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 - 루이제 린저의 38가지 이야기
루이제 린저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공작소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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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하는 삶과 살아가는 생각
 [사랑하는 배움책 7] 루이제 린저, 《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

 


- 책이름 : 낮은 목소리
- 글 : 루이제 린저
- 옮긴이 : 윤시원
- 펴낸곳 : 덕성문화사 (1992.1.10.)
- 2001년에 《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지식공작소)라는 이름으로 다시 나옴

 


  동이 트는 새벽에 먼 하늘가를 바라본 적 있는 사람은 날마다 얼마나 기쁘며 좋은 선물인가를 느끼리라 생각합니다. 저녁에 해가 기울 적에도 붉게 타는 노을이요, 새벽에 해가 뜰 적에도 붉게 타는 노을이에요. 지는 노을도 아름답고, 뜨는 노을도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는 저녁에 지는 노을이든 새벽에 뜨는 노을이든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도시에는 높은 건물이 너무 많은 나머지 하늘가를 바라볼 틈이 없어요. 새벽 일찍 일어나 회사나 학교로 가는 사람들은 버스나 지하철 같은 데에서 꾸벅꾸벅 조느라 높은 건물 틈바구니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하늘을 곱게 껴안지 못합니다. 도시를 크게 감도는 먼지구름 때문에 새벽노을이나 저녁노을을 못 보기도 하겠지요.


.. 부정한다고 해서 새로운 운명이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그럴수록 부과된 운명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질 뿐입니다 … 누구든지 용기를 내고자 하면 용기는 생기는 법입니다 … 자신을 잘 처리해 나갈 수 있다면, 견디지 못할 생활 상태란 없을 것입니다 … 그 행위자를 영원히 미워하여 당신에 대한 행위자의 개선의 기회를 박탈한다면 그것은 가혹하고도 또한 똑같이 비인간적인 처사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행동의 나쁜 점을 지적해 주고 비판해 주고 그들이 개선해 나갈 수 있도록 실제적인 기회를 주는 것이 참다운 용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13, 17, 28, 50쪽)


  천천히 파란 빛깔로 물드는 하늘을 누립니다. 하늘빛이 드러나면서 하늘을 채우는 구름이 얼마나 어떻게 있는가를 깨닫습니다. 티 한 점 없다 싶도록 구름이 안 보이는 날이 있고, 온통 하얗디하얗게 빛을 입힌 날이 있어요.


  들판에서는 벼가 익습니다. 이삭을 패고 여무는 벼는 천천히 고개를 숙입니다. 아직 여물지 않은 벼는 볏잎처럼 푸른 빛깔 알곡만 꽃대에 달린 채 뻣뻣합니다. 알곡이 여물수록 차츰 무게를 더하고, 알곡 무게가 더할수록 꽃대는 천천히 휘겠지요. 들판은 모를 심은 날에 따라 알곡이 여무는 차례가 다릅니다. 모를 심은 차례대로 알곡이 익을 테고, 알곡이 익는 차례에 따라 벼를 베겠지요.


  마을 이장님이 새벽방송으로 ‘경관 사업’을 이야기합니다. 시골 면사무소에서는 ‘경관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가을걷이 마친 논에 유채씨 뿌리기’를 시킵니다. 벼를 모두 벤 빈 논이 늦봄까지 텅 빈 채 있으면 ‘보기 안 좋다’ 해서 유채씨를 뿌리도록 시켜요. 유채씨를 뿌리면 늦겨울부터 천천히 푸른싹이 돋고 이른봄에는 꽃대가 올라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나요. 늦봄에 써레질을 하고 모를 심기까지 ‘시골 들판을 지나가는 바깥사람’들 눈에 ‘보기 좋으’라고 유채씨를 뿌리도록 한다고, 이러한 ‘경관 사업’을 알뜰히 해 주어야 마을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빈 들판을 바라보기보다는 노란 꽃누리를 바라볼 때에 한결 좋을 수 있겠지요. 도시로 떠난 딸아들이 자가용 몰고 시골집으로 찾아올 적에는 이 유채밭을 바라보며 ‘아이 예쁘네’ 하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보기 좋은 모습(경관)’이란 왜 유채밭이어야 할까 궁금해요. 자동차나 군내버스나 경운기 지나다니는 큰길 가장자리를 따라 전라남도 시골마을에 어울리도록 유자나무나 석류나무를 심을 수 있을 텐데요. 매화나무를 심고 모과나무를 심을 수 있을 텐데요. 길을 따라 죽 심으면 좋아요. 마을로 접어드는 길에도 온갖 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밤나무도 심고 참나무도 심으며 소나무와 잣나무를 심을 수 있어요. 능금나무나 복숭아나무를 심을 만해요. 이렇게 심은 나무들이 가득한 시골길이라면, 열 해가 지나고 스무 해가 지나면서 한결 사랑스럽고 시원스러운 길이 되리라 생각해요. 길마다, 마을마다, 열매나무 흐드러진다면, 시골을 떠난 딸아들도 시골로 돌아오도록 이끌 만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마을사람뿐 아니라 길손 누구라도 열매를 몇씩 따서 먹을 수 있겠지요. 어느 한 집에서 몽땅 털듯 가져가도록 하지는 말고, 누구나 즐겁게 누리도록 하면 되겠지요.


.. 과거란 엄연히 존재하는 것으로, 그것은 결코 소멸되지 않는 재산입니다. 그러므로 벗어버린 당신의 생을 올바른 관점에서 뒤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신이 아닙니다. 전쟁은 우리가 하며 우리 이웃을 미워하는 것도 우리입니다 … 사람이 완전히 겸허한 가운데 스스로 작고 충실하고 초라한 하느님의 심부름꾼 이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때에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는지를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 사람들은 완전히 자기 자신일 때에만 행복합니다 ..  (36, 37, 58, 81쪽)


  새벽빛이 온 마을을 비춥니다. 하늘가만 붉게 적시던 빛깔은 시나브로 마을로 스밉니다. 불그스름한 빛은 이내 파르스름하게 바뀝니다. 파르스름한 빛은 곧 하얗게 바뀝니다. 그러다가는 노오랗게 바뀌고, 이제 또렷한 무지개빛이 돼요. 햇빛이 무지개빛으로 온 들판을 어루만질 때에 아침이 됩니다.


  우리 집 꽃밭이자 조그마한 텃밭에서 자라나는 부추풀은 모두들 하얀 꽃송이를 환하게 터뜨립니다. 아직 몽우리로 맺힌 부추풀도 제법 많으니, 앞으로 이레쯤 뒤에는 몽우리도 꽃봉오리로 터질 수 있고, 보름이나 한 달 즈음 부추꽃을 날마다 바라보며 꽃놀이를 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얀 부추꽃에는 온갖 나비가 찾아듭니다. 내가 이름을 아는 나비도 찾아들고, 내가 이름을 모르는 나비도 찾아듭니다. 짝을 지어 찾아들기도 하고, 홀로 찾아들기도 합니다. 나비 따라 잠자리도 우리 집 마당이나 꽃밭으로 찾아들며 노닐기도 하는데, 잠자리는 곧잘 거미줄에 걸립니다. 거미줄에 걸렸다가 풀려난 잠자리가 있으나, 커다란 거미가 지은 커다란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는 그예 거미밥이 됩니다.


  풀숲에서는 여치나 방아깨비가 거미밥이 되곤 합니다. 여치나 방아깨비는 무엇을 먹이로 삼으며 지낼까요. 여치나 방아깨비한테 먹이가 되는 목숨은 어떤 목숨을 받아들이며 저희 목숨을 이을까요.


  하늘은 파랗고 들판은 푸릅니다. 내 마음은 어떤 빛깔일까 생각해 봅니다. 내 사랑은 어떤 무늬일까 헤아려 봅니다. 이 파란 기운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될는지, 이 푸른 숨결을 맞아들이는 사랑이 될는지, 곰곰이 짚어 봅니다.


.. 우리는 누구나 자기에 대한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꿈은 그것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 소멸됩니다 … 사랑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어느 때가 가장 행복할가요. 그것은 바로 사랑할 때입니다 … 상승하지 않는 자는 하강합니다. 위를 바라보지 않는 자는 자신을 위로 끌어올릴 만한 대상을 보지 못합니다 … 내가 그 돈을 그들에게 주기 전까지 금고는 텅 빈 채로였으나, 그들은 조바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날의 일용할 양식만을 기원했고, 언제나 그것은 채워졌기 때문입니다 ..  (49, 63, 74, 82, 117, 135쪽)


  이른새벽에 누런쌀을 살살 씻어 불립니다. 이른아침에 쌀을 냄비에 담아 불을 올립니다. 자그마한 불로 천천히 끓는 밥은 솔솔 냄새를 피웁니다. 밥냄비를 올리면서 국냄비를 나란히 올립니다. 엊저녁 먹고 남은 된장국을 덥힙니다. 반찬 한 가지 새로 할 수 있고, 오이와 곤약을 송송 썹니다. 텃밭에서 돗나물을 뜯고, 다른 풀을 뜯습니다. 모시풀을 뜯기도 하고, 지칭개를 뜯기도 하며, 쑥을 뜯기도 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풀을 뜯기도 합니다. 잎사귀 하나 혀에 얹고 살살 씹으며 괜찮다 싶으면 어떠한 풀이든 다 뜯어서 나물비빔을 합니다.


  밥을 하는 마음은 내 숨을 북돋우는 마음입니다. 밥을 차리는 마음은 내 숨결을 살찌우는 마음입니다. 하루 더 살고 싶어서 밥을 하지 않습니다. 하루 더 사랑스레 즐기고 싶어서 밥을 합니다. 한 끼니 채우려고 밥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예쁘게 누리고 싶어서 밥을 차립니다.


.. 나무가 뿌리를 통해서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들을 자라게 하는 요소는 우리들의 무의식의 세계이며, 그것은 바로 우리들의 활력소이며 활력 저장소인 것입니다 … 진리란 어느 한 극단이 없으며, 이쪽도 저쪽도 다 옳은 길이면 진리인 것입니다 … 누구든 앞으로 배울 가능성이 있기 마련이며 … 생명이란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 … 한 영혼을 구하기 위해 다른 하나를 잃어버린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타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참된 양심에 따라서 진실만을 행동하는 경우뿐입니다 ..  (89, 107, 121, 128, 130쪽)


  루이제 린저 님이 쓴 글을 갈무리한 《낮은 목소리》(덕성문화사,1992)를 읽습니다. 1992년에 나온 《낮은 목소리》는 판이 끊어져 헌책방에서 찾아보는 책이 됩니다. 2001년에 《내가 아닌 사람과 사는 지혜》(곽복록 옮김,지식공작소)라는 이름으로 새 번역과 새 판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루이제 린저 님이 짤막하게 쓴 글을 갈무리하는데, ‘운명’이나 ‘인품’이나 ‘용서’나 ‘죽음’이나 ‘삶’이나 ‘돈’이나 ‘행복’이나 ‘사랑’처럼, 사람들 삶에서 흔히 돌아보거나 마주하거나 느낄 만한 대목을 곰곰이 생각을 기울여서 쓴 글입니다.


  이를테면 ‘사랑’이라는 대목에서 “인생이 다양하기에 우리는 각자의 개성으로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하고 말하다가는 “한 인간에게 성실을 지키는 한 그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상대방을 완전무결한 인격체로 보는 것입니다.” 하면서 ‘사랑’을 새삼스레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 그런 규제된 생활은 힘들고 괴롭지만 그것은 그들 자신의 선택인 것입니다 … 만족하는 사람은 평화로운 사람입니다 …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하여 격렬하고 완강하게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고통 당하여야만 합니다 … 꿈은 우리의 잘못을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변화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 그들(아이들)은 말로써가 아닌 그 눈에 가득한 기쁨이나 선물에 대한 충분한 애착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  (141, 147, 152, 159, 173쪽)


  생각하는 대로 나한테 찾아오는 삶이라고 합니다. 내가 걱정을 마음에 품으면 걱정이 나한테 찾아온다고 해요. 내가 미움을 마음에 품으면 미움이 나한테 스며든다고 해요. 내가 웃음을 마음에 품으면 웃음이 나한테 찾아온다지요. 내가 수다를 마음에 품으면 수다가 나한테 찾아온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내 마음에 품는 한 가지를 자꾸자꾸 생각하거든요. 자꾸자꾸 생각하면서 내 삶을 이 생각에 맞추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를 바라봅니다. 내 둘레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 가운데 ‘내 마음에 품은 한 가지’가 보일 적에 쉬 알아채고 어느새 그리로 끌립니다.


  돈을 생각하던 사람은 돈 될 일이 있는 곳에 갑니다. 돈을 생각하던 사람은 돈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서 귀를 쫑긋합니다. 꿈을 생각하던 사람은 누가 돈을 얘기하건 말건 듣지 않을 뿐더러, 느끼지 않습니다. 햇살을 생각하던 사람은 누가 자가용을 얘기하더라도 가슴이 움직이지 않아요. 떡갈나무를 생각하는 사람은 코앞에 미루나무 한 그루 있어도 못 알아보곤 합니다. 둥글레풀꽃을 찾는 사람은 코앞에 엉겅퀴꽃이 있어도 못 알아보기도 해요.


.. 당신은 당신의 그 아름다운 생의 비밀을 당신이 믿을 만한 사람에게 자랑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비밀을 말함으로써 빛나던 광채가 사라졌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인간이 설사 무인도에서 혼자 지낸다 해도 그는 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 인간의 행복은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자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도 어리석습니다 … 천국에서는 결혼도 출산도 없으며 오로지 우정만이 존재합니다 … 내가 사랑하는 경우, 인류 전체의 모든 인간도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사랑을 체험하는 까닭에, 사랑이란 ‘진실로 존재한다’는 가정에는 어디에고 모순이 있을 수 없습니다 ..  (164, 190, 197, 208, 212쪽)


  생각하는 삶이란 살아가는 생각입니다. 살아가는 생각은 곧 생각하는 삶입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살아가고, 죽음을 생각하기에 죽습니다. 내 어버이를 생각하기에 나 또한 어버이가 되고, 아이들을 생각하기에 나 또한 언제나 아이들 같은 넋으로 살아갑니다.


  전쟁을 생각하는 사람은 삶부터 전쟁과 같으며, 말이나 글 모두 전쟁처럼 내뱉아요. 평화를 생각하는 사람은 집안부터 평화를 이루며, 책을 읽든 빨래를 하든 평화롭게 즐겨요.


  오늘날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생각하도록 이끌까요. 오늘날 학교에서 교사 자리에 선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생각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려 할까요. 오늘날 어버이는 아이들 앞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가요. 오늘날 어버이는 스스로 어떤 삶을 누리려는 생각일까요. (4345.8.27.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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