책을 읽고 보듬던 꿈으로 ‘책나눔터’를 이룹니다. 책으로 길어올리는 이야기꽃은 오래도록 한결같이 흐르는 사랑이 감돌아 피어납니다. 책으로 주고받는 이야기꾸러미는 두고두고 천천히 속삭이는 꿈이 깃들며 무르익습니다.
산복도로나 달동네를 처음부터 애틋하게 눈여겨보던 사람이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아마, 얼른 재개발을 해야 할 곳으로 바라보기만 했겠지요. 그런데, 산복도로나 달동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이야기를 일구었어요. 시가 태어나고 소설이 태어나며 영화가 태어납니다. 이와 달리, 해운대 높다란 아파트에서 시나 소설이나 영화가 태어나는 일은 아예 없거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쩌다 해운대 높다란 아파트에서 시나 소설이나 영화가 태어나도 그닥 재미없습니다. 삶도 사랑도 웃음도 눈물도 좀처럼 서리지 못하거든요.
까르르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산복도로와 달동네에서 이야기꽃으로 피어납니다.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숨바꼭질 술래잡기 즐기는 아이들이 산복도로와 달동네에서 이야기씨앗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이야기를 먹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책을 사랑하면서 책쉼터를 빚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책을 아끼면서 책나눔터를 짓습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이 얼마가 되든, 꾸준하게 어루만지며 가꾼 꿈을 책사랑으로 빛냅니다. 빙그레 웃음지으며 읽은 책을 마음밭에 아로새겨 책집으로 선보입니다. 보수동 헌책방골목은 왁자지껄 재미난 ‘도서관 한마당’입니다. 동광동 인문책 쉼터는 고즈넉하니 어여쁜 ‘도서관 다락방’입니다. 4346.1.28.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시민사회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