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도 익혀야지
 (941) 위 6 : 골판지 위에 쓴

 

간절한 마음으로 골판지 위에 쓴 ‘군고구마 잇슴니다’ 글씨처럼 아름다운 서예가 어디 있겠는가
《박노해-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느린걸음,2005) 126쪽

 

  ‘간절(懇切)한’은 ‘애틋한’이나 ‘애타는’이나 ‘더없이 알뜰한 마음으로’로 손볼 수 있어요. ‘서예(書藝)’는 널리 쓰는 한자말이라고 하나, ‘붓글씨’로 손질할 만합니다. 붓으로 쓰는 글을 가리켜 ‘서예’라 하거든요. 그런데 보기글을 보면 “글씨처럼 아름다운 서예가”라 나와요. ‘글씨’가 두 차례 잇달아 나오니, 앞쪽을 덜어 “-처럼 아름다운 글씨가”처럼 적든지 뒤쪽을 덜어 “글씨처럼 아름다운 예술이”처럼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골판지 위에 쓴
→ 골판종이에 쓴

 

  글은 종이에 씁니다. “종이 위에” 글을 쓰지 않아요. 편지지에 편지를 써요. “편지지 위에” 편지를 쓰지 않아요. 벽에 글을 쓸 때에도 “벽에” 글을 쓴다고 하지 “벽 위에” 글을 쓴다 하지 않아요. “벽 위에 글을 쓴다” 할 때에는, 벽 높이를 헤아려 위쪽에 글을 쓴다는 소리입니다.


  곧, “골판지 위에 쓴 글”이라 할 때에는 골판지에 쓴 글인데 “골판지 높이 가운데 위쪽에 쓴 글”이라는 소리가 돼요.


  글쓴이가 어느 자리에 글을 썼느냐 하는 대목을 말하자면 “골판지 위에 쓴 글”이라 말할 때에 어울리지만, 위아래를 따지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다면 ‘위’를 잘못 집어넣지 않아야겠어요. (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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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는 마음으로 골판종이에 쓴 ‘군고구마 잇슴니다’처럼 아름다운 글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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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824) 위 5 : 트랙터 위

 

트랙터 위에 탄 아이들은 신이 납니다
《이마이즈미 미네코/최성현 옮김-지렁이 카로》(이후,2004) 106쪽

 

  우리는 ‘버스’에 타고 ‘자동차’에 탑니다. 어느 누구도 ‘버스 안’에 탄다고 하지 않고, ‘자동차 안’에 탄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흐름이에요. 버스 위나 자동차 위에 타지 않아요. 버스나 자동차 ‘위쪽’에 탄다고 할 때에는 “버스 지붕”이나 “자동차 지붕”에 탄다고는 할 수 있겠지요. 곧, 지붕에 타는 일이 아니라 한다면 ‘위’에 탄다고 말하는 일은 알맞지 않아요. 경운기이든 트랙터이든 이와 같아요. 경운기나 트랙터 ‘위’에 타는 일은 없어요. 경운기를 타거나 트랙터를 탈 뿐이에요.

 

 트랙터 위에 탄
→ 트랙터에 탄

 

  우리는 ‘자전거’에 탑니다. ‘자전거 위’에 탄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말이 아닌 미국말을 할 때에는, 또는 다른 어느 나라 말을 할 때에는 ‘위’를 뜻하는 관사를 붙일는지 모릅니다. 곰곰이 살피면, 서양말을 한국말로 옮기면서 ‘위’를 잘못 넣는 말투가 퍼지지 않았나 싶어요. 처음에는 번역글에 나타나다가,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잘못 쓰는 말투로 굳는구나 싶어요. (4341.5.8.나무./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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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에 탄 아이들은 신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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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도 익혀야지
 (789) 위 4 : 그러한 인식 위에서

 

그러한 인식 위에서 정책기조와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신뢰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민족민주 세력을 상승시켜야 한다
《김근태-희망의 근거》(당대,1995) 178쪽

 

  “정책기조(-基調)와 대안(代案)을 제시(提示)함으로써”를 생각해 봅니다. 이 같은 말투는 여러모로 자주 쓰인다 할 텐데, 이 말투를 그대로 둘 때에 좋을까요, 조금이나마 손질하며 쉽게 적으려 애쓸 때에 좋을까요.


  ‘기조’는 “기본 흐름”, 곧 “바탕이 되는 흐름”이나 “밑흐름”을 가리킵니다. ‘대안’은 “새로운 길”이나 “더 나은 길”을 가리킵니다. 보기글에서는 ‘-으로써’만 손질해서 “정책 기조와 대안을 제시하면서”처럼 적을 수 있습니다만, “정책 밑흐름과 새길을 내놓으면서”로 적을 수 있어요. “새로운 정책 바탕과 길을 내놓으면서”로 적어도 돼요. 저마다 슬기를 빛내어 알맞게 적을 수 있기를 빌어요.


  ‘신뢰(信賴)할’은 ‘믿을’로 다듬고, ‘상승(上昇)시켜야’는 ‘올려야’나 ‘키워야’로 다듬어 줍니다. ‘대안세력’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앞쪽에서 ‘대안’을 손질하듯 ‘새로운 세력’이나 ‘새 세력’으로 손질할 수 있어요. 또는 앞뒤 흐름을 더 헤아리면서 “새로운 물결로 민족민주 물결을 끌어올려야 한다”처럼 손질해도 됩니다.

 

 그러한 인식 위에서
→ 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 그렇게 인식하면서
→ 그렇게 느끼면서
→ 그렇게 생각하면서
 …

 

  글쓴이는 “인식 위에서”라고 적습니다. “인식 아래서”로 적는 분도 있습니다. 한자를 넣어 “인식 下에서”로 적는 분도 있어요. 문득 궁금한데, 토박이말 ‘위’를 한자로 옮겨서 “인식 上에서”로 적는 분도 있을까요.


  “인식 위에서”나 “인식 아래서”는 모두 잘못 적는 말투입니다. ‘인식’은 ‘한다’고 말해야 알맞습니다. “성찰을 하면서”, “감동을 하면서”, “반성을 하면서”처럼 적어야 알맞습니다. “성찰 위에서”나 “감동 아래서”나 “반성 하에서”로 적으면 잘못입니다. 이쯤 가다듬은 다음에는 ‘인식(認識)하다’라는 낱말을 살핍니다. ‘인식’은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앎”을 뜻한다 합니다. ‘분별(分別)’은 “세상 물정에 대한 바른 생각이나 판단”을 가리키고, ‘판단(判斷)’은 “사물을 인식하여 논리나 기준 등에 따라 판정을 내림”을 가리키며, 다시 ‘판정(判定)’은 “판별하여 결정함”을 가리키는데, ‘판별(判別)’은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여 구별함”을 가리킨다고 해요. 어슷비슷한 한자말로 돌림풀이를 한다고 할 텐데요, 쉽게 갈무리하면 ‘인식하다’란 ‘생각하다’나 ‘헤아리다’나 ‘가름하다’나 ‘살피다’나 ‘가누다’를 나타내는 낱말인 셈이에요. 글흐름에 맞추어 알맞게 골라서 넣으면 돼요. (4341.1.2.물./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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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정책 밑흐름과 새길을 보여주면서, 믿을 수 있는 새로운 세력으로 민족민주 세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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