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小출판사 순례기 - 출판정신으로 무장한
고지마 기요타카 지음, 박지현 옮김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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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읽기 삶읽기 114] 고지마 기요타카,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

 


  저마다 책을 읽습니다.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든다 여기는 책을 읽습니다. 소설책이든 자기계발책이든 스스로 가장 눈길이 닿기에 살포시 집어들어 읽습니다. 일 때문이든 독후감 때문이든, 스스로 어느 책 하나 읽어야겠다고 느끼기에 읽습니다.


  저마다 집을 마련합니다. 맞돈을 치러 내 집으로 마련하든 달삯을 치르며 지내든 누구나 제 집을 마련합니다.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하고, 달동네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기도 합니다. 다닥다닥 붙은 조그마한 집에 딸린 방 한 칸짜리 보금자리일 수 있고, 옥상에 있는 방 한 칸짜리 보금자리일 수 있습니다. 도시 한복판 보금자리일 수 있으며, 도시 변두리 보금자리일 수 있고, 시골마을 보금자리일 수 있어요.


  저마다 삶을 누립니다. 즐겁거나 기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슬프거나 괴롭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쁘거나 고단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고, 느긋하거나 흐뭇하게 삶을 누리는 사람이 있어요. 따사로운 햇살과 같이 삶을 누릴 수 있고, 상큼한 바람과 같이 삶을 누릴 수 있어요.


.. 편집부 다섯 명, 모두 열 명이 근무하는 사쿠힌샤처럼 작은 출판사는 전통이라는 게 없는 만큼 편집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고가 직접 반영된다 … 작은 출판사지만 사쿠힌샤는 스스로에게 어려운 숙제를 내며 수준 높고 매력적인 양서를 간행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하고 있다 ..  (16, 19쪽)


  사람들이 책을 읽습니다. 이를테면 《우리 글 바로쓰기》 같은 책을 읽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녁 말글을 슬기롭게 헤아립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을 얼마쯤 읽다가 덮고는 하품을 합니다. 때로는 《우리들의 하느님》 같은 책을 읽기도 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을 읽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이 책에서 빛을 느껴 삶을 새롭게 가다듬습니다. 누군가는 이 책 줄거리를 알뜰히 풀어놓으나 삶은 그대로입니다. 누군가는 ‘한 해 독서계획’으로 이 책을 읽을 뿐, 스스로 삶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한 해 독서계획’이라든지 ‘백 권 읽기’라든지 ‘천 권 읽기’란 덧없는 외침과 같구나 싶습니다. 책이란 어떤 틀을 세우면서 읽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책은 삶과 같아요. 삶을 어떤 틀을 세우면서 누릴 수 없어요. 어떤 틀에 따라 움직이거나 흐르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결에 따라 움직이거나 흐르는 삶이에요. 어떤 틀에 따라 읽거나 아로새기는 책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사랑하는 결을 북돋우거나 살찌우면서 마음을 넉넉하고 아름답게 돌보는 책이에요.


  곧, 책을 읽으며 지식이 늘지 않습니다. 책을 가까이하며 똑똑해지지 않습니다. 책을 더 많이 읽기에 정보를 가득 누리지 않습니다. 책과 함께하는 삶이라서 슬기롭지 않습니다.


.. 책방에 다니며 그저 책을 보기만 해도 자신이 정화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듯했다 … “책을 만들기 위해 편집이 있고 독자에게 책을 전달하기 위해 영업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모두 회사를 유지하기 위해 책을 만듭니다. 정말 이상해요.” ..  (20, 38쪽)


  지식을 바라는 사람은 지식을 얻겠지요. 정보를 꾀하는 사람은 정보를 쥐겠지요. 자격증을 따고 싶은 사람은 자격증을 따요. 시험성적 높이고 싶은 사람은 시험성적 높일 수 있어요.


  그런데, 삶이란 무엇일까요. 내 삶 한 자락에서 내가 누릴 빛은 무엇일까요. 나는 무엇을 하면서 내 사랑을 다스리고 내 꿈을 키울까요. 내가 즐길 사랑은 무엇이요, 내가 가꿀 꿈은 무엇일까요.


  내 삶에서 지식이 가장 대수롭다 할 만할까요. 내 삶에서 정보를 가장 크게 북돋아야 할까요. 내 삶을 사랑 아닌 독후감 같은 책으로 채워야 하나요. 내 삶을 꿈 아닌 자기계발 같은 책으로 엮어야 하나요.


  책을 읽으려고 하기 앞서, 나 스스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고 싶다면, 나 스스로 내 삶을 어떻게 일구려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느낍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려 한다면, 나 스스로 어떤 사랑과 꿈으로 하루를 빛내려 하는가를 깨달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라 주입식 교육이 아닐까 … 나가오는 마르크스나 루소의 사랑을 지식으로만 가르치는 교수들에게 불만을 갖고 있었다. 경제학 이론과 생활인으로서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관심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  (40, 50쪽)


  책읽기와 책쓰기는 같습니다. 책을 장만해서 읽는 사람은 삶을 빛내며 읽는 사람입니다. 책을 엮어 책방에 내놓는 일꾼 또한 삶을 빛내며 쓰는 사람입니다. 출판사 일꾼이든 글을 쓰는 일꾼이든, 저마다 삶을 빛내는 길을 걸어갑니다. 그러니까, 책을 빚는 일이나 밥을 짓는 일이나 같아요. 책을 읽는 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일이나 같아요. 책을 쓰는 일이나 아이를 가르치는 일이나 같아요. 모든 일이 한동아리가 되어 흐릅니다. 모든 일이 한 물결처럼 움직입니다.


  책을 읽으며 삶을 읽고, 삶을 읽으며 생각을 읽습니다. 생각을 읽으며 내 이웃을 읽고, 내 이웃을 읽으며 풀과 나무를 읽습니다. 풀과 나무를 읽으며 햇살과 바람을 읽고, 햇살과 바람을 읽으며 흙과 벌레를 읽어요. 바야흐로 지구별을 읽습니다. 이윽고 목숨을 읽습니다. 비로소 사람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읽습니다.


  어린이책을 읽든 만화책을 읽든, 책을 읽는 길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는 데로 이어집니다. 어느 책을 쓰든, 곧 사람들 스스로 어느 글을 쓰든, 또는 어느 책을 빚든, 모든 삶과 넋과 일은 한 갈래에서 만나요. ‘사람이 무엇인가’를 찾고 ‘사랑이 무엇인가’를 밝히며 ‘꿈이 무엇인가’를 들려줘요.


.. 마이너리티적 발상이 각광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상업출판사에서 마이너리티적 기획은 하지 않는다. 독자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만든 책은 보면 알 수 있다. 판권을 보거나 책을 잡은 순간 느낄 수 있다 ..  (134, 153쪽)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책을 참답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을 참답게 좋아합니다. 책을 마주하는 결이 삶을 마주하는 결입니다. 어느 책을 골라서 읽느냐 하는 매무새는 어느 이웃을 생각하거나 살피느냐 하는 매무새입니다.


  책만 알뜰히 아끼지 못합니다. 밥만 알뜰히 짓지 못합니다. 자가용만 알뜰히 돌보지 못합니다. 내 아이들만 알뜰히 보살피지 못합니다. 책한테 하듯 지구별한테 해요. 책하고 마주하듯 둘레 사람하고 마주해요. 책 한 권 장만하는 매무새가 저잣거리에서 물건 하나 장만하는 매무새예요. 책을 읽어 삭히는 몸가짐이 이웃사람 말을 듣고 내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몸가짐이에요.


  책 하나에 깃든 ‘글쓴이 넋’이나 ‘책마을 일꾼 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요. ‘책을 읽는 내 마음대로’ 바라보는가요? 글을 쓰거나 책을 엮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를 살피면서 바라보는가요?


  고지마 기요타카 님이 쓴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7)를 읽습니다. ‘소출판사’라니, 소를 잡는 출판사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일본사람은 ‘小’라 말할 테지만, 한국사람은 ‘작은’이라 말하잖아요. 한국사람 읽을 책이라면 ‘작은 출판사’라 말해야지요.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면서 가만히 헤아립니다. 이 책에 나오는 ‘작은 출판사’는 하나도 작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출판사’일 뿐입니다. 크거나 작다는 갈래는 어느 누구도 나누지 못해요. 그저 출판사요 그저 책을 빚습니다. 널리 팔리는 책이라서 ‘큰’ 책이 되지 않고, 적게 팔리는 책이라서 ‘작은’ 책이 되지 않아요. 언제나 책이에요. 많이 팔린 책이라서 사람들이 ‘옳게’ 읽거나 ‘슬기롭게’ 아로새겨서 ‘스스로 아름다운 삶’을 찾아 씩씩하게 거듭나도록 이끌까요.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는 재미나게 쓴 책이라고 느낍니다. 스스로 가고 싶은 길을 가는 출판사 일꾼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았기에 재미나게 쓴 책이라고 느낍니다. 다만, 글쓴이는 짚어야 할 대목을 짚지 못합니다.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어떤 즐거운 길’을 씩씩하게 걸어가는가를 또렷하게 짚지 못합니다. 출판사가 처음 생긴 때가 언제요, 어떻게 해서 생겼으며, 그동안 어떤 책을 냈는가 하는 이야기는 그리 재미나지 않고 즐겁지 않은데다가 궁금하지 않아요. 다 다른 출판사 일꾼이 다 다른 사랑과 꿈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털어놓도록 이끌면서, 이 생각을 알뜰살뜰 담을 때에 이 책이 참으로 빛날 수 있으리라 느껴요. 왜냐하면,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잖아요. 그러면, 수많은 출판사 일꾼들이 ‘책을 어떻게 좋아하’고 ‘책을 얼마나 좋아하’며 ‘책을 좋아하는 꿈’을 둘레 이웃하고 어떻게 나누려고 책을 만드는가 하는 대목을 건드리며 책을 꾸며야지요. 책을 참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녁이 살아가는 마을도 참으로 좋아하고, 이녁을 둘러싼 이웃도 참으로 좋아해요. 책을 참으로 좋아하듯 멧새 한 마리를 참으로 좋아할 테고, 풀벌레 노랫소리 한 가락을 참으로 좋아하겠지요. (4345.9.1.흙.ㅎㄲㅅㄱ)

 


― 일본 소출판사 순례기 (고지마 기요타카 글,박지현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펴냄,2007.3.10./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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