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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띠
신명희 지음, 한태희 그림 / 초방책방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42
나는 우리 아이들 ‘짐승띠’를 모른다
― 열두 띠
신명희 글,한태희 그림
초방책방 펴냄,2003.4.8./12000원
나는 어릴 적에 ‘십이지간’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십이지신’이라고도 하는데, 아마 ‘십이지신’을 조금 더 자주 쓰는구나 싶은데, 내가 으레 듣고 늘 쓰던 이름은 ‘십이지간’입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또래 아이들은 이 쉽잖은 한문을 제대로 못 외우곤 합니다. 아이들끼리는 으레 “열두 띠”라 말했고, 아이들은 “띠가 무어니?” 하고 물었습니다.
어른, 그러니까 나이든 아저씨나 할아버지는 으레 더 어려운 한자말이나 한문으로 묻곤 합니다. 쉬운 한국말로 풀어서 이야기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참말 쉽게, 쥐·소·범·토끼…… 하고 말하면 될 텐데, 굳이 자·축·인·묘…… 하고들 읊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머리에 꿀밤탑을 늘리며 ‘자·축·인·묘’ 하는 한문을 외우지만, 막상 이 한문이 무슨 짐승을 가리키는가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곤 해요. 그러면 어른들은 또 꿀밤을 날리지요.
열두 띠는 언제 생겼을까요. 열두 띠는 누가 붙였을까요. 열두 띠 이름을 받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한겨레 옛 문화라고 하지만, 시골에서 흙을 만지던 여느 수수한 사람들도 열두 띠 이름을 얻었을까요.
열두 띠를 외우며 꿀밤탑을 쌓던 어릴 적부터 ‘왜 열두 띠를 외워야 하나?’ 하고 궁금해 했습니다. 그렇지만, 열두 띠를 왜 외워야 하고, 왜 알아야 하는가를 슬기롭게 이야기한 어른은 없습니다. 열두 띠를 언제부터 누가 어떻게 썼는가 하는 대목도 궁금했으나, 이 대목을 찬찬히 짚은 어른도 없습니다. 예전에는 ‘양반·상놈’으로 신분이랑 계급을 갈랐다 했는데, 양반 아닌 상놈한테도 열두 띠가 있었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학교에서 냅다 손을 들고는 선생님들한테 여쭈지요. 그러면 선생님들은 누가 그딴 것 물으라 했느냐며 다시 꿀밤을 날리지요.
천 해 앞서를 헤아려 봅니다. 이천 해 앞서를 그려 봅니다. 만 해 앞서를 돌아봅니다. 이만 해 앞서를 되새겨 봅니다. 지난날 이 땅에서 흙을 갈고 보살피던 옛사람한테는 어떤 이름이 있었을까요. 지난날, 이 땅 어느 곳이나 ‘시골’일 뿐이요, 이 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숲’일 뿐이던 그무렵, 사람들은 ‘띠’를 얼마나 생각하거나 살폈을까요.
신명희 님 글과 한태희 님 그림으로 이루어진 예쁜 그림책 《열두 띠》(초방책방,2003)를 읽습니다. 열두 띠와 얽힌 이야기를 조곤조곤 잘 풀어냅니다. 띠마다 이러한 넋을 담는구나 싶어 새삼스럽습니다. 나는 어릴 적이든 어른이 된 뒤이든,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은 띠와 얽혀 재미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구나 싶습니다.
다만, 그림책 《열두 띠》에 나오는 ‘띠 풀이’는 흙일꾼 삶하고는 좀 동떨어졌습니다. 시골에서 숲을 아끼고 흙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하고는 살짝 멉니다.
참말 열두 띠란 무엇일까요. 참말 열두 띠는 언제부터 누가 왜 만들었을까요. 왜 열두 가지 짐승하고 얽힌 띠를 만들었을까요. 열두 띠에 나오는 짐승 가운데 양과 원숭이는 한국땅에서도 살던 짐승일까요. 한겨레는 왜 열두 띠를 오늘날까지 이야기하며 살아갈까요. 열두 가지 띠는 사람을 열두 갈래로 나누어 열두 가지 빛깔로 바라보도록 이끌어 주는가요.
그러고 보니, 나는 우리 집 두 아이 띠를 잘 모릅니다. 옆지기 띠도 잘 모릅니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띠도, 옆지기 어머니와 아버지 띠도 잘 모르는군요. 때로는 내 띠조차 잊어요.
새삼스럽기는 한데, 어떤 띠를 빚는다 한다면, 짐승뿐 아니라 새를 놓고도 ‘열두 가지 새띠 이야기’를 빚을 수 있어요. 풀과 나무를 놓고 ‘열두 가지 풀띠 이야기’와 ‘열두 가지 나무띠 이야기’를 빚어도 되겠지요. 아이들 고운 넋을 생각하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내 고운 빛을 나란히 생각합니다. 4346.1.29.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3 - 그림책 읽는 시골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