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과 닮았어요, 장욱진 그림 보며 놀자 2
문승연 지음 / 길벗어린이(천둥거인)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닮은 그림은 없어요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87] 문승연, 《내 그림과 닮았어요, 장욱진》(천둥거인,2007)

 


  그림쟁이 장욱진 님 삶과 눈길과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엮은 그림책 《내 그림과 닮았어요, 장욱진》(천둥거인,2007)을 읽습니다. 그림책에 붙은 이름 “내 그림과 닮았어요”에서 ‘내’는 어린이입니다. 그런데, 몇 살쯤 되는 어린이일까요. 몇 살쯤 될 어린이하고 장욱진 님 그림이 닮았다고 할 만할까요.


  시골 흙집과 도시 아파트는 다릅니다. 시골에서도 새마을운동을 맞이해 갑작스레 늘어나며 생겨난 슬레트집이랑 여느 풀집은 다릅니다. 흙일꾼이 살던 풀집이나 흙집하고 양반이나 사대부가 살던 기와집은 또 다릅니다.


  흙집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가 흙마당에 나뭇가지로 그림을 그린다면, 이 아이는 ‘집’을 어떻게 그릴까 궁금합니다. 나무문살에 창호종이 바른 문이 있는 흙집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아이는 ‘집’을 이루는 대문이나 창문을 어떻게 그릴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답게 그림을 그리지만, 아이들은 저마다 바라보고 느낀 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어른처럼 금을 곧게 긋지 못한다지만, 아이로서는 가장 곧은 금을 긋습니다. 아이들은 굴뚝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섬돌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툇마루와 대청마루와 기둥과 처마를 그립니다. 처마 밑 제비집도 그림으로 담을 테지요.


  아이들은 아이 삶 그대로 그림을 그립니다. 얼굴을 그리며 눈과 눈썹과 코와 입과 귀를 그립니다. 점을 눈여겨보았으면 점을 그립니다. 머리카락을 그립니다. 스스로 바라보며 느낀 결을 그림 하나에 살뜰히 담습니다.


  문승연 님이 엮은 《내 그림과 닮았어요, 장욱진》을 곰곰이 들여다봅니다. 문승연 님은 ‘어른’ 눈높이에서 장욱진 님 그림을 읽습니다. 아이들한테 읽히려는 그림책입니다만, 이야기풀이와 말투와 글짜임 모두 어른 눈높이입니다. 아이들 눈높이가 아니에요.

 

 

 


.. 아이가 서 있던 녹색 언덕은 동그란 모양을 하고 있었네요. 녹색의 동그라미는 무엇일까요? 지구 위에 집들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녹색 별 같기도 하고 ..


  아이들은 “녹색(綠色) 언덕”을 말하지 않습니다. 시골 아이 또한 “녹색 언덕”을 말할 일이 없습니다. 풀과 나무가 푸른 언덕은 그저 “푸른 언덕”입니다. 푸른 언덕이 동그란 모양이라면, 동그란 푸른 언덕은 “푸른 동그라미”일 테지요. 더욱이,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할매나 할배는 “녹색의 동그라미” 같은 말을 하지 않아요. 말을 하자면 “푸른 동그라미”이지, 일본 한자말 ‘녹색’과 일본 말투 ‘の’를 딴 ‘-의’를 함부러 넣지 않아요.


  그야말로 푸른 물결인 시골 들판입니다. 논도 밭도 멧자락도 모두 푸른 바다입니다. 푸른 잎사귀가 넘실거리는 위에는 파란 물결이 넘실거립니다. 널따란 파란 바다에 하얀 구름이 조각배처럼 둥실둥실 흐릅니다. 아이들은 푸른 들판과 파른 하늘과 하얀 구름과 푸른 나무를 그림으로 그립니다. 다만, 이렇게 빛깔을 또박또박 나누어 온누리를 그리는 어린이라면 나이가 좀 들어야겠지요.


.. 생명을 키우는 나무. 하늘과 우리를 이어 주는 새. 낮과 밤을 합친 모든 시간. 그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에요 ..

 


  장욱진 님은 어떤 넋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헤아려 봅니다. 장욱진 님은 ‘어린이 흉내’를 내며 그림을 그렸을까요. 꼭 어린이처럼 보이려고 시늉을 했을까요.


  아니에요. 장욱진 님은 장욱진 님 삶결대로 그림을 그렸어요. 누군가는 장욱진 님 그림을 바라보며 ‘아이들 그림을 닮았네’ 하고 여길는지 모르나, 참말 모르는 소리예요. 장욱진 님 그림은 아이들 그림을 닮지 않아요. 아이들은 이렇게 그림을 그리지 않아요. ‘어른’이니까 이렇게 그림을 그려요.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살아가는 꿈과 사랑으로 그림을 그려요. 장욱진 님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사람답게 어른으로서 꿈꾸는 이야기와 사랑하는 이야기를 단출하게 갈무리하면서 그림 하나로 빚어요.


  그림을 풀이하는 길은 누구나 홀가분하게 할 만합니다. 문승연 님은 문승연 님 나름대로 장욱진 님 그림을 풀이하며 즐길 만합니다. 이렇게 즐겨도 좋고 저렇게 즐겨도 기쁩니다. 어느 한 가지 틀로 그림을 즐기란 법이 없어요. 이이 그림은 이렇게 읽고 저이 그림은 저렇게 읽어야 한다는 법이 없어요.


  가만히 살피면, 그림을 그리는 이도 그림쟁이 삶대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을 읽는 이도 그림을 바라보는 삶대로 그림을 읽어요. 저마다 선 자리에 따라 그림을 읽어요. 그러니까, 옳은 눈길은 없어요. 바른 눈썰미는 없어요.


  좋아하는 눈길이고 아끼는 눈썰미예요. 이러한 흐름과 결을 좋아하며 누릴 수 있어요. 저러한 빛깔과 무늬를 아끼며 누릴 수 있어요.


  나무는 목숨을 키우기도 하지만, 나무는 스스로 고운 목숨이에요. 나무는 목숨을 키운다고도 하지만, 나무는 바로 지구예요. 나무한테서 숨결을 나누어 받는 사람은 고맙게 선물을 받지만, 사람들은 스스로 맑은 눈길과 마음길을 나무한테 나누어 주면서 서로 예쁘게 얼크러져요. 따사로운 눈빛으로 나무를 바라봐요. 따사로운 손길로 나무를 쓰다듬어요. 따사로운 마음길로 나무를 생각해요.


  장욱진 님은 장욱진 님한테 가장 넓은 꿈과 깊은 사랑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아이들은 누구나 아이로서 가장 넓은 꿈과 깊은 사랑을 빛내어 그림을 그립니다. 어른들 또한 스스로 가장 좋아하며 즐기고 아끼는 한편 빛낼 만한 넋을 북돋우면서 그림을 그려요.


  잘난 그림이 없고 못난 그림이 없어요. 잘 쓴 글이나 못 쓴 글이 없어요. 잘 찍은 사진이나 못 찍은 사진이 없어요. 스스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아요. 스스로 누리는 빛을 보여줘요. 스스로 어깨동무하는 삶을 들려줘요.


  그림을 좋아하는 넋을 아이였을 적부터 곱게 이으며 한결같이 살아가려 하던 장욱진 님이로구나 하고 느낍니다. 닮은 삶이 없기에 닮은 그림이 없고, 닮은 빛깔이 없기에 닮은 사랑이 없습니다. (4345.8.16.나무.ㅎㄲㅅㄱ)

 


― 내 그림과 닮았어요, 장욱진 (문승연 엮음,천둥거인 펴냄,2007.11.13./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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