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아라키 노부요시, 사진을 말하다 1
아라키 노부요시 지음, 백창흠 옮김 / 포토넷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사진이 좋아서 살아간다
 [내 삶으로 삭인 사진책 34] 아라키 노부요시,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포토넷,2012)

 


- 책이름 :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
- 글 : 아라키 노부요시
- 옮긴이 : 백창흠
- 펴낸곳 : 포토넷 (2012.7.10.)
- 책값 : 16000원

 


  (1) 삶을 좋아한다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품은 좋은 사랑을 사진으로 옮깁니다. 한 장 두 장 즐겁게 찍습니다.


  삶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사진을 찍습니다. 삶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마음속에 있을 좋은 사랑을 사진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한 장 두 장 사진이 늘어나지만, 즐거운 마음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아하며 즐기는 삶일 때에 좋아하며 즐기는 사진입니다. 좋아하며 즐기는 삶이기에 좋아하며 즐기는 글쓰기요 그림그리기입니다. 좋아하며 즐기지 못할 때에는,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더라도 노래를 즐기지 못합니다. 노래를 불러 돈을 번다지만 노래를 좋아하지 못합니다. 좋아하며 즐기지 못할 때에는, 그저 공무원이나 회사원처럼 일터에 몸을 가둘 뿐, 마음을 살찌우거나 북돋우지 못해요. 다달이 일삯을 벌어 자가용을 장만하거나 아파트를 마련하거나 이것저것 물건을 잔뜩 사들일 수는 있지만, 막상 삶을 좋아하는 길은 찾지 못해요.


  무슨 일거리를 찾거나 무슨 꿈을 이루려 하거나 맨 먼저 한 가지를 해야지 싶어요. 무엇보다 삶을 사랑해야지 싶어요. 삶을 사랑하지 않고서야 사진쟁이가 되지 못해요. 연극쟁이도 영화쟁이도 만화쟁이도 모두 삶을 사랑하면서 이루어져요. 흙을 일구는 사람도, 고기를 낚는 사람도, 과학자나 운동선수나 정치꾼이나 모두 이와 같아요. 삶을 사랑할 때에 비로소 ‘내 일(삶짓기)’이나 ‘내 직업(돈벌이)’을 깨달을 수 있어요.


.. 먼저 사진가의 패션에 대해 말해 볼까요. 어깨에 가방을 멘 채로 찍으면 안 된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맨몸으로, 몸으로 찍어야 합니다. ‘사진 찍으러 왔습니다’가 아니라 거리에 녹아들었다는 느낌이어야 합니다 … 상대의 동료가 된다고 할까, 동화되지 않으면 찍을 수가 없지요. 상대가 마음을 허락하도록 해야 합니다 … 사진의 시작은 자기 자신과 가까운 대상부터 관계를 만들고 차근차근 해 나가면 됩니다. 알아챈 걸 계속해 적용해 나가면 사진의 여러 가지 기술과 방법을 알게 되지요. 방법론이란 건 현장에서 나옵니다 … 사진을 찍는다는 일은 간단히 말하자면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 사람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  (15, 17, 19, 20쪽)


  사진을 찍는 사람은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그런데, 삶을 좋아하지 못하면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다면, 이이는 사진이 아닌 헛물을 켜는 노릇입니다. 사진기를 다루어 이럭저럭 이름을 얻거나 돈을 번달지라도, 이런 사람한테 사진쟁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없이 사진을 찍는 일이란, 기계도 할 수 있어요. 아니, 좋아하는 마음이 없이 무엇인가 한다면, 이때에는 사람 스스로 사람다움을 버리고 기계가 된다는 뜻이에요.


  사람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람은 공부벌레나 공부기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공부를 좋아하면서 삶을 누려야 똑똑한 사람이 되면서 학자가 돼요. 운동을 좋아한다면서 야구선수가 되든 축구선수가 되든 배구선수가 되든, 스스로 삶을 좋아하면서 운동을 할 때에 비로소 운동벌레나 운동기계 아닌 ‘한 사람’이 돼요.

  곧, 적잖은 사람들은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이른바 ‘사진벌레’나 ‘사진기계’가 되어 이름값을 얻거나 돈을 법니다. 적잖은 사람들은 값싼 사진기를 쓰든 값비싼 사진기를 쓰든, 사진찍기가 아닌 ‘이름값 찍기’나 ‘돈벌이 찍기’에 얽혀들고 말아요.


.. 나쁜 사진이 나온다는 건 결국 찍은 사람이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습이 부족한 거지요. 그만큼 사진에는 자기 자신이 속속들이 드러납니다 … 사진가라는 직업은 굉장히 슬픈 직업이에요. 죽치고 계속 다시 하고 싶지만, ‘자, 여기까지’라고 말해야 되는 거죠 … 인터뷰라는 것이 상대로부터 무엇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사진은 인터뷰와 똑같습니다. 표현이 아닌 표출. 그러니까 상대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무엇을 끌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 자기 스튜디오에서 작업한다면 편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진 않아요 ..  (19, 30∼31, 37, 49쪽)


  사진을 찍을 때에 ‘값진 장비’로 더 낫다 싶은 사진을 찍지 못하는 까닭이 있다면, 오직 하나입니다. 사진은 ‘사람’ 스스로 ‘단추를 손가락으로 눌러’ 찍기 때문입니다. 세발이에 사진기를 얹고는 단추를 누른다 하더라도 ‘어느 때’에 ‘왜’ 찍느냐 하는 생각이 움직여야 비로소 사진이 태어나요. 기계 혼자서 때맞춰 찰칵찰칵 찍는 일은 사진찍기라 할 수 없습니다. 이럴 때에는 기계질일 뿐입니다. 한자말로 ‘기록’이라 할 수 있을는지 모르나, 기록이 된다 하더라도 사진이 된다 할 수 없습니다. 사진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어떤 삶을 담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어떤 삶을 어떤 이야기로 들려줄까 하고 마음을 기울이면서 태어납니다.


  컴퓨터가 글을 써 주지 않습니다. 컴퓨터가 그림을 그려 주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붓을 손에 쥐어 글을 썼다 하고, 연필을 손에 쥐어 글을 쓰기도 했는데, 오늘날 컴퓨터를 켜고 글을 쓴다 하더라도, 글은 사람이 씁니다. 컴퓨터가 쓰는 글이 아닙니다. 사람 스스로 컴퓨터를 켜고는 사람 스스로 생각을 움직이고 마음을 기울여 글을 씁니다. 컴퓨터로 그림이나 만화를 그린다 하더라도 사람 스스로 생각과 마음을 써서 그림을 그리며 만화를 빚어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사진을 만지작거릴 때에도 이와 같겠지요. 컴퓨터로 만드는 예술이나 문화가 아니에요. 사람이 ‘컴퓨터라는 새 연장’을 쓰며 사진으로 이야기를 빚어요.


  사진기는 틀림없이 기계이지만, 기계를 다루는 사람 생각이나 마음에 따라 사진이 달라집니다. 사진기는 연필이나 붓하고 다른 연장이라 할 테지만, 곰곰이 밑바탕을 살피면 사진기는 연필이나 붓하고 같아요. 연필이 글을 낳지 않고 붓이 그림을 낳지 않아요. 사진기가 사진을 낳지 않아요. 사람이 글을 낳아요. 사람이 그림을 낳아요. 사람이 사진을 낳아요.


  사람이 글을 읽어요. 연필이 글을 읽지 않아요. 사람이 그림을 보아요. 붓이 그림을 보지 않아요. 사람이 사진을 바라보면서 읽고 느껴요. 사진기가 사진을 바라보거나 읽거나 느끼지 않아요.


.. 롱숏으로 행복감을 찍을 수 있으면, 이거야말로 대단한 일이겠지요 … 나와 사진의 생리가 너무나도 잘 맞으니까 스스로 사진의 천재라고 부르고 있는 거죠. 사진은 곧 나라는 느낌이 들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 사진에는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동시에 들어가 있어요 … 찍고 싶다는 굉장한 욕망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비밀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 이 두 가지가 사진 안에는 모두 있습니다 … 역시 사랑하는 기분이 없으면 저쪽(대상)의 사랑스러움은 사진에 절대 나오지를 않아요 ..  (27, 32, 39, 64쪽)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익히면서 사진을 찍는 길을 익힐 수 있습니다.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익히지 않는다면 사진을 찍는 길을 익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대학교 수많은 사진학과가 있지만, 막상 사진쟁이를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까닭은, 대학교나 사진학과에서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사랑스레 보듬지 못하기 때문 아닌가 싶어요. 한국에서도 이웃나라에서도 똑같겠지요. 한국에서 사진을 배우려 하든, 이웃나라에서 사진을 배우려 하든, 맨 먼저 배울 대목은 ‘삶을 좋아하는 마음’이에요. 사진기 다루는 솜씨나 사진을 읽는 눈썰미를 배울 일이 아니에요. 아니,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배우지 못했다면, 사진기를 다루는 솜씨도 배우지 못해요.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배우지 않았으니, 사진을 읽는 눈썰미를 배울 수 없어요.


  삶을 느끼지 못하는데 산 목숨이라 할 수 없어요. 산 목숨이라 할 수 없으니, 사진기를 손에 쥔들 사진을 찍지 못해요. 기계질을 하겠지요. 기록은 하겠지요. 무언가 만지작거리면서 예술을 한다거나 문화를 한다며 내세울 수 있겠지요. 기계질·기록·예술이라는 껍데기를 붙일 수 있더라도, 이런 기계질이나 기록이나 예술을 섣불리 사진이라고 일컫지 않아요.


  기계질처럼 쓴 ‘글’을 ‘글’이라 하는 사람은 없어요. 기록처럼 기록한 ‘그림’을 어느 누구도 ‘기록’이라 말하지 않아요. 예술이라고 밝힌다면 예술일 뿐, 글도 그림도 사진도 아니에요. 사진이 되려면 오로지 사진이어야 해요. 사진이라는 이름을 누리자면 그예 사진이 되어야 해요.


  그러니까, 밥은 밥이지 밥은 요리가 아니고 영양소가 아니에요. 나무는 나무이지 엽록소나 세포가 아니에요. 해는 해이지 천체나 우주가 아니에요. 지구별은 지구별이지 투자대상이나 개발대상이 아니에요.


  좋아하면 사진이에요. 좋아하면 삶이에요. 좋아하면 노래예요.


  돼지 멱 따는 소리라 한들 나 스스로 좋아하면서 부르기에 노래예요. 가난하다 하더라나 싱긋빙긋 웃으면서 누리는 삶이기에 참말 삶이에요. 초점이 어긋나거나 빛이 잘 안 맞았다 하더라도 즐겁게 좋아하며 찍었기에 사진이에요. 초점이 잘 맞거나 빛을 놀랍게 맞추었기에 사진이 되지 않아요. 기계질은 기계질이고 사진은 사진이에요.


.. 내 경우엔 그림도 사진도 순간예술이지요. 어느 쪽이든 순간을 본다는 사실에 있어서는요 … 과거를 끌어오지 않는 사진은 좋지 않습니다. 사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인생도 그렇지 않나요 … 두 사람을 나란히 찍을 때 인간관계 같은 게 전혀 느껴지지 않게 찍는 사람도 있어요. 겉모습만 찍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자신의 초라함을 나타낼 뿐 좋지 않습니다. 찍는 쪽의 초라함이 나온다면 모델이 되어 준 사람에게 실례죠 … 상대를 해석하고 자기의 생각에 부합되는 방향으로 찍으려고 하면 안 돼요. 그게 아니고 본능적으로 딱 느끼고 찍어야 하죠 ..  (39, 46, 47, 58쪽)


  삶이 있어 사진이 있습니다. 삶이 있어 글이 있습니다. 삶이 있어 예술이 있습니다. 삶을 누리면서 사진을 누립니다. 삶을 즐기면서 글을 즐깁니다. 삶을 빛내면서 예술을 빛냅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은 삶을 좋아하면서 즐기면 됩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삶을 좋아하면서 즐기면 됩니다. 좋아하면서 즐기는 마음이 아직 들지 않는다면, 아직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요 아직 글을 쓸 때가 아닌 셈입니다. 좋아하면서 즐기는 마음이 될 때까지 차근차근 사진을 새로 배우고 글을 새로 배울 노릇입니다. 삶을 좋아하는 마음을 천천히 익히고, 삶을 즐기는 생각을 곰곰이 가다듬을 노릇입니다.

 


 (2) 사진을 좋아한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포토넷,2012)을 읽습니다.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생각하는 ‘사진이란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들려주고, 아라키 노부요시 님 스스로 즐기는 삶을 들려줍니다.


  더없이 마땅한데,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사진이론을 한 줄도 적지 않습니다. 사진비평을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사진을 말할 뿐입니다. 스스로 즐기는 사진을 찍을 뿐입니다.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사진을 찍는 삶을 말합니다. 꼭 이 두 가지면 넉넉합니다. 어떻게 사진을 좋아하는 마음을 돌보면서 살아가느냐 하고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삶을 즐기는 한길을 누리며 사진기를 손에 쥐는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 사진가라는 사람들도 역시 답장이 오길 바라는 거예요 … 그런 길잡이, 그런 선배들이 있으니까 배달원 청년들도 웃음을 띠고 있어요. 젊은 사람도 모두 자기의 직업에 대해서 긍지를 갖는 거죠. 자기의 직업을 낮게 여기거나 높게 생각하는 경우가 없다는 걸 느꼈어요. 눈 오는 날에 신문 배달을 하다가 뒤돌아보는 청년의 모습이 매우 좋았어요. 멋진 미소를 머금은 소년들이 이 거리에는 남아 있어요 … 사진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은 인생이나 인간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지요 … 나는 줄곧 작품이 아닌 쪽이 사진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왔어요. 그래서 그때까지는 내 손으로 현상하던 것을 그만두었던 거죠 ..  (48, 56∼57, 58, 88쪽)


  100원짜리 볼펜으로 아름다운 문학을 빚을 수 있습니다. 50원짜리 연필로 어여쁜 시를 빚을 수 있습니다. 1만 원짜리 즉석사진기로 아름다운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동무한테서 빌린 사진기로 어여쁜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어야 할 글(또는 문학)이 아닙니다. 저것이어야 할 사진이 아닙니다. 내 삶이 곧 내 글입니다. 내 삶이 곧 내 사랑입니다.


  1000만 원짜리 붓으로 아름다운 문학을 빚을 수 있습니다. 500만 원짜리 만년필로 어여쁜 시를 빚을 수 있습니다. 1억 원짜리 파노라마사진기로 아름다운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 회사에서 받은 사진기로 어여쁜 사진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써야 할 글이 아닙니다. 저렇게 찍어야 할 사진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삶이 곧 내가 좋아하는 글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삶이 곧 내가 사랑하는 사진입니다.


  값이나 값어치가 아닌, 내 삶을 좋아하면서 즐기기에 알맞을 만한가에 따라 볼펜이나 연필이나 붓을 찾습니다. 값이나 값어치가 아닌, 내 삶을 빛내면서 나누기에 좋을 만한가에 따라 사진기를 살피고 장만합니다.


  돈이 있으면 비싸다 싶은 사진기라도 금세 장만합니다. 돈이 없으면 빌리는 길을 찾으면 되고, 빌리기 힘들면 여러 해에 걸쳐 푼푼이 모아 장만합니다. 바로 오늘 훌륭하다 싶은 사진기를 손에 넣었기에 오늘부터 더 많이 더 오래 사진을 찍지 않아요. 다섯 해 뒤나 열 해 뒤나 열다섯 해 뒤에 가까스로 사진기 한 대 장만할 수 있기에 남들보다 더 적게 더 짧게 사진을 찍지 않아요.


  사진길은 열 살부터 걸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진길은 스무 살부터 걸어야 좋지 않습니다. 사진길은 마흔 살이나 예순 살에 걷는대서 늦지 않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이라고 깨달은 때에 사진기를 알맞게 살펴 장만하면 됩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스스로 어떻게 즐기고 싶은가를 생각하면서 사진기 단추를 누르면 됩니다.


.. 그러니까 렌즈를 바꾸는 게 아니라 자신이 몸을 숙이거나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거나 하는 것이지요. 사진은 자신의 몸으로 찍는 것이니까요 … 역시 좋은 장소에는 예쁜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띤 얼굴의 예쁜 아이가 자라고 있어요 … 솔직한 기분으로 찍으면 좋게 나와요. 비틀면 안 돼요. 꼬아서도 안 되고요 … 사랑받을 수 없다면 피카츄처럼 되지 않으면 안 돼요. 좀도둑도 아니면서 도둑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게는 하지 마세요. 그런 사람은 그 사진들이 깊이가 있어 정신적이라고 생각할 테지만요 … 사진이 정체되어 있다느니 뭐니 말하는 것은 찍는 쪽이, 인간이 안 된 것뿐이에요. 사진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만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에 비교할 수 없는 거잖아요 ..  (69, 72, 126쪽)


  ‘잘 찍는 사진’은 없습니다. ‘기계질이 돋보이는 사진’은 있습니다.


  ‘멋진 작품이라 할 사진’은 없습니다. ‘기록이 남다른 사진’은 있습니다.


  밥을 하고 빨래를 하며 비질이나 걸레질을 하는 마음이 대수롭습니다. 밥짓는 솜씨나 빨래하는 재주나 비질하는 모양새가 대단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짓는 밥을 마음으로 먹습니다. 마음으로 찍는 사진을 마음으로 읽습니다. 마음으로 나누는 사랑을 마음으로 빛냅니다. 마음으로 쓰는 글을 마음으로 아로새깁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사진을 ‘무겁게’ 누르거나 ‘가볍게’ 휘두르지 않습니다. 언제나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면서 사진기를 곁에 둡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스스로 즐기는 삶결을 살려 스스로 즐기는 사진결에 마음을 기울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스스로 ‘천재’라 생각하니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천재’입니다. 당신이 스스로 ‘사랑꾼’이라 생각하면 당신은 스스로 ‘사랑꾼’입니다. 이녁이 스스로 ‘멋쟁이’라 생각하면 이녁은 스스로 ‘멋쟁이’예요.


.. 나는 인간의 존엄을 찍는 거예요 … 보고서 풀이 죽어 버리는 것 같은 포트레이트는 안 됩니다. 살아 있는 기쁨이라든가, 살아 있는 애정이라든가, 그런 걸 찍어야 하는 거지요 … 서울은 비가 와서 좋았어요. 비라도 내리지 않았으면, 한국은 심심했을 거예요. 먼지가 많아서 말이지요 … 요즘 젊은 사람들의 사진은 평면적이라서 그림자가 없는 듯이 찍고, 그림자가 없는 듯이 만들려고 해요 ..  (131, 134, 195, 225쪽)


  아직 한국땅에서 아라키 노부요시 님 같은 사진쟁이가 태어나지 못하는 까닭을 헤아려 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그예 ‘사진을 좋아하’며 살아가요. 당신이 어느 대학교를 나왔는지 알 길이 없고, 당신이 누구한테서 사진을 배웠는지 알 턱이 없습니다. 나는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을 한 권 두 권 장만하면서 ‘아라키 노부요시가 좋아하는 삶을 좋아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좋아하는 손길로 담은 사랑스러운 사진’을 느낍니다. ‘어느 대학교 어느 사진학과 어느 흐름 어느 갈래 어느 스승 어느 계보 어느 사진이론’ 따위는 하나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생각조차 안 합니다. 나는 오로지 ‘아라키 노부요시 님이 스스로 어떠한 삶을 좋아하면서 즐겼을까’ 하는 대목을 생각합니다. 사진을 읽는 나 스스로 나는 또 어떠한 삶을 좋아하면서 오늘 하루를 즐기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사진찍기는 삶찍기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당신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사진읽기는 삶읽기입니다. 아라키 노부요시 님 사진책을 읽으면서 당신 삶을 사진 하나하나 다 다르게 읽습니다.


  내가 내 사진을 찍을 때에는 내 삶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어떤 허울을 뒤집어씌우거나 껍데기를 들씌우려고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무슨 이름값을 자랑하거나 돈벌이를 할 삶이 아니기에, 내 삶은 스스럼없이 좋아하는 내 사진이 됩니다.


  내가 내 사진을 읽을 때에는 내 삶을 사진으로 읽습니다. 아, 나는 예전에 이러한 사진을 이러한 삶을 사랑하면서 찍었네, 하고 돌이킵니다. 나는 내가 찍은 내 사진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느낍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삶을 환하게 빛내듯 즐기고, 사진을 읽으면서 삶을 따숩게 껴안듯 누립니다.


.. 나는 대상이 가장 기뻐하는 사진을 넣고 싶어요 … 무슨 의미냐면, 사진을 좋아해요. 사진이라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사진이라는 행위가 좋아요 … 보는 사람의 눈도 높아지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 하지만 인간을 찍는다, 따듯한 인간을 찍는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서는 거예요 … 좋은 점을 발견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거죠. 사진의 역할이란 건, 그런 게 있어요 … 나는 불상이든 뭐든 인간이랄까, 사람의 감각으로서 찍으니까요. 나는 어찌 됐든 물체로 하고 싶지는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하면 되살리고 싶고 어서 빨간 피를 주입하고 싶은 마음으로 찍는 거예요 ..  (141, 144, 148, 149, 214, 218쪽)


  내 하루 가운데 가장 빛나는 한때를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 하루 가운데 가장 환한 보금자리를 글로 씁니다. 아이하고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든, 아이와 나란히 누워 노래를 부르든,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태워 노래를 부르든, 나는 내 목청 가운데 가장 보드라우며 좋은 소리를 뽑아서 나긋나긋하게 노래를 부릅니다. 내 온 사랑을 내 온 하루에 싣습니다. 이제껏 살며 보살핀 내 모든 꿈이 노래 한 가락에 사뿐사뿐 담깁니다.


.. 이미 내 머릿속에 있는 거예요. 시대라든가 공간이, 자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 정말요, 그림도 음악도, 그렇게 시끄러워지면 좋을 리가 없어요. 자기 안에 또 하나의 냉정한 자기가 없으면 말이에요 … 자신이 찍은 사진에 자기가 용기를 얻어요. 다른 사람의 사진이 아니라 자기가 과거에 찍은 사진을 보고 무어라고 할 마음이 생기는 거지요. 지금을 위해, 옛날에 씨를 뿌린 것 같은 거예요 … 사진을 단순히 카메라를 사용해서 하는 작업 행위로 생각한다면 편하겠지만 사진이라는 걸 하게 되면 골치 아파요. 보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 될 수 있는 한 제대로 하는 것을 찍지 않으면 끝이에요. 떨어진다고 할까, 쓰러지니까요 ..  (227, 233, 249, 250쪽)


  좋아요. 《천재 아라키의 괴짜 사진론》을 쓴 아라키 노부요시 님 마음이 좋아요. 당신은 당신 스스로 좋아하는 삶을 누리며 사진을 즐긴 이야기를 동무와 이웃한테 기쁘게 나누어 주고 싶어 책을 내놓았겠지요. 이 책을 읽은 사람들 누구나 스스로 삶을 좋아하면서 즐길 수 있기를 비는 꿈을 곱디곱게 담았겠지요.


  그리고,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당신이 내놓은 이 책을 틈틈이 다시 들추리라 생각해요. 당신은 당신이 찍은 예전 사진을 되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당신은 당신이 쓴 예전 글을 되읽으면서 생각이 환해지겠지요.


  그래요. 지구별 모든 사람은 똑같아요. 스스로 찍은 사진은 스스로 좋아할 사진이에요. 공모전에 내놓거나 작품집을 만들거나 전시회를 열려고 찍는 사진이 아니에요. 스스로 마음을 달래거나 생각을 빛내려고 스스로 찍는 사진이에요.


  문학공모에 뽑힌다거나 작품집이 나오도록 하려고 쓰는 글이란 참 따분하거나 재미없어요. 스스로 마음을 달래거나 생각을 빛내려고 스스로 쓰는 글일 때에 비로소 재미있으며 환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고 싶으면 좋은 대학교 좋은 사진학과 좋은 스승을 찾아가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요. 사진을 찍고 싶으면 좋은 꿈을 키우며 좋은 삶길을 걷는 사람들이 빚은 좋은 사진책을 ‘내 좋은 땀을 흘려 벌어들인 내 좋은 돈’을 기쁘게 써서 장만한 다음 좋은 하루를 쪼개어 좋은 마음씨로 읽으면 돼요. 내 사진길을 북돋울 스승은 바로 나예요. 내 사진꿈을 이룰 길동무는 바로 나예요. 내 사진삶을 열어젖힐 이슬떨이는 바로 나예요.


  내 삶을 내가 돌보고, 내 사진을 내가 이뤄요. 내 삶을 내가 사랑하고, 내 사진을 내가 사랑해요. 사진이 좋아서 살아가는 아라키 노부요시 님은, 삶이 그저 좋아 하루하루 예쁘게 맞아들이면서 이 예쁜 하루를 사진으로 옮기는 사랑을 영그는 한 사람이에요. (4345.7.7.흙.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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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7-08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찍고 싶다는 굉장한 욕망과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 비밀을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 이 두 가지가 사진 안에는 모두 있습니다" - 이것 글쓰기와 같군요. 저는 글을 쓰고 싶다는 행위에 대한 욕구와 나만이 아는 비밀을 보여 주고 싶다는 욕구, 이 두 가지를 가지고 글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비밀이란 부분에서 매번 실패하게 되지요. 삶을 통찰한 비밀을 쓴다는 게 어려워서 말이죠. ㅋ

님이 말씀하신 대로 "좋아하며 즐기는 삶"이어야 할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런 걸 많이 느껴요. 돈벌이라는 것도 즐기지 못할 땐 괴로운 일이 되고 말아요. 일을 사랑하며 즐기고 있는데, 게다가 그 일에 돈이 따르게 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이 글을 저의 삶에 대입해서 읽었어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숲노래 2012-07-08 17:09   좋아요 0 | URL
'사진'이라는 대목을 알맞게 달리 넣으면
누구나 좋은 생각을 얻을 수 있어요.

아직 한국에는 아라키 노부요시 같은 사진쟁이가 없어,
이처럼 자유로우며 예쁜 생각을 들려주는 이 또한 없어요.

어찌 보면, 글을 쓰는 분이나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는 분에서도
엇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pek0501 님이 가장 좋아하는 길대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좋은 삶을 나눌 수 있다면,
돈벌이도 이와 함께 즐거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