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9.22.
 : 바다를 끼고 달리는 마실

 


- 포두면 남성리 이웃마을로 마실을 가기로 한다. 작은아이까지 함께 갈까 싶다가, 작은아이는 낮에 이마가 조금 뜨거웠고, 한참 낮잠을 자느라, 큰아이만 자전거수레에 태우고 달리기로 한다.

 

- 큰아이랑 둘이서 자전거를 달린다. 퍽 오랜만이라고 느낀다. 작은아이가 태어나기 앞서까지 이렇게 늘 둘이서 자전거를 달렸다. 큰아이는 세 살 무렵부터 자전거수레에 탔는데, 작은아이는 돌 언저리부터 자전거수레에 탔다. 오늘은 작은아이가 없어 한결 가벼운 자전거는 아니다. 이웃마을에 마실을 가느라 실은 책짐 무게가 제법 되어 여느 때처럼 두 아이를 실은 무게인 자전거이다. 발포 바닷가를 지나는 오르내리막을 달린다. 두 아이를 태우며 이만 한 힘으로 이만 한 고개를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발포를 지나 덕산마을로 넘어서려는데 고갯마루가 퍽 가파르다. 높이는 그리 안 높지만, 바닷물 찰랑이는 모래밭 너머 옆마을인 만큼, 고갯마루가 두 마을을 가른다. 이곳에 이러한 찻길이 없었을 옛날에는 두 마을이 어떻게 오갔을까. 아마 멧골을 타면서 오갔겠지. 꽤 가파른 멧골을 지게를 짊어지며 오갔겠지.

 

- 덕산마을을 지나며 생각한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며 바라보아도 예쁜 마을이구나 싶지만, 자전거를 멈추고 내려서야 비로소 얼마나 예쁜가를 알 만하겠다고 느낀다. 내가 살아가는 마을이든 이웃한 마을이든, 우리 보금자리가 어떤 모습이요 빛깔이며 내음인가를 헤아리자면, 두 다리로 천천히 걷다가 가만히 서서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안아야지 싶다. 하늘을 보고 땅을 본다. 바람을 마시고 햇살을 쬔다. 이러는 동안 천천히 마을과 숲과 삶과 꿈을 읽는다.

 

- 자전거에서 내려 살짝 다리쉼을 한 다음 더 달린다. 익금 나루터 옆을 지난다. 나루터 옆이니 또 바닷물 찰랑이는 모래밭 옆인데, 이곳에서 남성리로 넘어서는 고갯마루를 새삼스레 올라야 한다. 다섯 살 큰아이가 뒤에서 외친다. “아버지 힘내세요!” 그래, 힘낼게. 기운내서 이 고개를 넘을게.

 

- 땀 펑펑 흘리며 고갯마루를 다 넘는다. 논에 물을 대는 못 옆으로 난 논길을 달린다. 누렇게 익은 논 사이를 지나고 구불구불 시골길을 거쳐 이웃집에 닿는다. 이곳은 그러께 즈음 고흥에 자리잡은 이웃집이다. 오늘 이곳에서 모임이 있기에 찾아온다. 나를 뺀 모든 분들은 자가용을 몰고 왔다. 아마 다들 생각하리라. 시골에서 살아가려 한다면 자가용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 자가용 있으면 가뿐하겠지. 자가용 있기에 제법 먼 데도 다니겠지. 시골에서는 두어 시간에 한 차례 군내버스 지나가는데, 자가용 있으면 언제라도 어디라도 다닐 만하겠지. 그런데, 다들 자가용을 굴리려 하니까 군내버스도 훨씬 적게 다니지 않을까. 모두들 자가용을 몰려고 하니까 자꾸자꾸 새 찻길이 늘고, 숲이 줄며, 우리 삶터가 메마르고 말지 않을까. 저마다 자가용을 한두 대쯤 굴리니까,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빈터와 흙땅이 사라지는 셈 아닌가.

 

- 모임은 밤이 깊을수록 더 무르익는다. 나는 큰아이를 재워야 하기에 어둑어둑해질 무렵 일찍 빠져나온다. 천천히 까매지는 하늘을 본다. 달이 뜬다. 반달이다. 고운 반달이 조용한 시골마을을 덮는다. 뒷등만 켜고 앞등은 안 켠다. 저 멀리 앞에서 마주 달리는 자동차 보일 때에만 앞등을 켠다. 등불 하나 없는 호젓한 숲속 시골길을 불빛 없이 달리고 싶다. 꾸벅꾸벅 조는 큰아이가 이 호젓한 시골 저녁 기운을 느낄 수 있기를 빈다. 달빛에 기대고 별빛을 바라보며 집에 닿는다. 큰아이는 아주 곯아떨어졌다. 아이를 자리에 눕히고 땀투성이 몸을 씻는다.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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