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시집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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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노래입니다
[시를 노래하는 시 31]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책이름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글 : 박노해
- 펴낸곳 : 느린걸음 (2010.10.16.)
- 책값 : 18000원

 


  겨울에 눈 아닌 비가 찾아드는 고흥 시골집에서 빗소리를 듣습니다. 서른여덟 해 살아오며 겨울에 빗소리 자주 듣기는 올해로 이태째입니다. 지난해 가을, 내 나이 서른일곱 살에 고흥으로 깃들었습니다. 서른 해쯤 앞서만 해도, 또 쉰 해쯤 앞서만 해도, 고흥에도 얼음이 꽝꽝 얼고 눈이 펑펑 내렸다고 해요. 그러나 오늘 이곳에서 예전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몹시 따뜻하고 무척 따사롭습니다.


.. 겨울이 깊으면 거기 / 새 봄이 걸어나온다 ..  (길이 끝나면)


  겨울이어도 퍽 포근하달 수 있는 고흥 시골마을이기에, 볕이 좋은 날 아이들과 천천히 마실을 다니고 보면, 논둑이나 밭둑에서 파릇파릇 돋는 새싹을 볼 수 있습니다. 겨울이 저물고 새봄이 찾아올 무렵 피어나는 봄꽃이 벌써 고개를 내밀기도 합니다. 추위를 이기고 동백꽃 몇 송이 소담스러운 빨간빛을 뽐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날이 포근하다 하더라도 겨울은 겨울이기에, 찬비가 내릴 적마다 찬기운 맞아들이는 들풀은 어느새 한풀 꺾입니다. 찬바람과 찬비를 맞으면서 ‘아차, 아직 봄이 아니잖아. 어떡하니.’ 하고 걱정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겨우내 찬바람 맞으며 자라는 마늘은 찬비를 머금으며 무럭무럭 자랍니다. 밀도 보리도 이 겨울에 어느 마을 어느 밭자락이나 논자락에서 씩씩하게 잎을 벌리겠지요. 겨우내 푸른 잎사귀 건사하는 나무도 찬비가 내리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을 테고요.


.. 흐린 세상에 맑은 숨결 보내준 풀꽃들이 ..  (꽃씨가 난다)


  우리 집 어린 아이들은 겨울비가 오건 겨울눈이 오건 대수로이 여기지 않습니다. 겨울비 맞으며 손과 볼이 바알갛게 얼어붙어도 씩씩하게 마당놀이를 합니다. 바지랑 웃도리가 흠뻑 젖어 아이들을 불러들여도, 더 놀고픈 눈치입니다. 젖은 옷 벗기고 새 옷 입힙니다. 방바닥에 불을 넣습니다. 언 볼과 손을 살살 쓰다듬으며 녹입니다. 얘들아, 너희 참 씩씩하구나.


  아이들 볼과 손을 어루만지며 내 어린 나날을 돌이켜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1970∼80년대 인천 골목동네를 떠올립니다. 영 도 아래로 십 도나 십오 도씩 떨어지는 겨울 추위에도 개구지게 골목에서 뛰놀고, 동무들과 얼크러졌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면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눈을 뭉쳤어요. 장갑 낀 손으로는 눈이 잘 뭉쳐지지 않거든요.


  한참 눈놀이를 하다가 손끝이 찌릿찌릿 저립니다. 눈물이 핑 돕니다. 손이 얼어붙어 잘 안 움직입니다. 아야, 소리를 내며 겨드랑이나 가랑이에 손을 넣습니다. 콩콩 뛰면서 손을 녹이는데, 동무들도 모두 같은 모양새입니다.


  손가락이 얼고 발가락이 얼지만, 바깥에서 뛰놀며 즐겁습니다. 겨울이기에 추위를 온몸으로 꽁꽁 느끼며 놀기에 즐겁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름날에는 더위를 온몸으로 푹푹 느끼며 놀기에 즐거워요. 여름은 땀 뻘뻘 놀이요, 겨울은 오들오들 놀이라고 할까요.


.. 할머니 할아버지, 당신은 제게 / 그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 전 아이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없네요 // … // 저는 내 아이 가슴을 TV와 학교와 / 과외와 인터넷에 떠맡긴 채 / 하루하루 사막으로 만들어가고 있네요 ..  (아이 앞에 서면)


  여름에는 찬물로 설거지만 해도 시원합니다. 냇물에 발을 담가도 시원하고, 빨래를 해도 시원합니다. 겨울에는 더운물로 설거지를 하며 손이 녹습니다. 더운물로 빨래를 해도 손이 따스하고, 방바닥을 뜨끈뜨끈 덥히며 몸이 녹아요.


  여름에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땀이 더 주르르 흐릅니다. 졸립다 하거나 색색 잠든 아이를 품에 한손으로 안으며 다른 한손으로는 부채질을 합니다. 아이한테 부채질을 하면서 내 몸에서 흐르는 땀도 조금은 식습니다. 겨울에는 아이들을 품에 안으며 서로 찬바람을 살짝 막아 주곤 합니다. 내 몸과 아이 몸은 서로 맞닿으면서 찬바람을 덜 쐴 수 있고, 따순 기운이 새롭게 돋습니다.


  차가운 아이 손을 쥐며 내 손으로 아이 손을 녹입니다. 때로는 아이가 따스한 손을 내밀어 내 차가운 손을 녹입니다. 아이들도 알 테니까요. 제 어버이가 제 손을 잡으며 따순 기운 나누어 줄 적에 얼마나 포근한가 하고 느낄 테니까요. 어버이가 제 손을 녹일 때에 느끼는 따스함을, 저희도 어버이 손을 살포시 잡아 녹이며 따스함을 건네는 즐거움을 맛보겠지요.


.. 뭣이여? 일 더하기 일이 둘이지 하나여? / 선생의 고성에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 예, 제가요, 아까 학교 옴시롱 본깨요 / 토란 이파리에 물방울이 또르르르 굴러서요 / 하나의 물방울이 되던디라, 나가 봤당깨요 // 선생님요, 일 더하기 일은요 셋이지라 / 우리 누나가 시집가서 집에 왔는디라 / 딸을 나서 누님네가 셋이 되었는디요 // 아이들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 나는 처음으로 손바닥에 불이 나게 맞았다 /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  (다 다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겨울비 내립니다. 겨울날 빗소리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조용히 내리는 눈처럼 조용히 지붕을 적시고 마당과 평상과 밭뙈기와 울타리와 나뭇잎을 적십니다.


  눈 아닌 비이기에 눈보다는 한결 따스할까요. 외려 눈이 온누리를 따스히 덮는다 할 수 있을까요.

  온 마을이 조용합니다. 이웃집 마실을 다니는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습니다. 겨울이기는 하지만, 들일을 하러 경운기 몰고 지나가는 분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웃마을도 우리 마을과 매한가지일 테지요. 면소재지쯤 나가야 길에 한두 사람쯤 볼 테고, 읍내쯤 나가면 길에 제법 여러 사람 볼 테지요. 그리고, 이웃 순천시나 광양시라면 겨울비이건 겨울눈이건 자동차는 길에 가득 넘칠 테며, 사람도 길마다 넘칠 테지요. 광주광역시나 대전광역시쯤 된다면, 또 부산이나 서울쯤 된다면, 비이건 눈이건 바람이건 태풍이건 눈보라이건 무엇이건, 사람들은 하나도 안 아랑곳하면서 저마다 하루 일을 맞아들이리라 느껴요.


  날씨 때문에 내 마음이 축 처지지는 않을 텐데, 축축하고 서늘한 겨울비 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곳은 시골 아니고는 없으리라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호젓한 시골집 마룻바닥에 앉으면, 또는 한갓진 숲속 풀섶에 서면, 겨울에 내리는 비를 겨울비라고 느낍니다. 여름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나는 바로 이곳 시골집에 있기에 여름비를 느끼고 봄비를 느끼며 가을비를 느낍니다.


  그렇지요. 겨울이기에 겨울바람입니다. 봄이기에 봄바람입니다. 여름에는 여름햇살입니다. 가을에는 가을햇볕이에요.


.. 머지않아 석유문명이 정점을 지나고 / 기후변화와 생태재앙이 몰아쳐 올 때 / 식량 수입도 석유 수입도 불가능해지면 / 굶주린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  (도시에 사는 사람)


  내가 먹는 밥은 내 목숨이 되는 밥입니다. 끼니를 때우는 밥이란 없습니다. 배고픔을 달래는 밥이란 없습니다. 언제나 내 목숨이 되는 밥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을 떠올리면, ‘자급자족’ 같은 낱말은 안 쓰였습니다. 너무도 마땅히, 모든 사람이 ‘스스로 삶을 지어 일구었’거든요. 밥이든 옷이든 집이든, 누구나 스스로 지어 삶을 누렸어요. 어린이도 어른도, 젊은이도 늙은이도, 누구나 밥이랑 옷이랑 집을 스스로 건사했어요.


  오늘날 갑작스레 ‘자급자족’ 같은 낱말이 불거집니다. 사람들 누구나 옷을 사다가 입거든요. 사람들 누구나 딴 일꾼이 지어 놓은 집에서 살거든요. 사람들 누구나 딴 공장에서 만든 연장이나 물건을 사다 쓰거든요. 게다가, 밥이든 술이든 떡이든 과자이든 빵이든 무엇이든, 어떤 공장이나 가게에서 남이 만든 것을 돈을 치러 사다 쓰는 얼거리가 되어요.


  돈을 치러 사다 쓰는 일이 나쁘다고 여기지 않아요. 스스로 생각끈을 놓지 않으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다 아름다울 수 있어요. 그러나, 스스로 생각끈을 놓으면서 ‘밥이 어디에서 비롯해 내 앞에 놓이는가’를 살피지 못한다면, ‘옷 한 벌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지어 내 앞으로 오는가’를 읽지 못한다면, ‘내 보금자리가 어떻게 이루어져 이렇게 지낼 수 있는가’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내 삶은 뿌리 없는 삶이고 말아요.


.. 혁명은 시멘트 바닥을 걷어내고 / 푸른 나무숲을 되살려 가는 것 / 한쪽으로 치우친 나무를 올바로 세워가며 / 자급자립하는 마을과 삶의 자율성이 / 뿌리 깊게 되살아나게 하는 것 ..  (혁명은 거기까지)


  신문과 방송과 인터넷은 겨울철 ‘전기 씀씀이’가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떠듭니다. 전기를 만들려고 발전소를 어떻게 짓는다든지, 발전소에서는 매연과 쓰레기와 공해가 얼마나 나온다든지, 발전소 쓰레기를 정갈히 건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품과 겨를과 돈을 들여야 한다든지, 발전소 송전탑이 시골에서 도시로 이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논밭과 숲과 마을이 망가진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신문이나 방송이나 인터넷에 실리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아주 커다랗게 뭔가 일이 터져야 겨우 끄트머리에 코딱지만 하다 싶은 글 하나 자잘하게 실려요.


  기름값 오르는 걱정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석유를 캐내는 동안 바다에서 어떤 아픔과 슬픔이 터지는가를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다국적기업과 어떤 힘센 나라가 석유산업을 키우려고 어떤 마을 어떤 사람들을 짓밟는가 하는 이야기를 생각해 낸다든지, 이를 글이나 그림이나 노래나 춤으로 담아 들려주는 예술쟁이는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이런 글이나 그림이나 노래나 춤이 있다 하더라도, 오늘날 ‘여느 사람’들은 제도권 톱니바퀴 되어 다람쥐마냥 쳇바퀴 도는 삶을 보내니, 옳거나 바르거나 슬기롭거나 환한 눈길 되어 참모습을 읽지 못해요.


  커다란 짐배로 석유를 실어 나르는 동안 바다는 얼마나 더러워질까요. 짐배가 기우뚱 쓰러질 때에만 석유가 바다로 흘러들까요. 짐배가 석유를 실어나를 적에, 짐배는 석유를 때서 움직일 텐데, 짐배가 바다를 누비는 동안 짐배는 얼마나 많은 쓰레기와 매연과 공해덩어리를 바다에 풀어놓을까요. 짐배가 항구에 닿아 석유를 정유공장까지 옮길 적에는, 짐차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와 매연과 공해덩어리를 뭍에 내놓을까요. 정유공장에서는, 또 또 또 …….


.. 정치가에게 권력을 빼 보라 / 무엇이 남는가 // 부자들에게 돈을 빼 보라 / 무엇이 남는가 // 성직자에게 직위를 빼 보라 / 무엇이 남는가 // 지식인에게 명성을 빼 보라 / 무엇이 남는가 // 빼 버리고 남은 그것이 바로 그다 ..  (무엇이 남는가)


  밤이 되니 겨울비 멎습니다. 비는 멎으나 구름이 가시지 않습니다. 구름이 가시지 않으니 별과 달은 안 보입니다. 아침이 되어도 햇볕을 쬐기는 어려울까요. 햇볕이 나지 않는다면 빨래도 잘 안 마르겠지요. 빨래가 잘 안 마르는 날씨라면, 오들오들 떨리도록 추운 날씨가 아니라 하더라도 퍽 고단한 하루가 될까요.


  그런데, 나는 왜 이런저런 날씨에 얽매일까요. 내가 생각할 곳은 어떤 보금자리일까요. 내가 바라볼 곳은 어디일까요. 내가 사랑하면서 마음을 따사롭게 기울일 데는 어디메인가요.

  날이 맑아도 밥을 차립니다. 날이 궂어도 밥을 차립니다. 날이 개어도 똥을 누고, 날이 흐려도 오줌을 누어요.


  언제나 나누는 생각이 있어요. 언제나 나누는 사랑이 있어요. 언제나 나누면서 스스로 빛날 꿈과 이야기가 있어요.


.. 모래바람 치는 다르푸르 난민촌에서 / 다섯 살 아이가 땅바닥에 앉아서 / 돌멩이로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 총칼이 아닌 꽃을 / 폭탄이 아닌 빵을 / 탱크가 아닌 소를 ..  (바닥에 있을 때)


  밤하늘에 비구름이 걷히지 않았으나 별은 곱게 빛납니다. 시골 밤하늘에서 별을 못 보는 오늘이지만, 저 구름 너머에는 밝고 환하며 맑은 별이 수없이 반짝이리라 생각해요.


  도시 밤하늘에서는 비구름 아니더라도 별을 못 봅니다. 도시사람은 별을 생각하지 않으니, 비구름 없더라도 별을 보지 못해요. 도시사람은 별보다 다른 데에 마음이 쏠리니, 별 몇 송이 반짝거려도 알아채지 못해요. 도시사람은 별을 대수로이 여기지 않기에, 별이름도 별자리도 별내음도 별노래도 받아들이지 않아요.


  별빛 흐드러지는 밤이면, 두 아이를 이끌고 별바라기를 합니다. 손을 뻗어 별을 가리키고, 고개를 젖혀 별을 마주합니다. 아이들도 손을 뻗어 별을 찍고, 아이들도 고개를 젖혀 별하고 마주합니다.


  어버이인 내가 착한 말씨로 상냥하게 생각을 풀어놓을 때에는, 아이들이 착한 말씨로 상냥하게 풀어놓는 생각을 마음밥 삼아 받아먹습니다. 어버이가 풀어놓는 말마디는 마음밥이 되고, 어버이가 차리는 밥상은 몸밥이 됩니다. 어버이가 하는 일은 아이들이 늘 부대끼며 살피는 지식이 되고, 어버이가 주고받는 손길은 아이들이 늘 돌아보거나 되새기는 몸가짐이 돼요.


..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할 때 /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한 / 자랑스런 나의 조국은 침묵했다 // 까나 마을에 폭격이 퍼부어지고 / 35명의 아이들이 학살당할 때 / 말 잘하는 나의 정부는 침묵했다 // … // 일본이 독도를 건드릴 때마다 / 국제 심판이 오심을 내릴 때마다 / 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마다 소리치던 너는 // 대낮에 남의 영토를 침략하고 / 아이들과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 이스라엘과 미국의 야만 앞에서는 / 금빛 침묵으로 동조하는 나라 ..  (침묵의 나라)


  밤은 어디에서나 밤입니다. 밥은 누구한테나 밥입니다. 어두운 하늘을 느끼기에, 이 어두운 때에 어떤 빛이 가슴속에서 환하게 스며들 수 있는가 하고 깨닫습니다. 구수한 밥내음을 누리기에, 이 구수한 밥 한 그릇이 사람들한테 얼마나 고마운 숨결로 스며들 만한가 하고 느낍니다.


  내가 즐겁게 누리는 삶은, 내 이웃도 즐겁게 누리는 삶입니다. 내가 고단히 짊어지는 무게는, 내 이웃도 고단하게 짊어지는 무게입니다. 가는 말이 고울 때에는 오는 말이 곱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마음밭에 사랑씨앗 뿌려 거둘 수 있는 만큼, 나한테 오는 말이 곱지 않더라도, 내 마음밭에서 사랑열매 거두어 고운 말을 보낼 수 있어요. 나한테 찾아오는 밉거나 차갑거나 거칠거나 막된 말들을 잘 삭혀 거름으로 새롭게 빚어 내 마음밭에 뿌리면 돼요. 새로운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나도록 내 삶을 가꾸면 넉넉해요.


.. 밤중에 홀로 앉아 연필을 깎으면 / 숲의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다 ..  (연필로 生을 쓴다)


  시를 읽습니다. 나 스스로 시를 쓰고 싶기에 시를 읽습니다.


  사진을 찍습니다. 나 스스로 사진을 누리고 싶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가만히 돌아보면, 오늘날 꽤 많은 이들이 시를 써서 시인이 되고 시집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시인 되는 사람 못지않게 시 안 읽고 시 안 쓰는 사람 무척 많아요. 시란, 문학쟁이만 쓰는 시가 아닌데, 시는, 자꾸자꾸 문학쟁이 말치레로 기울어지고 말아요.


  참말, 먼먼 아스라히 먼먼 옛날부터 누구나 시를 썼어요. 사람들 누구나 시를 썼기에 말이 태어났어요. 그야말로 ‘여느’ 사람들이 ‘수수하다’ 싶은 삶을 보내면서 시를 썼기에, 우리가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쓰는 수많은 말이 태어났어요.


  생각할 수 있어야 해요. ‘밥’이라는 낱말, ‘물’이라는 낱말, ‘숲’이라는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바로 내 어머니가 지었어요. 내 아버지가 짓고, 내 할머니가 지으며, 내 동생이나 내 언니가 지었어요. ‘나무’라는 낱말, ‘꽃’이라는 낱말, ‘하늘’이라는 낱말, ‘해’라는 낱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임금님이 지었을까요? 사대부나 지식인이 지었을까요? 종교 지도자가 지었을까요? ‘놀다’라는 낱말, ‘소꿉’이라는 낱말, ‘부엌’이라는 낱말, ‘쌀’이라는 낱말, ‘길’이라는 낱말, ‘빨강’이라는 낱말, ‘무지개’라는 낱말, 이런 말 저런 말을 누가 지었을까요. 대학교를 마친 아무개가 지었나요? 나라밖으로 배우러 다녀온 이가 지었나요? 책 많이 읽은 동무가 지었나요?


  여느 자리에서 수수하게 살던 내 어버이가 언제나 시를 썼기에 이 말 저 말 어여삐 태어났어요. 바로 내 오빠가, 바로 내 형이, 바로 나 스스로, 언제 어디에서나 즐겁게 시를 쓰고 노래를 불렀기에 말이 태어났어요.


.. 300년생 굵은 소나무 기둥을 세워 / 향내 나는 새집을 짓고 난 아버지가 / 마을 뒷산 할머니 묘터 곁에다 / 어린 금강송 열두 그루를 심으며 // 평아, 이 나무 잘 봐두거라 / 우리 집은 튼튼히 지어서 300년은 갈 테니까 / 지금 심어둔 이 나무가 잘 자라 300년 후에 / 집을 새로 지을 때는 안성맞춤일 거다 / 잘 봐두어서 대를 둘려 가꿔나가도록 일러야 한다 ..  (300년)


  말치레는 말치레입니다. 말치레는 시가 아닙니다.


  말잔치는 말잔치입니다. 말잔치가 시일 수 없습니다.


  국어사전에서 캐냈다 하는 토박이말은 토속말이 되지 않고 토속시가 되지 않아요. 이런 사투리 저런 고장말을 잔뜩 집어넣는다고 해서 향토시가 될 수 없어요.


  시는 삶입니다. 삶을 부르는 노래가 시로 거듭납니다. 시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누리는 하루가 말로 태어나 시라는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시는 꿈입니다. 꿈을 짓는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꿈을 곱게 보듬는 어른으로 자라 살아가면서 차츰차츰 빛나는 시로 샘솟습니다.


  그러니까, 문학은 문학이에요. 문학은 글이 아니에요. 문학은 삶이 아니고, 문학은 사랑이 아니에요. 문학은 그저 문학입니다. 그래서, 문학평론을 하는 이들은 삶을 말하지 못해요. 문학은 그저 문학이기에, 문학이라 하는 학문으로 치닫거든요. 문학을 쓰는 이도 문학을 밝히는 이도, 모두 문학이라는 학문 얼거리에 갇힌 채, 서로 밥그릇을 나누어 가지는 데에서 그쳐요.


  옛사람은 아무도 문학을 하지 않았거든요. ‘시’라는 이름을 빌어서 이야기하기는 했습니다만, 옛사람은 따로 ‘시를 쓰지 않았’어요. ‘시와 같은 글을 쓰듯’ 삶을 사랑하면서 누렸어요.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즐겼’고 ‘춤을 추며 하루를 빛냈’어요.


  사랑 담은 노래가 말이 돼요. 눈물 섞인 노래가 말이 돼요. 믿음 품은 노래가 말이 돼요. 아픔 깃든 노래가 말이 돼요. 그래서, 우리 말을 곰곰이 살펴보면, 기쁨 나타내는 낱말이랑 슬픔 나타내는 낱말이 있어요.


.. 하루 단 한 시간이라도 / 대통령도 종교인도 사장님도 교수들도 / 노동자도 학생들도 장사꾼도 다들 멈춰 서서 / 반질거리는 자기 삽과 호미를 꺼내 들고 / 온몸에 햇살을 받으며 맨발로 흙을 일구고 // 저기요, 상추가 참 잘됐네요 / 제 토마토 좀 갖다 드시지요 / 어쩜 고추가 그리 잘컸어요 어머, 깔깔깔 / 제 감자와 오이 좀 바꿔 드실래요 / 새참 막걸리 한 잔 들고 하시지요 / 서로 웃고 땀 흘리고 나누고 연애하고 노래한다면 / 세상은 확실히 좋은 쪽으로 돌아갈 것이다 ..  (삽질 경제를 예찬함)


  박노해 님이 빚은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느린걸음,2010)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박노해 님은 시집을 내놓았으니, 시를 썼다 할 테지만, 이 책은 ‘시집’이 아닌 ‘삶말’, 곧 ‘삶이야기’입니다. 박노해 님은 ‘시’를 쓴 사람이 아니라 ‘삶을 말한’, 이른바 ‘삶노래’를 부른 사람입니다.


  삶을 말하는 목소리가 하나둘 모여 ‘시’라는 옷을 입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눈에는 ‘시’라는 옷으로 보일 뿐입니다. 삶을 노래하는 웃음이나 눈물이 하나씩 둘씩 모여 ‘시집’이라는 책으로 나타납니다.


.. 소녀야 책을 덮고 읽어라 / 허리 숙인 논밭의 농부들을 읽어라 / 저 들녘과 주름진 얼굴에서 / 100권의 고전을 읽어라 ..  (소녀야 일어나라)


  꽃을 읽습니다. 꽃을 노래합니다. 꽃을 씁니다.


  읽고 노래하며 씁니다.


  살아가고 사랑하며 꿈꿉니다.


  밥을 먹고 옷을 지으며 집을 돌봅니다.


  따순 손길 나누고 너른 눈길 펼치며 고운 마음길 북돋웁니다.


..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드니 / 돈으로 살 수 있는 능력만 키워간다 // 도시인들은 나약해지는 만큼 / 서로에게 더욱 거칠어지고 / 자연과 약자에게 난폭해지고 있다 ..  (누구의 죄인가)


  오늘 이 나라 도시에서 살아갈밖에 없다는 아주 많은 분들 누구나 시를 쓰는 하루를 누릴 수 있기를 빌어요. 시를 쓰는 하루 되어, 노래 부르는 하루 되고, 시를 읽는 하루 되어, 이야기 꽃피우는 하루 되기를 빌어요.


  문학을 읽지 말고, 시를 읽어요. 평론을 쓰지 말고, 시를 써요. 문학을 하지 말고, 삶을 빚어요. 평론을 뽐내지 말고 노래와 춤과 웃음을 나눠요.


  시집을 읽어요. 자기계발이나 주식투자는 하지 말아요. 시집을 사서 서로 선물해요. 자가용을 사거나 아파트를 사지 말아요. 시집을 집에 건사해요. 골동품이나 명품을 장만하지 말아요.


.. 나 어릴 적 아랫마을 용이 아재가 / 나뭇단 위에 꽂아온 진달래꽃을 건네주며 / 평아 빈산에 첫 꽃이 피었다야 참 곱지야 / 한 입 먹어봐라 속이 환하제 ..  (사로잡힌 영혼)


  내 마음은 노래입니다. 하늘을 훨훨 날며 따뜻한 눈물 똑똑 떨구어 온누리 숲이 푸르게 빛나도록 숨결 나누는 노래입니다. 내 마음은 춤사위입니다. 들꽃 사이사이 노닐며 고운 무지개 피어나도록 이끄는 작은 춤사위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노래는 끝나도 빛깔이 환하게 흐릅니다. 춤은 그쳐도 내음이 짙게 드리웁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고 떠들도 잠들어 색색 가느다란 숨소리 내는 깊은 밤, 이 아이들이 내놓은 웃음꽃은 온 집안과 마을과 나라와 지구별에 예쁘게 퍼집니다. 4345.12.22.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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