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말 97] 혼인 기리기

 

  나는 1982년에 국민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무렵 학교에서는 ‘우리 고장 문화재’라든지 ‘우리 고장 천연기념물’이라든지 ‘우리 고장 기릴 만한 훌륭한 분’이라든지 알아보는 숙제를 내주곤 했습니다. 이런 숙제를 받을 때면 언제나 골머리를 앓습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인천은 으레 ‘서울로 가려다 못 가고 남은 뜨내기’가 모이는 곳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서울과 가깝다 보니, 서울에서 쓰는 물건을 만드는 공장이 동네마다 많았어요. 문화재라든지 천연기념물이 있을 턱이 없으리라 느꼈어요. 동무들은 이래저래 골치를 썩이다가, 갈매기라든지 비둘기라든지 적곤 합니다. 갈매기나 비둘기가 천연기념물일 턱이 없지만, 쓸거리 또한 없거든요. 기릴 만한 훌륭한 분을 찾는 숙제도 힘들었습니다. 조선이든 고려이든 고구려이든 백제이든 옛조선이든, 인천에서 나고 자란 훌륭한 분이 누가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젓기만 했어요. 오늘날 들어 비로소 ‘한글 점글 만든’ 박두성 님이라든지  ‘진보 정치를 꿈꾸었다’는 조봉암 님이라든지 들곤 하지만, 어릴 적에는 이런 이름을 듣도 보도 알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과 시골에서 살아가며 가만히 생각합니다. 나는 어릴 적 ‘내 고장 기릴 사람’ 이름을 역사책에서 훑다가 하품만 흘렸는데, 내가 숙제에 적을 훌륭한 분이라면 마땅히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고, 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있어요. 역사책에도 교과서에도 이름을 안 올리지만, 꿈과 사랑을 심은 아름다운 분이기에 넉넉히 ‘기릴’ 만하고 마음으로 되새길 만해요. 해마다 6월 7일을 맞이하면, 나와 옆지기는 서로 함께 살기로 다짐한 뜻, 곧 혼인날을 기립니다. (4345.6.11.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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