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일기 -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
임동숙 지음 / 포토넷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새로운 사진기와 새로운 이야기
 [찾아 읽는 사진책 107] 임동숙, 《사진 일기,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포토넷,2012)

 


  해마다 새로운 사진기가 나옵니다. 처음 사진기가 나온 뒤 꾸준하게 새 사진기가 나옵니다. 새로 나오는 사진기는 지난날 나온 사진기하고 견주면 재주가 많고 쓰임새가 넓습니다. 앞으로도 새로운 사진기는 꾸준하게 나올 테니, 앞으로 나올 사진기는 그동안 나온 사진기하고 대면 한결 재주 많고 쓰임새 또한 넓겠지요.


  사진기뿐 아니라 컴퓨터도 손전화기도 빨래기계도 자동차도 끊임없이 더 좋거나 더 낫거나 더 빛난다 하는 기계나 장치나 설비가 나옵니다. 모르는 노릇인데, 이런 기계이든 저런 설비이든 해마다 더 낫거나 좋거나 빛난다 하는 것들이 쏟아지리라 봅니다.


  나는 새로 나오는 기계나 장치를 얻어서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퍽 예전에 장만한 기계나 장치를 예전이나 이제나 홀가분하게 썼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쓰리라 생각합니다. 아이 둘을 수레에 태우며 모는 자전거는 아홉 해째 나와 함께 살아갑니다(2012년). 아홉 해째 기나긴 길을 달린 탓에 몸통과 바퀴살을 빼고는 모든 부품을 갈아치웠습니다. 뼈대만큼은 아주 튼튼해 다른 부품을 수없이 갈면서 앞으로도 즐겁게 탈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열 몇 해째 잘 빨래하고 잘 개서 입는 옷이 많습니다. 고무신은 한 해만 신으면 바닥이 다 닳아 더 못 신지만, 내 발바닥은 머나먼 길을 걷고 또 걸어도 새 굳은살이 박히며 내 몸을 이끌어 줍니다.


  곰곰이 생각합니다. 새 사진기가 해마다 나오기 때문에 새 이야기가 해마다 나올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새 자전거가 해마다 나오기 때문에 새롭게 자전거를 타면서 새롭게 ‘자전거 이야기’를 예쁘게 펼치는 사람이 꾸준히 늘어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새 아파트가 서니까 새 ‘살림 이야기’가 나올는지, 새 아이들이 태어나니까 ‘아이를 키우는 새 이야기’가 나올는지 생각해 봅니다.


  《사진 일기,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포토넷,2012)을 내놓은 임동숙 님은 “사진은 카메라가 찍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사용하는 사람이 마음으로 찍는 것이다(30쪽).” 하고 말합니다. 찬찬히 따지면, 사진기를 사람이 단추를 눌러서 찍는데, 사람이 단추를 안 누르면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지만, 자동장치를 해서 사진기 스스로 단추를 누르도록 할 때에도 무언가 찍힐 텐데, 기계 스스로 무언가 찍는다 할 때에는 ‘사진’이라고 말하지는 않아요. ‘기록’은 되지만 ‘이야기’는 없으니까 ‘사진’이라고 말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사진은 ‘사람이 찍는다’고 말하지 않고, 사진은 ‘사람이 마음으로 찍는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느껴요.


  똑같은 흐름으로 헤아리면, 사랑은 ‘사람이 하지 않’아요. ‘사람이 마음으로 하’는 사랑이에요. 밥을 하는 일도, 밥을 먹는 일도, 빨래를 하는 일도, 옷을 입는 일도, 아이 볼에 입을 맞추는 일도, 눈을 감고 잠드는 일도, 모두 ‘사람이 하지 않’고 ‘사람이 마음으로 한’다고 해야 옳으리라 느껴요.


  새 사진기가 없어도 이야기는 꾸준히 태어납니다. 해상도가 낮거나 화소수가 적다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빚을 수 있습니다. 해상도가 높거나 화소수가 높을 때에는 기록을 하는 값어치를 높일 만합니다. 그러나 해상도나 화소수에 이끌려 새 사진기에 눈길이 끌린다면, 사람 스스로 마음을 움직여 사진을 찍지 못해요. 그저 기록만 하고 말아요.


  이리하여, 임동숙 님은 “결과에 집착하다 보면 대상과 교감하면서 셔터를 누르는 과정의 즐거움을 놓치기 쉽다 … 사진으로 잘 나올 만한 특별한 소재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34, 42쪽).” 하고 말합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그럴듯한 그림’을 얻으려고 사진을 찍지 않거든요. 그럴듯한 그림이 아닌 ‘마음이 움직이는 즐거운 꿈을 누리’려고 사진을 찍어요.


  글을 쓸 때에도, 그림을 그릴 때에도, 노래를 부를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사랑스레 속삭일 때에도, 언제나 마음이 움직이면서 삶을 누려요. 즐겁게 살아가려고 글을 쓰고 읽어요. 문학상을 타거나 책을 내려고 글을 쓰거나 읽지 않아요. 즐겁게 살아가는 길동무이니까 그림을 그리고 만화를 읽어요. 비평을 하거나 문화예술을 한다며 그림이나 만화를 가까이하지 않아요.


  새로 나온 책이기에 더 읽을 만하지 않습니다. 새로 나온 책이기에 더 눈길을 두거나 다룰 만하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있는 책이기에 읽을 만합니다. 이야기를 나눌 만한 책이기에 서로 돌려읽으면서 다룰 만합니다. 이야기가 피어나는 책이기에 두고두고 곁에 두면서 즐길 만합니다.


  새로 찍은 사진을 벽에 붙이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랑스레 담은 사진을 벽에 붙입니다.


  사진 하나를 벽에 붙이고 오래오래 들여다보곤 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랑스레 담은 사진은 날마다 새 숨결과 새 빛깔과 새 꿈녘을 보여줍니다.


  내가 찾는 이야기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삶입니다. 내가 찾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알기에, 나는 오래된 사진기를 손에 쥐든 갓 나온 사진기를 손에 쥐든, 내가 찍고 싶은 ‘사랑하고 싶은 삶’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나 스스로 내가 찾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또렷하게 모르면, 나한테 어떤 이름이나 돈이나 힘이 달라붙는다 하더라도 막상 내가 찍을 사진이란 없고 내가 누릴 사진 또한 없습니다.


  임동숙 님은 《사진 일기》에서 “사진은 발견의 예술이다. 그렇다면 사진을 통해서 무얼 발견할까 … 나는 왜 사진을 하고 있을까. 각자 이유는 다르겠지만 결국 내가 즐겁고 행복하려고 선택한 것 아닌가(41, 63쪽).” 하고 말합니다. 덧붙여, “멋진 사진 말고 마음을 끄는 대상을 찍으시면 되는데, 정 찍을 것이 없으면 그냥 돌아다니면서 놀아요(47쪽).” 하고 말합니다. 억지로 쥐어짠대서 시가 나오지 않아요. 어거지로 비튼다 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해요. 등을 떠민대서 노래를 부를 수 없어요. 우악스레 잡아끈대서 연극이나 영화를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요. 마음이 이끄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마음이 보여주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멋지게 사진 한 장 찍었다고 여긴다면 내가 찍은 사진은 ‘멋진 사진’입니다. 내가 사진을 찍으며 참 좋네 하고 느낀다면 내가 찍은 사진은 ‘좋은 사진’입니다. 남들이 추켜세울 때에 ‘멋진 사진’이 아니라, 내가 받아들일 때에 ‘멋진 사진’입니다. 남들이 섬기거나 모실 때에 ‘좋은 사진’이 아니라, 내가 깨달아 느낄 때에 ‘좋은 사진’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을 쓰면서 삶을 씁니다. 저마다 누리고픈 삶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글을 씁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 사진을 찍으면서 삶을 찍습니다. 저마다 즐기고픈 삶을 마음속으로 그리면서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일기》를 읽으면, “사진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아니, 마음의 눈을 밝히기 위해서 사진을 하는 것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51쪽).” 하는 말과 “사진일기를 위한 가장 좋은 장소는 당연히 내가 가장 많이 머무는 곳, 그리고 지금 머물러 있는 바로 그곳이다(59쪽).” 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렇겠지요.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을 밝히려고 사진을 하고, 마음으로 바라보는 눈을 밝히는 기쁨이 좋아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내가 머무는 이곳이 사랑스러운 곳이요, 내가 머무는 이곳에서 서로 마주보는 옆지기가 사랑스러운 님입니다.


  스스로 새로운 넋으로 살아갈 때에는 언제나 새롭게 빚는 사진입니다. 스스로 새로운 꿈을 키울 때에는 언제나 새롭게 북돋우는 사진입니다. 새롭게 빛나는 넋이기에 파랗게 물든 하늘에 하얗게 흐르는 구름을 바라보며 즐겁습니다. 새롭게 북돋우는 꿈이기에 푸르게 물든 잎사귀에 하얗게 피어나는 꽃잎을 바라보며 기쁩니다.


  한여름 시골집 마당 가장자리 꽃밭에서 자라는 부추에 하얗게 꽃잎 달립니다. 부추잎 올라올라치면 칼로 똑똑 끊어서 먹었는데, 부추는 꺾이고 잘리면서도 씩씩하게 새 잎을 올리며 이렇게 꽃대까지 세웠고, 꽃대 끝에 재빨리 몽우리를 맺고는 봉오리까지 틔웁니다. 날마다 부추잎 끊어 먹는 즐거움을 누리다가, 부추꽃대까지 끊어 먹지는 말자고 생각하며 흰꽃을 누립니다. 앙증맞은 흰꽃 봉오리가 예닐곱 송이 일고여덟 송이 아홉열 송이 모여 환합니다. 임동숙 님은 “새벽 강가에서 피어오르는 향기는 온몸을 휘감으며 마음으로 스며들며 생명을 깨운다(25쪽).” 하고 말하는데, 나는 새벽에 하얗게 새로 피어난 부추풀 흰꽃을 바라보며 마음으로 스며드는 고운 넋을 깨웁니다. 사진으로 쓰는 일기는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이 되고, 글로 쓰는 일기 또한 날마다 나를 생각하는 길이 되며, 마음으로 쓰는 일기는 언제나 나를 사랑하는 길이 됩니다. (4345.8.13.달.ㅎㄲㅅㄱ)

 


― 사진 일기, 날마다 나를 찾아가는 길 (임동숙 엮음,포토넷 펴냄,2012.7.10./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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