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하나에 사계절 그림책
김장성 지음, 김선남 그림 / 사계절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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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25

 


나무 곁에서 소리를 들으면
― 나무 하나에
 김선남 그림,김장성 글
 사계절 펴냄,2007.3.20./11000원

 


  아침과 낮과 저녁에 나무를 바라보는 집에서 지냅니다. 우리 네 식구는 두멧시골이라 할 고요한 보금자리를 누리거든요. 늘 바라보는 나무는 내가 심지 않았습니다. 옆지기가 심지도 않았고 아이들이 심지도 않았습니다. 마을 이웃 누군가 어릴 적에 심은 나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나무 말고도 여러 나무가 자랍니다. 후박나무, 동백나무, 초피나무, 감나무, 모과나무, 뽕나무, 매화나무, 석류나무 들이 줄줄이 자라요.


  깊은 밤 아이들 쉬를 누이고 나도 쉬를 누면서 마당에 선 채 별바라기를 합니다. 깊은 저녁에 아이들 데리고 마을 한 바퀴 빙 돌면서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새까만 시골 밤하늘을 누립니다. 깜깜한 시골 들판을 즐깁니다. 낮에는 낮빛이요 밤에는 밤빛입니다. 낮에는 낮바람이고 밤에는 밤바람이에요.


  상큼한 바람을 마시는 날에는 상큼한 마음이 됩니다. 내 넋은 상큼한 기운이 감돌고,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마디에는 상큼한 사랑이 배어요. 싱그러운 햇살을 먹는 날에는 싱그러운 마음이 됩니다. 내 얼은 싱그러운 내음으로 물들고, 내 귀로 스며드는 이야기에는 싱그러운 꿈결이 깃들어요.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랍니다. 봄에도 여름에도 가을에도 자라는 풀과 나무는, 겨울에도 조용히 자랍니다. 날씨가 추운 데에서는 아주 조용히 자라기에, 풀과 나무가 어떻게 얼마나 자라는가를 알아채는 이가 드뭅니다. 날씨가 따사로운 데에서는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풀이나 움을 틔우는 나무가 있어, 슬며시 알아보곤 합니다.


  그런데, 푸나무가 깃들 흙을 시멘트와 아스팔트와 뒤덮으면, 사람들은 도시에 있건 시골에 있건 푸나무하고 이웃하지 못해요. 내 집 마당에 푸나무가 자라더라도 시멘트와 아스팔트한테 마음을 사로잡혀요. 사람이 다니는 길 아닌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서 허덕이고 맙니다. 사람이 다니려고 놓는 길보다 자동차 오가라고 닦는 길에서 매캐한 배기가스를 마시기만 합니다.


  도시에서 ‘시내 한복판’이라는 데를 거닐면서 풀내음이나 나무내음 맡는 사람은 없어요. 풀내음이나 나무내음 맡고픈 이라면 도시 한복판을 거닐지 않겠지요. 시골에서도 읍내 한복판이나 면내 한복판을 거닐 때에 풀내음이나 나무내음 맡을 일이 드뭅니다. 조그마한 시골 면소재지라 하더라도 ‘도심’이 되고 보면, 풀이랑 나무를 밀어내거든요. 면소재지조차 길바닥은 시멘트와 아스팔트이거든요. 면소재지라 하더라도 길가에서 자라는 들풀을 뽑아서 없애려 하거든요.

 

 


.. 나무 하나에 둥지가 하나 ..  (6쪽)


  도시 한복판을 벗어나야 비로소 ‘찻길 가장자리에 심은 나무’를 알아봅니다. 도시 변두리에서 빠져나와야 비로소 풀빛과 나무빛을 만납니다. 시골 한복판, 곧 읍내나 면내 아닌 두멧시골로 접어들어야 바야흐로 풀내음과 나무내음을 들이켭니다. 풀과 나무가 받아먹는 햇살을 두멧시골에서 느끼고, 풀과 나무가 마시는 빗물과 눈물(눈이 내려서 녹는 물)이 어떻게 빛나는가를 깨달아요.


  나무 곁에서 소리를 들어요. 나무에 깃든 목숨들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어요. 나무 곁에서 소리를 들어요. 바람결 따라 나뭇잎노래 부르는 사랑스러운 아름드리 나무 이야깃소리 들어요. 나무 곁에서 소리를 들어요. 구름이 드리우는 그늘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고, 구름을 가로지르는 멧새 날갯짓 소리를 들어요. 박새와 까치가 빈논에 내려앉아 이삭을 찾습니다. 까마귀와 누렁조롱이가 하늘을 누비며 먹이를 찾습니다. 멧비둘기가 파다닥 어여쁜 날갯짓으로 들판을 가로지릅니다. 노랑할미새와 직박구리가 삣삣 찌르찌르 노래하면서 저희 짝꿍이랑 노닙니다.


  나무 곁에 둥지를 튼 살림집에서 아이들이 노래합니다. 시골자락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빙 에둘러 나무를 심으며 어른들이 노래합니다. 나무 곁에 둥지를 튼 살림집에서 아이들이 사랑스러운 삶을 배우고 믿음직한 꿈을 키웁니다. 시골자락 조그마한 보금자리를 빙 에둘러 나무를 심는 어른들이 굵은 땀방울을 손등으로 훔치면서 활짝 웃습니다.


  맑은 소리와 밝은 소리가 만납니다. 푸른 소리와 파란 소리가 얼크러집니다. 사람과 나무가 만나고, 들판과 하늘이 만납니다.

 

 

 


.. 나무 하나에, 밑동부터 줄기랑 가지, 이파리까지 매미랑 개미랑 노린재, 무당벌레 서른, 마흔, 쉰, 예순, …… ..  (19쪽)


  김선남 그림과 김장성 님이 어우러진 그림책 《나무 하나에》(사계절,2007)를 읽습니다. 나무 하나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무 한 그루에서 어떤 숨결을 느낄까요. 도시에는 어떤 나무가 자라나요. 시골에는 어떤 숲이 깃드나요.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무를 살살 쓰다듬으며 볼을 비빌 일이 있나요. 시골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나무를 땔감 삼아 즐겁게 마주하는가요.


  나무가 있어 종이를 빚어 책을 엮기도 합니다. 나무가 있어 고맙게 숨을 쉬고, 기쁘게 밥을 얻습니다. 나무가 있어 배를 뭇고 집을 짓습니다. 나무가 있어 연필을 깎고 접시를 깎습니다. 나무는 걸상이 되고, 나무는 길벗이 됩니다. 나무는 네 철 푸른 빛깔 베풀면서 시나브로 숲을 이룹니다.


  숲은 나무입니다. 숲은 풀입니다. 숲은 벌레요 짐승입니다. 그러면, 숲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이 나라에서 사람들은 어떤 목숨 되어 가슴속 빛줄기를 이웃하고 나누는 삶일까요. 4345.12.17.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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