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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은 열두 달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76
엘사 베스코브 글.그림, 김상열 옮김 / 시공주니어 / 2006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날마다 꿈을 꾸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07] 엘사 베스코브, 《일 년은 열두 달》(시공주니어,2006)
한 해는 열두 달입니다. 열두 달은 저마다 다릅니다. 첫달과 섣달은 다르고 칠월과 팔월은 다릅니다.
한 달은 얼추 서른 날입니다. 서른 날은 저마다 다릅니다. 1일과 30일이 다르고, 15일과 16일이 다릅니다.
하루는 스물네 시간입니다. 00시와 23시가 다르고, 12시와 13시가 다릅니다.
한 시간은 육십 분입니다. 육십 분 또한 모두 다르고, 다 다른 육십 분은 다 다른 일 분으로 이루어지는데, 다 다른 일 분 또한 다 다른 육십 초가 모여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느 만큼 느끼며 살아가나요. 1초와 1분을 느끼며 살아가나요. 한 달과 한 해를 느끼며 살아가나요. 또는 한 사람이 나고 죽는다 하는 ‘온삶’을 느끼며 살아가나요. 지구 같은 별 하나가 나고 사라지는 ‘별삶’을 느끼며 살아가나요.
.. 너, 이번 주에 뭐 할 거야? 어휴! 날마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월요일엔 누렁소와 얼룩소 젖을 짜고 화요일엔 우유에서 크림을 걷어 내고 수요일엔 버터를 만들고 목요일엔 남은 우유로 치즈를 만들고 금요일엔 온종일 빵을 굽고 토요일엔 시내에 나가 버터와 치즈를 팔고 일요일엔 빵에 버터와 치즈를 발라 먹지 .. (5쪽)
꽃이 피는 봄이라 하는데, 꽃은 봄에도 피고 여름에도 피며 가을에도 핍니다. 그리고, 겨울에까지 꽃이 피어요.
꽃은 봄에도 피었다가 지고, 여름에도 피었다가 집니다. 꽃이 지면서 열매가 맺고 씨를 터뜨립니다. 꽃이 지고 나서 열매는 들새와 멧새도 먹고, 들짐승이랑 멧짐승도 먹습니다. 여기에 사람도 열매를 먹어요.
능금이란 능금꽃이 지고 난 다음 맺는 열매입니다. 포도란 포도꽃이 지고 난 다음 맺는 열매입니다. 살구란 살구꽃이 지고 난 다음 맺는 열매입니다.
감자도 그래요. 감자꽃이 지고 나서야 감자알이 맺어요. 오이꽃이 지고 나서야 오이알이 맺고, 호박꽃이 지고 나서야 호박알이 맺어요.
무도 배추도 당근도 꽃이 핍니다. 부추도 마늘도 파도 꽃이 핍니다. 꽃이 피지 않는다는 무화가 한 가지가 있으나, 느티나무는 느티꽃을 피우고 은행나무는 은행꽃을 피워요. 참나무는 참꽃일까요? 대나무는 대꽃일까요?
그러고 보면, 사람들도 꽃을 피우겠지요. 사람들도 서로 아끼고 보살피는 넋을 한 자리에 그러모아 사랑꽃을 피우고, 사랑열매를 맺으며, 사랑씨앗 남기겠지요.
온누리 모든 아이는 사랑으로 태어납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는 사랑을 누리며 무럭무럭 커서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된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누린 사랑을 밑바탕으로 다지면서 새로운 사랑을 새삼스럽게 펼칩니다.
.. 밖에는 해님이 웃음지으며 줄줄이 썰매 타고 씽씽 언덕을 내달리는 우리를 내려다보지. 동장군은 아직 물러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자작나무 가지에 움튼 새싹이 봄소식을 전해 줄 거야 .. (8쪽)
날마다 꿈을 꿉니다. 날마다 즐겁게 잠들고 즐겁게 일어나서 즐겁게 꿈을 꿉니다. 언제나 사랑을 합니다. 언제나 즐겁게 사랑하고 즐겁게 노래하며 즐겁게 밥을 먹습니다.
길에서 스치는 할머니마다 우리 아이들한테 사탕 한 알을 쥐어 주더라도, 고맙게 받고 맛나게 먹는 밥이 되겠지요. 내가 아침저녁으로 아이들한테 차려서 내미는 밥상 또한 서로서로 맛나게 누리는 숨결이 되겠지요.
바람을 마십니다. 아이들이 시골집에서 시골바람을 마십니다. 아이들과 시골집에서 살아가는 어버이인 나 또한 시골바람을 마십니다. 어버이인 내가 마시는 바람을 아이들이 나란히 마십니다. 어버이인 내가 누리는 햇살을 아이들이 함께 누립니다. 어버이인 내가 바라보는 곳을 아이들이 다 같이 바라봅니다.
아이들 생각한다며 ‘돈을 더 많이 버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 아이들 옷을 사 입히거나 밥을 해 먹이지는 못 합니다. 서로 얼굴을 보고, 함께 길을 거닐며, 같이 먹고잘 때에 비로소 삶이니까요.
비싼 밥을 먹는다고 맛나지 않아요. 비싼 밥은 비싼 밥일 뿐이에요. 값싼 밥을 먹는대서 맛없지 않아요. 값싼 밥을 먹더라도, 어버이인 내 손길을 사랑스레 담으면 사랑스레 나눌 밥이 돼요. 비싼 옷을 입힌대서 아이들이 환하게 빛나지 않아요. 값싸거나 비싸거나 하는 금긋기 아닌, 사랑을 어떻게 얼마나 담아 옷 한 벌로 즐거운 삶을 이루는가 하는 대목을 살펴야지 싶어요.
자가용 없이 두 다리로 숲길을 걷거나 들길을 거닐면서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마음껏 두 다리로 이리 달리고 저리 뛰면서 숲을 느끼고 들을 받아들입니다. 햇살은 아이들 등허리와 내 팔다리로 스며듭니다. 바람은 아이들 머리카락과 내 고무신으로 감겨듭니다.
비행기를 타고 멀디먼 어느 나라로 다녀야 나들이가 되지 않아요. 아이들 손을 잡고 들길을 걸어도 나들이가 돼요. 세발자전거를 타는 아이가 마당을 빙빙 돌아도 자전거마실이 돼요. 꼭 전국순례나 세계여행을 할 때에 자전거마실이 되지는 않아요. 텃밭에서 풀을 뜯어서 먹고, 감나무 한 그루에서 감알을 얻어서 먹어요. 들에서 나는 벼를 반가운 쌀밥으로 나누어 먹고, 이웃 밭에서 자라는 마늘이며 무이며 배추이며 즐거이 나누어 먹어요.
.. 자작나무 부인님! 어두운 얼굴로 서 있지 말고 연둣빛 댕기를 늘어뜨려 보세요. 개암나무 꽃을 보세요. 샛노란 앵초도 보세요. 숲바람꽃도 활짝 피었지요. 공손히 인사하는 버드나무가 보이나요? 연둣빛 잎사귀들을 수천수만 개 펼쳐 보세요. 그러면 세상 모든 것이 기쁨에 넘쳐 반짝반짝 빛날 거예요 .. (14쪽)
햇살이 노래하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습니다. 바람이 춤추는 무늬를 바라보며 책을 읽습니다. 엘사 베스코브 님은 《일 년은 열두 달》(시공주니어,2006)이라는 그림책을 빚습니다. 스웨덴 봄날과 겨울날이 물씬 묻어나는 그림책입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 일손을 거드느라 부산하고, 어머니와 아버지하고 숲에서 노느라 구슬땀을 흘립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나무하고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풀과 어깨동무하고, 꽃이랑 인사를 나눕니다.
그림책을 펼치며 문득문득 ‘참 어여쁘네’ 하는 말이 절로 튀어나옵니다. 저마다 산뜻하게 웃고 상큼하게 노래합니다. 서로서로 시원스레 속삭이고 싱그러이 뛰놉니다.
.. 사과야, 빨간 사과야, 넌 힘든 일 한번 없었지? 저 높이 나뭇잎에 둘러싸여 빨갛게 익어 가며 즐겁기만 하잖아. 우리처럼 학교 다닐 필요도 없고. 하지만 오래가진 못할걸. 바닥으로 툭 떨어지거나 갑자기 바구니 속에 담기게 될지도 몰라. 그럼 친구들끼리 서로서로 부딪혀 시퍼런 멍이 들 거고. 사과야, 빨간 사과야, 내 말 듣고 있니? 어서 사뿐히 뛰어내려! 내가 널 받을 테니.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우리와 함께 학교에 가면 얼마나 좋니 .. (22쪽)
과학자가 될 아이들이 아닙니다. 연예인이나 가수나 배우가 될 아이들이 아닙니다. 축구선수나 야구선수가 될 아이들이 아닙니다. 9급공무원이나 5급공무원이 될 아이들이 아닙니다. 국회의원이나 군수가 될 아이들이 아닙니다. 과일장수나 옷장수가 될 아이들이 아닙니다.
삶을 빛낼 아이들입니다. 삶을 사랑할 아이들입니다. 삶을 꿈꿀 아이들입니다. 삶을 노래할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누구나 ‘아이들’이었어요. 어제도 아이들이었고 오늘도 아이들은 우리 어른들입니다. 어른들 가슴에도 ‘어린이 넋’이 감돕니다. 삶을 빛낼 아이들처럼 삶을 빛낼 어른들입니다. 삶을 사랑할 아이들마냥 삶을 사랑할 어른들입니다. 삶을 꿈꿀 아이들하고 나란히 삶을 꿈꿀 어른들입니다. 삶을 노래할 아이들하고 오순도순 삶을 노래할 어른들입니다.
아이는 어른을 바라봅니다. 어른은 아이를 바라봅니다. 아이는 어른하고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어른은 아이하고 사랑을 주고받습니다. 새 하루가 찾아오고, 새 하루가 저뭅니다. 밤이 깊으며 별이 빛나고, 별이 가물가물 스러지며 햇살이 뿌옇게 밝는 새벽이 다가옵니다. (4345.10.25.나무.ㅎㄲㅅㄱ)
― 일 년은 열두 달 (엘사 베스코브 글·그림,김상열 옮김,시공주니어 펴냄,2006.12.12./8000원)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