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를 기르다 ㅣ 청년사 작가주의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숙경 옮김 / 청년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왜 이렇게까지 살려고 하니?
[만화책 즐겨읽기 190] 다니구치 지로, 《개를 기르다》
다니구치 지로 님 만화책 《개를 기르다》(청년사,2005)를 뒤늦게 읽으며 생각합니다. 지난 2005년에 이 만화책이 나온 줄 알았으나, 올 2012년까지 일곱 해가 지나는 동안 이 만화책은 장만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줄거리가 펼쳐지리라 느꼈고, 줄거리를 넘어 어떤 삶을 보여주는 대목까지는 못 이르겠구나 하고 느꼈어요.
아이들 밥을 차리는 틈틈이 만화책을 읽습니다. 냄비에 밥물을 올리고, 국거리를 올리며, 선선한 가을날 따순 반찬 먹이려고 감자랑 양파랑 푸성귀를 살살 기름 둘러 익히면서 살짝살짝 읽습니다.
그린이 다니구치 지로 님은 ‘늙어서 죽음을 앞둔 개’ 앞에서 자꾸자꾸 마음으로 묻습니다. ‘너 왜 이렇게까지 살려고 하니?’ 하고 거듭거듭 묻습니다. 늙어서 죽음을 앞둔 개는 마음으로 다니구치 지로 님한테 대꾸를 합니다. 그런데, 다니구치 지로 님은 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늙은 개는 온몸으로 다니구치 지로 님한테 ‘왜 이렇게까지 버티면서 살아가려 하는가’를 밝히는데, 다니구치 지로 님은 《개를 기르다》를 마지막으로 그릴 때까지도 아무 소리를 알아채지 못해요.
- ‘불쌍하지 않아요! 걷지 못하게 되면 더 불쌍하죠.’ 이렇게 대꾸하고 싶었다며, 아내는 내게 투덜거렸다. (12쪽)
- “그런 개는 돈 주고 사야 하는데, 값도 꽤 비싸단 말이야.” “난 싫어. 살아 있는 걸 돈을 주고 사다니.” “그래서 친구한테 부탁해 뒀어.” (16쪽)
개를 기른 적이 있다든지, 고양이를 기른 적이 있다든지, 또는 늙은 어버이를 여러 해 모신 적이 있다든지, 나 스스로 많이 늙어 나처럼 늙은 옆지기를 여러 해 돌본 적이 있다든지, 또는 나보다 일찍 늙어서 죽는 동무를 만난다든지, 이러저러하게 ‘몸으로 겪어야’만 알 수 있지는 않아요. 한창 젊을 적에도 알 수 있어요. 내가 집짐승을 길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나무를 보아도 알 수 있어요. 꽃을 보아도 알 수 있어요. 해거름 노을을 바라보고, 새 아침 노을을 바라보면서도 알 수 있어요.
살아가는 하루가 즐거우니까 살아가려고 해요. 나를 사랑하는 두 사람이랑 하루라도 더 어울리면서 머물고 싶으니까 살아가려고 해요.
만화책 《개를 기르다》에 나오는 ‘늙은 개’는 저랑 열 몇 해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이랑 보내는 하루가 매우 즐겁고 좋으며 기쁘기에 ‘눈을 감지 못’해요. 늙은 개가 그동안 받은 사랑을 온몸으로 드러내요.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똥오줌을 스스로 가리려고 애쓰기까지 하는 모습이 무엇인가를 다니구치 지로 님은 미처 읽지 못해요. 다만 ‘기록’만 해요.
이럴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이럴 수 있겠구나 싶어요. 마음으로 속삭이지 못하니까, 개를 열 몇 해 기르면서도 막상 개하고 마음말을 주고받지 못하는걸요. 개한테 밥을 주고 마실을 시킨다 해서 ‘개 키우기’가 되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아이를 낳은 다음 아이한테 밥을 주고 조금 같이 놀아 주면 ‘아이 키우기’가 될까요?
- “이곳마저 주택지가 된다니.” “그러게. 여기도 점점 바뀌는구나.” “여기에 숲이 있었을 때는 (개) 탐한테 좋은 산책길이었는데.” (15쪽)
- “링거로 영양제를 줬으니 상태를 두고봅시다. 정말 생명력이 강한 개군요. 잘 버티고 있어요. 정말로.” (39쪽)
마음으로 살아가는 목숨입니다. 사람도 개도 나무도 꽃도 모두 마음으로 살아가는 목숨이에요. 몸뚱이는 마음이 깃든 놀이터예요. 몸뚱이가 대단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몸뚱이에 깃든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찬찬히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노랗게 잎사귀 벌리는 꽃송이 마음을 읽어 보셔요. 꽃송이 하나 있기에 아무 땅이나 함부로 파헤칠 수 없어요. 내 새끼손톱보다 작은 풀개구리 마음을 읽어 보셔요. 풀개구리 하나 살기에 아무 멧자락이나 함부로 구멍을 뚫어 고속철도나 고속도로가 지나가도록 하는 일은 벌이지 못해요.
사람들 누구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사람들 누구나 나무랑 풀이랑 새랑 구름이랑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 누구나 시골을 떠나 서울로 도시로 몰려들면서 ‘나무랑 이야기 나누던 넋’을 내려놓아요. 서울이 좋고 도시가 좋다며 ‘풀이랑 속삭이던 얼’을 내버리고 말아요. 서울과 도시에서 일거리를 찾고 문화를 누린다고 말하면서 정작 ‘새랑 구름이랑 뛰노는 꿈’을 스스로 잊고 말아요.
나무하고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요. 꽃하고 속삭이지 못하는 사람은 동무하고도 이야기를 섞지 못해요. 새랑 함께 노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책을 읽’어도 글자와 줄거리만 훑지 글줄에 깃든 사랑이 무엇인가를 아로새기지 못해요.
- 보로는 먹이도 먹지 않았다. 새끼들 걱정에 밥도 편히 먹을 수 없는 걸까. 보금자리 근처에 먹이를 옮겨 주니 허겁지겁 먹는다. 어느 날, 집에 와 보니 보금자리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놀라서 근처를 찾아보니, 전화 탁자 밑에 보로와 새끼들이 있었다. 보금자리를 옮겨서 적으로부터 새끼와 자기 몸을 지킨다, 놀라우리만큼 어미답다. 그리고 순식간에 새끼들은 성장했다. 호기심이 왕성하다. 느릿느릿 엉금엉금 기어다닌다. 어미 보로는 새끼들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보로를 완전히 다시 보게 되었다. 새끼를 낳고 난 뒤 갑자기 보로가 볼품없어졌다. (68∼69쪽)
- 보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한 마리가 모자란 것을 알아챘다. 새끼를 부르며 여기저기 찾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새끼가 갖고 놀던 장난감을 물고 걸어다녔다. (85쪽)
만화책 《개를 기르다》는 개와 고양이와 알프스산을 ‘지켜본’ 일기장이로구나 싶습니다. 이른바 ‘관찰일기’입니다.
관찰일기는 관찰일기대로 값어치가 있습니다. 그러면, 생각해 봐요. 왜 아이들한테 콩 한 알 꽃그릇에 심어 지켜보도록 이끄는가 곰곰이 헤아려 봐요. 아이들이 씨앗 한 알 심어 흐드러진 열매를 얻기까지 풀포기 하나 지켜보도록 하는 뜻이 어디에 있는가 찬찬히 짚어 봐요.
작은 싹 하나, 작은 줄기 하나, 작은 잎사귀 하나, 작은 꽃망울 하나, 마지막으로 작은 열매 하나, 이 하나하나를 마주하고 함께하는 기쁨이란 무엇인지 돌이켜볼 수 있기를 빌어요. 씨앗 한 알 심은 사람은 내 어버이와 살붙이만큼 꽃그릇 하나를 정갈히 건사하고 아껴요.
- “아마 너희 엄마도 마찬가지일 거야. 누구한테 힘들다는 소리도 못 하고 6년 동안 혼자서 아끼만 소중히 키우며 살았잖아. 그건 정말 힘든 일이야. 그러니까 엄마를 믿어 봐. 엄마가 좋아하는 사람이잖니. 분명 좋은 사람일 거야.” “응.” (117쪽)
왜 이렇게까지 살려고 하는가, 하는 물음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나 스스로 왜 ‘안 죽으려 하’고 ‘왜 살려고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왜 오늘 하루를 새롭게 살면서 눈을 뜨고 밥을 먹으며 말을 하는지를 따숩게 생각할 노릇입니다.
개한테만 묻지 마셔요. 개를 기르던 당신 마음속으로 물어 보셔요. 당신은 왜 살아가려고 하나요. 당신은 무엇 때문에 서울에서 살아가나요. 당신은 무엇 때문에 시골에서 살아가나요.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런 글을 쓰고 저런 글을 읽나요. 당신은 무엇 때문에 아이를 낳아 함께 살아가고, 당신은 무엇 때문에 아파트를 마련하거나 시골집을 마련하거나 골목집을 마련해서 살림을 꾸리는가요. 당신은 무엇 때문에 집안일을 안 하거나 집안일을 도맡는가요. (4345.11.13.불.ㅎㄲㅅㄱ)
― 개를 기르다 (다니구치 지로 글·그림,박숙경 옮김,청년사 펴냄,2005.9.26./7500원)
(최종규 . 2012 - 만화책 즐겨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