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에서 보일러 고치기
우리 집 보일러가 말썽이 난 지 여러 달 되었는데, 오늘 비로소 고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어떤 부속품을 갈거나 새로 붙이지 않았다. 방바닥으로 물이 들어오는 흐름을 다스리는 손잡이 하나를 움직이고 나서 그동안 일어난 말썽이 모두 사라졌다.
이제껏 어떤 일이 있었나 헤아려 본다. 맨 먼저 면소재지 ‘보일러 고치는 집’에 연락을 했다. 면소재지 ‘보일러 고치는 집’은 전화를 안 받거나, 전화를 받아도 바쁘다는 핑계로 고작 2∼3분 거리인 시골마을 우리 집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읍내 ‘보일러 고치는 집’에 전화를 해 보았다. 우리가 들어와 사는 시골집에서 예전에 살던 할머니가 기둥에 붙인 전화번호가 있기에 이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보는데, 오겠다 하고는 사흘이 되도록 전화도 없고 오지도 않는다. 이번에는 전화번호부를 뒤져 ‘보일러 만든 회사 서비스센터’ 고흥지점에 전화를 건다. 전화를 받은 지점 일꾼은 ‘수리기사가 굳이 가지 않아도 된다’면서 이것저것 나보고 손수 해 보라고 차근차근 알려준다.
곰곰이 돌아본다. 마지막에 전화를 걸었을 때 나한테 차근차근 알려준 분이 ‘보일러를 다 고쳐 주었다’고 할 만하다. 다만, 이분은 한 가지를 못 짚어 주었을 뿐이고, 우리 집으로 찾아온 수리기사는 딱 한 마디를 나한테 들려주며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해 주었다. 그러니까 보일러 수리기사가 우리 집에 왔어도 이녁이 한 일은 아무것 없다 할 만하지만, 말 한 마디를 해 주어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갔으니 수리기사로서는 할 일을 다 한 셈이라 하리라.
내 옆지기는 나한테 말한다. 시골에서 살자면 무슨 일이든 스스로 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일러를 놓아 겨울에 불을 때기로 했다면 보일러를 고치거나 손질하는 일도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만지고 다스리며 뚝딱거릴 수 있어야 한다. 더없이 옳은 얘기이다. 나는 올가을에 비로소 보일러 만지는 아주 작은 손길을 하나 익혔다. (4345.11.17.흙.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