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이야기 3
오제 아키라 지음, 이기진 옮김 / 길찾기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따뜻이 품는 가슴
 [만화책 즐겨읽기 175] 오제 아키라, 《우리 마을 이야기 (3)》

 


  다섯 살 두 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 적에, 아이들하고 손을 잡자면 내 손가락 하나면 넉넉합니다. 아이들은 손바닥을 쫙 펼쳐 내 손가락 하나를 잡고도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다섯 살 두 살 아이들을 재울 적에, 아이들한테 내 손가락 하나씩 주며 재우면 넉넉합니다. 아이들은 손바닥을 쫙 펼쳐 내 손가락 하나를 쥐면서 새근새근 달게 잠들 수 있습니다.


  나는 아이를 낳아 기르기 앞서까지 내 손가락 하나가 얼마나 거룩한가를 제대로 깨닫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내 둘레 어느 누구도 내가 아이를 낳아 스스로 어버이가 될 적에 스스로 얼마나 거룩한 사랑을 누리는가를 일깨우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몸은 알고 내 마음은 생각했으리라 느낍니다. 왜냐하면 오늘 나는 내 아이 둘하고 살아가지만, 나는 아이들 어버이이기 앞서, 내 어버이한테 아이였어요. 내 어버이는 나와 형 둘을 아이로 삼아 살아갔어요. 내 어버이는 당신 손가락 하나씩 내밀어 형과 내가 붙잡도록 하면서 두 아이, 다섯 살과 두 살 두 아이를 데리고 저잣거리도 다니고 마실도 다니며 하루하루 새롭고 아름다운 나날이라고 느끼도록 이끌었으리라 느껴요.


-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을은 몸을 아끼지 않고 싸우는 젊은이들을 따뜻하게 품었다. 아픔을 서로 나누고 정으로 맺어졌다. (38∼39쪽)
- “정부가 우리를 대등하게 보지 않는 것에는 우리들에게도 책임이 있어. 농업 보호의 미명 하에 정권은 농민들을 꼭두각시로 삼아 왔다. 농민들도 그걸 받아들이고 오랜 시간 의지해 왔던 거지.” “윗대가리들이 지들 마음대로 우리를 죽이고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여. 여태 우리가 알아서 기었잖여.” “여기까지다! 권력자들의 그런 생각을 부숴 버리는 건 우리가 정권에 의지하는 모습을 버리고 자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그건 어쩌면 공항을 저지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몰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투쟁하는 농민이다!” (85∼86쪽)


  자는 아이가 기저귀에 오줌을 흥건하게 눕니다. 얼마나 흥건하게 누었는지, 바지와 웃도리까지 옴팡 젖습니다. 오줌빨래가 한꺼번에 석 장 나옵니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옷을 갈아입힙니다. 옷을 갈아입힐 때에 아이가 깰 일이 없습니다.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까지 보살피는 다섯 해 나날이란, 아이들이 잠들며 쉬를 누거나 똥을 눌 적에 잠에서 깨지 않도록 하면서 나긋나긋 기저귀와 옷을 가는 손길이 되도록 이끕니다.


  자다가도 곧잘 눈을 뜨고 부시시 일어납니다. 자며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구르는 아이들은 이불을 걷어찹니다. 배가 다 나옵니다. 웃옷을 내려 배를 가리고, 걷어차거나 깔고 누운 이불을 잘 여밉니다.


  아이들이라 뒹굴면서 잘까요. 아이들이 무럭무럭 크면서 뒹굴기를 그칠까요. 열다섯이나 스물다섯쯤 되면 더는 안 뒹굴면서 잘까요.


  나는 언제부터 뒹굴지 않고 잠들 수 있었을까 돌아봅니다. 언제부터 한 자리에 얌전하게 누워 이리도 저리도 구르지 않고 잠들었을까 헤아립니다. 어른이 되거나 어버이로 살아갈 때에는 얌전한 잠자리로 거듭나는지 궁금합니다. 보살필 아이나 돌볼 이웃이 있으면 스스로 씩씩해지거나 튼튼해지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다섯 살이랑 두 살 아이인 터라 이 아이들은 저희 옷가지를 저희가 손수 빨래하지는 못하리라 느낍니다. 앞으로 몇 살쯤 되면 아이들이 스스로 저희 옷가지를 곱게 건사하고 곱게 빨며 곱게 다룰 수 있을까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옷이나 밥이나 보금자리를 건사하는 날은 곧 찾아오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신나게 놀면서 무럭무럭 자라고, 모레는 재미나게 뒹굴며 차근차근 자라며, 글피는 실컷 뛰고 날면서 튼튼하게 자라겠지요.


- “난생 처음 기동대한테 맞았어. 정말 이상해. 그때, 두려움이나 아픔보다는 나, 어떤 생각에 몰두했다.” “생각?” “이 녀석들 진심으로 나를 벌레 잡아 죽이듯 하려는구나, 라고. 마을을 짓밟고 밭을 짓밟을 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짓밟는 것이구나.” (40쪽)
- 그것은 갑작스럽고 일방적이었다. 방어가 목적인 듀랄루민 방패가 흉기로 둔갑했다. 기동대원의 장갑에는 손을 보호하기 위한 철판이 대어져 있어, 주먹으로 때리면 단 한 방에도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61쪽)
- “화가 난다면 싸우면 되잖아요. 밭을 망가뜨리거나 하지 말고 직접 당사자와 시시비비를 가려야죠. 우리는 우리의 논밭을 망가뜨리려는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우리가 논밭을 망가뜨리면 어쩌자는 거예요. 우리의 적은 조건파가 아니에요! 우리 농사꾼을 조건파와 반대파로 분열시킨 놈들이야말로 우리의 적이라구요!” “논밭을 망친 건 아니여. 수박을 몇 개 깬 것뿐이네.” “수박 농사가 얼마나 힘든 건지, 가네하라 씨도 잘 아시잖아요. 농사꾼이라면 그런 짓, 절대 못할 거라고, 믿은 건 저뿐인가요.” (207∼208쪽)


  아이들은 저마다 제 목숨을 타고 태어납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제 꿈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나도 내 목숨을 타고 태어났고, 나도 내 꿈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내 어버이도 당신 목숨을 타고 태어났으며, 내 어버이도 당신 꿈을 누리며 살아가요. 누구나 맑은 눈빛과 밝은 사랑을 품에 안고 태어나요. 누구나 고운 꿈과 환한 이야기 누리며 살아가요.


  그렇지만 그리 맑지 않은 삶을 누리는 사람이 퍽 많습니다. 썩 밝지 못한 눈빛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닥 곱지 않은 마음씨로 말을 섞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아무래도 환하지 못한 몸짓으로 하루를 맞이하는 사람이 여러모로 많습니다.


  무엇을 바라보기에 눈빛이 게슴츠레할까요. 무엇을 생각하기에 마음이 메마를까요. 무엇을 누리기에 삶이 고단할까요. 무엇을 꾀하기에 사랑이 피어나지 않을까요.


  스스로 사랑을 심을 때에 사랑이 태어납니다. 스스로 꿈을 심어야 꿈이 자랍니다. 스스로 믿음을 나누어야 믿음이 커집니다. 스스로 이야기를 빚어야 이야기가 퍼집니다.


  남이 해 줄 수 있는 사랑은 없습니다. 남이 이루어 주는 꿈은 없습니다. 남이 도맡아서 믿어 줄 수 없습니다. 남이 누리는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먹는 밥이듯 내가 심어 가꾸며 돌보는 사랑입니다. 내가 바라보는 해와 달과 별이듯 내가 손수 뿌려서 거두는 꿈입니다. 내가 두 다리로 걷는 길이듯 내가 즐겁게 마주하는 삶에서 착한 믿음이 샘솟습니다. 내가 아이들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듯 나 스스로 내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좋은 이야기를 빚습니다.


- “지난 2년 동안 당신들은 이해를 구하기만 하고, 땅을 빼앗기고 쫓겨날 판국에 있는 농민을 이해하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어!” (66쪽)
- ‘우리 마을에 공항이 들어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6년 동안 늘 자상하고 따뜻하게 우리를 대해 주었던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결국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선생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길 뿐이었다. 문제의 본질에서 애써 눈을 돌린 채, 그저 동정을 보낼 뿐이었다.’ (75쪽)
- ‘우리가 정말로 가르쳐 줬으면 했던 것, 정말로 배우고 싶었던 것,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를 다뤄 주는 것을 끈질기게 피하기만 했던 그 학교에, 나는 그날, 작별을 고했다.’ (78쪽)


  대통령이 좋아야 나라살림이 좋아지지는 않아요. 내 보금자리가 좋아야 내 집과 내 마을과 내 나라가 좋아져요. 국회의원이나 군수나 법관이나 검사나 경찰이 좋아야 이 나라 삶터가 좋아지지는 않아요. 내 보금자리가 좋을 때에 내 아이들이 좋고, 내 이웃과 동무가 좋으며, 이 나라 삶터 어디나 좋을 수 있어요.


  고속도로가 놓인들 나라가 발돋움하지 않아요. 공항이 새로 생기거나 발전소가 여럿 늘어나기에 나라가 발돋움하지 않아요. 공장이 있어야 일자리가 늘지 않아요.


  사람들이 저마다 제 보금자리에서 숲을 가꿀 때에 나라가 발돋움하는구나 싶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제 마을에서 숲을 누릴 때에 나라가 아름다워지는구나 싶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제 삶터에서 숲을 아낄 때에 나라가 빛나는구나 싶어요.


  고속도로는 누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길을 이어야 하는가요. 공항은 누가 어디에서 어디로 가도록 도울까요. 발전소는 누가 어디에서 왜 쓰는 전기를 만드는가요. 공장은 누가 어디에서 왜 쓰는 물건을 만드는가요.


  아이들이 갖고 노는 놀잇감을 공장에서 플라스틱을 찍으며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다. 솔방울과 나뭇가지로 놀잇감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칠판을 붙이고 분필로 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습니다. 돌멩이를 손에 쥐고 흙땅에 그림을 그리며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진기가 있어야 예술이 되지 않습니다. 촬영 장비를 갖추어야 다큐멘터리를 찍지 않습니다. 어떤 예술이든 가슴을 움직일 때에 예술입니다. 삶을 빛내고 사랑을 꽃피울 때에 바야흐로 문화요 교육이며 복지이고 경제에 정치가 됩니다. 사람들이 전화기를 서로 들고 주고받는 이야기란, 처음부터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주고받던 이야기예요. 종이 한 장에 찬찬히 글월을 적바림하며 이야기를 나눠요. 가을날 가랑잎을 가만히 손에 쥐며 홀가분히 떠올리며 나누던 이야기입니다.


- “아무리 많은 보상금을 지불한다 해도, 그 사람이 그 땅에서 만들어 온 인생 자체를 바꿔 버리는 일이니까. 조건파는 보상금으로 입을 막고, 반대파는 기동대를 보내 탄압하고, 우리가 계속 이런 오만한 수법으로 건설 계획을 진행시키다가는 언젠가 파탄이 나지 않을까.” (123쪽)
- “말뿐이잖아. 사과해 놓고 공항 만들 거면서.” “……. 공항은 어딘가에는 만들어야 합니다. 저희에게 변명의 여지가 있다면, 공항 건설은 일본의 발전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공항 만드는 거야 좋은 일이지. 자네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당연하고. 그래서 첨에는 조금 신경이 쓰였어. 다짜고짜 반대를 외치는 게 말여. 그러니까 그게 내 생각만 하는 것 같아서.” “아버지!” “근디 생각해 보니 말여, 그러면 우리 농사꾼이 하는 일은 대체 뭔가, 싶더구먼. 자네는 ‘농사는 나라의 근간’이라는 그럴듯한 구절을 아는가? 아이들 교과서에 써 있다네. 난 이 구절을 알고서는 괜시리 뿌듯해지더란 말이여. 농지는 농사꾼의 것이되 농사꾼의 것이 아니여. 많은 사람들을 배고픔으로부터 지켜 주는 생명의 원천이여. 그야 나도 농작물을 팔아서 먹고살고는 있지만. 근디 공항은 엄청난 돈을 벌지 않는가?” “예.” “난 자네들 덕분에 농사꾼이란 것에 긍지를 갖게 됐어. 내 일이 공항에 뒤지지 않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여기 공항을 만들어도 좋겠지. 그치만 산리즈카는 이미 충분히 국익에 기여한 땅이여.” (144∼146쪽)


  오제 아키라 님 만화책 《우리 마을 이야기》(길찾기,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일본 산리즈카 마을사람은 뒤늦게 삶과 삶터를 깨닫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여느 흙일꾼’처럼 ‘나라가 시키는 대로 살면 그만’인 듯 여기던 나날이었습니다. 나라가 ‘엉뚱한 정책’을 펼쳐 흙일꾼이 고향을 잃게 하는 일이란 없으리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 나라란, 일본 흙일꾼한테 일본이라는 나라란,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젊거나 어린 사내를 모두 싸움터에서 총을 들고 이슬처럼 사라지게 하던 나라예요. 이웃나라를 동무나라로 여기지 않고 식민지로 삼게 해서 괴롭히도록 내몰던 나라예요. 먼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라를 다스리던 이’들은 으레 땅따먹기 싸움을 벌여 ‘착한 흙일꾼’한테 낫이나 쟁기 아닌 칼이나 방패를 휘두르게 했어요.


  곧, 예나 이제나 ‘나라를 다스리며 정책을 펼친다고 하는 이’들은 전쟁 미치광이라 할 만한 사람이에요. 오늘날에는 ‘경제를 살린다’는 이름을 내세워 시골 들판과 멧자락과 냇물을 뒤엎어 ‘돈벌이’에만 사람들 마음이 빼앗기도록 등을 떠밀어요. 더 많은 사람들한테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공항을 짓는다며 고향을 잃어야 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더 많은 사람’이 아닌 ‘도시사람’한테 도움이 되고, 또 도시에서도 ‘돈과 이름과 힘을 가진 사람’한테 도움이 되는 ‘경제발전’이나 ‘나라발전’이지 않던가요. 공항을 지으려 하면 참말 도시 가까이 지을 노릇이요, 발전소를 지으려 해도 도시 곁에 지을 노릇 아니던가요. 도시사람이 도시 둘레에 공항이나 발전소나 공장을 짓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 “대학에 가라 요시코. 장남인 내가 보낸다.” “오빠.” “돈이 없다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땅을 팔고 떠나고 있어. 농사꾼을 그만두고.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땅을 돈으로 바꾸는 것도, 사수하는 것도, 자신들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길이야. 동생을 대학에 보내지도 못한다면, 꿈이나 생활을 희생해야만 한다면, 이 싸움에 의미는 없다! 차라리 땅을 팔아버리는 게 나아. 요시코, 대학에 가서 너의 꿈을 이뤄. 그런 것을 위해서 우리가 싸우는 거니까!” (164∼165쪽)
- “뎃페이, 뭔 일 있냐?” “나, 나 잘 모르겠어. 그 할머니는 혼자 그 작은 오두막에서, 해님을 친구 삼아 살고 있는데. 그 할머니랑 비교하면 다들, 다들 엄청난 부자잖아!” (189쪽)


  따뜻이 품는 가슴일 때에 아이들은 어버이나 어른한테서 사랑을 물려받습니다. 따뜻이 품는 가슴일 때에 이웃은 서로 사랑을 나눕니다. 따뜻이 품는 가슴일 때에 어깨동무가 되고 씨동무와 길동무와 삶동무가 됩니다.


  나라를 다스리건 지자체를 다스리건, 우두머리 자리에 있는 분들이 따뜻이 품는 가슴이 아니라 한다면, ‘나라사람’이나 ‘마을사람’ 가슴에 피멍이 드는 짓을 서슴지 않으며 저지르고 맙니다. 여느 공무원이건 크고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월급쟁이 회사원이건, 누구나 따뜻이 품는 가슴일 때에 서로를 보듬고 나라와 마을과 살림집 모두 사랑으로 보살필 수 있습니다.


  따뜻이 품는 가슴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성장율은 높아져도 사랑이나 믿음이나 꿈은 자꾸만 자취를 감춥니다. 따뜻이 품는 가슴이 아니기 때문에 학력이 높아진다지만 입시지옥이 이어질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노예처럼 쳇바퀴질을 하는 사람만 늘어납니다. 따뜻이 품는 가슴일 때에, 시험성적을 놓고 동무들끼리 피가 튀기도록 다툼질을 할 수 없습니다. 따뜻이 품는 가슴일 때에, 시골마을 한복판에 송전탑을 세우거나 발전소를 짓겠다며 밀어붙일 수 없습니다. 따뜻이 품는 가슴일 때에, 국가보안법이란 벌써 사라졌을 테지요. 따뜻이 품는 가슴일 때에, 군대도 감옥도 경찰도 모두 사라지고, 젊은 넋 누구나 흙과 숲과 바다와 냇물을 아끼며 즐길 줄 아는 멋스러운 목숨을 환히 빛낼 테지요. (4345.9.13.나무.ㅎㄲㅅㄱ)

 


― 우리 마을 이야기 3 (오제 아키라 글·그림,이기진 옮김,길찾기 펴냄,2012.3.31./8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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