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쪽지 2012.9.8.
 : 한복 입은 자전거

 


- 큰아이가 갑작스레 한복이 입고 싶다 말한다. 따로 명절에만 입을 옷이 아니기에 꺼내 준다. 예쁜 치마를 입었다며 좋아하는 아이는 홀가분히 뛰어놀기에는 그닥 안 좋은 치마저고리를 입고도 잘 논다. 우체국을 들러야 하기에 자전거를 마당에 꺼낸다. 두 아이 모두 수레에 타려고 수레 앞에 선다. 내가 태우지 않아도 작은아이조차 스스로 수레에 잘 올라탄다. 바람이 쌀쌀하기에 담요 한 장씩 건넨다. 집을 나서니 들판마다 참새가 떼를 지어 날아다닌다. 천천히 익는 곡식을 요리조리 콕콕 쪼아서 먹을까. 아직 덜 여물었어도 참새한테는 맛난 밥이 될까. 몇 백인지 모를 만큼 많은 참새들이 한꺼번에 파르르 날아오르니 두 아이 모두 입을 벌리며 바라본다. 면내 가는 길에 마을 어르신들이 길바닥에 깔아 놓고 경운기로 밟으며 털던 콩이 조금 흩어졌다. 몇 알을 주워 아이들 손에 얹는다. 자, 콩이야, 너희가 잘 만지며 콩을 느껴 봐. “이거 집에 가져가서 밥할 때에 넣으면 맛있게 먹어요.” 하고 말한다. 우체국에서 소포를 부치고서 가게에 들른다. 가게에 어떤 외국사람 부부가 들르는데, 큰아이 입은 한복이 예뻐 보이는지 자꾸자꾸 사진을 찍는다. 이 시골 깊디깊은 마을 가게에 어인 외국사람일까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들은 ‘러시아 기술자 부부’이다. 고흥 나로섬에 있는 우주기지에서 또 우주선을 쏘느니 마느니 한다면서 러시아 기술자들이 잔뜩 왔단다. 러시아 기술자 부부는 읍내 여관이나 면내 여관 같은 데에서 머문다고 한다. 저녁에 일을 마치면 시골마을을 두루 돌아다닌단다. 그렇구나. 생각해 보면, 외국사람한테도 한국땅에서 한복 입은 아이나 어른을 보기 힘든 노릇이요, 한국사람 스스로도 한복 입은 아이나 어른을 보기 힘든 노릇이리라.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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