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을 먹는 책읽기

 


  나는 풀만 먹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풀맛을 즐겁게 누리고픈 사람입니다. 사회에서는 채식이나 육식이니 잡식이니 하고 금을 그으려 하지만, 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사람치고, 밥을 아예 안 먹는 사람은 없어요. 밥이란 쌀이요 쌀이란 벼며 벼란 곡식인데, 곡식이란 풀입니다. 곧, 푸성귀를 많이 먹든 고기를 많이 먹든, 누구나 풀을 먹어요. 풀 한 포기는 목숨 이을 밥바탕이 됩니다.


  나는 밥이 되는 벼풀 말고 다른 풀을 즐겁게 누리고 싶습니다. 무도 좋고 배추도 좋습니다. 감자도 좋고 쑥도 좋습니다. 고구마도 좋고 마늘도 좋습니다. 들판에서 스스로 자라는 온갖 풀 모두 좋습니다. 괭이밥풀도 망초풀도 좋습니다. 주홍서나물풀도 좋고 유채풀도 좋습니다. 내 몸으로 깃들며 고운 목숨이 될 모든 풀이 반갑습니다.


  옆지기 동생이 시집잔치를 하기에 전남 고흥에서 경기 일산까지 먼길을 달려옵니다. 시집잔치를 며칠 앞두고, 옆지기 동생이 새로 마련한 작은 집으로 찾아가서 튀김닭을 함께 뜯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옆지기 동생네 단골집이라 하는 데에서 시킨 튀김닭인데, 밥상에 튀김닭을 펼칠 적에 깍뚝무와 튀김닭이 놓일 뿐, 흔하디흔한 양배추버무림조차 없습니다. 고기랑 무조각만 있을 뿐, 달리 아무런 풀이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흥을 벗어나 순천 기차역에서 도시락을 사다 먹을 적에도 ‘도시락 반찬’은 온통 고기 반찬이었지, 싱싱한 풀 한 줌 없어요. 따로 고기집에 들러 세겹살을 구워 먹을 때가 아니라면 싱싱한 풀을 반찬으로 내주는 밥집이 없어요. 어느 밥집에서건 김치를 빼면 ‘풀 반찬’은 구경할 수 없습니다.


  문득 깨닫습니다. 도시에는 풀이 홀가분하게 자랄 터가 없습니다. 도시사람은 풀이 길가나 아파트 잔디밭에서 ‘함부로’ 자랄라치면 약을 치거나 북북 뜯거나 뽑습니다. 가게 많고 자동차 많으며 밥집 많은 도시이지만, 막상 나무가 없고 풀이 없으며 꽃이 없는 도시예요. 예쁘장한 꽃을 다발로 사고파는 꽃가게는 있습니다만, 풀이 씨앗을 틔워 자라난 다음 새 씨앗을 맺으려고 피우는 소담스러운 꽃은 없는 도시예요. 길가에 나무를 심기는 하되, 사람들이 오붓하게 나무열매 즐길 수 없는 도시예요.


  도시로 마실을 왔다면 풀 먹을 생각은 할 수 없겠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도시로 나들이를 왔으면 도시 흐름에 발맞추어 고기만 먹을 노릇이구나 하고 다시금 느낍니다. 시골로 돌아가 흐뭇하게 풀 먹을 나날을 그립니다. 시골집에서 호젓하게 풀 먹으며 풀방귀 뀔 나날을 헤아립니다. 4345.11.30.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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