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꺾는 마음

 


  큰아이는 꽃을 꺾습니다. 꽃을 꺾으면 네 목아지나 팔뚝을 꺾는 일과 같다고 이야기를 해 본 적 있으나, 아직 아이한테는 씨알이 안 먹히지 싶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아버지나 어머니는 밥으로 먹으려고 풀을 뜯습니다. 풀 목아지를 뎅겅뎅겅 꺾어요. 때로는 칼로 석석 베고요. 풀줄기를 꺾는 일이나 꽃줄기를 꺾는 일이나 서로 매한가지로 여길 만합니다. 아이한테 달리 할 말이 없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생각하기를, 풀줄기를 꺾으면 내 숨결을 이으려고 밥으로 삼지만, 꽃줄기를 꺾으면 눈으로 바라보고 몇 차례 만지며 한두 시간 즈음 지나면 시들어서 그만 내팽개치게 돼요. 그예 눈으로 바라보고 지나가도 즐거우며, 마음속에 담으며 오래오래 떠올려도 기쁠 텐데, 꽃줄기를 꺾으면 꽃 한 송이 숨결을 끊는 셈이 돼요.


  언제나 꽃이 가득 피어나는 시골마을에서 함께 살던 네 식구가 부산으로 여러 날 마실을 다녀왔습니다. 부산은 서울 못지않게 커다란 도시요, 길거리에는 나무가 드물고 풀이나 꽃도 드뭅니다. 관청에서 돈을 들여 심은 눈부셔 보이는 꽃이 있지만, 이 꽃은 함부로 꺾을 수 없습니다. 큰아이는 예뻐 보이는 꽃이 잔뜩 보이니 이 꽃들을 꺾으려 하는데, 차마 이 꽃은 꺾으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시골에서는 꽃을 꺾을 때에 안 말렸지만(아니, 못 말렸지만), 도시에서는 말립니다. 그런데, 계단이 가파른 골목동네를 오르내리며 조그마한 골목집에서 조그마한 꽃그릇에 심어 기르는 조그마한 꽃을 보고는, 아이가 스스로 “이 꽃은 안 꺾을래.” 하고 말해요.


  아이가 문득 읊은 말마디를 듣고는 퍼뜩 새 생각이 샘솟습니다. 그래, 시골에서는 어디에서나 흐드러진 꽃을 꺾고 놀다가 흙에 내려놓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도시에서는 골목꽃 한 송이를 꺾으면 이제 더 꽃이 없어요. 도시에서는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꽃이요, 시골에서는 손으로 만지며 하루 내내 즐기는 꽃이에요. 입에 넣어 냠냠 하고 씹어도 밥이지만, 눈으로 바라보다가 손으로 쓰다듬고 머리에 꽂을 때에도 밥이에요. 몸밥도 밥이요 마음밥도 밥이니까요.


  꽃을 꺾고 싶은 아이더러 나긋나긋 말합니다. 꽃송이 하나만 꺾자. 네 몫 하나랑 동생 몫 하나, 이렇게 두 송이만 꺾자.


  가을이 무르익어 겨울이 찾아들고, 바야흐로 겨울을 지나고 새봄이 찾아들면, 이제 온 들판에 새 봄꽃이 가득하겠지요. 그때가 되면 큰아이도 나도 ‘가을날 주고받던 얘기’를 몽땅 잊고는 들꽃을 꺾으며 풀숲에서 뒹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저러나 오늘도 아이는 꽃 한 송이를 꺾어서 놉니다. 밥상에도 올려놓고 머리에도 꽂습니다. 이러다가 꽃송이는 잊고 다른 데에서 놀고 흙을 뒤집으며 놉니다. 마당이며 텃밭이며 논둑이며 들판이며 마을이며 온통 꽃누리입니다. 꽃이 나요, 내가 꽃이고, 아이가 꽃이면서, 꽃이 아이입니다. 그래, 꽃꺾기를 놓고 무어라 할 까닭이 없겠구나. 내 모습이 꽃송이로 나타나고, 꽃송이가 나한테 스미잖아. (4345.10.14.해.ㅎㄲㅅㄱ)

 

(최종규 . 2012)

 

(자전거 이야기하는 글에 이 사진을 썼지만, 꽃 든 아이 모습이 좋아 다시금 이 사진을 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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