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새 태풍이 찾아든다는 깊은 밤에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깬다. 아이들이 새벽 일찍 부산스레 조잘거리는 소리에 나도 함께 일어난다. 나는 훨씬 이른 새벽에 홀로 조용히 일어나 글을 쓰다가 잠들었기에, 동이 트는 이른 새벽에 아이들이 부산스레 떠드는 소리를 귓결로 듣다가, 두 아이를 차근차근 달래며 노래를 부른다. 이원수 님이 빚은 시에 백창우 님이 가락을 붙인 노래를 잇달아 부른다. 이윽고 아이들과 어버이 모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왜 고졸 학력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잘 안 보일까. 왜 사람들은 책에 이녁 ‘대학 졸업 사항’을 밝혀 적을까.


  책을 써서 내놓는 사람이 적을 발자국이라면 이녁이 사랑하거나 생각하거나 꿈꾸는 이야기일 때에 아름다우리라 느낀다. 책을 써서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사람이 밝힐 발자취라면 이녁이 살아가며 품은 뜻이나 보람이나 넋일 때에 즐거우리라 느낀다.


  따지고 보면, 어느 대학교를 마쳤다 하는 이야기만큼 어느 고등학교나 어느 중학교를 마쳤다 하는 이야기는 부질없다. 학교를 다닌 사람만 책을 쓸 수 있는가. 학교 다녀서 받은 졸업장이 글을 쓰는 밑거름이나 도움이가 되었을까. 어떤 마음이 되어 글을 쓰고, 어떤 꿈을 찾아 그림을 그리며, 어떤 사랑을 나누려 사진을 찍는가 하는 이야기를 책날개에 곱게 적바림한다면 참 기쁘겠다고 느낀다. 생각을 빛내며 글을 빛내고, 꿈을 밝히며 그림을 밝힌다. 이야기를 사랑하며 사진을 사랑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삶을 읽고, 책을 쓰는 사람은 삶을 쓴다. 책과 사람과 삶이 서로 고운 빛살로 얼크러지는 무지개가 된다면 참으로 좋겠다. (4345.8.30.나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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