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싣는 책 (도서관일기 2013.1.4.)
― 전라남도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서재도서관 함께살기’
글을 쓸 때에는 이야기를 쓴다. 글솜씨나 글재주를 부리려고 글을 쓰지 않는다. 이야기가 있을 때에 글이 된다. 이야기가 있으면 그림도 되고 만화도 되며, 춤과 노래도 된다. 이야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된다. 곧, 이야기를 찍을 때에 사진이요, 이야기를 찍는 사진을 그러모을 때에 사진책이 된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서는 이야기를 찍는 사진이 드물다. 겉으로 그럴듯하게 보이는 모습을 찍으려는 사진이 너무 많다. 멋스럽게 찍은 사진에 억지로 이름을 붙이려 하기 일쑤요, 보기 예쁘장하게 찍은 사진에 이래저래 토를 달곤 한다. 이야기를 찍지 못하니까, 어떤 사진장비를 쓰더라도 ‘사진 읽을 맛’이 안 난다. 이야기를 찍지 못하기에, 제아무리 이름값 있거나 사진경력 길다 하더라도 ‘사진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이야기는 삶에서 비롯한다.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이 스스로 사진으로 담는 이야기가 된다. 스스로 살아가는 하루가 스스로 글로 적는 이야기가 되고, 스스로 빚으며 나누는 삶이 스스로 그리는 그림이나 부르는 노래가 된다.
그러니까, 사진을 좋아해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먼저 ‘내 삶에서 나 스스로 즐길 이야기란 무엇인가’ 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이야기를 내 삶에서 찾으면 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은 ‘남이 안 찍는 모습’을 찍는 사진이 아니다. 사진은 ‘내가 찍고 싶은 모습’을 찍는 사진이다. 그러나, 적잖은 이론가나 전문가나 교수나 비평가는 자꾸 ‘자르기’와 ‘빼기’를 말한다. 사진틀에 ‘모든 모습 다 넣으려 하지 말고, 무엇을 빼겠는가를 생각하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왜 ‘내 이야기를 사진에 담으셔요’ 하고는 말을 못하고, 사진틀에 그럴듯한 모습 집어넣거나 빼는 데에 휘둘리도록 내몰까?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를 틀린대서 글이 엉터리이지 않다. 노래하는 사람이 가락이나 박자를 놓친들 노래가 엉터리이지 않다. 우리는 기계를 바라지 않는다. 맞춤법 기계가 된대서 글이 읽을 만하지 않으며 문학이 되지 않는다. 가락과 박자 잘 맞추는 기계가 된대서 노래가 들을 만하지 않으며 예술이 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담아서 쓰는 글이 되어야 읽을 만하다. 이야기를 실어 부르는 노래가 되어야 들을 만하다. 곧, 이야기를 살포시 싣는 사진이 되어야 사진이요, 이야기 있는 사진을 그러모을 때에 ‘사진책’이라 말할 만하다.
추운 한겨울, 두 아이 데리고 서재도서관에 들른다. 작은아이가 몹시 졸려 하기에, 새로 장만한 책들을 서재도서관에 내려놓은 다음, 곧장 우체국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서재도서관에 갖다 놓은 책은 다음에 다시 와서 갈무리하면 되지. 그러고 보니, 겨울이 되어 춥다는 핑계로 요새 비질도 거의 안 하며 살았다. 다음에 들르면 비질부터 하고 책 갈무리를 해야겠다. (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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