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 China 1997-2006, 이상엽 사진집
이상엽 지음 / 눈빛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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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을 찍건 한국을 찍건 똑같다
 [찾아 읽는 사진책 116] 이상엽, 《중국 1997-2006》(눈빛,2007)

 


  중국을 사진으로 찍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또는, 중국을 사진으로 찍으려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이상엽 님이 중국을 찾아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그러모은 사진책 《중국 1997-2006》(눈빛,2007)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사진책 이름으로 “중국”이라고 붙일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면서, 왜 사진쟁이는 이렇게 ‘이웃나라 나들이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낼 생각’은 하면서, 막상 ‘제 나라 삶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낼 생각’은 못 품을까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중국 1997-2006”이라는 이름을 걸기 앞서 “한국 1997-2006”이라는 이름을 걸 만하지 않으랴 싶어요.


  중국을 찾아가는 한국사람은 중국을 얼마나 널리 읽는다 할 만할까요. 중국을 돌아다니는 한국사람은 중국을 얼마나 깊이 헤아린다 할 만할까요.


  어떤 이는 울릉섬을 예닐곱 차례 나들이 하고서 울릉섬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내놓습니다. 어떤 이는 제주섬을 한두 차례 나들이 하고서 제주섬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엮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한두 해쯤 사진을 찍고서 서울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펴냅니다. 어떤 이는 부산에서 마흔 해쯤 살아가면서 부산 이야기를 사진책으로 꾸밀 엄두를 못 냅니다.


  아주 마땅한 소리입니다만, 누구나 스스로 읽은 대로 말합니다. 스스로 읽지 못한 모습은 말하지 못합니다. 중국땅을 밟으면서 밤하늘 달빛을 느낀 적이 있는 사람은 중국땅을 밟으며 느낀 밤하늘 달빛을 이야기합니다. 중국땅을 누비며 제비 날갯짓을 즐겁게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은 중국땅을 누비며 바라본 제비 날갯짓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중국땅을 드나들며 저잣거리 길바닥에서 헌책 하나 장만하며 찬찬히 읽은 적이 있는 사람은 중국땅 저잣거리 길바닥 책장수 삶자락을 가만히 톺아보는 글을 씁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며 들일과 밭일을 익히 하던 이라면, 또 나이 들어서도 시골에서 흙일을 하는 이라면, 중국땅을 돌아다니면서 ‘중국 시골살이’와 ‘중국사람 흙일’을 눈여겨봅니다. 집에서 언제나 아이들과 복닥이며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놀고 노래하며 밥을 먹던 이라면, 중국땅을 두루 훑는 동안 ‘중국 여느 어린이와 어버이’ 삶자락을 한결 애틋하며 사랑스레 바라봅니다.


  곧, 이상엽 님이 내놓은 사진책 《중국 1997-2006》은 중국을 바라보는 ‘열 해 발자국’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거꾸로 ‘중국을 거닐며 한국을 읽는’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중국에서 느끼는 중국 이야기이기도 할 테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라며 살아온 눈길과 손길과 마음길 그대로 중국에서도 느끼던 이야기라 할 만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중국 1997-2006”이 아닌 “한국 1997-2006”이라는 이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이 사진책에 실린 빛과 그림이 고스란히 나타나리라 느껴요.


  이상엽 님은 “흑룡담 기념촬영. 이제 중국에서 오지다운 오지도 찾기 힘들다. 리장 인근, 윈난성, 2005(32쪽).” 하고 적바림합니다. 그러면 ‘오지’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중국말(또는 한자말이나 일본 한자말)을 아무렇지 않게 써 버릇하니 말뜻도 말느낌도 말삶도 옳게 헤아리지 못하기 일쑤예요. 참말 ‘오지’란 어떤 곳일까요. 국어사전 말풀이를 따르면, ‘오지(奧地)’는 “해안이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대륙 내부의 땅. ‘두메’로 순화.”라 나옵니다. 그러니까, ‘오지’는 한국말 아닌 중국말이나 일본말이기 때문에 “순화해야 할 낱말”이라는 뜻이에요. 한국말로 올바로 바로잡아 ‘두메’라 하니까, 다시 국어사전에서 이 낱말을 찾아봅니다. 국어사전 말풀이로 ‘두메’는 “도회에서 멀리 떨어져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변두리나 깊은 곳”이라 합니다. 자, 그러면 ‘두메’란 어떤 곳일까요? 어렵다 싶은 물음은 아니겠지요? 두메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골’입니다.

 

 

 

 

 


  한국에서 시골다운 시골은 어디에 있을까 헤아려 봅니다. 서울사람이 느낄, 또는 도시사람이 느낄 시골다운 시골은 한국에서 어디쯤일까 헤아려 봅니다. 어떤 곳이 시골이고,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을 일구어야 시골일까요. 한국에서 시골이 시골답게 남아날 수 있을까요. 시골마다 온통 공장을 짓고 골프장을 지으며 고속도로이니 고속철도이니 때려짓는데다가, 4대강사업이니 무엇이니, 또 핵발전소이니 화력발전소이니, 송전탑이니 쓰레기매립지이니, 도시에는 안 짓는 ‘위험·위해시설’을 몽땅 시골에다 짓는 흐름이에요. 도시사람은 도시 한복판에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들여놓지 않으려고 똘똘 뭉쳐 반대를 해요. 이러면서 도시사람은 전기를 펑펑 쓰고, 도시에서 전기를 펑펑 쓸 수 있도록 하려고 시골마을 한복판에 핵발전소이든 화력발전소이든 짓겠다고 나서요. 돈(지역발전기금)을 줄 테니까 ‘깨끗한 시골 삶터를 망가뜨리’면서 시골 한복판에 발전소를 왕창 지으려고 해요.


  한국에 시골다운 시골이 사라지는 흐름이나 중국에 시골다운 시골이 사라지는 흐름이나 똑같습니다. 중국에서 시골다운 시골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면, 한국에서도 시골다운 시골을 찾아보기 어렵겠지요. 그러나, 중국 어디에나 시골다운 시골은 있어요. 중국 경제가 크게 발돋움하든 갑자기 곤두박질치든, 이런저런 경제나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이란 아랑곳하지 않는 고요하며 한갓지고 사랑스러운 시골마을이 있습니다. 이와 같아요. 한국에도 한국 경제나 정치나 사회나 문화나 교육이란 아랑곳하지 않는 조용하며 호젓하고 믿음직스러운 시골마을이 있어요.


  도시에 깃들어 살아가니까 시골을 모르고 못 느낄 뿐이에요. 도시사람 눈썰미로 바라보니까 시골을 못 찾고 못 껴안을 뿐이에요.


  그러나, 이상엽 님 사진책 《중국 1997-2006》이 아쉽다거나 서운하거나 어설프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왜냐하면 거의 모든 도시사람은 이와 같이 바라볼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뿌리를 도시에 두며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중국도 한국도 일본도 미국도 러시아도 파키스탄도 네팔도 베트남도 스리랑카도 티벳도 핀란드도 네덜란드도 어슷비슷 보일밖에 없습니다. 큰회사 최고경영자가 브라질을 찾아가면 무엇을 보려 할까요. 농사꾼 할머니가 칠레를 찾아가면 무엇을 보려 할까요. 젊은 도시내기 대학생이 영국을 찾아가면 어디에서 무엇을 보려 할까요. 아이들 여럿 보살피는 아주머니가 포르투갈로 나들이를 가면 어디에서 무엇을 보거나 느낄까요.

 

 

 

 

 


  삶이 바로 사랑입니다. 삶이 바로 눈길입니다. 삶이 바로 꿈입니다. 삶이 바로 생각입니다. 삶이 바로 책입니다. 이리하여, 삶이 바로 노래요 춤이면서 사진입니다.


  이상엽 님은 “정부가 준 것. 도로, 전기, 무선통신. 문제는 가진 것이 없다. 암도 티베트, 쓰촨성, 2005(178쪽).” 하고 적바림하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책 《중국 1997-2006》은 재미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을 찍건 한국을 찍건 똑같기 때문입니다. 중국을 찍은 사진을 읽으며 한국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진책 《중국 1997-2006》을 읽다가 가만히 생각합니다. 다 다른 삶터에서 다 다른 일을 누리는 사람들이 다 같은 때에 중국이든 한국이든 마실을 하거나 살아가면서 사진을 찍어 ‘열 해 삶 발자국을 그러모은’ 사진책을 엮어서 내놓을 수 있으면 참 재미있으리라 느낍니다. ‘똑같은 사진감’으로 사진을 찍는다 하더라도 백 사람은 백 가지 ‘다 다른 사진이야기’를 빚을 테지요. 또는 백 사람한테 한 해치 이야기를 맡겨, 첫째 사람은 2012년을 찍고, 둘째 사람은 2013년을 찍고, 셋째 사람은 2014년을 찍으면서, 해마다 ‘같은 곳’을 ‘다른 사람’이 죽 돌아보며 담은 사진들로 사진책을 엮어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재미나리라 느껴요.


  살아가는 대로 바라봅니다. 살아가는 대로 사랑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대로 사진기를 손에 쥐고 사진 한 장 곱다시 그립니다. (4345.10.11.나무.ㅎㄲㅅㄱ)

 


― 중국 1997-2006 (이상엽 사진,눈빛 펴냄,2007.1.26./45000원)

 

(최종규 . 2012 - 사진책 읽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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