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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삐라로 묻어라 - 한국전쟁기 미국의 심리전
이임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10월
평점 :
전쟁과 경쟁은 왜 생기는가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54] 이임하, 《적을 삐라로 묻어라》
- 책이름 : 적을 삐라로 묻어라
- 글 : 이임하
- 펴낸곳 : 철수와영희 (2012.10.19.)
- 책값 : 25000원
두멧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깊은 밤에 까만 하늘을 점점이 빛내는 별무리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크고작게 보이는 별은 저마다 다른 빛을 뽐냅니다. 지구에서 퍽 밝게 보이는 별이 있고, 지구에서 하나도 안 보이는 별이 있어요. 지구에서 보이는 별이라 해서 ‘있는’ 별이고, 지구에서 안 보이는 별이라 해서 ‘없는’ 별은 아니에요.
먼먼 옛날에는 저 별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합니다. 밤하늘 반짝이는 작은 점을 언제부터 누가 ‘별’이라는 이름을 붙이며 바라보았을까 궁금합니다.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마냥, 지구도 저 별에 깃들어 바라볼 때에는 똑같은 ‘별’인 줄 느끼는 사람은 예나 이제나 얼마나 되랴 궁금합니다.
과학자뿐 아니라 여느 사람도 때때로 궁금하게 여길 텐데, 저 숱한 별들 가운데에는 지구처럼 온갖 목숨이 얼크러진 곳이 있겠지요. 어쩌면 지구별처럼 끔찍한 전쟁과 경쟁이 춤추는 곳이 있을는지 모르고, 지구별과 달리 온통 사랑과 믿음으로 이루어진 곳이 있을는지 몰라요. 지구별처럼 기계물질문명이 판치며 숲을 망가뜨리고 사람 스스로 사람을 깔보는 곳이 있을는지 모르며, 지구별과 달리 다 다른 목숨이 다 다른 목숨을 서로 아끼고 돌보는 곳이 있을는지 몰라요.
.. 극동사령부는 전쟁이 발발한 지 24시간도 안 되어 주한 미국 군사 고문단이 사용할 삐라를 준비했다. 최초의 심리전 작전은 6월 28일 공군 C-46 수송기로 ‘미국이 국제연합에 전쟁 개입과 원조를 요구했으므로 그동안 참고 저항하라’는 내용의 삐라를 뿌리면서 시작됐다 … 미국에서 온 의복과 선물을 받고 웃음이 떠나지 않는 한국의 고아 강구라는 아이를 언급하면서 이는 미국의 오랜 관습이라고 말한다. ‘인정 많은 미국인’이라는 이미지를 쌓으려 〈자유세계〉는 미군이 아이들을 돌보는 사진이나 원조하는 사진도 종종 실었다 … 1950년 11월까지 뿌려진 삐라는 1억 2000만 장이었다. 1951년 12월까지의 누적된 삐라 살포량이 9억 6000만 장이므로, 1951년 뿌려진 삐라는 1950년도의 7배가 넘는 8억 4000만 장가량이 되는 셈이다 .. (22, 104, 251쪽)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보금자리가 있는 곳에 천천히 마을이 이루어집니다. 이웃이 없더라도 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서 살림집을 차츰 넓혀야 해요. 때로는 새 살림집을 지어야 해요. 다 큰 아이들은 스스로 짝을 맺기도 하고, 짝을 맺으며 새 아이를 낳기도 하겠지요.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어떻게 배우며 크는가에 따라 달라질 테지만, 사랑을 먹고 자라는 아이들은 사랑을 누리고 사랑을 펼쳐요. 사랑으로 자란 아이한테는 미움이나 다툼이 깃들지 않을 뿐더러, 미움도 다툼도 몰라요. 사랑보다 경쟁과 전쟁, 시험공부와 지식외우기 따위로 길들인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어른 나이와 몸집이 된 뒤에 경쟁과 전쟁을 드러내요. 어릴 적부터 시험공부와 지식외우기로 길든 어른이 이녁 아이한테도 똑같이 시험공부와 지식외우기를 물려줄밖에 없어요. 이것 말고는 모르거든요.
전쟁이 터지는 싹은 바로 나한테 있습니다. 내가 어릴 적부터 무엇을 보고 느끼고 겪고 자랐는가에 따라 삶터를 이루는 얼거리가 달라집니다. 내 마음속에 싸움이나 미움이 또아리를 틀면, 이 싸움이나 미움이 차츰 커지면서 바깥으로 번져요. 어떤 우두머리 몇몇이 일으키는 싸움이나 미움이 아니에요. 우두머리 몇몇이 일으키는 싸움이나 미움이라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 사랑과 믿음만 자란다면, 어떠한 싸움이나 미움에도 휩쓸리지 않아요.
맹자 어머니는 아이를 생각하며 삶자리를 자꾸 옮겼어요. 맹자 어머니는 이녁 아이도 이녁 아이라 하지만, 맹자 어머니 당신부터 ‘옳고 바르며 착하고 고운 삶’을 스스로 누리고 싶어요. 맹자 어머니 스스로 옳고 바르며 착하고 고운 삶을 누릴 때에 당신 아이한테도 옳고 바르며 착하고 고운 삶을 이야기할 수 있어요. 스스로 누리지 못하는 삶이라면 아이한테 이야기하지 못하고 물려주지 못하며 알려주지 못해요. 스스로 누리고 즐기는 삶결이 고스란히 아이한테 이어져요. 스스로 좋아하며 사랑하는 숨결이 하나하나 아이한테 대물림되어요. 돌이켜보면, 맹자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아이를 잘 가르치는 일’보다 ‘스스로 잘 살아가는 일’을 깨달았다고 할 만해요. ‘아이를 잘 가르치는 길’을 찾았다기보다 ‘스스로 삶을 잘 가꾸는 길’을 찾았다고 할 만해요.
.. 육군본부 심리전과에도 만화가 김용환을 비롯해 문학가 윤석중·신태환·민병태·정상충·심정섭 등이 소속되어 선전 활동에 참여했다. 육군본부에서는 〈사병만화〉를 발행했다. 일본 교토 미술전문학교에 다니던 김종래도 정보 계통의 심리전 관련 부서에서 일했는데 그가 하는 일은 지리산 빨치산을 회유하는 삐라를 만드는 일이었다 … 대한민국 국방부장관의 명의로 뿌려진 이 안전보장 증명서는 위협과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나아가 투항은 정의와 대의를 위한 길이기에 귀순할 때 중국군을 잡아오거나 목을 잘라오면 특별히 후대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 (64, 110쪽)
자동차 오가는 소리를 늘 듣는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자동차를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매캐한 바람이 가득한 도시에서 공장이나 아파트나 학교나 공공기관 시설을 늘 마주하는 아이들은 이 같은 건물을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숲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숲내음과 숲바람을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바닷가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갯내음과 바닷바람을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들판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신나게 뒹굴거나 구르는 들살이를 아주 마땅하게 받아들입니다.
어린이집에서 영어노래를 부르고 영어만화를 보며 영어그림책을 배우는 아이들은 무엇을 몸으로 받아들일까요. 초등학교부터 시험공부에 얽매인 채 지식과 교과서를 머리에 한가득 집어넣는 아이들은 무엇을 마음으로 받아들일까요.
아이들은 누구나 ‘내 어버이 대학교 졸업장’을 따지지 않습니다. 아기가 젖을 물며 ‘내 어머니가 무슨 대학교를 나왔을까?’ 하고 묻지 않습니다. 다섯 살이든 일곱 살이든 열 살이든, 아이들이 밥을 먹으면서 밥상 차린 어버이한테 ‘아버지는 어떤 대학교 어떤 학과를 다녔어요?’ 하고 묻지 않아요.
무등을 타는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어떤 책을 읽었느냐고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버이 손을 잡고 들길을 걷는 아이들이 어버이한테 돈을 얼마나 버느냐고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깊은 밤 새근새근 잠드는 아이들이 자장노래 부르는 어버이한테 몸매 치수를 물을 까닭이 없습니다.
어른들은 스스로 무엇을 알고 느끼며 살아야 즐거울까요. 아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알고 느끼며 살아가기에 즐겁게 뛰놀까요.
.. 해방 뒤 미 공보원은 〈월간 아메리카〉에 미국이 기존 자유방임주의적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적 공산주의를 극복한 체제라고 알리는 글들을 실었다. 이 글들은 미국을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하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복지를 책임지는 국가로 소개했다. 미국은 기업도, 노동자도, 연방정부도 경제제도를 독자적으로 농단하지 못하며 경제 발전을 위해 새로운 권력관계를 형성한 나라였다(고 스스로 밝힌 셈이다) … 1951년 심리전 비용은 3억 달러가량이 들었다는 추정이 가능하며, 삐라 살포량만을 비교하면 1억 8000만 달러가량이 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살포 방식에 따른 비용, 라디오 확성기 방송 이용 따위를 감안할 때 1951년 소요된 심리전 비용은 적어도 2억 달러를 넘어 3억 달러에 가까울 것이다. 심리전에 들인 단순 추정 비용도 2년 동안 유엔이 한국에서 사용했다는 원조와 재건 비용보다 많다 .. (207, 252쪽)
가을을 맞이해 온 시골마다 나락을 베어 털고 말리기에 부산합니다. 가을을 맞이한 시골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집에 들러붙을 겨를이 없습니다. 하루 내내 들판에서 들일을 하고 들밥을 먹습니다.
가을 들판을 바라봅니다. 어느 들판에나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보일 뿐, 젊은 가시내나 사내는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어느 들판에나 어린이와 푸름이는 그림자조차 안 보입니다. 어린이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이나 보육원으로 가고, 푸름이는 중학교나 고등학교로 갑니다. 시골마을조차 ‘시골아이’ 아닌 ‘학교아이’입니다. 아이들은 바쁜 가을일을 거들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쁜 가을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리라 느낍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치르는 중간시험이나 기말시험이나 학력평가나 수능시험이나 모의시험이 대수롭습니다. 날마다 먹는 밥을 갈무리하는 가을일은 아이들한테 대수롭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들판에서 일한다지만,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는 들판에 없거든요.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는 회사에 있거나 공장에 있습니다.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는 들판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살아갑니다.
뿌리를 캐면,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부터 이녁 아이들을 들판에서 내쫓고 학교로 보냈습니다. 아이들이 들판을 떠나 학교를 다녀 졸업장을 거머쥐어야 비로소 ‘고된 들일’에서 벗어나 느긋하게 돈을 많이 벌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겼어요. 아니, 이렇게 배웠습니다. 아이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학교 보내기’가 ‘아이키우기’라고 배웠어요. 나라가 이렇게 가르치고, 정부가 이렇게 가르쳐요. 사회가 이처럼 가르치고, 신문과 방송이 이렇게 가르쳐요.
아이들은 반드시 제도권학교에 다녀야 하는 줄 여겨요. 아이들이 제도권학교에 들어가서 무엇을 배우는 줄 하나도 모르면서, 그저 아이들을 제도권학교에 넣어요. 아이들이 제도권학교에서 교과서 지식만 외우면서 시험공부만 하는 줄 헤아리지 못해요. 아이들이 학교 졸업장은 여럿 거머쥐지만, 정작 삶을 일구는 슬기는 조금도 살피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며 누리지 못하는 줄 깨닫지 못해요.
.. 귀환계획은 민간인을 포로로 다루고 억류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민간인을 포로와 같이 다룬 까닭은 근거 없는 의심에서 출발했다. 얼굴색만으로 적을 구분할 수 없었던 미군은 민간인을 근거 없이 의심했고, 이 의심은 한국전쟁 내내 일어났다. 피난민의 이동 금지나 피난민 심사와 수용소 운용은 모두 여기에서 출발했다 … 학교라는 공간에서 심리전은 다시 생산되고 심리전에서 말해진 가치들이 살아났다. 학교에서 심리전을 이용하는 방식은 아이들이 즐기는 노래나 놀이로 삐라를 살포하는 형태와 교과서로 하는 학습이었다 .. (229, 267쪽)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되면, 나라에서 운동경기를 꾀하든 전쟁을 꾀하든 ‘내 편 이겨라!’ 하고 외칩니다. 나라에서 운동경기를 괜히 꾀하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제도권교육을 괜히 의무교육으로 시키지 않습니다. 나라에서 제도권교육을 나라돈으로 베푸는 줄 잘못 알지만, 나라돈이란 바로 ‘내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요, 나라님은 ‘내 돈’으로 이녁 일삯을 챙기고 이녁 큰집을 짓는 한편, ‘내 돈 가운데 부스러기 얼마쯤’으로 제도권학교 틀을 세웁니다. 그러니까,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교과서를 만든 사람도 바로 나요, 입시지옥을 만든 사람도 바로 나예요. 교과서 굴레에서 벗어나야 할 사람은 바로 나이며, 입시지옥을 털어낼 사람도 바로 나입니다. 한 마디로 간추린다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다고 하는 전쟁은 ‘우두머리가 우리들 모두를 길들여서 우리 스스로 치고받도록 부추기는 일’입니다. 싸우는 사람도, 죽는 사람도, 다치는 사람도, 적을 만들고 적을 미워하는 사람도, 바로 나예요. 잃는 사람도, 빼앗기는 사람도, 슬픈 사람도, 괴로운 사람도, 바로 나예요.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기에 내 삶이 나아지지 않아요.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가 들어서기에 내 삶이 좋아지지 않아요.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이 나라에서 치르기에 내 삶이 발돋움하지 않아요. 경제발전을 이룬대서 내 삶이 훌륭해지지 않아요.
나무 한 그루와 함께 풀 한 포기를 가꿀 때에 내 삶이 나아져요. 풀벌레와 멧새 노랫소리를 들을 때에 내 삶이 좋아져요. 들길을 아이 손 맞잡고 거닐 때에 내 삶이 발돋움해요. 낮하늘이 얼마나 파란가 느끼고 밤하늘이 얼마나 까만가 깨달을 적에 비로소 내 삶이 훌륭하게 거듭나요.
제도권학교를 세워서 의무처럼 다니게 하는 정부란 곧 제도권정부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제도권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사랑하지 못하게끔 가로막는 제도권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돌보면서 가꾸고 북돋우며 아끼는 길을 틀어막는 제도권입니다.
전쟁무기와 군대는 나라는커녕 마을이나 보금자리를 지키지 않아요. 화학방정식과 화학약품과 가공식품은 아이 목숨도 어른 목숨도 건사하지 않아요. 졸업장과 계급장과 신분증은 사람들 가슴에 깃든 사랑을 쳐다보지 않아요.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뜻이라면 오직 하나 사랑 때문이에요. 사랑을 누리기에 즐겁고, 사랑을 느끼기에 즐거우며, 사랑을 나누기에 즐겁습니다. 오직 사랑 하나를 누리고 느끼며 나누려고 저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요. 오직 사랑 하나 빛내고 빚으며 돌보려고 저마다 새로운 숨결을 받아 태어나요.
내 이웃을 적으로 삼아 죽이려 하는 전쟁이나 경쟁은 사랑이 아니에요. 내 이웃 숨결을 끊는 사람은 내 숨결 또한 끊는 꼴이에요. 내 옆에는 적 아닌 이웃이 있고, 내 가슴속에는 하느님이 깃들듯 내 이웃 가슴에도 하느님이 깃들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길이란, 나를 옳게 바라보면서 나를 사랑하는 길이요, 나를 옳게 바라보고 사랑하듯 내 이웃과 동무 모두 옳게 바라보며 사랑하는 길이에요.
.. 교과서, 나아가 국가는 나라, 겨레, 국가 같은 추상적인 관념으로 포장하여 아이(국민)들로 하여금 끝없는 충성과 희생을 요구했다. 나라와 민족, 세계 같은 추상적인 거대담론을 끊임없이 들먹임으로써 비록 어리지만 대단히 중요한 일에 참여한다는 허위의식을 어린이들에게 심어 주고 현실에 대한 성찰과 비판의 계기를 제거하고 있다 … 삐라는 국가가 없으면 개인도 없기 때문에 국가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하라고 했고, 공산주의는 애국심이나 애국주의 사상이 없기 때문에 불쌍하다고 했다 … 어려서부터 남을 짓밟고 성공하는 것이 유일한 가치이자 생존 방법이라고 배우고 그 결과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되는 현실, 그런 상황에서 더 무엇을 기대하느냐는 반문은 나를 비롯한 대부분 사람들을 당황하게 한다. 왜 그럴까? 한국 사회는 무조건 1인자가 되어야 한다 … 남을 짓밟고 성공해 1인자가 되어야 한다는 가치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지지받는 까닭은 전쟁 경험과 학습받은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이기도 하다 … 냉전세대는 성인이 되어서도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진리로 알고 지내왔다 .. (290, 313, 322, 437쪽)
이임하 님이 쓴 인문책 《적을 삐라로 묻어라》(철수와영희,2012)를 읽습니다. 한국전쟁 무렵 미국 군대가 한국땅 곳곳에 뿌린 삐라를 들추어 냅니다. 이임하 님은 삐라에서 ‘삶 발자국’을 하나하나 읽어내고 되새깁니다. 나라와 나라, 또는 정부와 정부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 속살 가운데 아주 작은 구석인 ‘심리 전쟁’, 이 가운데에서도 ‘삐라 뿌리기’가 어떠한 모습인가를 차근차근 밝힙니다. 전쟁에 휩쓸리거나 휘둘리는 사람들 머리와 마음이 어떻게 길들여지는가를 들려주고, 전쟁을 일으키거나 부채질하는 권력자는 무엇을 꾀하거나 노리는가를 슬그머니 보여줍니다.
오늘날 제도권사회는 진작 만들어진 뼈대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뼈대가 아니에요. 천민자본주의라 하든 신자유주의라 하든 자유무역협정이든 무엇이든, 하루아침에 짠 하고 나타나지 않아요. 먼먼 옛날부터 천천히 이빨을 드러내며 스며들어요. 오랜 나날에 걸쳐 사람들을 홀리고 이끌며 가두어요.
시골사람이 왜 도시로 빠져나갈까요. 시골사람을 왜 도시로 잡아들일까요. 시골에는 왜 할머니 할아버지만 남길까요. 왜 젊은 사람은 흙을 안 만지면서 밥을 먹는 사회 얼거리를 만들까요. 왜 젊은이와 푸름이와 어린이 모두 흙일을 모르도록 교과서를 짜고 신문·방송을 엮으며 책을 만들까요. 왜 사람들 스스로 옷·밥·집을 못 빚고 못 누리도록 내몰까요. 왜 모든 일을 돈으로 하도록 만들고, 왜 돈이 없으면 굶어죽기라도 한다는 듯 가르칠까요. 왜 돈버는 일자리만 이야기하고, 삶을 짓는 꿈과 사랑은 조금도 이야기하지 못하도록 꽁꽁 틀어막을까요.
.. 삐라의 내용을 들으면 미국적 신조는 결국 ‘미국인’에게만 적용됨을 알 수 있다. ‘자유세계’에서의 최고의 모델로 선전하는 미국식 모델은 미국을 뺀 다른 곳에서는 선언의 수준에 머물렀다 … 한국전쟁을 필두로 해서 냉전에 기반한 그 어떤 전쟁도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진보적 가치를 생산해내지 않았다 .. (421, 429쪽)
한국전쟁으로 한국땅이 짓밟히고 앓던 무렵, 미국 군대는 삐라로 한국땅을 덮었다고 합니다. 끔찍하도록 뿌려댄 삐라는 똥종이로도 쓰이고 편지종이로도 쓰였답니다.
입시전쟁과 취업전쟁과 생존전쟁이 벌어지는 오늘날 한국땅은 누가 어느 곳을 어떻게 짓밟는다고 할 만할까 헤아려 봅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무엇으로 뒤덮였다고 할 만할까 생각해 봅니다. 여기저기 넘실거리는 돈은 어떻게 쓰이는가요. 곳곳에서 출렁거리는 졸업장과 자격증과 신분증은 무엇을 보여주는가요.
《적을 삐라로 묻어라》를 쓴 이임하 님은 당신 아이가 ‘제도권학교’에 시달려 아파하는 모습을 아주 어렴풋이 느꼈다고 말합니다. 이 책을 내놓고 나서는 ‘어렴풋이’에서 ‘또렷이’로 달라졌을까 모르겠습니다. 이임하 님 아이가 제도권학교 아닌 대안학교를 다니고 싶다 스스로 말한다는데, 그러면 이임하 님이 살아가는 곳은 어떤 데인가 궁금합니다. 글쓴이 이임하 님은 ‘제도권’에서 살아가나요, ‘대안’에서 살아가나요. 이임하 님 아이가 찾아나서려는 ‘제도권’과 ‘대안’ 사이에는 어떤 삶이 있나요. 이임하 님은 스스로 어느 삶터에서 사랑을 일구며 누리고 나눌 수 있는가요. 사람은 ‘제도권’에서 살아야 사람일까요, ‘대안’에서 살아야 사람일까요, 아니면 ‘다른 어느 보금자리’를 느끼고 찾을 때에 사람일까요.
온갖 무기가 춤추는 전쟁통에는 삐라에 묻힌 사람들이, 온갖 숫자와 성적이 판치는 사회에서는 돈에 묻힌 채 허우적거립니다. (4345.10.16.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