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꾀꼬리와 춤추는 소나무 옛이야기 그림책 5
강소희 글.그림 / 사계절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33

 


한솥밥 살붙이
― 말하는 꾀꼬리와 춤추는 소나무
 강소희 글·그림
 사계절 펴냄,2008.8.28./9800원

 


  작은 보금자리를 이루며 살아가는 살붙이는 한솥밥을 먹습니다. 솥 하나에서 지은 밥을 밥상 하나에 올려 나란히 둘러앉아 함께 먹습니다. 작은 마을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논밥’을 먹습니다. 마을을 둘러싼 논뙈기에서 저마다 일군 나락을 거두어 먹고살지요. 작은 나라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한숲바람’을 마십니다. 늘 싱그럽게 푸른 숲에서 맑게 나누어 주는 바람을 서로서로 즐겁게 마시며 살아갑니다.


  지구별 사람들은 ‘한별숨’을 쉰다고 할 만할까요. 넓디넓은 우주를 헤아리고 보면, 지구별 사람들은 ‘이 작은 별을 이루는 흙과 바람과 햇살’을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흐르는 바다요, 한국에서 덴마크로 흐르는 바람입니다. 일본에서 뉴질랜드로 흐르는 바다요, 일본에서 마다가스카르로 흐르는 바람이에요.


  살아가는 터전은 다 다르다지만, 지구별 테두리에서는 하나예요. 먹는 밥이나 마시는 물은 다 다르다지만, 지구별 테두리에서는 하나예요.


.. 그날 밤, 막내가 아버지 술상을 차렸어. 술안주로 오이소박이를 만들었는데 소 대신에 모래를 채워 상에 올렸지. “출출한데 마침 잘 됐구나.” 아버지가 술 한 잔을 단숨에 비우고 오이소박이를 와삭 베어 물었거든. “에퉤퉤! 오이소박이에 웬 모래가 들었냐?” 막내가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에게 말했어. “오이 속은 아시면서 사람 속은 왜 모르세요?” ..  (10쪽)

 


  서울사람은 서울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지 못합니다. 서울에서 흐르는 냇물을 마실 수 없어요. 너무 지저분한걸요. 서울사람은 서울을 떠도는 바람을 마시지 못합니다. 서울에만 고인 바람을 마시다가는 모두 숨이 막혀 죽는걸요. 서울사람은 서울 땅뙈기에서 거두는 밥을 먹지 못합니다. 서울에는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뿐, 곱고 기름지며 정갈한 흙이란 없는걸요.


  제아무리 힘센 정치꾼 있다 하더라도, 정치로 사람을 먹여살리지 못합니다. 풀과 나무와 숲이 사람을 먹여살립니다. 제아무리 으르렁거리는 재벌 우두머리가 있다 하더라도, 경제성장율로 사람을 먹여살리지 못합니다. 냇물과 샘물과 골짝물과 우물물이 사람을 먹여살려요. 이런 복지 저런 정책이 있다 한들, 사람을 먹여살리지 못하지요. 햇살이 드리우고 숲에서 비롯하는 푸른 바람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을 먹여살려요.


  거꾸로, 시골사람은 서울에서 흘러나오는 매캐한 바람을 나누어 받습니다. 서울에서 흘러나오는 지저분한 쓰레기를 시골에서 받아들입니다. 서울에서 버리는 쓰레기를 시골마을 흙과 숲과 바다와 냇물이 천천히 거르고 씻습니다. 서울에서 더럽힌 바람을 시골마을 흙과 숲과 바다와 냇물이 천천히 가다듬고 다독입니다.


.. 막내는 옷 솜을 뜯어 귀를 꽉 틀어막고, 눈을 꼭 감고 냅다 앞으로 달려갔어 ..  (24쪽)

 

 


  대통령 아무개가 있대서 나라를 살찌우지 못해요. 고운 햇살이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나 따사롭게 내리쬐야 나라를 살찌웁니다. 하루라도 해가 뜨지 않으면 어찌 될까요. 하루라도 햇살이 지나치게 내리쬐면 어찌 되나요. 지구별은 햇볕과 햇살과 햇빛에 따라 삶자락이 크게 달라집니다.


  수출과 수입으로 돈을 벌거나 물질문명 받아들인대서 사회를 북돋우지 못해요. 이 나라 이 땅을 흐르는 물이 맑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골프장을 지어야 할 우리들이 아니라, 물을 정갈히 지켜야 할 우리들입니다. 공장이나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나 공항을 자꾸 늘리는 우리들이 아니라, 냇물이 냇물답게 흐르도록 건사해야 할 우리들입니다. 도시를 자꾸 늘리며 아파트 끝없이 짓는 우리들이 아니라, 골골샅샅 어디에서나 샘물을 맛나고 시원하게 마실 수 있어야 할 우리들입니다.


  아이들은 교과서 굴레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푸르며 싱그러운 나이에 대학입시 때문에 목이 매여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풀을 만지고 흙을 밟으며 숲을 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숲이 없어 모랫바람만 분다면, 숲이 없어 매캐한 배기가스와 매연만 마셔야 한다면, 숲이 없어 나뭇잎을 어루만질 수 없다면, 아이들은 모두 숨이 막혀 죽겠지요.


  가만히 돌아보면, 독도는 한국땅도 일본땅도 아닙니다. 독도는 지구별 섬입니다. 소유권이나 영유권을 외치며 군사무기 늘려 서로 아웅다웅 다툴 일이 아닙니다. 평화를 들먹이며 비무장지대에 엄청난 무기를 쏟아붓고는 젊은 사내한테 총을 갖다 안길 일이 아닙니다. 평화를 바라고 문화를 바라며 통일을 바란다면, 전쟁무기는 죄 내려놓아야 마땅합니다. 독도를 둘러싼 바다를 지키고 싶으면, 이 나라를 지키고 싶으면, 이웃나라와 사이좋게 지내고 싶으면, 모든 군대를 없애고, 젊은이를 시골로 보내어 흙을 일구도록 북돋울 노릇입니다.


  한국도 일본도 중국도 미국도 러시아도 모두, 젊은이한테 군인옷을 입히지 말아야 해요. 모두모두 낫과 쟁기와 삽을 들릴 노릇이에요. 젊은이들이 제 겨레 제 나라 시골마을 논밭을 일구면서 숲을 지킬 수 있는 슬기를 갖추도록 이끌 노릇이에요. 엄청난 돈을 새 무기 만드느라 쓰지 말고, 어마어마한 돈을 해마다 미사일·잠수함·전투기·탱크 따위 만드는데 쓰지 말며, 세금 없고 전쟁 없으며 경제개발 없는 아름답고 조용한 누리를 이루도록 힘쓸 노릇입니다.


  어른이 아이한테 가르칠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아이가 어른한테서 물려받을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어른이 땀흘리며 애쓸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아이가 맑게 웃으며 동무들과 오순도순 나눌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지은 밥을 먹으며 사랑을 누립니다. 사랑으로 지은 옷을 입으며 사랑을 즐깁니다. 사랑으로 지은 집에서 지내며 사랑을 빛내요.


  사랑이 있을 때에 햇살이 따사롭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숲이 푸릅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물이 맑습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마을마다 두레와 품앗이로 홀가분합니다. 사랑이 있을 때에, 임금도 신하도 지식인도 전문가도 없을 만합니다. 임금도 신하도 지식인도 전문가도 모두 제 땅을 일구어 제 밥·옷·집을 건사하면 돼요.

 


.. 막내는 가져온 소나무를 마당에 심었어. 소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날마다 춤을 추고, 꾀꼬리는 소나무 가지 끝에 앉아 날마다 재미난 얘기를 들려주었대 ..  (33쪽)


  김소희 님이 빚은 그림책 《말하는 꾀꼬리와 춤추는 소나무》(사계절,2008)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깊은 두멧시골에서 세 아이를 낳아 건사하는 아버지한테 없는 하나는 바로 사랑입니다. 깊은 두멧시골 작은 집으로 들어온 새어머니한테 없는 하나는 바로 사랑이에요. 깊은 두멧시골 첫째 아이와 둘째 아이한테도 아직 사랑이 싹트지 못합니다. 그러나, 셋째 아이한테 바로 사랑이 있어요. 셋째 아이는 저희 오빠 둘이 미처 사랑을 싹트지 못하고 스러진 모습을 안타까이 바라봅니다. 셋째 아이는 제 아버지가 사랑을 깨닫지 못하는 모습을 슬프게 바라봅니다. 셋째 아이는 새어머니를 미워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새어머니한테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니 서운합니다. 그래서, 셋째 아이는 이녁 삶을 살찌울 오직 한 가지인 사랑을 찾아 씩씩하게 길을 나서요. 삶을 살찌우며 북돋울 사랑을 가로막거나 흔들려는 어두운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기운을 내요. 숨결을 푸르게 건사하도록 이끄는 사랑을 지키고 싶어 두 다리에 더욱 힘을 주어요.


  사랑이 있는 사람만 꾀꼬리를 만납니다. 사랑을 찾는 사람만 소나무를 마주합니다. 사랑을 꿈꾸는 사람만 활짝 웃습니다. 사랑을 꽃피우려는 사람만 숲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떤 욕심이나 꿍꿍이로는 사람을 살리지 못해요. 어떤 셈속이나 뒷구멍으로는 내 숨결을 다스리지 못해요. 사랑을 들여 지은 곡식으로 삶을 짓습니다. 사랑을 들여 보살피는 집살림으로 한솥밥 먹는 살붙이를 아낍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한솥밥 이웃입니다. 4346.1.5.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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