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297) 접하다接 1 : 소식을 접하며

 

교회 불지르기와 휴대전화의 빠른 보급, 노예노동과 디지털 혁명, 여아 살해와 나스닥 증권시장 붕괴, 지참금 문제로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에 관한 소식을 늘 동시에 접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룬다티 로이-9월이여 오라》(녹색평론사,2004) 21쪽

 

  “휴대전화의 빠른 보급(普及)”은 “빠르게 퍼지는 휴대전화”로 손보고, ‘여아(女兒)’는 ‘여자 아이’나 ‘계집 아이’로 손봅니다. “나스닥 증권시장 붕괴(崩壞)”는 “무너지는 나스닥 증권시장”으로 손질하고, “지참금 문제(問題)로”는 “지참금 때문에”로 손질합니다. “여성들에 관(關)한 소식(消息)”은 “여성들 이야기”로 다듬고, ‘동시(同時)에’는 ‘한꺼번에’로 다듬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는 “살아갑니다”로 다듬어 봅니다.


  그런데, 이런 글투 저런 낱말을 꼭 손보거나 다듬어야 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굳이 이렇게 손질하거나 저렇게 고쳐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보기글처럼 글을 쓰거나 말을 하니까요. 이렇게 글을 쓰건 저렇게 말을 하건 이른바 ‘의사소통’을 하니까요.


  외마디 한자말 ‘접하다(接-)’는 모두 다섯 가지 뜻으로 쓴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다섯 가지 쓰임새가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사람들이 이 한자말을 자꾸 쓰고 또 쓰면서 쓰임새가 넓어집니다. 사람들이 이 한자말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이 한자말이 없던 때에 홀가분하게 주고받던 말마디로 얼마든지 서로서로 생각과 뜻을 나누겠지요. 다섯 가지 뜻풀이와 보기글을 먼저 살펴봅니다.

 

  (1) 소식이나 명령 따위를 듣거나 받다
   - 사고 보도를 접하다 / 남편의 사망 소식을 접하자
  (2)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가지다
   - 신을 접하게 되는데 쉽게 될 수야 없지요
  (3) 이어서 닿다
   -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에 접해 있다 / 우리 마을은 바다와 접해 있다 /
     판자로 지은 집들이 서로 접해 있다 / 우리 집은 바다를 접하고 있다
  (4) 가까이 대하다
   - 그는 거기서 엉뚱하게 동학의 교리에 접하고 바로 입도를 했습니다 /
     나는 사람들과 접하면서 사람마다 다른 개성을 발견했다 /
     그들이 서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며칠 전이었다 /
     그녀는 다른 간호원과는 달리 나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5) 직선 또는 곡선이 다른 곡선과 한 점에서 만나다.
      또는 직선, 평면, 곡면이 다른 곡면과 한 점에서 만나다

 

  국어사전에 실렸으니, 이렇게 다섯 갈래로 쓸 만하다 여길 수 있지만, 예부터 한겨레가 다섯 갈래로 다 다르게 나누던 말마디가 ‘接하다’라 하는 외마디 한자말한테 잡아먹힌 셈이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하나 갈무리해 보면, 한국사람은 다음처럼 이야기하면서 살았습니다.

 

 (접하다 1) → 이야기(소식)를 듣다
 (접하다 2) → 신이 내리다
 (접하다 3) → 바다에 닿다 / 집이 붙다 / 바다를 끼다
 (접하다 4) → 교리를 듣다 / 사람과 만나다 / 사람을 보다
 (접하다 5) → 닿다 / 만나다

 

  이야기를 듣는 자리라면 ‘듣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무당한테 신이 내리면 ‘내리다’라 말할 노릇입니다. 이어서 닿으니 ‘닿다’고 말합니다. 집은 “다닥다닥 붙었다”라 말하면 되고, “우리 집은 바다를 낀다”라든지 “우리 집은 바다 가까이 있다”라 말하면 돼요. 가까이 마주하기에 ‘마주하다’나 ‘가까이 마주하다’라 말합니다. 서로서로 만나거나 사귈 때에는 ‘사귀다’나 ‘만나다’라 말합니다. “나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처럼 ‘보다’를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접하다 (5)’ 뜻풀이처럼, ‘만나다’나 ‘닿다’라 말할 자리에 굳이 ‘접하다’를 써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책을 접한다”라든지 “영화를 접하다”라든지 “문화를 접하다”처럼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제법 많습니다. “책을 읽”는 사람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영화를 보”고 “문화를 누리”는 사람도 차츰 사라집니다. 말다운 말이 주눅들고, 삶다운 삶이 자취를 감춥니다. 4337.7.23.쇠./4345.12.6.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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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불지르기와 빠르게 퍼지는 휴대전화, 노예노동과 디지털 혁명, 어린 여자 아이 죽이기와 무너지는 나스닥 증권시장, 지참금 때문에 아내를 태워죽이는 남편들과 세계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성들 이야기를 늘 한꺼번에 들으며 살아갑니다

 

..

 

 우리 말을 죽이는 외마디 한자말
 (1301) 접하다接 16 : 풍경을 접하게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야마오 산세이/김경인 옮김-애니미즘이라는 희망》(달팽이,2012) 245쪽

 

  한자말 ‘풍경(風景)’은 “= 경치(景致)”를 뜻한다고 합니다. ‘경치(景致)’는 다시 “산이나 들, 강, 바다 따위의 자연이나 지역의 모습”을 뜻한다고 해요. 그러니까, 풍경이든 경치이든 ‘어떤 모습’을 가리키는 셈이에요. 보기글에서도 “여러 가지 풍경”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손볼 수 있어요. “-하게 됩니다”는 “-합니다”나 “-하곤 합니다”로 손질합니다.

 

 여러 가지 풍경을 접하게 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봅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마주합니다
 …

 

  여러 가지 모습을 본다고 할 때에는 ‘지켜볼’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습니다. ‘구경할’ 수도 있겠지요. 여러 가지 모습을 보는 일은 ‘만나기’나 ‘마주하기’이면서 ‘가까이하기’나 ‘곁에서 보기’일 수 있어요. ‘옆에서 보’거나 ‘둘레에서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4345.12.5.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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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모습을 봅니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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