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 Kitchien 5
조주희 글 그림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204

 


먼 데서 찾아온 사랑
― 키친 5
 조주희 글·그림
 마녀의책장 펴냄,2011.4.29./1만 원

 


  곁에 있을 적에는 모르다가, 떠나고 보니 안다고들 말하는데요, 곁에 있을 적에도 모르지는 않았으리라 느껴요. 떠나고 나서야 비로소 가슴 깊이 알아채면서 그리움을 빚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사랑은 먼 데까지 찾아갑니다. 사랑이기에 먼 데를 가까운 곳처럼 드나듭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먼 데까지 찾아가지 않습니다. 사랑이기에 먼 데를 그리 어렵지 않게 드나듭니다.


- “서울서 오셨소? 먼 데서 왔수.” “오래 걸렸지. 이제야 짐을 모두 내려놨으니까.” (13쪽)


  곁에 두지 않으면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늘 함께 어울리지 않으면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어린 날 어렴풋하게 생각했습니다.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라면, 아이하고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붙어서 움직이는 일이 마땅하다고 퍽 어렴풋하게 생각했습니다. 공동육아라든지 어린이집이라든지, 또 초등학교라든지, 중·고등학교와 학원이라든지, 아이들을 넣을 ‘시설’과 ‘학교’가 많아요. 아이들을 이런 곳 저런 데에 넣으며 무언가 ‘가르치’는 일이 나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다만, 아이 낳은 어버이는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려 하는지 궁금해요. 어버이는 아이한테 아무것 안 가르치면서, 시설과 학교가 ‘가르치기’를 몽땅 도맡아야 하는지 궁금해요.


- ‘여긴 너무 조용해서 귀가 아프다. 엄마는 왜 이런 곳에 사는 걸까. 퇴근하는 아빠와, 엄마, 나,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던, 하늘을 붕 날아오를 만큼 따뜻했던 기억들이, 이곳에선 거짓말처럼 얼어붙는다.’ (50∼51쪽)


  어버이가 아이를 낳을 때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고 싶어 아이를 낳습니다. 사랑하고 싶어 짝꿍을 사귑니다. 사랑하고 싶어 동무랑 손을 잡고 걷습니다. 사랑하고 싶어 삶을 누립니다. 사랑하고 싶어 책을 읽고, 사랑하고 싶어 노래를 부릅니다.


  사랑이 아니라면 먼 데서 찾아오지 않아요. 사랑이 아니라면 곁에서 함께 어울리지 않아요. 사랑이 아니라면 한솥밥을 먹지 않아요. 사랑이 아니라면 눈빛 마주하며 환하게 웃지 않아요.


  사랑이기에 흐드러지게 춤을 춥니다. 사랑이기에 글월 하나 띄웁니다. 사랑이기에 소근소근 속삭입니다. 사랑이기에 씨앗 한 알 심습니다. 사랑이기에 풀잎 살며시 쓰다듬으며, 너 참 예쁘네, 하고 말을 겁니다.


- “너 이런 것도 만드니? 남편이 케이크도 안 사다 줘? 그런 거지?” “하하하. 처음 해 봤는데 역시 좀 엉망이네. 살짝 타기까지 했어.” (71∼72쪽)


  아이를 사랑한다면, 텔레비전을 보지 말아요. 아이를 사랑한다면, 아이 얼굴을 바라봐요. 아이를 사랑한다면, 회사에 가지 말고 학교에 아이를 넣지 말아요. 어버이와 아이가 따사로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함께 밥을 짓고 함께 집살림 꾸리며 함께 논밭 일구어요. 아이한테 어버이 삶을 보여주면서 아이가 제 삶을 씩씩하게 보듬을 수 있게끔 도와주셔요. 어버이로서 아이하고 누릴 애틋한 사랑을 생각하며 보금자리 어여삐 여미어요.


  사랑이 왜 먼 데에서 찾아오는지 생각해요. 사랑이 왜 늘 곁에서 맑게 빛날까 하고 생각해요. 사랑이 왜 샘물처럼 노상 싱그럽게 솟아나는지 생각해요. 사랑이 왜 밤하늘 밝히는 별처럼 반짝반짝 아름다운지 생각해요.


- “집에 가면, 밥이 차려져 있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그걸 모르고 이제껏 밖으로만 돌았구나.” (152쪽)


  조주희 님 만화책 《키친》(마녀의책장,2011) 다섯째 권을 읽습니다. 《키친》 다섯째 권에서는 먼 데서 찾아오는 사랑과 늘 곁에 있는 사랑을 ‘밥’ 하나 사이에 두고 살며시 풀어냅니다. 참말, 사랑은 먼 데에서 찾아오지요. 참으로, 사랑은 곁에 늘 있지요. 먼 데서 찾아오는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여 꽃이 피고, 늘 곁에 있는 사랑한테 따순 손길 내밀며 열매가 맺어요.


  아침저녁으로 짓는 밥이 사랑입니다. 하루하루 누리는 삶이 사랑입니다. 잠자리 이불 여미는 손길이 사랑입니다. 들길을 천천히 거닐며 겨울날 멧새 먹이를 가만히 떠올리는 마음그릇이 사랑입니다.


  깊은 밤 지나 새벽이 밝습니다. 작은아이 먼저 칭얼거려 밤오줌 누이니, 큰아이 덩달아 칭얼거려 밤오줌 누여 달라 합니다. 너희가 앞으로 몇 살까지 이렇게 밤칭얼노래 부르려나. 너희 아버지는 너희 삶을 글로도 옮기고 사진으로도 적바림하며 마음밭에도 아로새기거든. 앞으로 잘 지켜보겠어. 이제 너희 아버지도 기지개 켜고 너희 곁에 다시 누워야겠다. 4346.1.18.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3-01-1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 가면, 밥이 차려져 있다는 게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 그걸 모르고 이제껏 밖으로만 돌았구나.” (152쪽)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인지 집이 있어 따뜻하게 지내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어디선 본 글이 생각나네요. 대문을 쾅쾅 두들길 수 있는 나의 집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그런 글이에요.(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ㅋ)

작은 일도 살펴보면 감사할 게 아주 많은 세상입니다. ^^

숲노래 2013-01-19 08:30   좋아요 0 | URL
작은 일을 고마워 한다기보다,
모든 일이 나한테 즐겁고 고마운 삶이로구나 ... 하고 생각해요~ ^^

그러니까, 오늘도 고맙고
내 둘레 모든 벗님들 참말 고맙구나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