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아저씨 책읽기
시골에 처음부터 책방이 없지 않았습니다. 시골에도 새책방과 헌책방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시골에는 새책방도 헌책방도 거의 자취를 감춥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기 무섭게 몽땅 도시로 가거든요. 게다가, 좀 똑똑하다 싶은 아이는 초등학교나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가까운 도시로 보내고, 꽤 똑똑하거나 집에 돈이 있다 싶은 아이라면 아예 서울에 있는 학교로 보내요.
책은 어른도 읽지만 어린이도 읽고 푸름이도 읽습니다. 배우는 사람이 읽는 책입니다. 곧, 어른도 읽는 책이라 한다면, ‘어른도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배우는 사람이기에 책을 읽지, 안 배우는 사람이라면 책을 안 읽습니다. 나이 일흔이나 여든에도 꾸준히 책읽기를 하는 분은, 당신 스스로 새 삶과 넋과 사랑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열대여섯 푸름이나 스물대여섯 젊은이가 책을 안 읽는다 한다면, 이녁 스스로 ‘배우고 싶은 삶’이 없이 물질문명에 끄달리거나 돈벌이·이름값에 휘둘린다는 뜻입니다.
ㅂ씨가 앞장서서 새마을운동을 꾀할 적부터 시골이 왕창 무너지면서 시골마을이 흔들립니다. ㅂ씨가 앞장서지 않았어도 이씨 임금들이 다스린 조선 사회와 제국주의 일본이 다스린 식민지 때에도 시골마을은 무너졌습니다. 다만, 이들 노예 사회와 식민지 사회가 물러난 뒤, 시골사람은 스스로 시골을 아끼면서 일으키려고 애썼는데, 독재정권을 세우는 여러 권력자가 사람들을 바보스럽게 길들이려고 제도권교육을 꾀하며 학교에 등급을 매기고 대학입학시험 굴레를 만드니, 사람들은 이 덫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왜 도시에 가서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되어야 할까요. 왜 전문직이라 하는 의사나 판사나 뭣뭣이 되어야 할까요. 왜 시골 흙일꾼이나 고기잡이로 살아가면 안 될까요.
종이책도 책이지만, 풀과 나무와 새와 구름과 별도 책입니다. 하늘에서 책을 읽고 바람과 책을 읽으며 냇물이랑 책을 읽습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가 아니더라도, 어니스트 톰슨 시튼이 아니더라도, 누구라도 숲에서 이야기를 얻어 종이에 글을 쓴 다음 책을 묶습니다. 숲에서 이야기를 얻기에, 다시금 숲에서 얻은 나무를 다듬어 종이를 빚어 책을 엮습니다.
이제 시골에는 새책방도 헌책방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기에, 이 같은 모습으로서는 시골에서 책을 장만해서 읽기란 매우 아득합니다. 시골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인터넷책방’을 쓸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골사람인 나는 인터넷책방에서 책을 꽤 장만합니다. 도시에 있는 책방까지 나들이를 할 겨를이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때때로 도시로 볼일을 보러 다녀야 하곤 합니다. 시골에서 살아가지만 도시에 나갈 일이 아예 없지 않아요. 그래서, 여느 때에 푼푼이 돈을 그러모읍니다. 도시로 볼일을 보러 나갈 적에 책을 잔뜩 장만합니다. 그러고는 택배를 불러 시골집으로 책을 부치지요. 도시로 볼일을 보러 나갈 적에, 도시에 있는 작은 책방에서 오십만 원어치이든 백만 원어치이든 책을 장만합니다. 인터넷목록만 살필 적하고, 몸소 책방마실을 해서 손으로 만질 적은 사뭇 달라요. 인터넷목록을 살피다가도 ‘뒤늦게 알아채는 아름다운 책’이 있습니다만, 손으로 책시렁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살필 때에 ‘제때 알아보지 못한 아름다운 책’을 훨씬 많이 만나요.
시골사람은 시골에서 살아가기에 즐겁습니다. 종이책을 꼭 읽어야 한다면, 굳이 시골에 남지 말고 도시로 갈 노릇입니다. 이제 종이책 다루는 책방은 거의 도시에만 있으니까요. 그런데, 요즈음은 시골마다 군립도서관을 꽤 예쁘며 알차게 잘 지어 돌봅니다. 시골 군립도서관에 책을 주문해서 빌려 읽으면 돼요. 돈이 적거나 없으면 빌려서 읽으면 되지요. ‘내 것’으로 책을 갖고 싶으면, 돈을 천천히 그러모아서 사면 돼요. ‘내 것’이란, 이야기를 내 것으로 삼을 수 있지, 물건은 내 것으로 삼을 수 없어요. 집안에 들인 책꽂이에 천 권 만 권 꽂는대서 ‘내 것’인 책이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 깃들 때에 비로소 ‘내 것’인 책입니다.
시골에서 어린 나날 보내거나 푸른 나날 누리는 예쁜 벗님들은 굳이 ‘물건으로서 바라보는 책’에는 마음을 덜 기울이기를 바라요. ‘물건인 책’은 나중에 얼마든지 장만할 수 있어요.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실컷 장만하면 돼요. 어린 시골 벗님과 푸른 시골 벗님은 ‘마음을 살찌우는 이야기’를 읍내 군립도서관이나 면소재지 작은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시골 도서관을 아끼고 사랑하다 보면, 시골마을에도 어여쁘며 해맑은 ‘새책방이나 헌책방’이 씩씩하게 태어날 길이 열릴 테니까요. 4346.1.24.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