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바라본 한국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4] 이강(李剛), 《韓國》(保育社,1971)
남북녘이 살아가는 땅떵어리에서 오른쪽에 있는 바다를 가리켜 ‘동해’라 말한다지만, 러시아나 일본에서 바라볼 때에도 이 바다가 ‘동해’가 될 만할까 궁금합니다. 지구별에 남북녘 살아가는 땅덩어리만 있다 한다면, ‘동해’뿐 아니라 ‘서해’나 ‘남해’라는 이름을 지도책에 척 하니 적바림할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지구별이라는 테두리에서 바라볼 때에도 ‘동해’라는 이름을 쓸 만할까 궁금합니다. 이와 마찬가지인데, 일본에서는 ‘일본해’라 이름을 붙인다는데, 먼먼 옛날, 곧 서기 500년이나 서기 1000년에는, 기원전 500년이나 2000년 즈음에는 일본땅에서 이 바다를 어떤 이름으로 가리켰을까 궁금합니다. 한겨레한테는 ‘동해’였다면 일본겨레한테는 어떤 바다였을까요. 한겨레는 남북녘 땅덩어리 아래쪽 바다를 두고 ‘남해’라 말하지만, 정작 남북녘 땅덩어리 아래쪽 바다는 ‘남해’라기보다 ‘태평양’이에요. 이쪽 바다를 가리킬 이름을 옳게 붙이자면 ‘남해’ 아닌 ‘제주해(제주바다)’쯤 되어야 알맞지 않으랴 싶어요. 그러고 보면, 한겨레한테는 오른쪽이요 일본겨레한테는 왼쪽이라 할 바다는 ‘울릉바다’라고도 할 만하겠지요. 널따란 바다 한복판에 울릉섬이 꽤 크게 솟았으니까요.
1930년에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이강(李剛) 님이 엮은 사진책 《韓國》(保育社,1971)을 읽습니다. 베트남전쟁 취재도 했다는 이강 님이라 하는데, 이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보육사 빛깔책(保育社 color books)’ 가운데 하나로 《韓國》을 내놓은 만큼, 한국 이야기에 눈길을 두는 분인 줄 헤아릴 수 있습니다. 1966년에는 《これが新しい世界だ “KOREA”》를 엮기도 했다고 해요. 《これが新しい世界だ》는 ‘世界情報社’라는 곳에서 서른두 권으로 내놓은 ‘세계여행 전집’이랄지 ‘세계 이야기 전집’과 같은 책인데, 이 가운데 이강 님이 “한국(KOREA)”을 맡았다는군요. 어쩌면 재일조선인 이강 님일 수 있으나, 이 대목조차 오늘날에는 발자국을 찾기 힘듭니다.
사진책 《韓國》을 찬찬히 읽습니다. 겉에는 “カラ-ガイド”라는 말이 적힙니다. 보육사 빛깔책은 빛깔사진과 그림자사진을 두 쪽마다 갈마들어 넣습니다. 1960∼70년대에 이처럼 빛깔사진을 듬뿍 넣은 작은 사진책을 구경하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더구나 퍽 값싸게 장만해서 알차게 즐길 만한 책은 퍽 적었겠지요.
사진책 《韓國》에 실린 사진은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입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바라보는 한국을 담아내어 ‘일본에서 한국으로 찾아갈 사람한테 길잡이가 되도록’ 엮습니다. 한국을 찾아간 일본사람이 ‘한국에서 으레 보거나 마주하거나 겪거나 부대낄 모습’을 꾸밈없이 담습니다.
예나 이제나 거의 비슷하다 할 텐데, 1971년이든 2011년이든, 또 앞으로 2051년이 되든,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국 바깥에 보여주는 한국 모습’이라 한다면 어떠할까요. 아마, 사진책 《韓國》에 나오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려고는 안 하겠지요. 관광지라든지 ‘아름다운 자연’을 찍는 사진은 《韓國》에도 있습니다만, 《韓國》에는 아름다운 자연이나 관광지만 나오지 않아요. ‘도심에서 30분만 나오면 김포공항 언저리에서도 소가 끄는 수레’를 볼 수 있다면서, 한국을 보여주는 사진 가운데 하나로 소가 끄는 수레를 ‘자동차로 꽉 찬 서울 도심’ 사진이랑 나란히 보여줍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파는 사내아이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놀이공원에서 풍선을 파는 아저씨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갓난쟁이를 업은 아주머니가 살아가는 ‘풀로 이은 지붕’이 가득한 시골마을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습니다. 손으로 모내기 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온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풀집 가득한 시골마을에서 굴뚝에 연기가 솔솔 피어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연탄을 나르는 아이 모습이랑 도리깨질을 하는 할매 할배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무신을 꿴 아이들 모습하고 나룻배 모습을 보여줍니다. 참말, 한국사람 살아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꾸민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눈부신 경제발전’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른바, 공장 굴뚝을 보여주지 않아요. 새마을운동이니 무어니 하면서, ‘한국 정부에서 한국을 알리려고 나라밖에 보여준다’는 사진책을 들여다보면, 경부고속도로 죽 뻗은 길이라든지, 새로 지은 우람한 공장이라든지, 서울에 번듯번듯 높직하게 세운 건물과 아파트라든지, 예쁘장해 보인다는 놀이공원이라든지, 온통 이런 모습들을 ‘한국 정부가 뽐내려’ 하는데, 사진책 《韓國》에는 ‘한국 정부가 뽐내고 싶어 하는 모습’은 한 가지도 안 실립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가 사진책 《韓國》을 보았으면 거북하게 여겼겠구나 싶어요. 왜 더 ‘발전된 신흥공업국’다운 모습을 안 보여주느냐고, 설악산이나 오대산이나 한라산 사진을 잔뜩 보여주지 못하느냐고 따질 만하구나 싶어요.
사진책 《韓國》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여느 사람들 살림살이를 살짝 들여다봅니다. 설악산에 갈 겨를에 여느 도시 여느 골목을 걷는다든지, 여느 시골 여느 고샅을 걷습니다. 더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나, 여느 사람들 살림집 사이를 걷습니다. 수수한 사람들 수수한 살림새와 함께, 한겨레가 먼 옛날부터 이룬 예쁜 문화가 무엇인가 하고 보여줍니다. 박물관과 경주를 돌아다니면서 이곳에 깃든 문화재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사진책 《韓國》은 ‘여느 일본사람이라면 담아낼 수 없을’ 모습을 담아내어 보여주기에 이쁘장합니다. 우스꽝스러운 극장 간판을 보여줍니다. 부산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노는 사내아이를 보여줍니다. 서울 을지로 한옥집을 보여주되, 눈 가득 내린 날 마당에 자전거가 선 모습을 보여줍니다. 밥집이나 멋집도 보여주지만, 여느 저잣거리 모습을 찬찬히 보여줘요.
서울 골프장, 이화여대, 청계천 고가도로 밑 길장사, 얼어붙은 한강에서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사진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자그마한 책을 덮습니다. 이제, 거꾸로 생각을 해 봅니다. 1971년 무렵, 한국에서 일본을 찾아간 누군가 있을 적에, ‘한국에서 일본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어 보여준다’ 한다면, 어떠한 모습을 얼마나 어떻게 담아서 보여주었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11년 오늘날 한국사람은 일본을 찾아가서 어떠한 모습을 즐겁게 누리면서 어떠한 사진을 찍는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 2051년쯤 된다면 이때에는 한국사람이 어떤 눈길로 이웃 일본을 바라볼는지 생각해 봅니다.
그나저나, 1971년, 2011년, 2051년, 이렇게 여든 해에 걸쳐 어느 한 나라를 살핀다 할 적에, 우리들은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을과 보금자리와 나라와 이웃을 어느 만큼 속속들이 살피면서 어느 만큼 사랑스레 껴안을까 헤아려 봅니다. 한겨레 스스로 바라보는 한겨레는 어떤 모습일까요. 한겨레 스스로 이웃나라한테 보여주고픈 한겨레 이야기는 어떤 모습인가요. 한겨레는 한겨레 스스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꾸밈없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으로 알뜰살뜰 담는다고 말할 만한가요. 한국사람 스스로 한국 삶터를 사진으로 못 담고 말아, 이렇게 이웃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한국 삶터를 담은 사진으로 ‘이 나라 사람들 발자국을 돌아보’아야 하지는 않나 궁금합니다. (4345.7.14.흙.ㅎㄲㅅㄱ)
(사진책 읽는 즐거움 . 최종규 .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