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10] 글읽기
― 신문에 ‘사건·사고’ 이야기가 없어야지요

 


  어느 신문이든 펼치면 맨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사고’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정치판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경제판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 노동판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사고’, 사회 언저리에서 불거지는 ‘사건·사고’ 이야기로 가득해요. 여기에 방송 연예인들 ‘사건·사고’가 한몫 단단히 거듭니다.


  어른들 보는 신문이든 아이들 보는 신문이든 서로 매한가지입니다. 도시에서 나오는 신문이든 시골에서 나오는 신문이든 모두 엇비슷해요. 이 나라에서 나오는 신문이란 죄다 ‘사건·사고’만 다루는구나 싶습니다.


  기자들은 ‘사건·사고’를 캐는 사람을 가리키기만 할까 궁금하지만, 오늘날 이 나라에서 기자로 일하는 분들은 ‘사건·사고’ 다루는 울타리를 스스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신문을 읽거나 방송을 켜거나 인터넷을 여는 여느 사람들 또한 ‘사건·사고’ 이야기에 눈길을 보내고 생각을 기울입니다.


  날마다 온갖 ‘사건·사고’ 이야기가 넘실거립니다. 사람들은 속닥속닥 ‘사건·사고’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는 자꾸 잊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는 차츰 잊습니다. 서로 ‘꿈꾸는’ 이야기는 그예 잊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을 가까이하는 동안 사람들 마음속에는 ‘사건·사고’ 생각이 꾸준히 스며듭니다. 생각밭에도 마음밭에도, 또 지식밭에도 온통 ‘사건·사고’ 이야기를 심습니다. 이리하여, 오늘날 여느 사람들은, 도시에서 지내든 시골에서 지내든 ‘풀·숲·나무’ 이야기를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옆에 ‘풀·숲·나무’가 있어도 못 느끼기 일쑤요, 코앞에서 ‘풀·숲·나무’를 마주하더라도 어떤 내음이요 어떤 빛깔이며 어떤 무늬인가를 알아채지 못해요.


  바람이 불어도 바람내음을 못 맡는 도시사람입니다. 햇살이 드리워도 햇살내음을 안 맡는 시골사람입니다. 들새가 노래해도 자동차 바퀴 구르는 소리에 파묻혀 도시사람은 들새와 벗하지 못합니다. 멧새가 지저귀어도 경운기와 갖가지 기계를 다루느라 시골사람은 멧새와 동무하지 못합니다.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은가에 따라서, 나한테 찾아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스스로 ‘사건·사고’ 이야기에 젖어들면, 언제나 ‘사건·사고’ 이야기가 나한테 찾아듭니다. 스스로 ‘풀·숲·나무’를 떠올리면 언제나 ‘풀·숲·나무’ 이야기가 나한테 다가와요.


  내 삶에 맞추어 내 생각이 자랍니다. 내 생각에 따라 내 말이 자랍니다. 곧, 내가 쓰는 글이든 이웃이 쓰는 글이든, 저마다 생각을 담는 글이요, 생각이란 삶을 담기 마련이니, ‘삶을 담는 글’입니다. ‘사건·사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사건·사고’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을 부릅니다. ‘풀·숲·나무’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풀·숲·나무’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을 부를 테지요.


  온누리를 따뜻하게 어루만지면서 평화와 평등과 민주와 통일이 드리우기를 바란다면, 바로 나부터 내 마음자리에 평화와 평등과 민주와 통일이 싹틀 수 있도록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내 마음자리에 ‘사건·사고’ 이야기가 아닌 ‘풀·숲·나무’ 이야기가 감돌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꿈을 생각하고 사랑을 생각하며 믿음을 생각할 노릇이에요. 꿈을 빚는 이야기를 스스로 쓰고, 사랑을 빚는 이야기를 스스로 읽으며, 믿음을 빚는 이야기를 다 함께 나눌 노릇이지요.


  ‘사건·사고’ 이야기를 자꾸 꺼낼수록, 사람들은 ‘논쟁·투쟁’에 휘둘립니다. ‘풀·숲·나무’ 이야기를 천천히 주고받으면, 사람들은 아름다움과 빛줄기와 따사로움에 시나브로 젖어듭니다.


  신문에 ‘사건·사고’ 이야기만 가득하다면 신문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방송에 ‘사건·사고’ 이야기만 수두룩하다면 텔레비전을 꺼야 합니다. 인터넷에 ‘사건·사고’ 이야기로 빼곡하다면 인터넷 창을 닫아야지요. 겨울숲을 바라보아요. 겨울들을 거닐어요. 겨울바다를 마주해요. 너른 하늘 파랗게 눈부신 숨결을 마셔요. 봄을 기다리는 새싹이 얼어붙은 땅에서 힘껏 솟아나려고 하는 모습을 지켜봐요. 한겨울에 먹이를 찾는 들새와 멧새들 날갯짓을 물끄러미 바라보아요. 마음속에서 사랑이 자라고 꿈이 피어나며 믿음이 솟아나도록, 생각씨앗 한 알을 슬기롭게 다스려요. 내 작은 힘을 모으고 네 작은 힘을 갈무리해서, ‘참신문’을 엮을 수 있기를 빌어요. ‘사건·사고’ 이야기로 넘치는 ‘거짓글’은 이제 그만 쓰고 그만 읽어요. 서로 아름답게 어깨동무하면서 착하게 살림하는 ‘참글’을 쓰고 즐겁게 읽어요.


  글쓰기는 삶쓰기예요. 글읽기는 삶읽기예요. 내가 쓰는 내 삶이 ‘사건·사고’뿐이라면 너무 메말라 답답하지 않겠어요? 내가 쓰는 내 삶이 ‘풀·숲·나무’라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푸르고 싱그러우며 어여쁘겠지요? 서로 사랑할 삶을 읽고, 함께 사랑할 삶을 쓸 때에,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습니다. 4346.1.11.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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