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가 공원에 갔어요! - 9 아이즐 그림책방 9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김서정 옮김 / 아이즐북스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햇살은 언제나 따뜻하다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175]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잉그리드 나이만, 《삐삐가 공원에 갔어요!》(아이즐books,2006)

 


  오랫동안 비구름이 찾아들지 않았습니다. 거의 한 달만이로구나 싶은 비구름이 그예 찾아와 하루 내내 비를 뿌렸습니다. 마침 둘째 아이는 엊그제 신나게 물놀이까지 한 뒤 몸이 후끈후끈 달았습니다. 여느 날보다 오줌바지와 오줌기저귀가 많이 나옵니다. 틈틈이 둘째 옷가지 빨래를 하지만, 둘째 빨래는 하루가 지나도록 마르지 않습니다. 비오는 날씨이니까요.


  그동안 해가 쨍쨍 내리쬐기도 했고, 해가 안 나더라도 바람이 시원스레 불었습니다. 빨래를 해서 마당에 널기만 하면 햇살과 바람이 포근히 감싸며 보송보송 말려 주었어요. 고작 하루 해가 안 났을 뿐이요, 기껏 하루 바깥바람을 쐴 수 없을 뿐이나, 이렇게 빨래 말리기가 고단합니다. 어제 넌 빨래가 아직 하나도 안 말랐으니, 밤새 나온 오줌바지와 오줌기저귀는 언제 빨아야 할까 아득합니다.


.. 삐삐가 사는 스웨덴의 조그만 마을은 정말 평화로운 곳이었어요. 불량배라고는 고작 한둘이었어요. 그나마 그 불량배도 금세 삐삐한테 혼이 나서 다시 얌전해졌고요. 하지만 임금님이 사는 스톡홀름이라는 도시는 그렇지가 않나 봐요. 신문을 보면 불량배들이 떼를 지어 몰려다닌대요 ..  (7쪽)


  햇살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맑은 날에도 햇살은 따뜻하고, 흐린 날에도 햇살은 따뜻합니다. 더운 날이건 추운 날이건, 햇살은 늘 고운 볕과 빛을 우리한테 베풉니다. 겨울이 되어 춥다 하건, 봄을 맞이해 따스하다 하건, 해님은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우리한테 찾아옵니다.


  멧등성이에 걸린 하얀 구름과 잿빛 구름을 바라봅니다. 밤새 별을 볼 수 없던 하루를 지나고 훤하게 튼 새벽나절 먼 멧자락을 바라봅니다. 구름에 가리기는 했어도 해님은 저 멀리부터 고운 볕과 빛을 흩뿌립니다. 구름에 가린다 하더라도 마을과 들판은 환합니다. 밝은 빛이 온누리를 감돕니다.


  사랑이라 한다면, 아무리 두꺼운 쇳덩어리 울타리라 하더라도 뚫겠지요. 아니, 사랑이라 한다면 제아무리 두꺼운 쇳덩어리가 되든 시멘트가 되든 아랑곳하지 않아요. 천 킬로미터를 떨어진들 만 킬로미터를 떨어진들 사랑은 고이 이어갑니다. 따사로운 사랑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산들산들 바람이 되어 찾아갑니다.


  이승을 건너 저승으로도 찾아가는 사랑입니다. 저승에서도 이승을 바라보는 사랑입니다. 뭍에서 깊은 바다 밑까지 스미는 사랑입니다. 어떤 비행기보다 빠르고, 어떤 손전화보다 잘 이어집니다. 어떤 셈틀보다 똑똑하며 어떤 신문보다 이야기가 넘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나날이란 바로 사랑을 먹는 나날이고, 사랑을 누리는 나날이며, 사랑을 일구는 나날이리라 생각합니다.

 

 


.. “너, 건축 허가서는 받고 이 집을 짓는 거냐?” 회색 양복 아저씨가 뒤죽박죽 별장을 가리키며 물었어요. “무슨 허가서요?” 삐삐가 대답했어요. “건축 허가서! 집을 지어도 된다는 허락 말이다. 허락은 받은 거야?” 회색 양복 아저씨가 소리쳤어요. “아∼뇨!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되고 있는데요.”삐삐가 말했어요 ..  (9쪽)


  언제나 좋은 하루입니다. 구름에 가려 눈으로 볼 수 없다지만, 햇살은 늘 우리 곁에 있다고 느낄 수 있어 좋은 하루입니다. 내 곁 좋은 살붙이들 좋은 넋이 늘 나와 함께 싱그러이 숨을 쉰다고 느낄 수 있어 좋은 하루입니다. 내가 품는 꿈이 좋은 기운이 되어 좋은 바람에 실리고 지구별 곳곳으로 살가이 퍼질 수 있으니 좋은 하루라고 느낍니다. 내 이웃과 동무들이 품는 좋은 사랑이 좋은 이야기 되어 널리널리 마실을 다닌다고 느껴 좋은 하루라고 여깁니다.


  오늘 하루, 아이들은 또 무슨 놀이를 하며 스물네 시간을 누릴까요. 오늘 하루, 내 어버이와 옆지기 어버이는 어느 곳에서 어떤 일을 붙잡으며 스물네 시간을 누리실까요.


  시골마을은 한창 바쁜 일철입니다. 시골마을은 유월도 칠월도 한창 바쁩니다. 팔월이나 구월이라 해서 바쁜 일이 잦아들지 않습니다. 학교는 칠월에 접어들며 한 달 즈음 말미를 둡니다. 교사도 숨을 돌리고, 학생도 숨을 돌립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넣고 회사에 다니는 여느 어버이들도 며칠 즈음 숨을 돌립니다.


  도시에서는 여름철 말미를 맞이해 시골로 나들이를 떠나곤 합니다. 누군가는 비행기를 타고 먼먼 나라로 찾아갈 테고, 누군가는 자가용을 이끌고 더 깨끗하고 더 맑다 하는 시골마을 골짜기나 바다나 냇물을 누리려 합니다.


  참 마땅하지만, 지저분한 시골로 찾아가서 물놀이를 할 도시사람은 없습니다. 핵발전소나 화력발전소 곁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골짜기 물을 마시려 할 도시사람도 없습니다. 가까이에 제철소가 있는데 갯벌에 들어가 조개를 잡을 도시사람이 있을까요. 가까이에 송전탑이 있는데 천막을 치며 하룻밤 묵을 도시사람이 있을까요. 가까이에 고속도로가 지나거나 고속철도가 지나는데 옹기종기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으려 할 도시사람이 있을까요.


  어느 시골이든 가장 시골다우면서 가장 맑고 깨끗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골땅에 공장을 짓거나 발전소를 세우거나 쓰레기 메우는 데를 마련하거나 고속도로나 고속철도를 내어서는 안 될 노릇입니다. 사람이 먹는 밥을 일구는 시골땅 어디에도 더럽거나 지저분하거나 먼지를 내거나 하는 시설을 세우면 안 될 일입니다. 꼭 칠월이나 팔월 놀이철이나 쉼철이 아니더라도, 한 해 삼백예순닷새 늘 아름답고 싱그러우며 고운 시골마을로 이어갈 수 있어야 해요. 왜냐하면, 삶이고 목숨이며 사랑이거든요.

 

 


.. 여러분도 알다시피, 그 안에는 아이들 셋이 앉아 있었지요. 한 아이는 온통 빨간 머리카락에 검정색 양말과 줄무늬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있었어요. 그 아이를 보면 조심해야 한다는 걸 여러분은 알고 있지만, 불량배들은 책을 안 읽거든요 ..  (14쪽)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글에 잉그리드 나이만 님이 그림을 빚은 《삐삐가 공원에 갔어요!》(아이즐books,2006)라 하는 그림책을 읽습니다. ‘삐삐’는 어른이 만든 어떠한 규칙이나 제도도 따르지 않습니다. 삐삐는 스스로 가장 재미나다고 여기는 일을 즐기려 합니다. 삐삐는 스스로 가장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하려 합니다. 삐삐는 스스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삶을 누리려 합니다. 삐삐는 스스로 가장 곱다고 느끼는 사랑을 나누려 합니다.


  삐삐한테는 불량배도 임금님도 경찰도 회사원도 따로 없습니다. 삐삐가 바라보기에는 모두 같은 사람이고 모두 같은 동무이며 모두 같은 이웃입니다. 착한 마음을 바라보면 되지, 겉모습이나 옷차림을 살필 까닭이 없습니다. 참다운 넋을 헤아리면 되지, 입에 발린 말이나 책에 적힌 글월이나 규칙을 욀 까닭이 없습니다. 고운 꿈을 예쁜 이야기로 주고받으면 되지, 애써 졸업장이나 자격증이나 주민등록증을 앞세울 까닭이 없습니다.


  우람하게 선 느티나무가 이백 살이건 팔백 살이건 그리 대수롭지 않아요. 나이가 백 살이나 이백 살 더 먹었대서 더 대단한 나무이지 않아요. 모두 느티나무예요. 쉰 살 먹은 감나무이건 열다섯 살 먹은 감나무이건, 말간 빛 어여쁜 감알을 빚습니다. 쉰 살 먹은 감나무이기에 더 달거나 맛난 감알을 맺지 않아요. 길가에 흐드러지는 들꽃 가운데 키가 1밀리미터 더 크대서 더 돋보이는 들꽃이지 않아요. 꽃망울을 한둘 더 달았대서 더 아리따운 들꽃이지 않아요. 토끼풀은 잎사귀가 셋이든 넷이든 다섯이든 언제나 토끼풀이에요. 세 잎만 토끼풀이고 네 잎은 ‘안 토끼풀’이지 않아요.


.. 어느 날 멀리 떨어진 타카투카 섬에서 닐슨 씨의 친구인 고릴라 스벤손 씨가 찾아왔어요. 정말 근사하게 생긴 고릴라였지요. 스톡홀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 멋진 고릴라를 직접 볼 수 있었어요. 그래요. 삐삐가 온 뒤로 훔멜 공원에는 이렇게 볼거리가 많이 생겼답니다 ..  (21쪽)

 


  햇살은 언제나 따뜻합니다. 사랑은 언제나 포근합니다. 해님은 늘 따사롭습니다. 꿈은 늘 믿음직합니다. 아이들은 노상 해맑게 뛰놉니다. 어른들 또한 누구나 아이들 한삶을 누리면서 무럭무럭 자라 오늘에 이르렀기에 온 하루를 맑게 빛냅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좋은 햇볕을 느끼며 생각하면 넉넉합니다. 밥상 앞에서 좋은 기운과 냄새를 느끼며 먹으면 넉넉합니다. 날마다 새로 맞이하는 아침에 방긋방긋 웃으며 좋은 이야기를 꽃피우면 넉넉합니다. 나는 날마다 따순 햇살을 누리면서 따순 말을 북돋우고 싶은 두 아이 어버이입니다. (4345.6.19.불.ㅎㄲㅅㄱ)

 


― 삐삐가 공원에 갔어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잉그리드 나이만 그림,김서정 옮김,아이즐books 펴냄,2006.5.20./7500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