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어 노래 3
후지모토 유우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웃는 얼굴
 [만화책 즐겨읽기 161] 후지모토 유키, 《다녀왔어 노래 (3)》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넘습니다. 숨이 턱에 닿지만 고르게 쉬고 고르게 뱉습니다. 왼발과 오른발을 하나둘 하나둘 외면서 힘차게 구릅니다. 아래로 미는 발은 앞꿈치를 써서 잡아당기듯 하고, 앞꿈치를 써서 잡아당기듯 하던 발은 아래로 미는 발이 됩니다. 시골집에서 나와 처음 맞이하는 멧자락은 비봉산 기슭. 447미터 멧자락이니 그리 안 높다 할 테지만 자전거로 지나가는 길은 길에 뻗은 오르막입니다. 군내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에도 비알이 참 길고 가파르게 났구나 하고 느꼈지만, 막상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넘자니 땀이 솟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다 넘으면 이제 신나게 달리는 내리막을 맞이할 테지요. 거꾸로 이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길디긴 구불구불한 오르막을 지나서 꼭대기에 다다르면 새삼스럽게 내리막을 달릴 수 있을 테고요.


  비봉산을 지난 나는 마복산(534미터) 옆을 지납니다. 이윽고 상산(272미터)을 지난 다음 삼암산(212미터)을 지납니다. 상산과 삼암산은 내나로도에 있는 멧자락입니다. 섬으로 난 길은 멧자락을 따라 천천히 휘고 천천히 오르막이 되다가 내리막이 됩니다.


- “하지만, 웃는 걸 보는 건 좋아.” ‘그건, 좋아한다는 뜻 아냐?’ (26쪽)

 

 


  버스나 자동차를 타고 이 길을 달릴 때에는 얼마나 오르막이요 얼마나 내리막인가를 몸으로 느끼기 쉽지 않습니다. 두 다리로 걷거나 자전거를 달릴 때라야 비로소 길을 느낍니다. 자전거로 멧길을 달리며 온몸이 뻐근합니다. 목덜미와 어깨와 팔꿈치와 손목과 허벅지와 무릎과 발목 모두 뻑적지근합니다. 얕든 높은 오르막을 오르는 동안 헉헉거릴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르막을 마치고 한숨을 돌리며 가볍게 발판을 구르면 다시 기운을 차려 새로운 오르막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자전거로 달리며 멧새 소리를 듣습니다. 풀숲 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이 들풀과 멧나무 잎사귀 건드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바닷물이 모래밭에 닿는 소리를 듣습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자동차가 내는 소리도 듣습니다. 아마, 버스나 자동차에서는 자동차 소리 하나만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마이고 등판이고 손등이고 팔뚝이고 땀이 줄줄 흐릅니다. 온통 땀투성이가 되지만, 빙긋 웃습니다. 나한테 다가오는 소리가 좋고, 나한테 풍기는 멧내음이 좋으며, 나한테 젖어드는 들바람과 멧바람과 바닷바람이 모두 좋습니다. 나도 그렇고 누군가도 그렇지만, 옴팡 땀투성이가 되어 자전거를 달리는 까닭은 자전거를 달릴 때마다 새롭게 알 만합니다. 온몸 어느 구석 안 아프거나 안 힘든 데가 없으나, 마음이 홀가분하면서 맑아져요. 길을 달리는 내가 아니라 길을 거쳐 하늘을 나는 나입니다. 길에서 숨을 헐떡이는 내가 아니라 가쁜 숨으로 좋은 풀내음 바람내음 바다내음 멧내음 나무내음을 맞아들이는 나입니다.


- ‘이날 하교길에 테츠에게 거의 스무 번 정도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집에 갔습니다.’ (44쪽)
- ‘애당초 내가 돈 관리를 시작한 진짜 이유는, 나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기 때문이었어.’ (67쪽)

 

 


  시골 할매가 밭에서 김을 맵니다. 시골 할배가 밭둑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허리를 폅니다. 김매기는 참 허리가 아픈 일입니다. 그런데 김매기를 하며 이맛살 찡그리는 할매나 할배는 못 보았습니다. 참말 고된 일을 하지만, 풀을 만지고 흙을 만지는 당신들은 찡그리거나 울거나 골을 내지 않습니다. 그예 맑은 낯빛이요 그저 보드라운 얼굴빛입니다.


  문득문득 이웃 시골마을 할매와 할배를 스쳐 지나가며 생각합니다. 까르르 왁자하게 터뜨려야만 웃음이 아닙니다. 부드럽게 싱긋빙긋 짓는 웃음 또한 웃음입니다. 가만히 땀을 흘리는 고요한 낯빛도 웃음입니다. 나는 어떠한 모습과 얼굴로 자전거를 달리며 땀을 흘리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내 얼굴도 싱긋빙긋 웃으며 가쁜 숨을 고르려나 하고 헤아립니다.


  하늘에 가득한 구름을 올려다봅니다. 먼먼 바다에까지 드리운 구름을 바라봅니다. 가끔가끔 고개를 내미는 햇살을 느낍니다. 해가 들 적에는 멧자락 숲이 다른 빛깔 다른 무늬 다른 모습이 됩니다. 햇살이란 얼마나 좋은 선물인가 하고 다시금 깨닫습니다. 내 삶은 나 스스로 햇살과 같이 맑으며 따스하고 빛나며 싱그러울 때에 참 좋겠다고 느낍니다.


- “그리고 얼마 안 되지만 알바 월급도 받고 해서, 고기 사 왔어.” (70쪽)
- ‘내가 울고 있으면 언제나 엄마는 함께 요리를 하자고 했다. 야채 껍질을 벗기고,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그러다 보면, 어쩐지 마음이 가라앉아서.’ (119∼120쪽)

 


  후지모토 유키 님 만화책 《다녀왔어 노래》(대원씨아이,2012) 셋째 권을 읽습니다. 나는 따사롭게 맑은 마음이 되고 싶어 만화책을 읽습니다. 그림책을 읽거나 사진책을 읽을 때에도, 시집 한 권을 읽거나 푸른문학 하나를 읽을 때에도, 인문책이나 환경책이나 여느 글책을 읽을 때에도, 내가 바라는 이야기는 오직 하나입니다. 따사롭게 맑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사람들 꿈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지식이나 저런 정보는 안 바랍니다. 이런 사랑과 저런 꿈을 바랍니다. 좋은 넋으로 어깨동무하는 손길을 바랍니다. 예쁜 눈빛으로 품앗이를 하는 마음길을 바랍니다. 만화책 《다녀왔어 노래》는 이 대목에서 반갑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포근한 사랑이랑 꿈을 노래하거든요.


- “아무래도 익숙해지는 게 제일 중요하겠죠. 참, 그리고요, 평소엔 원래 아버님이 요리를 하시죠? 그러면, 아버님이 요리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따라 한다는 생각으로 하면 더 잘될지도 몰라요. 전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따라 했거든요. 언제나.” (139쪽)
- ‘(추워서) 손에 감각이 없어. 일한다는 건 정말로 힘든 거구나. 몇 살 위라는 이유만으로, (오빠들은) 우리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고 있어.’ (180∼181쪽)


  세 시간을 쉬지 않고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엊저녁, 나는 일부러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모처럼 두 아이를 자전거수레에 안 태우고 혼자 한갓지게(그러나 무척 바삐)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네 식구 살아가는 이곳 전라남도 고흥군 시골마을 한켠에 어느 대기업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화력발전소를 짓겠다는 생각을 끝없이 밀어붙이는 터라, 대기업과 군수가 밀어붙이려 하는 화력발전소가 나와 이웃들 ‘예쁜 마을’을 어떻게 망가뜨리려 하는가 하고 살피려고 자전거를 달렸습니다.


  화력발전소를 세우려 하는 섬마을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화력발전소가 선 다음 전기가 모자라다는 큰도시까지 커다란 송전탑을 세울 적에 어디쯤에 세울까를 헤아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화력발전소는 다도해 국립공원을 얼마나 무너뜨릴까 돌아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화력발전소가 서면 고흥 시골마을 예쁜 멧자락과 숲과 들판과 마을이 얼마나 슬프게 무너져야 하나 근심하며 사진을 찍습니다.


  그러나저러나 나는 가장 예쁘구나 싶은 마을과 삶터와 숲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자연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내 사랑과 꿈을 담아 사진으로 찍습니다. 거짓스럽거나 바보스러운 검은 돈바람이 이곳에 깃들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고운 삶자락을 사진으로 찍습니다. 나는 웃는 얼굴로 시골 흙을 아끼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과 옆지기 모두 웃는 얼굴로 시골 푸나무를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4345.7.4.물.ㅎㄲㅅㄱ)

 


― 다녀왔어 노래 3 (후지모토 유키 글·그림,장혜영 옮김,대원씨아이 펴냄,2012.3.15./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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