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로 도장찍기 과학은 내친구 7
요시다 기미마로 지음, 김세희 옮김 / 한림출판사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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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겁게 살고, 웃으면서 놀고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3] 요시다 기미마로, 《야채로 도장찍기》(한림출판사,1997)

 


  좋은 생각이 마음밭에 있으면, 누구나 좋은 생각을 누려요. 좋은 생각이 마음밭에 없으면, 누구라도 좋은 생각을 누리지 못해요. 다른 사람이 나한테 좋은 생각을 베풀지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대서 좋은 생각을 얻지 못합니다. 내 마음밭에 좋은 생각이 있어야 ‘책을 읽으며 마주할 좋은 생각’을 느끼거나 알아챕니다. 내 마음밭에 좋은 생각이 샘솟을 때에 ‘영화를 보며 만날 좋은 생각’을 깨닫거나 받아들입니다.


  아무런 생각이 마음밭에 없으면, 책이나 영화나 다른 어디에서 들려오는 좋은 생각은 ‘좋은 생각’이 아닌 지식이나 정보입니다. 지식이나 정보는 머리에 쌓는 조각들로 자리잡을 뿐, 삶을 북돋우는 꿈이나 사랑으로 거듭나지 않아요. 스스로 좋은 생각을 씨앗 한 알로 심어 차근차근 돌보고 아낄 적에, 이 씨앗이 차츰 자라나서 잎을 틔우고 꽃을 피워요. 작은 씨앗 하나가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고 새로운 씨앗을 맺지요.


  그런데 오늘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마음속 들여다보기를 못 하거나 안 합니다.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서 내 마음밭 씨앗을 돌보면 되는데, 막상 내 마음부터 슬기로이 느끼려고 하지 않아요. 내 마음부터 곱게 보살피면서 내 삶을 알차게 여미는 길을 걷지 못해요.


  즐겁게 살아갈 때에 즐겁습니다. 돈을 많이 벌기에 즐겁지 않아요. 즐겁게 살아가며 이야기꽃을 피울 때에 즐겁습니다. 더 크거나 비싼 자가용을 몰며 나들이를 다녀야 즐겁지 않아요. 즐겁게 살아가며 사랑을 속삭이고 노래하며 나눌 적에 즐겁습니다. 그런데,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느껴야 할 텐데, 이를 제대로 느끼는 사람이 매우 적어요. ‘즐거운 삶’이 무엇인가를 느껴야 하겠으나, 이를 알뜰살뜰 깨닫는 사람이 몹시 드물어요.


.. 어, 어! 야채 도막이 떨어졌네. 그런데도 엄마는 모르고 있어요. 마루에 야채 도막 무늬가 찍혀 있네. 그래! 야채 도막으로 도장찍기 해 보자 ..  (4∼5쪽)

 

 


  즐거움이란 즐거움입니다. 살아가며 마주하는 모든 것이 즐거움입니다. 나무 한 그루가 즐거움입니다. 나무 한 그루에 스미는 아침햇살이 즐거움입니다. 아침햇살이 감도는 가을바람이 즐거움입니다. 가을바람에 묻어나는 들내음이 즐거움입니다. 들내음에 곱게 서린 풀벌레 가느다란 늦가을 노랫소리가 즐거움입니다. 늦가을에 아직 노랫소리 들려주는 풀벌레가 깃든 풀섶이 즐거움입니다. 늦가을에 노랗거나 하얗게 꽃송이 올리며 빈들 언저리에서 가을 들일 하는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웃음꽃 들려주는 마을살이가 즐거움입니다.


  아이들 재채기가 즐거움입니다. 아이들 뛰노는 발걸음이 즐거움입니다. 구름이 즐거움입니다. 구름을 가로지르는 멧비둘기와 까마귀가 즐거움입니다.


  자동차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일지라도 큰길에서 벗어난 골목을 걸어 보셔요. 자동차 오가는 소리에서 홀가분한 골목을 천천히 거닐어 보셔요. 지붕 낮은 골목집 늘어선 동네에서는 하늘이 한결 넓게 보이고, 구름도 바람도 한껏 드넓게 누릴 수 있어요. 골목동네를 천천히 걷다 보면, 집과 집 틈새에 피어난 꽃을 만날 수 있어요. 골목고양이가 풀섶이나 지붕에서 낮잠 자는 모습도 보겠지요. 확 트인 하늘을 바라보면서 가을날 하늘빛은 도시에서도 이렇게 파랗구나 하고 느낄 만해요. 한 달에 한 차례쯤 말미를 얻어 도시를 멀리 벗어나, 시골에서 눈부시도록 파랗게 물든 하늘을 느껴 봐요. 하늘빛처럼 파란 바다를 느껴 보고, 파란 바다와 하늘을 지나가는 바람에 실리는 가을내음을 맡아 봐요.


  모두 즐거움이에요. 모두 사랑이고 모두 꿈이며 모두 삶이에요. 즐거움은 나 스스로 빚어요. 사랑은 내 손으로 이루어요. 꿈은 내 따순 마음으로 온누리에 펼쳐져요.


.. “엄마 보세요! 무늬가 생겼어요.” “어머! 예뻐라 야채 도막 더 줄게.” ..  (7쪽)

 

 


  요시다 기미마로 님이 빚은 그림책 《야채로 도장찍기》(한림출판사,1997)를 읽으며 생각합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어머니는 두 아이를 부엌에 두고 밥을 차립니다. 두 아이는 어머니 곁에서 즐겁게 ‘밥하기’ 구경을 합니다. 이윽고 아버지도 ‘밥하기’를 한몫 거듭니다. 아버지가 ‘설거지만 하는 시늉과 같은 부엌일’을 하지 않아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이들 예쁘게 먹여살리’는 밥을 해요. 아이들 예쁘게 먹여살리는 밥이란 어버이도 함께 예쁘게 먹여살리는 밥이 돼요.


  그림책 《야채로 도장찍기》는 푸성귀 하나로 누리는 즐거움을 보여줘요. 양파 꽁다리로, 무조각 하나로, 당근 한 토막으로, 귤이나 배 껍질로, 이것으로도 저것으로도 신나게 놀이를 누리는 삶을 보여줘요.


  따지고 보면 ‘푸성귀로 도장찍기’는 아주 손쉽습니다. 과학이라 할 만하지 않고, 초등교육이라 할 만하지 않습니다. 이런 교육이나 저런 학습하고는 달라요. 즐거이 누리는 놀이예요. 하루를 예쁘게 보내면서 서로 웃고 떠들도록 이끄는 놀이입니다. 지능발달이나 정서발달하고는 동떨어진 놀이예요. 지능을 북돋우거나 정서를 다스리려고 하는 놀이란 없거든요. 모든 놀이는 즐거웁자며 해요. 모든 놀이는 하루를 빛내려고 해요. 모든 놀이는 아이와 어른이 ‘사람으로 태어난 기쁨’을 한껏 누리려고 해요.


.. 엄마의 카레라이스가 다 될 동안 아빠는 샐러드와 디저트를 만들어요. “어떤 샐러드가 될까?” “어떤 도막을 내 주실까?” “어떤 무늬가 될까?” ..  (18∼19쪽)


  그나저나, ‘야채(野菜)’는 일본사람 쓰는 한자말입니다. ‘채소(菜蔬)’는 중국사람 쓰는 한자말이에요. 한국사람한테는 ‘푸성귀’라는 낱말이 있어요. 이와 함께 ‘남새’와 ‘나물’이 있어요. 일본책을 한국말로 옮기며 ‘야채’라는 일본말을 잘못 썼구나 싶은데, 조금 더 마음을 기울여 한국말을 곱게 느낄 수 있기를 빌어요. (4345.11.17.흙.ㅎㄲㅅㄱ)

 


― 야채로 도장찍기 (요시다 기미마로 글·그림,엄기원 옮김,한림출판사 펴냄,1997.5.10./9000원)

 

(최종규 . 2012 - 그림책 읽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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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11-17 22:08   좋아요 0 | URL
"아이들 재채기가 즐거움입니다."
- 저도 이런 즐거움을 잘 압니다.ㅋㅋ 귀여워서 즐거워지죠.

‘푸성귀’라는 낱말을 배워 갑니다. 알면서도 잘 사용하게 되지 않아요.
내일 아침상엔 푸성귀를 올려야겠어요. ^^

숲노래 2012-11-18 04:15   좋아요 0 | URL
pek0501 님...
저기, '알면서 잘 쓰지 않는' 말은 없어요.
잘 쓰지 않는 까닭은 '모르기 때문'이에요.

^^;;;

누군가를 깎아내리려 하는 말이 아니라,
참말 그래요.

옳고 바르며 슬기롭고 제대로 아는 말은
그 사람이 늘 쓰는 말이에요.

다만,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자주 쓰는 낱말조차
어떤 뜻이고 느낌인가를
영 제대로 모르지만 말예요.

제가 '한국말 살려쓰기' 글을 쓰기는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조차
한국말이 무엇인지도 모를 뿐더러,
말뜻이나 말느낌을
'사회 편견'이나 '관습 편견'으로 엉뚱하게 생각할 뿐,
스스로 말뜻과 말느낌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사람이 매우 드물어요.

'푸성귀'라는 낱말을 들으신 적이 있을 테지만,
정작 어디에서 어떻게 써야 하는가를
스스로 찾아서 깨닫지 않았을 때에는
이 낱말은 '내가 모르는 말이다'고 해야 맞답니다.

사전에서 말풀이를 살핀다고 해서 쓸 수는 없어요.
삶으로 녹여야 쓸 수 있어요.

이를테면 '야채장수'나 '채소장수'가 아닌 '푸성귀장수'인데,
이런 자리에서도 즐겁게 쓸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해요.
'나물밥'이지 '푸성귀밥'은 아니에요.
밥상에 '날푸성귀'를 올리지 '날나물'을 올리지 않아요.
'남새밭'이나 '푸성귀밭'이지 '나물밭'은 아니에요.

하나하나 가만히 헤아려 보면 말이 살아나고
내 생각도 살아날 수 있어요...

jeandemian 2012-11-17 23:45   좋아요 0 | URL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대서 좋은 생각을 얻지 못합니다. 내 마음밭에 좋은 생각이 있어야 ‘책을 읽으며 마주할 좋은 생각’을 느끼거나 알아챕니다."
뭔가 공감이 되는 듯 합니다..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서 마음밭 씨앗을 돌보라고 하셨는데..어떻게 하면 돌볼 수 있나요?..러셀은 '행복의 정복'이란 책에서 행복의 비결이 관심을 자기 내면에 말고 밖에 있는 사물들에 두라 하였답니다..그렇다면 러셀의 말과 상충이 될 거 같습니다만..

숲노래 2012-11-18 04:11   좋아요 0 | URL
러셀이든 라셀이든 무슨 대수이겠어요.
러셀이 아닌 나치가 한 말이든 ㅂㄱㅎ나 ㅇㅁㅂ이 한 말이라도
아무것도 대수롭지 않아요.

내가 마음으로 아로새길 말은 '나 스스로 내 입에서 터져나오는'
내 삶에서 비롯하는 말일 뿐이에요.

잘 생각해 보시면 돼요.
아이들하고 잘 노는 길은 무엇일까요?
밥을 맛나게 짓는 길은 무엇일까요?

숲에 깃들면 무엇이 보이나요?

누군가는 숲에서 '먹는 풀'을 잔뜩 보고,
누군가는 숲에서 '도감에서 보고 외운 이름'을 잔뜩 떠올려요.
서로 무엇이 다를까요?

'아직 스스로 눈높이가 덜 된' 사람은
훌륭하다고 일컫는 책을 읽어도 무엇이 훌륭한지 몰라요.
'아직 스스로 마음그릇이 덜 된' 사람은
어설프거나 허접하다는 책을 읽어도 무엇이 어설프거나 허접한지 몰라요.

책을 읽는다고 스스로 발돋움하지 않아요.
좋다는 책을 추천받아 읽는대서 스스로 나아지지 않아요.

책에 앞서 '삶을 지어'야 비로소 내 '눈이 열리'면서
어떤 책을 손에 쥐더라도
책마다 다 다르게 서린 '아름다운 이야기'를 깨달아요.

여느 어른들은
그림책을 읽으며
이 그림책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알아채지 못해요.

아이들이 백 번 천 번 즐겁게 읽는 그림책은
'두툼한 인문책 백 권 천 권'보다 훨씬 깊고 너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는데,
이 까닭을 깨닫거나 헤아리는
'어버이'나 '어른'은 몹시 적어요.
왜 그럴까요?

아무쪼록, 스스로 늘 즐거우며 예쁜 마음이 되기를 빌어요.
그러면 모든 책이 나한테 와요.

jeandemian 2012-11-18 13:06   좋아요 0 | URL
글 감사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현실의 자신의 삶이 생략된 채 책에서 위안과 즐거움을 얻는 사람도 많겠지요. 저는 좀 더 용기를 내고자 합니다. 삶 속에 영향을 주지 않는 책읽기는 지양해야 겠지요?
아이들과 잘 노는 것, 밥을 만나게 짓는 방법을 생각해보니, 먼저 잘 노는 것, 맛나게 짓는 욕구가 있어야 하고 그만큼 관심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 뒤엔 관찰과 행동이 자연스럽게 따라올테고, 무엇보다도 '즐겁게'해야 스스로를 위해 좋겠죠?
책에 앞서 삶을 짓다..
사람의 마음은 뒤죽박죽으로 혼재되어 있는데..늘 즐거우며 예쁜 마음이 되기를 바랄 수 있을까요?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야 할까요?
화두와 다시 생각해볼 거리를 가져갑니다..

숲노래 2012-11-18 13:12   좋아요 0 | URL
jeandemian 님 스스로 '아이들과 놀기'랑 '밥 맛나게 짓기'를 생각해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고 스스로 찾아나서겠지요. 그러면 스스로 생각을 기울이고, 생각을 기울이면서 사랑이 어디에서 싹트는가를 느낄 수 있어요. 이 사랑을 누린다면 바로 '즐거움'이 돼요.

삶에 영향을 안 주는 책읽기란, '지식쌓기'예요. 책읽기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어요. 삶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나 스스로 삶을 짓겠다는 마음을 북돋우는 책읽기가 될 때에 비로소 '책읽기'라는 말을 쓸 수 있어요.

사진기 단추를 누른대서 모두 '사진'이 되지 않아요. 내가 즐기고픈 이야기를 담아야 비로소 '사진'이에요.

"사랑해" 하는 말이 사랑이 아닌 줄 아시지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이 아니고는 모두 '사랑'이 될 수 없어요.

우리 마음은 뒤죽박죽 섞이지 않아요.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렇게 뒤죽박죽일 테지요. 스스로 바라는 대로 내 마음이 이루어져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생각하면서 가만히 마음을 다스려 보셔요.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