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애지시선 16
김해자 지음 / 애지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쁜 하루를 꿈꾸고 싶어
[시를 노래하는 시 24] 김해자, 《축제》


 

- 책이름 : 축제
- 글 : 김해자
- 펴낸곳 : 애지 (2007.11.15.)
- 책값 : 8000원

 


  궂은 날씨에는 빨래가 안 마릅니다. 하루 내내 두어도 도무지 보송보송해지지 않습니다. 해님이 며칠 비치지 않아도 집안은 축축합니다. 해님이 따사로운 손길을 보내지 않을 때에는 지구별이 살아남을 수 없겠다고 느낍니다. 서로서로 알뜰히 아끼고 사랑하면서 즐거이 얼크러질 때에 비로소 예쁘게 살아갈 수 있겠다고 느낍니다.


  사람은 누구나 햇볕을 쬐면서 살아갑니다. 햇볕을 쬐지 못하면 얼굴이며 살갗이며 파리해집니다. 아픈 몸빛이 됩니다. 밥을 먹어 영양소를 몸에 넣더라도, 사람다운 넋을 북돋우는 햇볕을 못 먹을 때에는 자꾸자꾸 몸앓이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오늘날 도시 사회는 사람들이 햇볕을 못 쬐도록 가로막습니다. 버스이든 지하철이든 햇볕하고 동떨어집니다. 시외버스이든 고속버스이든 통유리와 가리개로 햇볕을 막습니다. 건물마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느 건물이든 한낮에도 전기로 등불을 켭니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등불에 익숙해집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아니더라도 살림집부터 늘 등불입니다. 초등학교에 들어 입시지옥 굴레에 갇히면 시멘트 감옥과 같은 데에서 그저 형광등 불빛에 길들어야 합니다. 학교를 벗어나더라도 학원버스가 학교 문 앞에서 기다리고, 학원은 학교와 똑같이 시멘트 감옥과 같으면서 형광등 불빛만 환합니다.


.. 인천 셋방으로 이사 온 이래 / 목욕한 딸아이 알몸을 뽀송뽀송 감싸주며 / 수천 번 젖고 다시 마르면서 / 서울까지 따라와 두 토막 걸레가 되었던 / 20년의 생애 ..  (인연)


  낮이 없는 도시입니다. 해가 멀쩡히 뜬 낮이라 하더라도 건물이 해를 가립니다. 건물 안쪽은 햇볕도 햇빛도 스미지 못합니다. 전기가 나간다면 건물은 온통 새까맣습니다. 죽음과 같은 어둠이 됩니다. 지하철도 지하상가도 모두 죽음과 같은 어둠입니다. 가게도 회사도 공공기관도 모두 전기를 먹는 형광등 불빛으로 환하게 밝힐 뿐입니다.


  도시에서는 낮이고 밤이고 따로 없습니다. 어디에나 시계가 붙고, 언제라도 시간을 볼 수 있으나, 도시에서는 시계나 시간이 대수롭지 않습니다. 낮 열두 시라도 깜깜할 수 있는 도시요, 밤 열두 시라도 훤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지구 바깥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밤에도 불빛으로 하얀 땅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이를 가리켜 문명이요 발전이라고 여기는 듯한데, 더구나 남녘과 달리 북녘은 온통 새까맣다며 비웃거나 불쌍히 여기는 듯한데, 외려 밤에도 낮처럼 환한 남녘땅이야말로 슬프거나 바보스러운 모습이리라 느껴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면, 밤에 쉬지 못한다면, 밤을 밤처럼 누리지 못한다면, 사람들 살아가는 터전은 얼마나 제구실을 한다고 할 만할까요.


.. 양심을 철창에 집어넣는 한 조국이라 부르지 말자 ..  (겨울 편지)


  예쁜 하루를 꿈꾸고 싶습니다. 생각이 빛나고 사랑이 물결치는 하루를 꿈꾸고 싶습니다. 좋은 생각으로 하루를 열어, 좋은 사랑으로 밥을 짓고는, 살붙이하고 예쁘게 나눌 삶을 꿈꾸고 싶습니다. 좋은 웃음으로 말문을 열고, 좋은 이야기로 마음을 북돋우며, 좋은 손길로 따스함을 나눌 삶을 꿈꾸고 싶습니다.


  좋은 햇볕을 누리고 싶습니다. 좋은 햇볕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좋은 햇볕에 내 몸이 알맞게 타고 싶으며, 좋은 햇볕에 빨래가 보송보송 마르기를 바랍니다. 좋은 햇볕에 나무와 풀과 꽃이 푸르게 자라기를 빕니다. 좋은 햇볕으로 좋은 나락이 익어 좋은 사람들 좋은 밥이 되기를 바랍니다. 좋은 햇볕을 누리는 사람들이 좋은 사랑을 나누면서 좋은 누리를 일군다면 참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 살로 태어나 살 먹고 살 부벼 살 낳으신 어무이 / 당신이 빚어놓은 이 살로 이 삶 다하도록 살다 / 살 다 벗어던져 아픔 없는 세상에서 만냅시더 고마 ..  (살)


  여름 장마를 맞이합니다. 며칠이고 하늘이 찌부둥합니다. 볕이 들지 않으니 집안이 눅눅합니다. 집안이 눅눅할 뿐 아니라 마당에 내놓는 빨래가 제대로 마르지 않습니다. 해를 보지 못하는 빨래는 바람만으로는 말끔히 마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기계와 저런 장치를 쓰더라도 빨래가 싱그러이 마르도록 할 수는 없어요. 어떤 기계도 햇볕처럼 빨래를 말리지 못해요. 어떤 장치도 해님처럼 풀과 꽃과 나무를 살찌우지 못해요. 어떤 과학도 햇빛처럼 따사로우면서 맑은 빛을 흩뿌리지 못해요. 어떤 기술도 햇살처럼 상큼하면서 아름답지 못해요.


  여러 날 만에 저녁을 앞두고 해가 비춥니다. 아, 좋아라. 아, 고맙구나. 아, 기뻐라. 아, 예뻐라. 방에 두었던 빨래를 몽땅 밖으로 가지고 나옵니다. 둘째 아이가 쉬를 누어 젖은 깔개랑 발닦개를 밖으로 들고 나옵니다. 마당에 죽 넙니다. 해를 바라봅니다. 두 시간쯤 해가 비출 듯합니다.


  둘째 아이가 오줌을 누어 빨래고 쌓은 빨래를 합니다. 신나게 빨래를 하고 신나게 빨랫줄에 넙니다. 다시 해를 바라봅니다. 해를 바라보며 웃습니다. 부디 저녁에도 밤에도 구름이 걷힌 맑은 하늘로 우리 마을 예쁘게 보듬어 주렴, 하고 노래합니다. 밤에 별을 본 지도 오래된 듯한데, 별 좀 구경하게 해 주렴, 하고 속삭입니다.


.. 무덤처럼 컴컴한 골방에서 20년 / 게쉬타포에 쫓기는 안네처럼 살다 늙어간 여자 / 건물이 헐리고 타워팰리스가 들어선다는데 청계천엔 / 고기가 노는 맑은 물도 흐른다는데 손님 끊긴 지 / 오래인 다방 깨진 수족관엔 / 인조 물풀만 먼지 뒤집어쓰고 있는데 ..  (황학동 안네)


  집안에 널던 옷가지를 마당으로 내놓고, 아침부터 쌓인 빨래를 말끔히 하고 나니, 낮잠을 자던 첫째 아이가 일어납니다. 살짝 한갓지게 보낼 수 있을까 싶었으나, 이제부터 아이하고 놀아야지요. 그런데 아이는 잠이 덜 깬 모습입니다. 아이더러 졸리면 더 누워서 자도 되고, 다 잤으면 즐겁게 일어나서 놀면 된다고 말합니다. 아이는 조금 더 방바닥에 비비며 뒹굴다가 일어납니다. 아이가 아침을 제대로 안 먹고 노느라 배고플 수 있겠다 싶어, 아버지는 네가 아침에 남긴 밥을 조금 먹었어, 너도 배고프면 네가 아침에 안 먹은 밥을 먹으면 돼,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슬금슬금 부엌으로 갑니다. 부엌에 가서 아이가 아침에 남긴 밥을 먹습니다. 아이가 밥을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아이야 네가 아침에 밥을 차려서 함께 먹을 때에 이렇게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덜 배고프거나 무언가 다른 데에 마음이 있어 아침에 밥을 제대로 안 먹었을 수 있어요. 아이가 밥을 예쁘게 먹도록 어버이로서 예쁘게 이끌어야 했다 할 수 있고요. 더 헤아린다면, 아이가 즐겁게 먹을 만한 밥을 옳게 못 차렸으니 아이가 밥을 제대로 안 먹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즐겁게 먹을 만한 밥차림이 되도록 어버이부터 스스로 밥짓기와 삶짓기를 살가이 못했기에, 이 흐름이 아이한테 고스란히 이어졌을 수 있어요.


  좋은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누릴 좋은 삶을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나눌 좋은 말을 생각하고, 아이한테 들려줄 좋은 이야기를 생각합니다. 내가 좋은 하루를 누린다면 내 입에서 흐르는 말은 저절로 좋은 말이 될 테고, 내가 좋은 하루를 빚는다면 내 몸사위는 저절로 좋은 몸짓이 될 테지요.


.. 한 집 건너 지하공장 / 미싱 소리 드르륵대던 곳 / 사철 시꺼먼 하늘만 내려앉던 청천동 / 십자약국 골목 파란 대문 / 빨간 닭장집 안 녹색 부엌문 / 방문 벽에 걸린 푸른 작업복 / 왼편에 하얀 명찰 생산2과 김정례 ..  (승천)


  시집 《축제》를 읽습니다. 시를 쓴 김해자 님은 “지난날 시는 내게 어렵고 황송한 손님이었다(시인의 말).” 하고 말합니다. ‘황송(惶悚)’은 어떤 뜻일까 싶어 국어사전을 찾아봅니다. “분에 넘쳐 고맙고도 송구하다”를 뜻합니다. ‘송구(悚懼)’는 “두려워서 마음이 거북스럽다”를 뜻한다는데 “‘미안하다’, ‘죄송하다’로 순화”할 말이라는 풀이말이 덧달립니다. ‘분(分)’은 ‘분수(分數)’를 뜻한다는데, ‘분수’는 “자기 신분에 맞는 한도”를 뜻한답니다. 그러니까, ‘황송’이란 “주제에 넘쳐 고맙고도 거북스럽다”를 가리키는 셈입니다.


  시가 어떻게 어렵고 고마우면서도 거북스러운 손님일 수 있을까 싶으나, 스스로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참말 시는 이와 같이 찾아오는 손님이리라 느낍니다. 누구나 스스로 생각하는 대로 시가 자리잡고 소설이 깃들며 수필이 스미겠지요. 기쁘게 여기면 기쁜 시요, 해맑게 여기면 해맑은 시이며, 재미나게 여기면 재미난 시입니다. 슬픔을 달래는 벗으로 여기면 슬픔을 달래는 시입니다. 웃음을 나누는 동무로 여기면 웃음을 나누는 시가 됩니다. 밥처럼 삼으면 밥과 같은 시이고, 노래처럼 삼으면 노래와 같은 시예요.


  삶은 시가 됩니다. 삶은 시로 드러납니다. 삶은 시로 갈무리합니다. 삶은 시로 태어나면서 내 새로운 숨을 불어넣습니다.


  시집 《축제》는 시를 쓴 김해자 님 삶입니다. 김해자 님이 살아온 나날을 적은 시요, 김해자 님 스스로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보는 일기입니다. 일기에는 기쁜 웃음도 적으나 슬픈 눈물도 적습니다. 일기에는 흐뭇한 보람도 적으나 고단한 땀방울도 적습니다. 어느 날에는 연필 쥘 기운마저 없이 건너뛸 테고, 어느 날에는 모처럼 한갓지게 말미를 내어 밀린 이야기를 줄줄이 적겠지요.


  곧, 김해자 님으로서는 하루하루 어려우면서도 고맙고 다시금 거북스러운 하루를 맞이하면서 살아갔으리라 느낍니다. 그런데 이런 하루이든 저런 하루이든 김해자 님은 당신 삶을 잔치라 받아들이며 ‘잔치(축제)’라는 싯말을 길어올렸으리라 느낍니다.


.. 선혈이 낭자한 조폭 영화를 보며 / 아름다울 미와 나라 국에 대해 제3자의 본분 내에서 / 진지하게 고찰하며 힘없는 나라의 죄와 / 힘 있는 나라의 정의에 대해 명상했다 ..  (먼 나라)


  나도 내 삶을 들여다본다면 내 하루는 잔치와 같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새롭게 맞이하는 새벽녘은 잔치입니다. 환한 낮이든 구름이 가득한 장마철이든 잔치입니다. 구성진 들새 노랫소리이든 수다스러운 멧새 노랫소리이든 잔치입니다. 어린 아이들 놀음놀이도 잔치요, 이 아이들 치닥거리도 잔치입니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비질이랑 걸레질을 하는 하루도 잔치예요.


  나는 밥잔치를 하고 빨래잔치를 합니다. 놀이잔치이든 노래잔치이든 내 깜냥껏 내 하루를 누리면서 벌입니다. 자전거잔치도 하고 걷기잔치도 합니다. 옆지기는 뜨개잔치를 하고, 서로서로 곧잘 책읽기잔치를 합니다. 읍내로 마실잔치를 다닙니다. 바닷가로 바닷놀이잔치를 떠납니다. 밭흙을 뒤집으며 흙잔치를 합니다. 노랗게 익는 매화나무 열매를 줍거나 따며 열매잔치를 합니다.


  즐거울 때에도 잔치이고, 슬플 때에도 잔치입니다. 홀가분할 때에도 잔치이며, 고단할 때에도 잔치입니다. 아이들 씻기는 하루도 잔치예요. 아이들 손발톱을 깎이는 하루도 잔치예요. 어느 하나 잔치이고, 어느 하나 잔치 아닐 수 없습니다.


.. 전봇대마다 취업공고판마다 기웃거리던 길 / 한 줄에 꿰인 호박꼬지처럼 줄줄이 앉아 작업하던 곳 / 손에 손으로 에이스와 새우깡 따뜻하게 건네지던 곳 / 점심시간 담벼락 아래로 종이에 싼 동전을 내려주면 / 꽈배기과자와 노릿노릿한 찹쌀도너츠가 올라오던 곳 / 야근시간 졸린 잠 쫓으려 커피믹스 가루째 털어넣던 곳 / 유인물 들고 자취방마다 문 두드리던 새벽길 / 머리에 고드름 매달린 채 함께 뛰던 길 / 머리채 잡혀 끌려가던 길 얻어터지다 피 흘리다 / 김포 쓰레기 매립장으로 실려가던 길 / 바람 들이치는 자취방 창문에 고이고이 스치로폼 대고 / 헐거운 부엌문에 이중자물쇠통 달아주던 / 내 어린 첫사랑 끝내 울며 떠나간 길 ..  (공단 길)


  예쁜 하루를 꿈꿉니다. 예쁜 잔치를 꿈꿉니다. 예쁜 이야기를 꿈꿉니다. 예쁜 노래를 꿈꿉니다. 신나게 빨아 신나게 말린 옷가지를 갭니다. 갠 옷가지는 제자리에 착착 얹습니다. 큰아이는 혼자서 저 입고픈 옷을 슥슥 골라 입습니다. 스스로 입고 스스로 벗습니다. 졸리더라도 더 참으며 더 놀고, 고단하더라도 곯아떨어지지 않는다면 잠자리에 들려 하지 않습니다. 참말 잔치일 테니까요. 잔치마당에서 조금 고단하다고 그만 노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더 신나게, 더 개구지게, 더 왁자하게 놀려 하겠지요.


  하루 몫 기운이 다할 때까지 노는 아이들은 고단하게 색색 잠들면서 새 기운을 얻습니다. 새 기운을 얻고는 다시금 새 하루 몫 기운이 다하도록 방방 뛰어놉니다. 그러고 보면, 어른도 아이하고 같구나 싶어요. 하루 몫 기운이 다하도록 스스로 무언가를 합니다. 하루 몫 기운이 다하면 고단히 눈을 감습니다. 한밤을 지나 새벽이 찾아들면 천천히 새 기운을 차립니다. 새 하루에는 어떤 새 잔치를 활짝 열면서 맞이하나 하고 생각합니다. 어떤 일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꿈을 꾸며 누릴까 하고 생각합니다.


.. 그대들 만나 행복했던 나는 그 기쁨만을 안고 갔으니 / 푸른 하늘 아래 우리 함께 했던 따스한 숨결 / 그 사랑만을 데리고 갔으니 ..  (대화)


  처마 밑이 조용합니다. 이른봄에 찾아든 제비들이 새끼를 까서 바지런히 먹이며 돌볼 때에는 처마 밑이 늘 부산했는데, 새끼들이 모두 자라 저희 날갯짓을 마음껏 뽐내며 하늘을 누비고 나서는 늘 조용합니다. 한동안 새끼 제비들이 처마 밑 보금자리로 찾아드나 싶었으나, 어미 제비 가끔 찾아들어 빨래줄에 앉아 말끄러미 바라보다가 뽀로롱 날아갈 뿐입니다. 이제 새끼 제비들도, 어미 제비들도, 훨씬 너른 새 누리를 날아다니면서 몸을 살찌우고 마음을 북돋우겠지요. 가벼우며 힘찬 날갯짓으로 온 들판과 멧자락을 실컷 누비면서 좋은 하루를 누리겠지요. 따사로우며 좋은 날을 지나 천천히 찬바람 찾아들 무렵, 한국땅을 떠나는 기나긴 마실길에 나설 테고, 기나긴 마실길에 나서자면 하루 내내 끝없이 날갯짓하면서 이곳저곳 누비며 날개힘을 길러야겠지요.


  제비들은 어떤 잔치를 빚을까요. 제비들이 하늘에서 날갯짓하며 바라보는 이 땅은 어떠한 삶 어떠한 모습 어떠한 그림일까요. 하늘에서 날갯짓하는 제비가 바라보기에 고속도로나 아파트나 공장이나 골프장이나 발전소는 어떤 터가 될까요. 사람들이 자가용이나 비행기나 기차나 버스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하늘을 날며 살아간다 할 때에는 공장이나 기계나 물질문명이나 도시문화는 얼마나 값있거나 보람있을까요.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려는 사람한테는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꿈을 꾸며 좋은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한테는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사랑으로 아이를 낳아 꿈으로 아이를 보살피려는 어버이한테는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사랑으로 태어나 꿈을 꾸며 하루하루 누리려는 아이한테는 무엇이 대수로울까요.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잔치입니다. 삶은 잔치입니다. 꿈은 잔치이고 사랑도 잔치입니다. 웃음도 눈물도 잔치입니다. 싱그럽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상큼하게 푸른 들판을 바라보는 내 몸뚱이 또한 잔치요, 스스로 좋은 숨결 되어 스스로 좋은 동무로 어깨동무하고픈 내 마음도 잔치예요. 사랑을 먹으며 사랑을 낳고, 꿈을 먹으며 꿈을 낳습니다. (4345.7.8.해.ㅎㄲㅅ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12-07-08 13:15   좋아요 0 | URL
"어제도 오늘도 글피도 잔치입니다. 삶은 잔치입니다" - 작은 것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 모두 잔치 같은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의 삶도 살펴보니, 감사할 게 아주 많더라고요. 그런데 이걸 잊고 살 때가 많아요. ^^

숲노래 2012-07-08 17:10   좋아요 0 | URL
아... 그러나 '작은 것'에 고마워 하는 마음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날마다 좋은 잔치라 할 때에는
내 삶은 '작지도 크지도' 않아요.
크기로 따지는 '잔치'가 아니라,
좋은 삶이자 사랑이기에 누리는 '잔치'라는 뜻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