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른입니까 7] 아이읽기
― 아이와 할 수 있는 숱한 일놀이

 


  아이들은 즐겁게 웃으며 놉니다. 뛰놀다 넘어진대서 아이들이 우는 일은 없습니다. 아프다고 울지는 않거든요. 넘어진 아이를 바라보며 근심과 걱정에 휩싸인 어른들이 ‘어머나!’라든지 ‘어떡해!’ 하며 낯빛이 달라지니까, ‘아하, 울어야 하는구나!’ 하고 느끼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이가 넘어지거나 말거나, 피가 나거나 말거나,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면서 “그래, 넘어졌네. 괜찮아. 무릎한테 괜찮다고 말하렴.” 하고 이야기하면 아이는 안 웁니다. “아프겠네. 아프겠구나. 그래, 아픈 데는 곧 나아. 자, 손가락아 얼른 나으렴.” 이렇게 말하면 아이도 따라서 말하면서 어느새 손가락 아픈 줄 잊습니다. 그러고는 아픈 손가락이 어느새 나아요.


  날마다 하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집일을 하고 글쓰기를 하느라 자칫 잊거나 힘들다며 ‘아이랑 글씨 쓰기’하고 ‘아이랑 그림 그리기’를 넘어가곤 합니다. ‘아이랑 숲마실 하기’도 곧잘 넘어가곤 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저희끼리 놀이를 생각해 내고, 저희 나름대로 다투거나 사이좋게 얼크러지면서 놀이를 즐깁니다. 하루 내내 아이들을 바라보고, 아이들을 보살피며, 아이들과 부대낍니다. 아이랑 함께 글씨를 써 보거나 그림을 그려 보면, 이 아이가 날마다 새로운 손길과 눈썰미로 새 모습을 빚는구나 하고 느낄 만합니다. 아마, 학교 교사라면 ‘여러 아이들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낄 테지요. 이 보람이 있기에 고된 공무원 노릇을 견딜 만한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퍼뜩 생각합니다. 교사가 학교에서 느끼는 보람이란, 따지고 보면 모든 어버이가 여느 보금자리에서 늘 누려야 하던 모습 아닌가 하고.


  오늘날 거의 모든 어버이는 아이들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넣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아이들을 보육원이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넣을 때에 여러모로 도움돈을 줍니다. 2012년 12월에 새 대통령 뽑히고 2013년이 되면 서울을 비롯한 크고작은 도시마다 ‘어린이 보육시설’이 부쩍 늘어나리라 봅니다. 맞벌이 집안을 헤아리는 보육시설이 늘고, ‘전일제’로 아이를 맡는다는 곳도 늘어난다고 해요. 이른바 ‘보건 복지’와 ‘교육 문화’라는 이름으로 ‘어린이 보육시설’이 늘어나는데요, 나는 이 대목이 여러모로 못마땅합니다. 제대로 된 보건 복지요 교육 문화라 한다면, 어버이들이 ‘돈을 벌러 회사에 나가거나 가게를 지키는 품’을 줄이도록 해 주어야 옳기 때문입니다. 맞벌이 집안이라 아이들을 ‘전일제’로 늦게까지 보육 시설에 두는 일이 즐거울까요. 아이를 둔 어버이라면 회사에서 ‘일을 더 적게 해도 되도록’ 마음을 기울여야 올바르지 않을까요. 보육 시설을 늘려야 할 노릇이 아니라, ‘회사 정규직을 더 늘려’서, ‘아이 둔 어버이가 다른 일꾼보다 조금 더 일을 마친 다음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고, 이렇게 해서 ‘아이 어버이가 적게 맡은 일 몫’만큼 다른 사람이 ‘일을 나누어 하도록’ 할 때에 일자리가 저절로 느는 한편, 굳이 어떤 돈을 더 들여 시설을 만들지 않아도 한결 적은 돈과 품으로 ‘복지’와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회사나 가게에서 일을 조금 더 적게 할 수 있는 어버이는, 더 일찍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들하고 어울릴 수 있어요.


  아이를 돌보거나 가르치는 몫은 바로 어버이가 맡아야 올바릅니다. 어버이가 회사일이나 가게일로 바쁘다고 하니까,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 보육 시설을 마련하기는 합니다만, 교사에 앞서 어버이예요. 어버이는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돌보는 몫에다가, 아이를 가르치고 사랑하고 아끼고 북돋우는 몫을 맡습니다. 왜냐하면, 어버이잖아요. 이리하여, 교사란 지식과 정보를 아이 나이(발달 높낮이)에 맞추어 가르치는 일꾼이 아닙니다. 교사란, 아이와 함께 살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는 어른이자, 아이 삶을 곁에서 지키고 보살피는 어버이입니다. 어른이면서 어버이 구실을 할 교사이지, 지식과 정보를 건네는 일꾼 구실을 할 교사는 아니에요. 지식과 정보를 건네는 노릇은 ‘책’으로 넉넉해요. 그러나, 책이라 하더라도 지식과 정보를 쌓으려고 읽힐 때에는 빛이 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살찌우고 생각을 이끄는 구실을 할 때에 책은 책답게 빛이 나요.


  아이들은 날마다 자랍니다. 어른 또한 날마다 자랍니다.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씩씩하게 자랍니다. 어른도 몸과 마음이 씩씩하게 자랍니다.


  나는 첫째 아이를 2008년 8월 16일에 낳은 뒤, 하루 서너 시간 느긋하게 잠든 적이 없습니다. 첫째 아이가 세 살이 될 무렵까지 밤마다 한두 시간에 한 차례씩 깨어 기저귀를 갈고 밤오줌 누이는 한편, 칭얼대는 아이 다독이며 지냈어요. 첫째 아이가 세 살을 지나 네 살이 될 무렵 둘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이제 좀 밤잠을 자 볼까 싶던 삶’이 더 짧아졌어요. 두 아이를 나란히 보듬어야 하니까요. 아이가 하나일 적에는 아이가 낮에 곯아떨어질 때에 곁에 나란히 누워 숨을 돌릴 만했지만, 아이가 둘이다 보니, 두 아이가 나란히 곯아떨어져 낮잠 자는 일은 거의 없어요. 하나가 잘 놀다 곯아떨어진다 해도, 다른 아이는 기운차게 놀아요. 다른 아이가 졸린 낌새 가득해서 살살 달래며 재우면, 그동안 자던 아이가 깨어나 기운차게 뛰놀려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두 아이하고 복닥이는 하루를 보내고 보면, 나로서는 여태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생각하지 못한 대목을 시나브로 깨닫습니다. 두 아이와 지내며 아이 어르거나 달래거나 보듬는 마음길과 손길을 새롭게 다스립니다. 어린이노래를 새삼스레 다시 부르고, 어린이책을 새삼스레 다시 읽습니다. 어린이 눈길이 무엇인가 하고 곰곰이 되짚습니다. 내 옷가지와 옆지기 옷가지 손빨래에다가 두 아이 옷가지 손빨래를 하며 내 손가락이랑 손바닥이랑 손목이랑 팔뚝이랑 등허리 모두 한결 튼튼하게 거듭납니다.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마실을 다니니 내 허벅지와 어깨는 더 튼튼하게 거듭납니다. 두 아이 먹을 밥을 날마다 새롭게 차리자니, 내 밥솜씨는 부쩍 늘어납니다. 두 아이가 졸리면 안고 업고 보듬고 해야 하니, 내 팔힘이나 어깨힘도 남달리 씩씩해지곤 합니다. 어른은 어른 나름대로 자라요. 어른은 어른 깜냥껏 새로 태어나요.


  아이와 함께 해바라기나 별바라기나 꽃바라기를 합니다. 아이와 함께 숲길을 거닙니다. 아이와 함께 바다를 바라보고 들길을 걷습니다. 아이 눈길을 생각합니다. 내 눈길은 무엇인가 하고 돌아봅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숱한 일놀이를 느낍니다. 아이와 함께 다닐 만하지 않은 데라면, 어른인 나부터 다닐 만하지 않다고 깨닫습니다. 아이한테 보여줄 만하지 않은 만화나 영화라 할 때에도, 어른인 내가 얼마나 볼 만한 만화나 영화인가 하고 깨우칩니다.


  오늘날 이 나라 수많은 어버이들은 아이하고 더 오래 지내야 한다고 느낍니다. 아이하고 즐거이 더 오래 지내지 못하니까, 정작 ‘당신 아이’가 얼마나 넓고 깊으며 따사로운가를 알아채지 못합니다. 아이를 일찍부터 보육 시설에 집어넣기 때문에, 아이와 당신이 누릴 아름다운 삶을 잃거나 빼앗깁니다. 참다운 복지일 때에는 ‘어버이가 회사나 가게에 덜 얽매이고 돈벌이에 덜 붙들리도록’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다운 교육일 때에는 ‘어버이가 아이와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육 시설은 없어도 돼요. 보육 시설은 아예 없어도 돼요.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아이 낳은 집안마다 ‘아이 살림돈’을 맞돈으로 도와주면 돼요. 보육 시설 없으면 걱정된다고요? 하나도 걱정스럽지 않아요. ‘아이 품앗이’를 짜면 되거든요. 이웃 여러 집하고 품앗이를 짜서, 아이를 따로 맡겨야 할 때에는 아이들끼리 ‘어느 이웃 한 집’에 모여 즐거이 뛰놀도록 하면 돼요. ‘공동육아’라고도 할 텐데, 시설이 아닌 보금자리(살림집)를 누려야 할 아이요 어른이에요. 시설에서 영어를 가르치거나 한글을 더 일찍 가르치지 않아도 돼요. 아이는 마음껏 놀아야 아이예요. 아이와 살아가는 어버이는 아이하고 신나게 놀면서 스스로 몸을 쉬고 마음을 다스릴 때에 삶을 넉넉히 일굴 수 있어요.


  아이 눈빛을 맑게 읽어요. 아이 마음을 슬기롭게 읽어요. 아이 사랑을 따숩게 읽어요. 아이 꿈과 이야기를 기쁘게 읽어요. 4345.12.1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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