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결에 물든 미국말
 (672) 페이버릿 아이템(favorite item)

 

이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썼던 대사인데요, 달력도 나의 페이버릿 아이템이랍니다
《생각의 일요일들》(달,2011) 164쪽

 

  ‘대사(臺詞)’라는 한자말은 연극이나 영화에서 쓰는 낱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낱말은 ‘말’을 뜻해요. 어느 모로 보면 전문 낱말이라 하겠지만, 한국말 ‘말’이라 하면 될 낱말을 굳이 쓴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기글에서는 “이건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썼던 말인데요”라고 다듬거나, “이 말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썼는데요”처럼 다듬어야 알맞습니다. ‘나의’는 ‘내’나 ‘나한테’나 ‘내게’로 손질합니다.

 

 나의 페이버릿 아이템 (x)
 마이 페이버릿 아이템 (x)
 내 취향 (x)
 내가 좋아하는 것 (o)

 

  소설쓰는 은희경 님 산문책에서 ‘페이버릿 아이템’이라는 영어를 보고 문득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집니다. 사람들이 참말 이런 말을 쓰는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어느 패션잡지라 하는 곳에서는 “리키로제타의 핸들 워머로 퍼(fur)장식을 더하면 보다 스타일리시하다. 스터드 룩에는 패셔니스타의 페이버릿 주얼리 브랜드 ‘마위’의 액세서리를 더한다.” 같은 글을 씁니다. 토씨만 빼면 몽땅 영어라 할 만한 글입니다. 껍데기만 한글일 뿐, 그냥 영어로 쓰는 쪽이 훨씬 낫겠다 싶습니다. 아니, 차라리 영어로 쓰려면 영어로 쓰지, 왜 번거롭게 한글로 옮겨적을까 싶어요. 이런 글을 한글로 적는대서 얼마나 알아보겠어요.


  은희경 님은 그나마 “‘나의’ 페이버릿 아이템”처럼 쓰지만, 다른 이들은 “‘마이’ 페이버릿 아이템”처럼 쓰는 듯합니다. 그렇지요. ‘페이버릿 아이템’은 한국말 아닌 영어인 만큼, 껍데기로나마 ‘나의’를 쓰자면 덜 어울려요. 아주 ‘마이(my)’를 넣어야 어울립니다.


  사람들이 영어를 마구 쓰기 앞서는 으레 한자말로 ‘취향(趣向)’을 쓰곤 했어요. 이렇게 한자말로 써야 무언가 멋스럽다고 여겼습니다. 이러다가 영어바람이 불고 온누리가 온통 영어투성이가 되니, ‘취향’ 같은 낱말은 구닥다리가 되면서 ‘페이버릿 아이템’ 같은 말투를 쓰려 하는구나 싶어요. 한국말 ‘좋아하다·즐기다·사랑하다’를 알맞게 쓰는 사람은 사라집니다. 한국말로 이웃이랑 살가이 이야기꽃 주고받는 사람은 줄어듭니다.

 

 달력도 내가 참 좋아합니다
 나는 달력도 참 좋아합니다

 

  아이들은 이런 영어 저런 한자말을 모릅니다. 아이들은 “난 무엇무엇이 좋아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요즈음 아이들은 어른들한테서 배워 ‘페이버릿 아이템’ 같은 말투를 쓸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아이들은 ‘버스데이 파티’라는 말도 쓰거든요. 그나마 ‘생일파티’조차 아닌 ‘버스데이 파티’라고 하거든요. 여느 어버이와 교사가 ‘생일잔치’라는 말을 안 쓰니까 아이들도 ‘파티’라 말하고 ‘버스데이’라 말해요. 초등학교마다 있는 ‘영어 교실’을 ‘잉글리쉬 존’이라고만 가리키니,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영어 쓰기가 아주 익숙해요. 한국사람이면서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말투나 말버릇이나 말결을 익히지 않아요.


  소설쓰는 분들이 소설을 쓰거나 여느 글(산문)을 쓸 적에 조금 더 생각을 기울이기를 빌어요. 깊이 생각하지 않고 쓴 글 한 줄이 사람들 말투에 크게 스며들어요. 아무렇게나 쓴 글 두 줄이 사람들 말씨를 어지럽히기도 해요. 가장 사랑스러우면서 가장 아름다운 글을 쓸 수 있기를 빌어요. 가장 맑으면서 가장 빛나는 글을 쓰도록 마음을 쏟을 수 있기를 빌어요. 4346.2.3.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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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 썼는데요, 나는 달력도 참 좋아합니다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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