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글게 쓰는 우리 말
 (1525) 산자전거, 길자전거

 

그래도 명색이 산자전거(MTB)인 데다 프레임이 워낙 무겁고 둔탁해서 요즘 타는 길자전거(로드바이크)에 비하면 노면에 대한 반응은 둔한 편이라
《윤준호,반이정,지음,차우진,임익종,박지훈,서도은,조약골,김하림-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지성사,2009) 204쪽

 

  보기글은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냥저냥 쓸 수 있으나, 차근차근 가다듬을 수 있어요. ‘산자전거’라 적은 다음 ‘MTB’라고 영어를 붙이는데, 이렇게 안 붙여도 얼마든지 알아들을 만해요. 하나하나 짚어 보면, “그래도 명색(名色)이”는 “그래도”나 “그래도 이름이”나 “그래도 허울이”로 다듬습니다. ‘프레임(frame)’은 ‘뼈대’나 ‘몸통’으로 손보고, ‘둔탁(鈍濁)해서’는 ‘투박해서’로 손보며, ‘-에 비(比)하면’은 ‘-에 견주면’이나 ‘-에 대면’이나 ‘-을 생각하면’으로 손봅니다. “노면(路面)에 대(對)한 반응(反應)은”은 “길을 달리는 느낌은”이나 “길을 달리는 맛은”으로 손질하고, ‘둔(鈍)한’은 ‘무거운’이나 ‘묵직한’이나 ‘무딘’으로 손질해 줍니다.

 

 산자전거 / MTB
 길자전거 / 로드바이크

 

 이 글을 쓰신 분은 낱말이나 말투가 썩 싱그럽지 못합니다. 딱딱하고 메마르다고 할 만합니다. 그런데, 두 가지 낱말, ‘산자전거’와 ‘길자전거’라는 대목에서는 산뜻합니다. 저로서는 새롭다고 느낍니다. 곧, “산을 타는 자전거”가 “산타는자전거”요, 간추려 “산자전거”가 됩니다. “길을 달리는 자전거”는 “길달림자전거”요, 간추리니까 “길자전거”가 돼요.


  산을 타는 자전거를 가리켜, 알파벳으로 줄이면 ‘MTB’입니다. 미국사람이 만든 자전거라 미국말로 이름이 붙는데, 우리들은 으레 한글로 ‘엠티비’라고 가리키기도 합니다만, 쓰임새 그대로 ‘산타는자전거’라 할 수 있으며, 단출하게 줄여 ‘산자전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로드바이크’라는 말마디를 살필 때에도 매한가지입니다. 흔히 ‘싸이클’이라고도 하는 자전거가 바로 ‘로드바이크’입니다만, 말 그대로 “길을 달리는(로드) 자전거(바이크)”이기 때문에 ‘길달림자전거’라 할 수 있는 한편, 가볍게 줄여 ‘길자전거’라 할 수 있어요.


  이를 바탕으로 ‘짐자전거’와 ‘꼬마자전거’와 ‘세발자전거’를 생각해 봅니다. 짐을 실어 짐자전거입니다. 아이들이 타는 자그마한 자전거라서 꼬마자전거입니다. 바퀴를 셋 달았기에 세발자전거입니다.


  아기를 태우고 다니는 자전거라 한다면 ‘아기자전거’라 해 볼 수 있겠지요? 둘이나 셋이서 짝을 지어 함께 타는 자전거라 한다면 ‘짝자전거’나 ‘짝꿍자전거’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이 타는 자전거 뒤에 어린이가 함께 탈 수 있도록 안장과 바퀴 하나 붙이는 자전거라면 ‘새끼자전거’나 ‘딸림자전거’라 할 수 있어요.


  장사하는 분들이 손수레를 앞이나 뒤에 붙여서 자전거를 끈다면, ‘짐수레자전거’ 또는 ‘수레자전거’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 ‘수레자전거’가 거의 없지만,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웬만한 장사꾼들은 하나같이 ‘수레자전거’에 짐과 사람을 잔뜩 태워서 다닙니다.

 

 산자전거 / 길자전거
 짐자전거 / 수레자전거 / 삶자전거
 꼬마자전거 / 어린이자전거
 아기자전거 / 새끼자전거 / 딸림자전거
 세발자전거 / 네발자전거 / 외발자전거
 큰자전거 / 작은자전거
 누워타는자전거
 …

 

 우리가 처음 만든 물건이 아닌 자전거입니다. 나라밖에서 들여온 자전거입니다. 자전거 부속을 가리키는 이름을 살피면, 한자로 지은 이름이나 영어로 지은 낱말투성이입니다. 그래도 요모조모 몇 가지는 우리 나름대로 풀어내어 쓰며, 우리가 생각을 펼치거나 넓히려 한다면 얼마든지 더 많은 부속을 손쉽고 깨끔하게 풀어낼 수 있습니다. 손잡이, 바퀴살, 안장대(안장기둥), 발판, 딸랑이, 뒷거울, 앞등, 뒷등, 기어줄, 브레이크줄, 조임나사, 잠금나사, ……처럼 쓸 수 있어요.


  따지고 보면 ‘자전거’라는 말마디도 우리 말이 아니라 할 수 있을 텐데, 자전거를 놓고 ‘自轉車’라고 적는 일은 없습니다. 굳이 이렇게 한자를 하나하나 뜯어 보면서 이야기를 하려 한다면 할 노릇이지만, 우리한테 자전거는 ‘자전거’일 뿐입니다. 그냥 우리 말이에요. 더욱이, 자전거를 서양에서 만들었다 하여 우리가 굳이 ‘cycle’이나 ‘bicycle’이나 ‘bike’라고 말할 까닭은 더욱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그저 ‘자전거’라는 이름 하나면 알맞춤합니다.


  우리 삶에 스며든 이 자전거라는 탈거리를 우리 깜냥에 따라 알맞게 삭이고 다듬으며 추슬러서 즐기면 됩니다. 우리 나름대로 자전거를 신나게 타면서 우리 삶터를 알차게 북돋우면 넉넉합니다. 자동차를 두고 괜히 ‘car’나 ‘카’라고 해야 제대로 자동차를 타거나 즐긴다고 할 수 없듯, 자전거는 자전거요, 자전거를 가리키는 이름은 얼마든지 내 슬기를 빛내면서 일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나 스스로 내 자전거 이름을 빚어낸다면, 또 내 손으로 내 자전거 삶을 가꾸어 본다면, 한결 아름답고 기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4342.7.26.해.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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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산자전거인 데다 몸통이 워낙 무겁고 투박해서, 요즘 타는 길자전거와 견주면 길을 달리는 맛은 좀 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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