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책읽기 (ㅈ상병)

 


  군인 ㅈ상병은 상병이라는 군대 계급을 얻기까지 사흘 가운데 하루는 휴가나 외박으로 지냈다. 연예인으로 있다가 군인이 된 ㅈ상병은 여론 뭇매를 받았고, 군부대에서 ㅈ상병한테 ‘근신 이레’라는 징벌을 준다. ㅈ상병은 이레 동안 ‘자숙’을 하면서 책을 두 권 읽었다고 한다.


  군인 ㅈ상병은 연예인이기에 여느 사람들과 달리 ‘사흘 가운데 하루를 휴가나 외박으로 지새우기’를 누렸고, ‘여론 뭇매’를 받으며, ‘근신 이레’라는 징벌을 받는데다가, ‘근신 이레 동안 책 두 권 읽기’를 하는구나 싶다. 여느 군인이었고, 강원도 양구 ‘최전방’이라는 데에서 젊은 날을 보낸 내 지난날을 돌이켜본다. 나는 여섯 달에 한 번 휴가 나오기도 힘들었지만, 열석 달만에 휴가를 나온 적도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외박을 딱 하루 받은 적 있고, 내가 군대에 있는 스물여섯 달 동안 읽을 수 있던 책은 한 권조차 없다. 나는 ‘영창’이라 하는 군대 감옥에 간 적은 없지만, 여러 선배나 동기나 후배는 영창살이를 했으며, 영창이 아니더라도 ‘군기교육대’라는 데를 다녀와야 하던 이들이 많았다. 영창이나 군기교육대를 가지 않더라도, 지오피 근무를 마치고 주둔지로 내려오면 두 달에 한 차례 군단훈련·사단훈련·연대훈련·중대훈련 들이 잇달았고, 한여름과 한겨울에 혹서기훈련·혹한기훈련이 찾아왔다. 혹서기훈련은 새로운 신병교육대 채찍질이요, 혹한기훈련은 영하 20∼30도 추위에 얼음산에서 텐트 치고 자면서도 살아남도록 하는 발길질이었다.


  내가 ‘최전방’에서 군대살이를 했기에 ㅈ상병 또한 최전방 군대살이를 해 보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ㅈ상병 스스로 ‘최전방’에 가겠다 말하니, 또 ‘근신 이레’를 하면서 책 두 권 읽었다고 하니, 문득 내 군대살이가 떠오른다. 군대 관계자들은 ‘보직 변경 신청’을 할 수 없다는 듯 말하지만, ‘신청’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땅개로 구르는 육군 보병조차, 어쨌든 ‘신청은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저, 신청을 하는 방법을 안 알려줄 뿐이요, 신청을 한들 들어주지 않을 뿐이다. 그러나, 이른바 ‘만고땡’이라는 보직을 누리는 이들이 스스로 ‘육군 땅개’가 되고 싶다 하면 ‘귀엽게(?)’ 봐주면서 육군 땅개로 굴러 보라고 해 주곤 한다.


  비록 ‘상병’까지 되고 나서 최전방에 가겠다고 하는 품이 미덥지 않으나, 최전방 지오피 말고, 지오피 바로 밑에 있는 주둔지로 가 보기를 바란다. 그곳에서 두 달에 한 차례, 때로는 다달이 훈련을 뛰어 보기를 바란다. 훈련을 뛰느라 휴가도 외출도 외박도 없이, 병장을 달고 전역을 앞두도록 내내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면서 삽질과 곡괭이질과 걸레질과 손빨래를 몸소 겪어 보기를 바란다. 스스로 ‘고생을 사고’ 싶다면, 휴가를 몽땅 ‘반납’하면 된다. 나는 내 후배 둘한테 내 휴가를 이레씩 잘라서 나누어 준 적 있는데, ㅈ상병도 나처럼 이녁 휴가를 ‘반납’해서 고향 어머니 그리워하는 후배한테 나누어 주면 된다.


  누구를 위로하고 누구를 위안해 주는 ‘연예인 사병’인지 나로서는 잘 모른다. 내가 있던 부대로 위로나 위안을 온 ‘연예인 사병’을 스물여섯 달 동안 한 차례도 본 적 없으니 모르겠다. 아니, 내가 있던 중대뿐 아니라, 내가 몸담은 대대나 연대 관할 언저리로도 위로나 위안을 온 ‘연예인 사병’은 없었다. 참말, ‘연예인 사병’으로서 무언가 베풀고 싶으면, 여느 육군 땅개 끄트머리 중대에서, 삽질 두 시간 하고 담배 한 개비 물며 쉴 적에 노래 한 가락 뽑으면 넉넉하다. 완전군장 짊어지고 높다란 멧골 오르내리며 땀을 비오듯 쏟고 나서 10분 쉴 참에, 어머니 그리는 노래 한 가락 뽑으면 된다.


  노래를 잘 해야 하지 않는다. 춤을 잘 추어야 하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으면 된다. 내 이웃을 바라보고, 내 동무를 생각할 수 있으면 된다. 군대는 평화를 지켜 주지 않고, 군대는 평화를 부르지 않는다만, 힘이나 이름이나 돈이 없는 여느 수수한 사내들이 군대로 끌려온다. 이들 여느 수수한 사내들 가슴을 촉촉히 적실 ‘노래 이야기’를 깨달을 수 있기를 빈다. 아직 멀지 않았고, 아직 늦지 않았다. 4346.1.16.물.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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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3-01-16 11:28   좋아요 0 | URL
함게살기님의 글을 읽으니 'ㅈ상병'에 관한 전후사정을 잘 모르고 있던 저조차 공감이 많이 느껴지고, 특히 까마득한 옛날 우리네 고달프고도 서글펐던 군대살이가 다시금 떠오르기도 하네요.

저도 대학 2학년을 마치고 '83년에 입대하여 '땅개'로 강원도 고성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부모님이 면회 오셨을 때 깊숙한 산골 군부대에 도착하신 게 밤 9시가 다 될 정도로 강원도 오지에 배치를 받았었어요. 농사를 지으시던 부모님께선 고향에서 새벽 6시에 출발하셨다더군요. 자식한테 먹일 음식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그 먼길을 오신 거였죠. 날은 저물고 '버스'조차 끊긴 캄캄한 밤길에 군부대는 가도 가도 나타나지 않아서 '그저 기가 막히다'는 말씀만 하시더군요. 저 역시 첫 휴가는 '열 달' 이상을 빡세게 뒹군 끝에 간신히 나왔고, 정기휴가는 27개월 근무하며 딱 두 번 찾아 먹은 거 같아요. 혹한기, 혹서기 훈련에다가 10월 초부터 시작되는 겨울은 그 다음해 5월 중순이 지나서야 끝이 날 정도로 지독시리 추웠었죠.

제가 군생활을 할 땐 특히 강제징집도 많았지요. 저는 다행히 자발적으로 입대했지만, 제가 입대 후에 '강집'당한 선배들도 더러 만났었고, 제 친구들도 여럿 강집을 당해 군대에 끌려갔었죠. 그들은 군생활 중에 수시로 혹은 정기적으로 보안반에 끌려가 '반성문'을 쓰고 '순화교육'을 받고 난 뒤에 '자대'로 되돌아오곤 했었고, 언제나 감시대상이었지요. 군생활의 혹독함 때문에 멀쩡히 복무하던 몇몇 전우들이 '탈영'을 시도하고 '영창'을 다녀오는 모습도 가끔 있었고, 군기교육대에 끌려가 열흘씩 보름씩 '지옥같은' 생활을 겪고 나온 전우들은 '중죄를 지은 죄수'와 조금도 다를바가 없는 모습들이었죠. 그러다가 '군생활'이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부대원들을 사살하고 월북하는 경우조차 있었죠.(제 입대동기 한명이 GP근무 중 그렇게 희생되었답니다.)

세상이 온전히 공평하길 바랄 순 없는 노릇이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로부터 특별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해 '최소한의 공감'만이라도 느껴질 수 있는 모습들을 제발 좀 보여줬으면 싶어요.

숲노래 2013-01-16 12:00   좋아요 0 | URL
'전방'이나 '최전방'에서 군대를 보낸 분들 가운데에도 '중대'이나 '대대'이냐에 따라서도, 노는 물이 달랐어요. 아마, 겪은 분들은 다 아시리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ㅈ상병이 최전방에 간다 하더라도, 소총중대 아닌 대대나 연대 급으로 간다면... 연예인 사병으로 있더라도 똑같인 셈이 될 테지요.

저도, 제가 군대에 있을 적에, 지뢰 밟아서 죽었다는 사람과, 트럭엔진 과열로 터져서 죽었다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지뢰 터지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죽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고참이나 하사관한테 얻어맞아 죽었을 텐데, 상부에는 거짓으로 보고했겠지요.

군대에 있을 적에는 '개미에 물려 죽었다'는 사람도 보았는데, 나중에 전역하고 나서야 그 말이 '구실을 갖다 붙이는 말' 가운데 하나인 줄 알았어요. 구타로 죽은 사람은 이래저래... 그런 셈이었지요..

oren 님도 힘든 나날 겪으셨군요. 그 힘든 나날이 좋은 씨앗이 되리라 생각해요.

oren 2013-01-16 11:47   좋아요 0 | URL
한가지 의아한 건, 함께살기님처럼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 '군대에 있는 스물여섯 달 동안' 한 권의 책조차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인데요. 어쩌면 그만큼 함께살기님의 군대살이가 힘들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군대에서 책을 좀 읽을 수 있었답니다. 주로 형한테 부탁하거나 '장교분들' 한테 말씀드려서 책을 사달라고 해서, 취침시간에 몰래 관물대 밑에서 담요를 뒤집어 쓰고 읽기도 했었죠. 물론 편안하게 '책만 읽을 수 있는 시간들'도 있었는데 그건 군복무중 제법 심하게 다쳐서 여러달 '후송'을 간 덕분이긴 했지만요. http://blog.aladin.co.kr/oren/4070322



숲노래 2013-01-16 12:04   좋아요 0 | URL
상병 6호봉이 될 때까지는 책을 건드릴 수 없었고요, 상병 6호봉을 넘긴 뒤로는 훈련이라든지, 강원도에 잠수함 타고 건너온 북쪽 병사들 때문이라든지, 또 훈련이라든지... 여름에는 비 오면 물골작업 가고, 겨울에는 눈 오면 눈치우기 가며... 이래저래 해서 책은 손에 대지도 못하고 전역을 했어요.

지오피, 도솔산, 선점중대... 늘 이렇게 돌고 돌다 보니까, 군대에 있는 동안 늘 1000~1500 고지에서 지냈답니다... '도솔산'이라는 곳은 이제는 없어진 곳인데, 흔히 '펀치볼'이라고 일컫는 곳입니다 ^^;;;

군대에서 열여덟 권 읽으셨나요? 오오... 스스로 더 단단히 갈고닦았으면, 저도 그렇게 읽을 수 있었을는지 모르나, 저는 군대에서 그냥 몸으로 때우며 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